# 292
제292장 중주대란(2)
풍운룡은 분노에 휩싸인 채 말했다.
“뭐 하는 것이냐? 성주의 명령을 못 들은 것이냐?”
“신풍후 마마의 영패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제현이 품 안에서 청색 영패를 꺼내들었다.
“신풍후 마마께서 질풍기병을 이미 내게 맡기셨습니다! 성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중요한 시기에 이 천제현을 위해 군대를 보내주셨으니 말입니다!”
풍운룡이 분노로 머리가 하얗게 타 버릴 지경이었다.
“질풍기병단은 금위군이다. 어찌 외부인의 명령을 듣는단 말인가! 죽여라! 저들을 죽여! 항명하는 놈들은 삼족을 다 멸할 것이다!”
지엄한 명령에도 질풍기병단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천제현은 그들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같이 천제현의 신비스러운 능력을 존경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풍후가 왕성으로 갈 때 분명히 천제현에게 군대를 맡긴 것이다. 아마도 신풍후가 중주성의 난을 예측하고 천제현을 위해 미리 포석을 깔아둔 게 아닌가 싶었다.
천제현은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풍운룡은 삼대 가문을 책동하여 난을 일으켰다! 저자를 잡아라!”
“네!”
기병들은 창과 칼끝을 풍운룡에게 겨누고는 그 주위를 에워쌌다. 풍운룡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풍운룡을 성주부로 압송한 후 가두어라!”
풍운룡은 어쨌든 풍씨 가문의 형제가 아닌가. 그리하여 천제현은 그의 목숨은 거두지 않은 채 이자를 성주부에 감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머지는 다 죽여라!”
“존명!”
천제현이 기병 수백 명을 이끌고, 성문에서 바로 뛰어나갔다.
밖은 이미 난장판이 따로 없었고, 양씨 가문의 늑대 기병과 중주 정규군이 한창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장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참담했다.
양씨 가문은 가장 강력한 사병을 거느리고 있다. 전투력 면에서는 일반 정규군보다 훨씬 막강했다.
공화련이 염무기를 위해 사전에 대비해 놓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은 늑대 기병이 성으로 들이닥치면 중주성 일대에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양씨 가문의 늑대 기병은 중주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지옥 화염이 선봉에 서서 길을 열자 늑대 기병단이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염무기가 양무도와 싸우던 중 이 상황을 보더니 크게 웃었다.
“지원군이 왔다!”
“천제현!”
양무도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네놈이 어째서…….”
양무도는 결국 ‘죽지 않았느냐’라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여씨 형제들은 거대상어를 소환하여 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핏빛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더니 양무도를 중심으로 일격을 가했다.
쫙!
온몸이 갈기갈기 찢겼다.
이 세상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으로 살았던 양무도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다섯 형제는 적의 우두머리를 벤 후 바로 짧게 호각을 불었다.
상어해적단 정예군은 이미 중주성의 동란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명령이 없어 경거망동할 수 없었을 따름이다.
다섯 방주의 부름을 받은 정예군사 3천 명은 거침없이 중주성으로 달려갔다.
상어해적단은 생긴 지 고작 20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호수 바닥의 강력한 무공을 발견한 덕분에 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상어해적단 3천 명은 수중 전투력에서 사대 가문의 정예군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육지전의 경우, 전투력이 다소 떨어지기는 해도 그 가공한 힘은 여전했다.
“가주가 죽었다!”
“가주가 죽었어!”
양씨 가문의 늑대 기병도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상어해적단의 정예군이 천제현과 회합했고, 염무기가 이끄는 대군과 질풍기병까지 합세한 상황이니 절대 막아설 수 없을 것이다.
양씨 가문이 중주성에서 최대 규모이자 정규군조차 능가할 정도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천제현의 등장만으로 사기가 뚝 떨어지니, 이제 전세는 한쪽으로 확실히 기울어졌다.
중주성 최강의 사병부대는 사분오열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늑대의 사체와 사람의 주검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새빨간 핏물이 강을 이루었다.
“천씨, 낙씨, 양씨 가문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염무기가 긴 창을 들더니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함께 성으로 가 난을 진압합시다!”
“반역자를 죽여라!”
“반역자를 죽여라!”
2만 대군이 위풍당당하게 중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낙씨 가문과 양씨 가문의 남은 정예군은 두 가문의 상황을 까맣게 모른 채 운씨 가문과 기적상회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이제 운가와 기적상회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때, 천제현이 병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리고 압도적인 힘으로 두 가문의 정예군을 제압했다.
양의, 낙만상은 이 같은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당황하고 있었다.
“죽어라!”
천제현이 냉혹한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대방주 등 다섯 형제, 운천학, 심빙우는 모두 진혼급 고수들이라 두 가문은 그들과 대적할 힘이 없었다.
결국 양의, 낙만상, 낙연성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단 한 번의 전투로, 삼대 가문과 운씨 가문은 지난 백 년 동안 쌓아 올린 그들의 전투 능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중주성의 전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천제현은 염무기에게 성주부를 포위하고, 풍운룡을 성주부 내에 가두도록 한 후에 삼대 가문을 숙청했다.
투항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목숨을 잃었다.
이 참혹한 전란은 하룻밤 내내 이어졌다. 살육의 하루였고, 피의 하루였으며 공포의 하루였다.
***
이튿날.
태양은 어김없이 떠올라 중주성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피 냄새를 맡은 독수리 떼들이 도시 상공을 배회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에서 벗어나 점차 안정을 되찾았으나 중주성 전체는 지난 전투의 참상을 오롯하게 품고 있었고, 특히 짙은 피비린내가 성 전체를 가득 메웠다.
수많은 사람이 흘린 피가 강을 이루고, 중주성 최강의 사병으로 불리는 양씨 가문의 늑대 기병마저도 큰 타격을 받았다.
중주성 정규부대 역시 만만치 않은 사상자를 내었다.
늑대와 말의 사체, 사람의 주검이 산처럼 쌓였으니 그 참상이라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성내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도시 곳곳은 전투로 인한 생채기로 몸살을 앓았고, 수많은 건물이 깡그리 불타 버렸다. 병사들은 부단히 물을 길어와 바닥을 물들인 핏자국을 지우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번화하기로 소문난 중주성이 삼대 가문의 반란으로 순식간에 엉망이 되버리다니.
최소한 3~4만 명이 동란 가운데 생명을 잃었다. 이는 중주성이 건립된 후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피의 참극이었다.
물론 삼대 가문 모두 참패했다.
태상장로, 가주 모두 그 자리에서 전사했고, 전체 가문의 정예군도 거의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떠안았다.
이제부터 중주성에서 천씨, 운씨, 낙씨, 양씨, 사대 가문을 위주로 돌아가던 중주의 세력구도가 완전히 재편될 것이다.
사대 가문이 각자 할거한 시대는 이대로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 폐허 위에서 새로운 거물이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 새로운 거물은 천남성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순식간에 발전을 이룬 한 상회였다.
삼대 가문의 역습은 결코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계획한 대규모 전략이었다.
다만, 세 가문 모두 천제현을 과소평가했다는 게 문제였다.
기적상회는 상어해적단의 도움으로 적절한 시기에 돌아와 그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기적상회의 핵심인물 가운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이 기회를 빌려 삼대 가문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았으니, 기적상회는 이번 전쟁에서 최후 승리자이자 최대 수혜자인 셈이었다.
“피해 상황은 어때요?”
공화련이 대답했다.
“기적대주점이 불에 타 버렸고, 자음탑 두 곳 역시 완전히 붕괴되었어. 몇몇 공장 역시 파손되었고. 사상자는 천 명이 넘어. 본부에 있던 연구소 몇 채도 파괴되었어. 일부 기밀자료도 유실되는 바람에 지금 그거 찾느라 정신없지.”
“이런, 젠장!”
천제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삼대 가문은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군요. 우리도 그들을 체면 봐주지 말아요! 마수차 좀 준비해주세요. 아무래도 저는 삼대 가문에게 이 빚을 좀 받아내야겠어요.”
어떻게 이 정도 규모의 전란에서 피해 하나 없이 어떻게 멀쩡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적상회는 기반 자체에 어떤 손해도 입은 바가 없으니 이것만으로도 완벽한 승리라 할 수 있다.
삼대 가문은 무려 백 년 이상 세력을 키워왔으니 풍부한 경제 기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삼대 가문의 재물을 몽땅 빼앗아와야겠어!’
천제현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놈들이 이렇게 나왔으니 이제 내가 원금과 이자 모두 받아내는 수밖에!’
“삼대 가문에 가는 길인가?”
운천학이 다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자중하게! 중주 사대 가문은 지난 100년 동안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뤄왔네. 이는 서로의 세력이 비슷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왕성 쪽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야. 삼대 가문의 멸문 소식은 이미 왕성을 충격에 빠뜨려 놓았어. 만약 상부에 보고하지도 않고 삼대 가문의 재산을 전부 몰수해 간다면 왕부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네!”
왕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금으로서는 추측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가만있지 말라고 하세요. 기적상회는 여태껏 누구의 눈치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중주성에서 기적상회 세력이 가장 클 겁니다!”
“맞아요!”
“당연히 재산을 몰수해야지!”
“삼대 가문의 물건이란 물건은 다 가져오자!”
남궁혜와 공서련은 찬성했고, 공화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운천학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대 가문이 이토록 강해질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수백 년 동안 한쪽이 다른 한쪽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이는 왕성 쪽에서 의도적으로 나눠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지방 가문 중 하나가 독보적인 우위를 점한다면, 왕국의 집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왕국은 완전무결하게 강한 세력이 필요하긴 했으나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는 세력을 더 필요로 했다.
천제현은 지난 100년간 삼대 가문이 유지해온 아슬아슬한 힘의 균형을 단박에 깨뜨렸고, 이로써 기적상회는 중주성에서 막강한 독점 세력으로 거듭났다.
이는 분명 왕성이 원하는 결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만방자하게도 삼대 가문의 재산까지 몰수하려 든다면 왕성이 잠자코 있겠는가.
이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공화련 역시 마음이 찬성으로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엄청난 재산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