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제285장 중주로 귀환
다음날, 다시 항해에 오른 선단에는 다섯 척의 군함 외에도 네 척의 대형선박이 더 늘어 있었다.
다섯 방주를 포함해 상어해적단 정예 삼천여 명이 중주로 향한 것이다.
상어해적단의 정예들은 막강한 실력을 자랑했다. 대부분이 연체 8, 9성이었고, 혼성술사들도 상당히 많았다. 질풍기병단에도 밀리지 않을뿐더러 남하국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히는 수준일 것이다.
적어도 수중전에서 만큼은 그들을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다.
이 역시 천제현이 상어해적단을 영입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번 계약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기적상회가 상어해적단을 품는 그 순간, 남하국 전체를 누빌 선단이 탄생한다.
기적상회는 이제 각 지역의 중심부에 전용 부두와 공장을 세우고 물길을 따라 영역을 무한히 확장해 나갈 것이다.
상어해적단은 강력한 집단이었다.
과거만 제대로 청산한다면 그 어느 일류 명문세가도 부럽지 않을!
수상의 최강자인 그들이 있는 이상 기적상회 소속 선박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을 것이요, 누구도 기적상회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리라.
‘감히 나한테 덤비겠다고? 영영 배 띄울 생각이 없거든 어디 한번 해보시지! 남하국의 모든 물길은 이제 이 천제현의 손안에 있으니까!’
***
함대가 중주에 당도한 건 일출 무렵이었다.
“만세!”
갑판에서 저 멀리 중주 부두를 발견한 공서련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역시 중주가 최고야!”
일선 전투에 나서지는 않았어도 뇌주의 처참한 모습은 공서련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세상은 평화롭기만 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살던 이들의 일상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니 힘을 키워야 했다. 자신과 주변인들을 지키려면 힘과 권세가 필요했다.
힘의 중요성을 깨달은 공서련은 다짐했다. 더 강해지겠노라, 기적상회를 더 막강한 세력으로 키우겠노라고.
선박이 속속 들어오는 중주 부두. 상어해적단 정예들은 저주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천제현을 따라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여씨 5형제뿐이었다.
지원군의 귀환으로 중주는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이제 병사들의 입을 통해 뇌주에서 있었던 일이 성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면 천제현은 또 한 번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리라.
세 제후조차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결하고 뇌주 백성들을 구원한 영웅.
그간 중주성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큰 거리마다 마력등이 설치됐고 공공장소에는 방송탑이 우뚝 서 있었다.
광장과 번화가에는 종일 감미로운 음악이 흘렀다. 삶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은 이 모든 것들이 기적상회의 작품이었다.
천제현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사람들이 갖고 다니는 검은색 장치였다. 한 자 반 길이에 무게는 열 근이 조금 넘을까, 장치에서는 기적상회가 송출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휴대형 수정통신기인가?”
이런 걸 만들어낼 사람은 공서련뿐.
수정통신기와 축음기는 원래 평소에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공화련은 줄곧 그 점을 개선하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천제현이 시련탑에서 기계장치 비급을 가지고 나오자, 그걸 해석해서 동소어와 함께 설비 크기를 줄일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주일 좀 넘게 지났을 뿐인데 벌써 완성이라니?’
대단한 추진력이 아닌가.
휴대형 수정통신기는 기존 제품의 1/8 크기에 불과했다. 신호 수신과 음향의 질은 약간 떨어지지만, 탁월한 편리함을 무기로 향후 수정통신기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연구소를 설립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천제현이 핵심기술만 개발해 놓으면 테스트와 개량, 보급은 연구소 직원들이 알아서 해결해주고 있었다.
“여기가 중주성인가?”
“20년 전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군!”
상어해적단 5형제는 지금 단단한 땅을 딛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흡사 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감격에 눈시울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20여 년 만이었다. 무려 20여 년!
인생에서 20년이란 얼마나 긴 세월인가?
‘당당하게 중주성을 누비는 날이 오다니!’
이제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작은 성을 연상케 하는 기적상회 본사 앞에서 다섯 사람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통 상회라면 꿈도 못 꿀 으리으리한 건물이었다.
이때 새하얀 옷을 차려입은 절세미인이 걸어 나왔다.
“큰아가씨, 큰아가씨!”
천제현이 짐짓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 엇, 살이 좀 붙은 것 같은데요?”
공화련이 코웃음을 쳤다.
“상회랑 연구소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무슨 수로 살이 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진짜라니까요?”
천제현이 능청스럽게 공화련의 가슴과 엉덩이를 훑어봤다.
“진짜 쪘는데…… 아얏!”
천제현을 힘껏 꼬집어준 공서련이 언니 품으로 뛰어들었다.
“언니, 나도 보고 싶었어!”
“뇌주는 어땠니?”
“처참했어. 우리한테 벌어진 일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만 해도 끔찍하더라니까!”
“바보 같긴, 그런 소리는 하는 거 아니야.”
아마 서련이가 많이 놀랐으리라. 그나저나 이렇게 갑작스러운 귀환이라니.
“어떻게 벌써 온 거야?”
“훗, 그게 뭐 대단한 일이었다고요. 이 천제현이 직접 나선 순간 상황 끝난 거 아니겠어요?”
천제현의 평소 성격을 모를 공화련이 아니었다.
저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다 해결됐으니 다행이다.’
천제현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려던 찰나, 괴상한 옷차림을 한 다섯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이분들은?”
“아, 이쪽이요?”
천제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세상 물정은 모르지만, 밑에 부하는 엄청나게 거느리고 있어요. 앞으로 기적상회에서 큰아가씨와 한솥밥 먹게 될 거고요.”
방주 일행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건 무슨 소리고 저 여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기적상회 우두머리는 천제현 아니었나?’
‘대체 왜 저 여자한테 자꾸 큰아가씨, 큰아가씨 하는 거지?’
“거기 서서 뭐 해요?”
천제현이 공화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름다우신 분은 부회장, 기적상회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직책이에요. 이쪽에 잘 보여야 앞으로 편해질 겁니다.”
흠칫한 다섯 사람이 허겁지겁 공화련을 향해 포권했다.
“부회장님을 뵙습니다!”
천제현이 말을 이었다.
“가슴만 큰 게 아니라 머리도 좋으신 분이니까 도움 받을 일이 많을 거예요.”
“자꾸 까불면 나 진짜 화낸다!”
공화련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쓸데없는 소리는 무시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천제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대방주 어르신, 무공 탁본은요? 큰아가씨한테 좀 보여주세요.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 드리죠.”
일순 표정이 밝아진 대방주가 이방주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방주가 바닥에 풀어놓은 상어가죽 보따리 안에서 두꺼운 두루마리 하나가 보였다. 두루마리는 곧 공화련의 손으로 전해졌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해석만 해주신다면 우리 상어해적단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공화련은 이미 이들이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끼고 있었다.
천제현이 몸소 본사까지 데려왔을 정도인데 별 볼 일 없는 자들일 리가 없다.
쪼글쪼글한 두루마리를 펴서 쓱 훑어본 공화련이 미간을 찌푸렸다. 관자놀이에 살짝 통증이 오는가 싶더니 생경하던 글자들이 갑자기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공화련이 곧장 해양종족의 언어로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갔다.
“아앗?!”
“정말로 해석해 내다니!”
“대단하십니다!”
상어해적단 5형제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적상회 부회장을 뭐로 봤던 겁니까?”
천제현이 다섯 방주를 향해 손짓을 했다.
“해석이 끝나면 가져다줄 테니 일단 무공은 여기 두고 가세요. 남궁혜 아가씨, 서련 아가씨와 같이 가서 기적상회 발명품을 구경시켜 주세요. 그 김에 운문연구소랑 기린무도관도 둘러보고요.”
“그럴게.”
공서련과 남궁혜가 곧 여씨 5형제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마침 여씨 형제들도 궁금한 게 많은 참이었다. 특히 기적상회가 지금껏 쌓아 올린 기반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상어해적단의 미래를 책임질 집단이 아닌가, 이번 기회에 기적상회에 대해 확실히 알아두면 마음이 한결 놓이리라.
공화련이 천제현을 향해 눈을 흘겼다.
“이 정도야 보자마자 해석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내가 나설 기회를 만들다니, 꽤나 중요한 사람들인가 봐?”
“하하, 무슨 말씀을요. 제가 원래 귀찮은 건 질색이잖아요.”
말을 마친 천제현이 돌연 웃음기를 거두고 물었다.
“별일은 없었고요?”
“중주는 조용했어. 삼대 가문도 움직일 기미가 없고.”
공화련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해. 삼대 가문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넘겼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뜻 아니겠어? 뭔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몰라. 아, 그리고 최근 들어온 정보가 있어.”
“뭐죠?”
“삼대 가문이 핵심 정예들을 불러들이고 있어. 아무리 은밀히 움직여도 내 눈을 피해갈 수야 없지. 최정예들을 소집하는 걸 보면 대규모 전투를 준비하는 걸 거야. 아직은 잠잠하지만 일단 움직였다 하면 끝장을 보려 들겠지!”
삼대 가문에는 미리 기적상회를 깔짝깔짝 건드려 간을 볼 만한 여력도, 인내심도 없었다.
분명 단 한 번의 격전에 모든 걸 쏟아 부으려 할 것이다.
“수고하셨어요.”
천제현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피식 웃었다.
“그들이 병력을 소집하는 동안 우리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잖아요. 이쪽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예요. 방금 저 다섯만으로도 삼대 가문은 고생 좀 할 겁니다. 저대로 찌그러져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만약 덤빈다 해도 역공으로 쓸어버리면 그만이에요.”
‘역공으로 쓸어 버려?’
걱정할 게 뭐냐는 식이었다.
기적상회가 비공식적이나마 중주를 대표하는 다섯 번째 세력으로 큰 것은 사실이었다.
운문의 전폭적인 지원에 천제현의 위용까지 합치면 다른 가문 하나쯤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삼대 가문이 서로 손을 잡은 이상에는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기적상회 내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뇌주에 한번 다녀오더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역시 아까 본 다섯 사람에게 뭔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천제현이 물었다.
“기적상회는 잘 굴러가고 있고요?”
공화련이 상회 현황을 조목조목 보고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3차원 제작기술을 갖춘 위탁공장 20여 군데 덕에 제품 생산량이 급증했다. 천남성은 차근차근 마력전지제조 전문기지로 전환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