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
제284장 인수 성공(2)
한편, 상어해적단은 천제현이 알려준 방법 덕분에 20여 년간 그들을 괴롭혀 왔던 저주를 풀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상어해적단은 다시 조용히 사람을 보내 기적상회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곧 기적상회는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대형 상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인 즉, 기적상회와 함께 일하면 앞날이 아주 밝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대방주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리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천제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옳은 선택을 하셨군요. 함께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기적상회에서 작은 성의를 준비했습니다! 서련 아가씨,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세요!”
십여 분 후, 약 열 명가량의 부하들이 보물상자를 짊어지고 들어왔다.
공서련이 호탕하게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뚜껑을 여세요!”
부하들이 뚜껑을 열자 엄청나게 많은 금화가 번쩍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큰돈을 본 상어해적단 해적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금화 1억 냥입니다!”
천제현이 살짝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이 돈을 계약금 조로 드리겠습니다. 나, 천제현과 함께하는 한, 앞으로 더 큰 돈을 벌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상어해적단 사람들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이 나으리는 그야말로 억만장자구나!’
‘금화 1억 냥을 눈 하나 깜빡 않고 내놓다니!’
사대 가문이라고 해도 금화 1억 냥은 쉽게 내놓지 못할 것이다. 약탈을 생계로 살아가는 해적들로서는 더더욱 평생 만져보지 못할 금액이었다.
천제현은 능력과 재능, 재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의협심까지 있는 사내였다. 무엇보다도 상어해적단의 저주를 풀어 십만 명의 사람들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상어해적단 사람들은 이제 그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상어해적단 대방주가 물었다.
“기적상회와 손을 잡게 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오?”
기적상회의 능력을 확인하고 이들에게 협조하기로 결정한 상황.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도와야 하는지는 아직 무척이나 모호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막말로 천제현이 상어해적단을 전쟁터 화살받이로 몰아넣을지 누가 아는가?
“20년을 내리 물고기와 새우만 먹고 사는 것도 지긋지긋하지 않습니까?”
질문을 은근슬쩍 흘려보낸 천제현이 방금 나온 음식쟁반에 시선을 줬다. 생선 아니면 새우가 전부였다. 이곳에서는 술 구경 한번 하기도 힘들었다.
“식단을 좀 바꿔야 될 것 같군요.”
지긋지긋하지 않을 리가!
상어해적단의 근거지는 사주호 한복판이었다. 물고기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생필품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서련 아가씨, 남은 통조림 좀 줘보세요.”
공서련이 통조림 수십 개를 가져와 상어해적단 우두머리들에게 나눠줬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통조림 뚜껑을 열어본 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안에 든 것이 마수 고기였기 때문이었다.
천제현이 빙긋 웃었다.
“저희 기적상회에서 생산하는 제품입니다. 우선 맛부터 보고 이야기는 천천히 나눌까요?”
일부러 답을 회피하는 것 같아 영 찜찜했지만 일단은 천제현이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통조림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혀에 착 감기는 맛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약재를 넣고 푹 고아낸 마수 고기는 조금만 먹어도 든든할뿐더러 체력 회복에도 도움이 됐다. 게다가 장기간 섭취하면 마력까지 높여주었다.
‘이거 물건일세!’
‘그야말로 물건이야!’
“잘 알고 계시겠지만.”
천제현이 입을 열었다.
“기적상회 역시 다른 상회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설립 목적입니다. 이것 말고도 대표상품은 많죠. 일단 이 통조림이 어디 내놔도 잘 팔릴 거라는 점은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이리라 믿습니다. 기술과 생산력은 이미 갖춰져 있지만 판매경로를 개척해 줄 상단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사주호는 주변 네 개 지역과 맞닿아 있는 곳이죠. 기적상회의 능력에 상어해적단의 세력이라면 상생의 길을 찾는 게 뭐 어렵겠습니까?”
방주들의 불안감을 일거에 해소시켜주는 말이었다.
“기적상회의 지속적인 투자로 상어해적단은 세력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게 될 겁니다!”
천제현이 제시한 미래는 이상적이었다.
“상어해적단에는 지금도 실력 좋은 인재들이 충분합니다. 저주만 해결되면 당장에라도 선단을 조직해 각 지역에 지부를 세울 수 있죠. 나라 전체를 누비는 대형 상단 겸 용병단이 되는 겁니다. 상어해적단이 성장하면서 기적상회도 더 넓은 세상으로 뻗어 나갈 테고, 기적상회가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나면 상어해적단에 투입되는 액수도 따라서 커지는, 당연하고도 간단한 이치죠.”
흥분한 좌중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사업 키워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에게 상어해적단이라는 방파는 일종의 사업체였다.
기반은 이미 탄탄했다. 여기에 기적상회의 막대한 자금 지원이 더해진다면 당장 지부를 열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 진정한 일류방파로 거듭나는 것이다.
“더 궁금한 점이라도?”
“아니오, 기적상회에서 짜준 계획에 따르겠소!”
대방주도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만 우리 상어해적단을 옭아맨 저주가 걱정이오. 이 상태로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언제쯤에나 정상으로 돌아가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너무 조바심 낼 것 없습니다.”
대방주가 그 이야기를 꺼낼 건 천제현으로서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우선 유적을 좀 보여주십시오.”
여씨 5형제는 원래 보잘것없는 용병단 출신이었다.
보물지도에 표시된 보물이 정말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까지만 해도 용병단 모두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런데 끔찍한 저주에 걸려 사주호에 영영 발이 묶이게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다섯 형제가 창설한 상어해적단은 지난 이십여 년간 꾸준히 몸집을 불려 이제 십만 명 규모가 됐다.
남하국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으로 컸음에도 그들은 줄곧 음지에 숨어 노략질로 생계를 이어올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은 그들이 발견한 유적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대방주가 흔쾌히 천제현을 유적으로 안내했다.
“바로 이곳이오!”
호수 밑바닥에 감춰진 종유석 동굴, 동굴 정중앙쯤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전각이 서 있었다.
바닥이며 벽면, 기둥 할 것 없이 전체가 독특한 푸른빛 자재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반질반질 반투명한 것이 마치 얼음결정을 보는 듯했다.
“벽이 온통 무공이야!”
건물에 발을 들이는 동시에 벽면을 빽빽이 메운 고대문자가 눈에 띄었다. 친절하게도 설명도까지 곁들여진 고대의 무공이었다.
물고기 뼈 지팡이를 짚은 대방주가 말했다.
“고대 해양종족이 남긴 무공이라오. 정상적인 인간은 수련할 수 없지만 우리는 가능하지. 다만 문자 해독이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닌지라 팔십여 편에 달하는 무공 중 우리가 익힌 건 채 여덟 편이 안 된다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오늘의 상어해적단을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여기 있었다.
분명 위협적인 무공이다.
수중전에서 오방주의 활약상은 이미 다들 확인한 바 있었다. 물에서만큼은 동급 고수를 월등히 뛰어넘는 능력이었다.
천제현도 해양종족의 무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으나 그중 일부의 위력은 언뜻 보고도 짐작이 가능했다.
“그대로 옮겨 적어주면 제가 해석할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군요.”
대방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공을 전부 해석한다고 상상해 보라, 상어해적단이 얼마나 더 막강해지겠는가.
텅 빈 전각 안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면 이십여 년 전 여씨 5형제가 모조리 빼돌린 결과인지도 몰랐다. 다만 정중앙에는 거대한 인어 제단이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제단을 중심으로 육각형의 우물 여러 개가 주위를 빙 둘러싼 모습이었다. 우물 가까이 다가가자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켰음이 분명한 모종의 힘이 느껴졌다.
“이게 우리 힘의 근원이라오!”
대방주가 우물을 가리켰다.
“제사를 올릴 때마다 우물에서 기이한 물이 샘솟는데, 그 물을 마신 후 지금과 같은 능력이 생겼소.”
우물 하나를 한참 들여다보던 천제현이 말했다.
“안쪽에 해양종족 능력자의 시체가 봉인되어 있군요. 그들 특유의 장례 형태였을 겁니다. 저 안에서 솟는 물에는 해양종족 능력자의 골수도 녹아 있겠죠. 무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저주가 걸려 있었어요. 다른 종족이 마시면 변이를 일으키도록.”
갑자기 천제현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가만…… 골수라?’
천제현은 시련탑에서 가지고 나온 고대 신의 척추뼈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 안에서도 골수를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에 살던 해양종족의 골수가 혈통 변이를 일으켰다면 신의 골수에도 같은 효능이 있지는 않을까?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이었지만 연구해 볼 가치가 충분했다.
“연구용으로 조금 챙겨가겠습니다.”
푸른색 샘물을 채취한 천제현이 대방주를 보며 말했다.
“힘을 사용한 지는 얼마나 됐죠?”
“스물네 해째라오!”
말을 마친 대방주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빽빽한 물고기 비늘로 뒤덮인 피부에 하얗게 센 머리, 요괴를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끔찍한 거부반응을 겪어봤기에 그 저주의 무서움은 내가 가장 잘 안다오!”
공서련과 남궁혜를 비롯한 일행 모두 놀라 숨을 죽였다.
‘맙소사, 진짜 괴물이잖아!’
천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늦었군요. 저주는 풀 수 있을지 몰라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긴 힘들 겁니다.”
“그거면 충분하오.”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
이대로 두면 길어야 일 년, 짧으면 반년 안에 죽을 목숨인 것을.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확실히 알겠군요. 가져온 재료가 얼마 없어서 여기 있는 몇 분의 저주를 푸는 게 고작일 듯합니다. 나머지는 좀 더 기다려주세요.”
잠시 말을 멈췄던 천제현이 다시 대방주를 쳐다봤다.
“함께 중주 부두에 가서 계약서를 쓰도록 하죠. 우물에 넣을 약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걸 물이 솟는 구멍에 부으면 앞으로는 제사 후 물을 마셔도 부작용이 없을 겁니다.”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였다.
저주는 풀어주되, 일부에게는 해양종족의 피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해양종족의 힘이 완전히 사라진 상어해적단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능력이 사라지면 저들 역시 무슨 수로 방파를 유지한단 말인가?
“우리 상어해적단을 구해 준 은인이시구려!”
대방주는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천제현이 또 상어해적단을 구한 것이다. 게다가 방파의 미래까지 책임진다는데 방주 된 자로서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천제현이 곧장 희석한 신혈을 꺼내 상어해적단 지도층 몇몇의 저주를 풀어줬다. 자유의 몸이 된 다섯 방주에게 천제현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