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
제281장 비참하게 패배한 상관비진
상관비진은 황급히 철필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검광과 철필이 부딪히며 푸른 화염이 사방으로 튀었다.
공격이 막힌 천제현은 다른 방향에서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상관비진이 다시 팔을 휘두르자 이번 공격도 무위로 돌아갔다.
천제현의 연속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었다.
“네 검법은 별거 없구나. 속도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만, 너무 약하다. 죽어라!”
상관비진이 철필을 세차게 던졌다. 손을 떠난 철필은 천제현의 검날에 명중되었다.
천제현은 충격으로 인해 몇 장 밖으로 밀려갔다.
엄청난 힘과 부딪힌 검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과연 사방후의 후계자답군.’
천제현이 손쉽게 영묵 진형을 파괴한 것처럼 상관비진도 가볍게 천제현의 검법을 막았다.
“손에 든 그 검을 잃게 되면 어떤 공격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상관비진이 되돌아온 철필을 잡으며 조롱하는 어조로 말했다.
“네 무기를 보아라!”
수정처럼 빛나는 유명검의 검날에 먹구름 같은 기운이 덮여 있었다. 새까만 먹물 같은 기운이 벌레처럼 움직이며 작은 주문들로 변해 검을 봉인하고 있었다.
천제현은 갑자기 검이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유명검의 무게가 순식간에 열 배 이상 올라갔다. 이제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어떠냐? 이제 네 검은 쓸모없게 되었다!”
상관비진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일격에 검을 망가뜨렸으니 이제 일격에 널 망가뜨릴 차례다!”
“이까짓 애들 장난 따위.”
천제현이 심연유명화의 힘을 끄집어내자 검날에 생겼던 주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상관비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봉인하긴 뭘 봉인했다고 그래?”
천제현이 가볍게 검을 들어 올려 상관비진을 겨누며 말했다.
“네 무기나 보아라!”
멍한 표정으로 철필을 바라본 상관비진의 안색이 납빛이 되었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철필에 균열이 생겨 있었던 것이다. 균열 위에는 화염까지 맴돌고 있었다.
‘이럴 수가! 최상품 혼기인 이 철필에 어찌 균열이 생겼단 말인가!’
부끄러움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오른 상관비진은 철필을 들어 사정없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붓끝이 향하는 곳마다 영묵이 흩어지며 주문을 만들었다.
십 장 반경까지 흩어진 그 주문들은 거대한 마력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힘에 지면이 움푹 파이고 있었다.
“중력의 인!”
천제현은 산이 누르는 듯 엄청난 무게감을 느꼈다.
그때 상관비진이 다시 한 번 철필을 휘두르자 허공에 흩뿌려진 수많은 먹물 방울이 천제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중 대부분은 주문의 형태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신마검!”
수세에 몰린 천제현이 신마검의 정령을 소환하자 유명검의 검광이 더욱 커졌다.
천제현이 다시 검을 들어 강하게 휘두르자 그를 향해 날아오던 먹물들이 방울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영묵은 바닥에 떨어지고도 힘을 잃지 않았는지 꾸물꾸물 움직여 한데 모이더니 거대한 진법을 형성했다.
“묵영보(墨影步)!”
상관비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발이 닿는 곳은 모두 방금 전에 먹물들이 떨어진 곳이었다.
시전자와 진법이 하나가 되는,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신법이었다.
상관비진은 눈으로 따라잡기조차 어려운 속도로 순식간에 먹물 방울 사이를 옮겨 다녔다. 이윽고 광풍 같은 공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상관비진은 천제현이 모든 방향의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제현에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천제현의 신마검이 강력한 힘을 내뿜었다. 그가 유명검을 땅에 꽂자 땅에서 이글거리는 불기둥이 솟구쳐 순식간에 모든 먹물을 태워 버렸다.
그와 함께 노염참이 상관비진을 향해 날아갔다.
댕강!
상관비진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최상품 혼기라던 철필은 순식간에 두 동강났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넋이 나간 채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일검에 상관비진의 무기를 박살 냈다고?’
‘천제현이 들고 있는 저 무기가 이미 불멸 혼기라도 된다는 말인가?’
상관비진은 급하게 일어나며 분노에 찬 포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좋은 검 하나 갖고 있다고 날 이길 수 있을 줄 아느냐? 실력의 차이란 게 뭔지 보여 주마!”
곧 그의 온몸에서 마력이 솟구쳐 올라 거대한 영묵으로 변했다.
그 영묵은 해일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간 후 만물을 삼켜 버릴 기세로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천제현은 유명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사방에서 솟구친 화염이 허공에 모이더니 칼끝에 맺혀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었다. 그 불덩이는 태양처럼 눈부신 빛으로 반짝였다.
“죽어라!”
상관비진이 영묵의 파도를 밟으며 달려들었다.
그가 발을 옮기는 곳마다 진법과 주문이 생성되었다.
천제현이 검을 휘두르자 칼 끝에 맺힌 푸른색 불덩이가 허공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 불덩이는 바람을 만나 무시무시한 위세로 타오르며 직경이 몇 장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로 검은색 영묵의 파도를 향해 날아갔다.
두 기운은 순식간에 부딪히며 사라졌다.
상관비진이 소리쳤다.
“나의 승리다!”
그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천제현의 일격은 너무나 강력했으므로 남은 여력이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마력이 심후한 상관비진은 아직 마력의 절반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방금 공격이 비겼다고 해도 그의 전투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니 몇 번이고 더 공격할 수 있었다.
‘천제현이 여태까지 모든 공격을 막았다고 한들 어떻단 말이냐! 이제 전부 끝이다. 최후의 승리자는 나, 상관비진이 될 테니까!’
상관비진이 승리를 손에 쥐었다 생각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묵의 파도와 불덩이의 만남으로 인한 여파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비겼다고 생각한 격돌이었으나 사실 불덩이의 힘이 더 컸다.
상관비진이 더 많은 봉인 주문을 시도했더라도 전부 태워 버렸을 만큼.
허공에서 갑자기 불씨가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불덩이는 영묵의 힘과 주문조차 연료로 삼아 이전보다 더 크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불덩이는 두 배는 커져 있었다.
“대체 저게 뭐야?”
상관비진의 두 눈에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불덩이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불덩이가 순식간에 압축되며 작아지더니 그 안에서 팔다리가 나와 거대한 화염 악마로 변한 것이다.
놈의 두 눈은 핏빛으로 번쩍였고 온몸에서는 푸른색 화염이 이글거렸으며, 머리 위에는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악마의 뿔이 솟아 있었다.
‘환각이 아니다!’
상관비진은 그 악마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은 심지어 자신보다도 강력했다.
천제현이 차갑게 명령했다.
“죽여!”
“주인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유명이 영묵의 파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서 나온 심연유명화가 순식간에 상관비진의 몸을 삼켰다.
“으아악!”
상관비진은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맞은편 산비탈에 내팽개쳐졌다.
“뭐야?”
천제현이 조롱하듯 미소를 띠며 말했다.
“겨우 이런 게 사방후 후계자의 힘인 건가?”
궁지에 몰린 상관비진은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화염 악마가 수많은 불덩이로 변해 상관비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시 악마의 형체로 변한 유명이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몇 배 이상 커졌다.
유명은 거대해진 팔로 벌레를 잡듯 상관비진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멈춰라!”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화살 한 개가 화염 악마의 손을 꿰뚫었다.
얼음의 힘이 악마의 온몸을 뒤덮자 유명의 동작이 느려졌다.
멀리서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은 금전후의 아들인 강산이었다. 방금 그 화살도 그가 쏜 것이 분명했다.
천제현은 불만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
“쳔 형, 그를 죽이면 안 되오!”
강산은 악전고투를 끝낸 병사처럼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그의 기병은 2, 300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저 자를 죽인 후 사방후가 어떤 보복을 할지 생각해 보셨소?”
천제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대꾸했다.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마력만 폐하려 했을 뿐!”
강산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그게 그거 아닌가?’
그는 급히 입을 열었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봐 주시오. 이미 중상을 입지 않았소!”
“알겠어요!”
천제현은 이미 반죽음 상태가 된 상관비진을 내려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
몇 시간의 혼란이 지나간 후, 뇌주성 사람들은 패물들을 챙겨 황망히 피난길에 올랐다.
하지만 거대한 뇌주성이 하루아침에 텅텅 빌 리는 없었다.
먼저 피난을 나선 사람들은 주로 술사나 상인들로, 돈과 권세가 있는 자들이어서 뇌주성을 떠난다 해도 배곯은 일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일반 백성들은 당장 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뇌주성에서 생계를 이어왔는데 갑자기 성을 떠나면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그들에게 뇌주성을 떠난다는 것은 떠돌이가 된다는 말과 같았다. 뇌주성을 떠나면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었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세상 그 누가 안정적이었던 삶을 버리고 당장 눈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택하겠는가.
300년 역사를 지닌 뇌주성은 중주성만큼 번화한 곳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차며 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본성 중의 본성이었다.
그런 거점 도시가 갑자기 이렇게 쓸쓸한 폐성으로 변해가고 있다니.
그러나 재앙은 예고 없이 닥쳐오는 것이었다.
‘신이시여, 뇌주를 지켜 주소서! 뇌주를 지켜 주소서!’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거리와 광장으로 나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적을 갈망하며…….
금전후는 낙심한 모습으로 성주부에 앉아 있었다.
그는 노인과 여인, 아이들이 성 곳곳에서 울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자책감과 비통함을 느꼈다.
‘뇌주가 이 꼴이 되다니, 다 내가 부덕한 탓이다…….’
무안군은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했고, 이제 와서 깨달아봤자 이미 늦은 상태였다.
3군이 직접 움직여도 만회할 수 없으리라. 심연 악마는 갈수록 강해질 테니까.
‘뇌주성이 정말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