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
제274장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법
새끼 여우는 단번에 자폭 마병이 분출하는 마력을 빨아들였다. 그러자 녹색 빛의 화염이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순식간에 두 줄기의 작은 기운으로 변해 새끼 여우에게 먹혀 버렸다.
자폭 마병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태워 버릴 정도의 화염뿐이었다. 결국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폭 마병은 혼자 불타버렸다. 자폭 마병이 탄 자리에는 재도 남지 않았다.
남궁혜, 풍채향, 운요는 이를 보고 깨달았다.
‘그래서 천제현이 두려워하지 않았구나.’
새끼 여우가 마병의 자폭을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자폭 마병이 뿜어내는 화염이 일정 밀도에 다다르면, 새끼 여우가 순식간에 이것을 흡수해서 화염을 폭발 임계점 이하로 낮춰 버린다.
그러면 마병이 혼자 자폭하는 상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마병은 스스로를 재로 만들 뿐, 천제현과 일행들의 머리털 하나에도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새끼 여우야, 잘 했어!”
남궁혜의 신뢰는 더욱 강해졌다.
“죽이자! 이 괴물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자!”
운요는 혼성 5성의 강력한 마력으로 뇌령주를 사용했다. 그 속에서 번개가 터져 나올 때마다 마병 여럿이 쓰러졌다.
풍채향은 풍운검가를 발동시켰다. 무수한 검기가 네 사람 주변을 맴돌며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마병은 속도도 빠르고 파괴력도 상당했지만, 몸 자체가 너무 취약해 방어력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작은 공격에도 바로 무너졌다.
새끼여우가 필사적으로 화염을 흡수하자, 주변 모든 마병의 자폭 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네 사람은 계속해서 수천 마리의 자폭 마병을 공격했다. 단숨에 말을 타고 자폭 마병들을 베며 지나갔고, 이들이 지나가면 자폭 마병은 모조리 쓰러졌다.
쓰러진 시체 속에서 화염이 흘러나와 쓰러진 시체와 주변을 불태웠다. 그 불꽃은 길고 긴 죽음의 불바다가 되어 다른 마병들의 공격을 막아주었다.
“계속 전진합시다!”
천제현이 무리와 함께 주변을 돌며 다시 공격에 나서자 어느새 마병 절반이 소멸되었다.
이 무렵 상관비진이 이끌고 온 기병단은 이미 후퇴한지 오래였다.
“마병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곧 포위당할 거야!”
“알고 있어요!”
천제현은 계속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네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 많은 수의 마병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저를 따라오세요. 공격하러 가시죠!”
네 사람은 말을 몰고 백옥성 동쪽으로 향했다.
사실 천제현은 상관비진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쉽사리 마병을 유인하라는 명령에 복종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기병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준비할 시간과 기회를 벌 수 있었다.
***
세 제후는 먼 산비탈에서 계속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질풍기병단 삼천 군사도 자리를 지키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백옥성 주변의 전투 상황이 거의 한눈에 들어왔다.
성 우측을 돌던 강산도 대량의 자폭 마병과 마주쳤다. 하지만 강산은 금전후의 정수를 전수받은 자였다. 그의 일신전법 수준은 가히 신의 경지라,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3리 밖의 적을 맞출 수 있었다.
강산의 정령은 백옥전(白玉箭)이었다.
활시위를 당길 때, 손끝으로 마력이 표출되어 순식간에 백옥과 같은 마력화살을 만든다. 이 화살은 육안으로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강산이 계속 활시위를 당기면 백옥전도 잇따라 활을 쏘는데,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이 모조리 목표를 명중시켰다.
수많은 자폭 마병이 몰려왔을 때, 강산은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며, 말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궁병, 준비!”
말을 마치고, 강산은 전투마에 달아둔 화살통에서 반짝이는 황금 화살을 냅다 꺼내들었다.
화살에는 심오한 주문이 가득 쓰여 있었다. 강산은 계속해서 정령의 힘으로 화살을 만들어왔는데, 진짜 화살을 직접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성전우(流星箭雨)!”
강산은 활시위를 당겨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피융하는 소리를 내며 올라간 황금 화살이 하늘에서 불꽃처럼 터지더니, 곧이어 유성우처럼 수백 개의 빛 화살이 되어 떨어졌다.
수많은 자폭 마병이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강산이 이끈 기병단 대부분은 뇌주의 질풍기병단으로, 거의 다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연이어 화살 공격을 쏘기 시작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적들 때문에 일부 부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조로운 셈이었다.
신풍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강산에게서 금전후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금전후는 허허 웃으며 답했다.
“이 녀석 재능이 워낙 뛰어나서, 앞으로 전장 경험만 몇 년 더 쌓는다면, 분명 저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이 될 겁니다.”
이때였다.
사방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비진에게 일이 생겼다!”
세 사람이 동시에 돌아보니, 상관비진이 이끄는 군사 주변에는 적어도 일이만은 되어 보이는 마병이 에워싸고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대오에서 몇몇이 빠져나와 그대로 자폭 마병 쪽으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천제현 일행이군!”
신풍후가 놀라 외쳤다.
‘저들이 대체 뭘 하는 거지? 설마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모르고 가는 것인가?’
더 놀라운 것은, 천제현과 세 명의 무리들이 자폭 마병을 공격하는데도, 그 어떤 자폭 마병도 자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어떤 힘에 의해 완전히 억눌린 것처럼.
네 사람이 그 위험천만한 자폭 마병 수천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때 상관비진은 나머지 기병들을 이끌고 순조롭게 마병의 포위를 뚫고 탈출했다.
금전후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천제현 일당이 전 부대를 구했군. 게다가 저 많은 자폭 마병도 없애다니, 큰 공을 세웠구려!”
사방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거의 대부분의 마병을 좌우 양쪽에서 유인했으니, 이제는 우리가 성 안으로 진격할 때요.”
“때가 되었군.”
금전후는 황폐한 도시 중앙, 불타고 있는 운석 구덩이를 바라봤다.
“이제는 우리가 나설 차례요!”
산비탈 사이로 돌격의 나팔소리가 낮고 굵게 울려 퍼졌다.
삼천 명의 정예 기병이 출격할 때가 됐다.
정예기병단은 정연하게 돌격진형을 갖춘 후, 호각소리와 함께 산비탈에서 빠르게 내려와 백옥성 전방으로 진격했다.
마병들은 이미 앞선 두 기병단에게 박살이 난 상태였다. 전보다 더 많은 군사들이 공격해 오는 것을 알아챘다 해도, 제대로 저항할 힘이 없었다.
세 제후가 이끄는 기병단 앞에서 마병들의 장벽은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금전후는 활시위를 당겨 마력을 모아 금화살을 만들었다.
본래는 보통 크기의 마력 화살이었지만, 활시위를 떠나는 순간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커지며 폭풍을 만들어냈다. 폭풍 역시 점점 커지며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마병 역시 폭풍에 스칠 때마다 얼어붙더니 순식간에 부서졌다.
화살은 성벽 까지 다다르고, 순식간에 2장 길이로 변하더니, 거의 사람 허리만한 굵기의 초대형 화살이 되었다.
그 화살은 종이를 뚫듯이 너무도 쉽게 백옥성의 무너진 성벽을 뚫고 지나갔다. 성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금전후의 화살 하나가 성벽을 뚫었다. 과연 남하팔후 중 평범한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돌격하라!”
금전후의 활이 성벽에 구멍을 내자, 정예 기병이 홍수처럼 통로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이 기병단의 전투력을 발휘하기에는 불리한 환경이라지만, 질풍청구가 어디 보통 전투마인가. 길만 나 있으면, 충분히 전투에 나설 수 있었다.
“흩어져라!”
금전후가 명령했다.
기병단 전체가 열 몇 개의 소대로 나누어져 빠르게 주변 거리를 채웠다. 이들은 신속하게 도시 안을 가득 메운 마병들을 베어 요석을 격파시키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
세 제후는 마력을 아끼고 있다가 사악한 힘을 가진 요석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에 싸움에 직접 나서지 않고 요석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백옥성의 거리를 따라 빠르게 도시 중앙에 이르렀다. 그리고 도시 중앙에서 거대한 운성 구덩이를 발견했다.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는 사악한 기운!’
어찌나 기운이 사악한지 기병이 전투마를 통제하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데일 것 같이 뜨거운 힘도 거대한 구덩이 한가운데서 흘러나왔다.
세 제후의 마력으로도 과연 저 요석을 부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요석 주변에서는 녹색화염이 날리고 있었다.
“요석을 발견했다!”
“이곳은 부정의 힘이 너무 강력하오. 너무 위험해. 오래 머물렀다가는 군마와 전사들마저 모두 마화될 수 있소.”
세 제후는 그곳에서 하늘로 높이 올랐다가 거대 구덩이 주변으로 내려왔다.
직경이 약 3리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구덩이는 정확하게 도시 중앙에 위치해있었다.
성안의 건물 절반 이상이 파괴된 것으로 보아 이 요석이 떨어질 때 충격이 얼마나 강했을 지 알 수 있었다.
운석구덩이 안은 모두 녹색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화염은 한데 뭉쳐져 녹색 결정처럼 운석 구덩이 전체를 막고 있었다.
녹옥도 같은 기이한 불꽃 속에서는 짙은 사악한 기운뿐 아니라 강력한 생명력도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꿈틀꿈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듯한 모습.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어미의 모습과도 같았다.
운석 구덩이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요석은 탐욕스럽게 주변에 있는 생명력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그리고 생명력을 흡수할수록 사악한 기운이 점점 더 많이 흘러나왔다.
‘과연, 천제현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군.’
괴물은 정말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만약 무안군이 처음 내놓은 전략을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먼저 재해구역을 차지한 후 신중하게 공격에 나섰다면, 차근차근 범위를 좁혀갔다면, 부상자는 줄어들었겠지만 악마는 얼마나 많이 성장했을 것인가.
대지가 점점 요동치기 시작했다.
강력하고 흉악한 의식이 깊은 잠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우리의 존재를 느낀 것 같군.”
신풍후는 살아오면서 이런 생물을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천제현이 말하던 심연의 악마인가?”
심연의 세계.
이런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곳.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시간이 없소! 우리 쪽 부상이 더 심각해지고 있소!”
질풍 기병단은 남하국의 최정예 기병단이다. 주(州)라고 해도 정예 기병 이삼천 명을 양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여기서 기병들을 모두 잃으면 그 손해가 막심할 것이다.
금전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바로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