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268화 (264/729)

# 268

제268장 뇌주

뇌주 본성은 중주 본성처럼 호수에 둘러싸여 있어서 수로 교통이 편리했다.

뇌주성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성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 성벽은 병사들로 가득했다. 성 밖 땅은 군데군데 파인 게 마치 몇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듯했다.

교외의 목장은 파괴되었고 농토와 약초밭, 과수원은 어떤 힘에 오염되어 농작물이 전부 누렇게 말라 피해가 막심했다.

특히 중주에서 온 일행들은 그 뇌주 본성을 보고 몹시 놀랐다.

‘본성마저도 영향을 받았단 말인가?’

이번 재난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뇌주성에 도착해 보니 땅은 온통 파여 있고 웅장한 성벽도 파손되어 있었다. 남하국 사병 갑옷을 걸친 병사가 시체를 성 밖에 판 커다란 구덩이로 옮기고 있었다.

구덩이들은 무려 여섯 개나 됐으며, 구덩이마다 3~4천 구의 시체가 작은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모두 놀라서 넋을 잃을 정도였다. 어디서 이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았겠는가. 특히 세상 물정 모르는 풍채향이나 공서련은 더욱 그랬다.

사람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광경. 무수히 쌓여 있는 참혹한 모습의 시체들은 동정보다는 불쾌감과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그 속에서 유황 같은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다.

냄새에 섞인 강렬한 탄내에 풍채향과 공서련은 속이 뒤틀려 그 자리에서 토할 뻔 했다.

공서련은 완전히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이…… 이게 모두 피해자란 말이야?”

“그런 것 같아요.”

천제현은 시체를 살펴보았다.

전부 심각하게 마르고 두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온몸은 불에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여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시체를 응시하며 힘을 다해 숨을 들이마셨다.

여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어두운 속성의 힘을 감지한 것 같았다.

“심연의 악마가 차원의 틈을 지날 때 심원의 기운이 강림하지. 이건 심원의 힘에 오염된 백성들일 거야. 심연의 악마에게 지배를 받는 악마의 병사가 된 거야!”

풍채향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지금 뇌주는 이렇게 마화(魔化)된 사람으로 가득할 거야. 천제현…… 저들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 저 사람들은 분명 무고한 피해자일 거야. 뜻밖의 재앙이 저들을 이렇게 만들었겠지. 이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건 너무 잔인해!”

“맞아!”

공서련이 급히 맞장구쳤다.

“너는 못하는 게 없잖아. 저 사람들을 도와줘!”

“생물의 마화 반응은 되돌리기 힘들다는 걸 아셔야 해요. 방법이 있다고 해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천제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생물이 마화되고 육체가 뒤틀리고 정신이 분열되면 영혼 역시 깊이 오염된 겁니다. 그런 상태라면 악마로 변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마화된 생명체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근본적으로 정화시키는 겁니다. 끝없는 고통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해주는 거지요.”

뇌주의 병사들은 이미 구덩이에 기름을 가득 붓고 불을 붙여 수천 구의 시체를 전부 태웠다.

공서련과 풍채향은 여섯 개의 불구덩이를 지켜보며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그녀들은 과거에 이런 잔인한 광경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괴로워하지 마세요.”

천제현이 공서련의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가 뇌주에 온 것은 저들을 돕기 위해서잖아요!”

공서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신풍후, 너무 늦게 왔군!”

이때 성문이 열리며 중년 사내 둘이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의 기운은 매우 강했다. 신풍후에 전혀 밀리지 않을 듯했다. 아마도 남하 8후인 것 같았다.

두 명 중 하나는 온몸에 금색 갑옷을 두르고 피부가 검고 거칠었다. 대장군 같은 차림에 온몸에서 노련한 기운이 풍겼다. 등에는 용 모양의 긴 활을 메고 있었다. 마치 곧 발사될 화살처럼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풍채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은 분명 금전후일 거야!”

다른 한 사람은 귀밑머리가 희끗한 중년 사내였다. 겉모습으로 보니 이 사내는 대략 50세 정도였다.

단정하고 네모진 얼굴에 범상치 않은 풍채를 지녔고 무슨 재질인지 알 수 없는 짙은 금색 도포를 걸쳤다.

오른손에는 까만 창을 거꾸로 쥐고 있었다. 이 사내가 아마도 사방후일 것이다.

금전후가 말했다.

“풍 형, 상관 형, 뇌주를 도우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공서련이 조심스럽게 일행에게 속삭였다.

“뭐? 사방후가 상관 가문 사람이란 말이야?”

남궁혜도 같은 생각이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재수 없게 됐군!”

반면 천제현은 답답한 얼굴이었다.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걱정스러웠다. 부디 사방후가 중주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길 바랐다.

뇌주성은 중주성처럼 번화한 주성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위기가 닥친 까닭에 뇌주성 민가들은 문을 굳게 닫았고 문을 연 점포들도 몇 없었다. 길거리에 행인은 거의 없고 순찰을 도는 병사들뿐이었다.

기병부대는 교외에 주둔했다.

공서련은 용병을 데리고 군대에 통조림을 주러 갔다.

나머지는 금전후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젊은이 여섯 명이 저택의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중 셋은 뇌주 사람이고 셋은 남주에서 왔다. 뇌주 젊은이 셋은 뇌주에서 천재로 칭송받는 금전후 강웅의 아들 강산과 뇌주 대장군의 아들 염파군, 뇌주 세도가의 후계자 임장과였다.

남주 젊은이 셋은 사방후 상관홍의 아들 상관비진과 위룡, 무양이라고 불리는 남주 세도가의 천재들이었다.

강산과 상관비진은 혼성 5성의 마력을 지녔다.

염파군, 임장과, 위룡, 무양은 모두 혼성 4성 정점의 고수였다

금전후 강웅이 호쾌하게 웃었다.

“중주에 인재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대공자의 명성이 높은데 그중 천성하는 아주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하던데 어째서 이번에 오지 않았습니까?”

“천성하와 낙강룡, 양천랑은 모두 부상을 입어서 이번 임무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풍후가 설명했다.

“중주의 자전공자 운요가 병사들을 인솔합니다.”

운요가 서둘러 인사를 올렸다.

“제후 두 분을 뵙습니다. 여기는 풍채향, 남궁혜, 천제현입니다.”

‘천제현?’

상관홍의 눈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뭐야!”

불만 섞인 음성이 들렸다.

“이번에 중주에서는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만 보냈군. 천성하는 안 보내고 말이야! 중주의 기재들과 겨뤄보고 싶었는데!”

불평을 한 사람은 조끼를 걸치고 팔이 우락부락하며 불그스레한 피부의 건장한 사내였다.

이름은 무양으로 사방후가 데리고 온 기재 중 하나였다.

무양은 중주의 낙강룡과 비슷한 유형의 사내었다. 그러나 낙강룡보다 결코 실력이 뒤지지 않는 최고의 기재였다.

운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자식이 도발을 하고 있잖아.’

불같은 성격의 남궁혜가 맞받아쳤다.

“우리로는 안 된다는 거야?”

“내 말이 틀렸나?”

무양이 차갑게 웃었다.

“내 말을 인정 못하겠으면 한판 붙어볼까?”

남궁혜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등에서 거대한 망치를 뽑았다.

“와라! 붙어보자!”

신풍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우리의 임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사방후 상관홍이 웃으며 말했다.

“신풍후, 젊은이들이 승부욕이 강한 건 좋은 일입니다. 승부욕이 없으면 발전이 있겠습니까? 무안군이 젊은이들을 뇌주로 부른 것은 다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지요. 젊은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세상 물정을 모르면 안 되니까요. 젊은 천재들이 어렵사리 모이게 되었으니 대련을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상관비진이 의견을 내놓았다.

“아버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마력이 너무 강하다보니 대련을 하다가 통제가 안 돼서 불필요한 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중에 실력이 가장 약한 자가 나서서 대련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것도 괜찮겠구나!”

사방후 상관홍은 다른 사람들에게 반대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위룡, 넌 방어가 주특기이고 공격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네가 중주의 천제현과 겨뤄보아라.”

‘천제현!’

모두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제야 본론이 나왔군. 이 자식은 천제현에게 시비를 걸 목적이었던 거야!’

사방후 상관홍은 중주성의 일을 대강 알고 있었다. 상관명은 천제현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것도 많은 관중 앞에서 남자의 그곳까지 짓밟혔다.

상관명은 상관 가문 사람이다.

아무리 못나고 덜떨어졌어도 외부인에게 당하게 둘 수 있겠는가.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를 하룻강아지가 감히 호랑이에게 까불어?’

왕성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사실 잘못은 상관명 본인에게 있었다. 그는 비밀 임무 수행을 위해 왕성에서 중주로 파견한 특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켰다.

이는 왕성의 명령을 공공연하게 어긴 행동이다. 한술 더 떠서 그는 중주의 보물을 노렸다. 왕성의 특사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보물을 강탈하려 든 것이다. 이는 금기를 어기는 짓이다.

상관 가문은 관련 소식을 은폐하여 왕성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이 커지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니 상관 가문의 명예가 실추된다. 즉 대놓고 보복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신풍후가 중재에 나섰으니 남하팔후의 체면도 지켜줘야 했다. 그래서 이 일은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사방후 상관홍은 가문의 중요한 분파였다. 상관명과는 왕래가 없지만 상관 가문의 일원으로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높았다.

천제현 따위가 상관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는 꼴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마주치지 않았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이렇게 마주치게 된 이상 절대 그냥 둘 순 없지!’

상관홍은 신풍후가 일개 애송이 하나 때문에 같은 팔후인 자신과 반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때 몸집이 거대한 사내가 천제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치 거대한 산이 하나 놓여 있는 것처럼 강렬한 위압감이 풍겼다.

위룡은 무양과 마찬가지로 남주 세도가의 천재였다. 다만 무양보다 실력이 조금 떨어졌다.

상관비진은 일부러 말장난을 쳐서 방어력이 강한 사람은 공격능력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위룡은 분명 방어 유형의 고수지만 방어가 주특기라고해서 강력한 파괴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주의 위씨 가문에 몇 백 년 전승된 무공인 반산결(搬山結)은 그 유명한 남하국 천씨 가문의 혼검결에 뒤지지 않는다.

최고의 경지까지 수련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엄청남 힘으로 일당백을 자랑하는 무공이다.

상관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룡은 남주에서 서열 3위의 기재입니다.”

위룡은 별 말 없이 두 눈에 싸늘한 빛을 뿜으며 천제현을 노려보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와 붙어보겠느냐?”

위룡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기골이 장대한 게 양무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난폭한 무양에 비해 위룡은 견고한 바위 같이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신풍후는 감탄했다.

‘제법 괜찮은 기재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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