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제262장 사주호의 해적들
사주호는 남하국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사주호란 이름은 사주군(四州郡)과 경계가 분명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큰 풍랑 없이 물결이 잔잔하여 먼 곳까지 항해에도 별다른 위험이 없었다.
그래서 4개 주를 운항하며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군함 다섯 척은 중주를 떠난 후 별 무리 없이 7~8시간 순항했다.
공서련, 남궁혜는 갑판 위에서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어둠이 깔리자 두 사람은 선창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통조림을 먹었다.
공서련과 남궁혜는 승선 후 천제현을 보지 못한 것을 깨닫고 운요에게 물었다.
운요는 천제현이 배에 탄 후에 혼자서 무언가를 비밀스럽게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천제현의 기행이야 하루 이틀 보아온 게 아니라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때 한 노인이 몹시 다급한 얼굴로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
“마마! 마마! 급히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토록 서두르는 것인가?”
신풍후가 의아한 눈빛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그가 선발한 안내자이자 경험이 가장 많은 노선장이었다.
“더는 직진하면 안됩니다!”
노인이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지금 항로로 계속 가다간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꼴이 될 겁니다! 그곳은 배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자 호수의 신이 관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주호의 최대 금지구역이기도 하고요!”
신풍후가 군함 선장에게 물었다.
“우회하면 얼마나 걸리는가?”
“하루가 더 걸릴 것입니다!”
신풍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은 이곳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소?”
“그건…… 아주 조금만 알고 있습니다!”
선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곳은 아마도 사주호의 금지구역일 겁니다. 바람이 없는 곳으로 일반 배가 들어오면 절대 움직일 수 없지요. 그래서 배의 무덤이라 불립니다.”
일반 배야 그렇다 쳐도 이 군함들은 모두 선진 기술로 제조한 것인데, 바람이 없다고 염려할 바가 있겠는가.
쿵!
노인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마마, 여긴 정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여태껏 이곳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사람이 없어요. 들어가면 아예 돌아올 수 없는 곳입니다! 이곳은 호수의 신이 관장하는 곳입니다! 만약 함부로 그곳에 발을 들였다가 호수의 신이 진노할 수 있어요!”
신풍후가 물었다.
“호수의 신이라는 건 또 무엇이냐?”
함장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상인의 어선과 일반 군함이 그곳을 우회하는 이유는 일 년 내내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기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곳의 해적은 흉악하기로 악명이 높거든요. 남하국에서 수차례 토벌대를 보냈지만 전부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결국에 손을 놓고 말았고요…… 호수의 신이라는 말은 그저 황당무계한 헛소문인 듯싶습니다.”
사주호는 바다처럼 광활하여 해적이 빈번하게 출몰한다.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이것으로 일반 사람들이야 놀라게 할 수는 있겠지만, 신풍후가 과연 이런 걸 무서워하겠는가.
“우회할 시간이 없다!”
신풍후가 명령했다.
“방향을 바꾸지 말고 그곳을 통과하라!”
노인 안내자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웅얼거렸다.
“끝났네! 끝났어!”
그는 겁에 질려 창백해지다 못해 바지까지 축축해졌다.
***
날이 차츰 밝아왔다.
담청색 하늘에 흐릿한 별들이 박혀 있었다. 호수 표면에는 마치 은빛 면사포라도 두른 듯 자욱한 안개가 일렁였다.
하늘 끝자락을 물들인 아침노을은 피가 넓게 퍼진 것처럼 옅은 붉은색을 띠었다.
군함 다섯 척이 안정적인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다.
대략 30분 전 군함들은 특수한 해역에 진입했고, 이곳은 정말로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군함이 아닌 일반 배가 돛을 달고 나가려면 아마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공서련이 나른해 하며 갑판 위에서 바람을 쐬며 청량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그녀 손에는 솥에 데운 통조림이 들려 있었다.
옅은 안개 속으로 섬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와! 배가 엄청 많다!”
공서련이 깜짝 놀란 채 말했다.
낡은 배들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 위에 고즈넉하게 정박해 있었다.
어떤 것은 상단의 배였고, 어떤 것은 민간의 배였으며, 어떤 것은 군함이었다. 크기도 제각각에 외관도 저마다 달랐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연식이 아주 오래된 것도 있었다.
그중 새우나무로 건조한 배는 부패된 상태로 보아 족히 100년은 더 된 것으로 보였다.
공서련은 배들을 보며 궁금증이 일었다.
“저 배들이 어떻게 오게 된 거지?”
아마도 풍랑에 휩쓸렸거나 실수로 이곳에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니면 해적을 만나 끌려왔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무풍지대로 들어온 배가 빠져나가지 못해 이곳에서 썩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배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지금 대충 보더라도 족히 100척은 넘어 보인다.
이곳에 대체 얼마나 많은 선박이 버려져 있는 것일까.
우웅!
이때 앞에서 호각소리가 들렸다.
공서련은 눈을 비벼가면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쳐다보았다.
옅은 안개를 뚫고 지나갈 때 새까맣고 거대한 전함 80척이 눈에 보였다. 모두 일렬종대로 늘어섰고 군함 주위를 에워쌌다.
이 흑색 전함도 특수한 동력 장치를 가지고 있는 듯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탕!
군함이 경고용 포성을 울렸다.
“무슨 일이야?”
군함에 타고 있던 사병이 잇달아 선창에서 뛰쳐나왔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석궁과 노포를 차례차례 포진시키더니 금세 전투 준비를 마쳤다.
남하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전함으로써 이 안에도 최신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갑판에 노포를 배치시키는 것 외에도 군함 양측에 발사구가 있어 군함 한 척마다 60개 이상 대형 노포를 장착할 수 있었다.
길이가 7척 정도인 거대 화살은 특수한 힘이 담긴 수정석을 이용해 제조되어 사정거리가 10리에 이른다.
이런 화살은 볼 것도 없이 대단히 비싸다. 뚫고 지나가는 힘으로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수정석의 힘을 활성화한 다음 폭발을 일으켜 상대를 전멸시킨다.
그러므로 보통의 중형 선박의 경우, 화살 1~2개로 침몰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해적들이 그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하하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네놈들이 감히 이곳에 들어왔으니 우리 상어해적단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천제현은 밖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느끼고는 갑판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남궁혜, 공서련이 천제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한 마디 했다.
“천제현! 잘 나왔어! 해적을 만났어!”
“해적이요?”
천제현은 눈앞에 흑색 전함 10척을 보았다.
“이 정도 규모면 꽤 많은 것 같은데요. 해적이 한 2~3천 명 정도 있는 것 같은데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군.”
신풍후가 무시무시한 마력을 체내에 응집하기 시작하더니 담담히 말했다.
“우리 남하국 내에 이런 무리가 있었다니!”
신풍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멀리 있는 상대방의 귓가에 꽂히고도 남았다.
상어해적단에서 전함 열 척이 출동했다. 규모는 군함보다 크지 않았지만 갑판은 해적들로 빽빽했다. 천제현의 예상대로 다 합치면 최소한 2~3천 명 정도 될 것 같았다.
해적들은 기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사납고 야만스러운 것이 마치 야만인 무리들 같았다.
“가라!”
“쟤들 배 괜찮은데?”
“그럼 호수의 신께 바쳐야지!”
“공격하라! 군함은 훼손하지 말고!”
해적의 전함에서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울려 퍼지자 수백 명의 해적이 무기와 갈고리, 쇠사슬을 들고 갑판에서 뛰어 내렸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째서 물속에 뛰어드는 거지?’
‘게다가 다들 무거운 무기와 장비를 짊어지고 있는데?’
이때 훨씬 더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적들은 물속에 빠지기는커녕 수면 위를 양발로 딛고 있었다. 잔잔했던 호수의 수면에 돌연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을 구르자 파도가 거세지더니 빠른 속도로 군함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재미있군. 신비한 무공이야!”
상어해적단은 세간에 전해지지 않은 전승 무공을 익힌 게 분명했다.
“죽여라!”
해적들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파도를 발로 밟고는 갈고리와 쇠사슬을 가지고 군함을 향해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이 군함에 가까이 오기도 전에 군함 5척에서 거대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악!”
“나 맞았어!”
“빨리 날 엄호해!”
지금, 해적들은 중주성에서 가장 우수하기로 손꼽히는 정예군단과 맞닥뜨린 것이다. 그러니 저들이 평소에 약탈을 일삼았던 사람들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화살 공격을 당하자마자 해적 무리들은 순식간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호수의 신을 위해!”
“상어해적단을 위해!”
해적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정령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정령은 푸른빛을 띤 거대한 상어 형상을 지니고 있었고, 정령이 소환되자 그들의 속도는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해적들은 기세를 몰아 쏟아지는 화살을 막고선 앞으로 빠르게 진격했다.
‘어?’
‘저 해적들 만만치 않은데!’
정령을 소환할 정도면 보통 연체 9성의 정점 마력을 지녔다는 의미다.
이 해적들은 대다수가 연체 6~7성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10명 중 한 명은 연체 9성 정점의 고수였다.
사방에서 수많은 마력이 폭발했다.
신풍후는 갑판에서 순식간에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연속으로 발을 굴러 눈 깜짝할 사이에 상공으로 뛰어올랐다. 파열음이 공간을 찢으려는 듯 날카롭게 울렸다.
신풍후가 뛰어오르자 거울처럼 매끄럽던 수면이 좌우로 갈라졌다. 이에 해적들 전부 균형을 잃고 잇달아 물속에 빠져 버렸다.
신풍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양팔로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거대한 청색 바람이 뻗어나갔다.
팍! 팍! 팍!
시원스러운 파열음이 열 번 울리더니 청색 바람에 의해 해적선의 돛대가 전부 부서졌다.
이때 신풍후가 다시 가공할 힘을 뿜어내니 주변의 물결이 회오리 쳐 오르기 시작했다.
둘레가 10장쯤 되고 길이가 30장이 넘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순식간에 형성되었다.
돛대가 완전히 부서진 갑판 위에서는 해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이 반응할 새도 없이 해적선은 광풍에 다시 한 번 휩쓸렸다.
“젠장!”
“퇴각하라! 퇴각하라!”
신풍후는 엄청난 속도로 해적선 열 척의 돛대를 부러뜨린 후 응집된 파괴력으로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안 돼!”
“어서! 배를 버리고 물에 뛰어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