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제260장 심연의 악마
만약 그 폭발이 중주에서 일어났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 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항상 평온한 것만은 아니구나!’
한편 천제현은 미간을 찡그린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요석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있나요?”
어느새 신풍후가 방으로 들어와 천제현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에 따르면, 마치 운석처럼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다고 하더군. 녹색 화염이 이글거리면서 말이지. 이 화염이 번화한 도시를 집어 삼켜 심각한 피해를 일으켰다네. 게다가 떨어진 곳이 하필 땅이어서 충격파 또한 엄청났다는군. 요석이 떨어진 곳 주변에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걸로 보아 그 파괴력은 정말 상상도 가지 않는군.”
‘녹색으로 불타는 운석이라! 번화한 도시 중앙에 떨어졌다고?’
천제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제현의 표정을 본 신풍후는 그가 요석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풍채향은 천제현의 박학다식함에 여러 번 감탄했다고 한다.
‘이 소년이 정말로 초월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천제현이 요석의 정체를 안다면, 적어도 이렇게 무작정 달려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재 무안군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요석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네.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는 거지. 또 천재라면 어떤 천재인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르겠고…….”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석이 떨어진 후 그곳에 재앙이 닥쳤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죠?”
“녹색 화염을 뿜어내는 괴물을 본 사람이 있네. 놀라운 전투력으로 가까운 성과 도시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어.”
신풍후는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아! 소문에 의하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더군. 그런데 그들 모두 몸 전체에 큰 화상 자국이 있다고 하네, 두 눈에서는 녹색 불꽃이 일렁이고, 엄청난 공격력까지…….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네. 혹시 뭔가 짐작이 가는 데가 있는가?”
“짐작이랄 것도 없습니다!”
천제현이 바로 대답했다.
“심연의 악마입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천제현을 바라봤다.
오직 남궁혜만 흥미롭다는 듯 천제현에게 질문했다.
“심연의 악마? 그게 뭔데? 처음 들어본 말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혼돈시기에 여러 조각으로 나뉜 후 다양한 차원을 형성했어요. 이 차원의 공간은 어떠한 규칙에 따라 공허한 세계에서 운행되고 있지요. 이 공허한 세계는 매우 광활하지만 전체가 얼어 있고 음침하죠.”
천제현이 잠깐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이 끝도 없는 공허한 세계를 가리켜 심연의 세계라고 부릅니다!”
남궁혜와 풍채향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연신 귀를 기울였다.
“처음 들어봤어!”
신풍후 역시 신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심연의 악마는 또 뭔가?”
천제현이 대답했다.
“심연은 공허하고 고요한 듯 보이지만 사실 수많은 생명을 잉태했습니다. 이 생명체는 대부분 굉장히 오래되었고, 심지어는 혼돈시기에 대륙이 조각나기 전에 생겨난 것도 있어요. 하지만 심연은 환경이 매우 열악한 데다 자원도 몹시 부족하죠. 이토록 극단적인 환경에서 적응하고 생존한 생물이라면 절대적인 힘은 물론이고 잔인하기로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수천 년간 진화를 거듭하면서 약탈과 살육은 그들의 본능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지요. 그래서 그들을 악마라고 부르는 겁니다!”
신풍후는 천제현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차원에 관한 학설은 오늘날까지도 증명된 바가 없었다. 게다가 심연의 세계라니, 쉽사리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자네는 무슨 근거로 상대가 심연의 악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이 하늘에서 운석처럼 떨어지기 전에 뇌주에 기상이변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차원에 균열이 생겨서 그런 거죠. 인류가 활동하는 땅은 전체 면적에서 겨우 1억 분의 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요석이 하필이면 번화한 도시 중앙에 떨어졌어요. 참으로 공교롭지 않습니까?”
남궁혜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엄청난 우연이긴 하지!”
“셋째, 요석이 떨어진 후 토지가 오염되었고, 요마들이 출몰해 죽은 사람을 조종하고 있지요. 이 모두가 사악한 힘에 의한 것입니다. 요마는 무언가에 조종을 당한 듯 목표로 삼은 성과 도시를 포위하여 공격을 퍼붓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을 조종하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죠.”
신풍후는 크게 동요했다.
‘천재(天災)라는 얘기군. 듣도 보도 못한 생명체라니.’
천제현의 말이 진짜라면 그것만으로 엄청난 공을 세운 것이다.
천제현이 여기까지 말한 후 물었다.
“무안군 마마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3개 주(州)의 군대를 3개 길목에 각각 배치할 것이네. 우선 함락된 도시를 되찾은 후에 그곳을 기점으로 난민을 구출할 거고. 주변의 요마와 괴물들이 더는 활개 치지 못하게 악의 구역에 가둘 걸세. 그리고 핵심 지역에서 다 같이 도시의 괴물들을 괴멸시킬 계획이야.”
천제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좋은 전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잘못된 전략입니다.”
다들 얼굴빛이 변했다.
무안군은 남하국의 군신(軍神)이라 불리는 자였다. 천제현이 무안군의 계획을 대놓고 부정하다니.
이것이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천제현의 목은 금세 날아갈 것이다.
“심연의 악마는 차원을 초월하죠. 그러니 원기가 손상되면 실력도 대폭 줄어듭니다. 심지어는 한동안 수면상태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들은 대량의 정혈과 정혼을 삼켜 힘을 회복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인구 밀집 지역으로 떨어진 겁니다. 요마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은 혼백과 정혈을 수집하기 위함이에요. 힘을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 말은…….”
“차원을 넘나드는 심연의 악마는 속전속결만이 답이에요! 절대 시간을 주면 안 됩니다!”
천제현이 머뭇거리더니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6개월 이상 넘어가면 무안군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을 거예요!”
신풍후가 말했다.
“요괴의 수가 너무 많네. 직접 공격했다간 우리 쪽 피해가 막심할 거야. 승부수를 띠웠다가 요괴들의 반격이 시작되면 사태가 더 심각해지지 않겠는가?”
“다른 방법이 없어요. 모험을 하는 수밖에요. 단번에 뿌리 뽑지 않으면 후환이 남을 겁니다. 심연의 악마를 죽이면 나머지 오합지졸들은 알아서 자멸할 거예요!”
천제현이 완강한 태도로 말했다.
“무안군께서 고집스럽게 제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전 무조건 중주에 남을 거예요. 괜히 죽으러 가긴 싫거든요!”
남궁혜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이 안 가면 나도 안 가!”
남궁혜는 천제현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천제현이 위험한 곳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 말은 맞을 터였다.
신풍후가 잠시 고민한 후에 말했다.
“무안군을 뵈러 가야겠다!”
***
몇 시간 후 남하왕성
경비가 삼엄한 관저 안
붉은 갑옷을 걸친 사람이 급히 대전으로 뛰어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무안군 전하! 신풍후가 천리석(千里石)을 통해 긴급 정보를 전달하였습니다!”
천리석은 주마다 한두 개밖에 없는 대단히 귀한 물건이다.
남하국이 소국이라고는 하지만 영토는 수천 만 리에 달한다.
단지 영토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었다.
남하국의 인구는 2억 명에 불과했다. 통신에 어려움이 있는 이 시대에는 주에서 일어난 일을 왕성까지 전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 때문에 왕성에 소식이 전달됐을 때는 손쓸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된 경우가 허다했다.
이 천리석은 긴급 정보를 전달할 때만 사용되는 것으로 예컨대, 이종족 침입이나 뇌주의 격변처럼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 왕성에 즉시 전달된다.
중주에서 천리석을 동원했다면 분명 촌각을 다투는 전보일 것이다.
신풍후의 전보를 전해 받은 무안군은 그 내용을 다 읽은 후에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읊조렸다.
“천제현?”
처음 듣는 이름이다.
“신풍후는 대단히 신중한 사람이다. 그가 이토록 신임하는 청년이라면 분명 뭔가 다르겠지.”
하지만 이 전략은 너무 과격하다. 무안군으로서는 적의 동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모험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자를 뫼셔라!”
10분 정도가 지난 후 백발홍안의 노인이 대전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안군은 그에게 간략하게 설명한 후 의견을 물었다.
“대학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하국에서 제일로 꼽히는 학자가 한참을 고심하더니 대답했다.
“누가 이런 고견을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계의 차원이 존재하는 건 상당히 일리 있는 견해입니다. 심연 역시 존재하고요. 그러나 심연의 악마는…… 이 늙은이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어쨌든 저희에게는 생소한 것이니 이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학자가 말을 마치자 무안군은 망설이지 않고 즉시 명령을 내렸다.
“전략을 바꾸겠다! 공중병 특사를 파견하라! 군령을 받들어 뇌주로 진격하도록 하라!
붉은 갑옷을 입은 병사가 곧바로 물러났다.
무안군은 서신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중주탑의 만고유제를 푼 청년이라고? 부디 자네 말이 맞기만을 바라겠네. 날 실망시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른 아침, 기적상회 본부.
천제현이 밤새 마무리한 자료들을 공화련에게 전달했다.
이는 통신 분야의 핵심기술로 기적상회의 주요 사업들과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운문연구소의 일은 지체할 수 없었다.
천제현은 자신이 중주성에 없는 동안 이 일을 공화련에게 맡기기로 했다.
새롭게 탄생한 운문은 백 명이 넘는 학자로 구성된 단체였다.
그들은 주로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고, 결함을 메우고 수많은 실험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또한 실제로 활용될 때까지 일련의 연구 개발까지 진행하게 된다.
천서정령을 지닌 공화련은 지식 습득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 그녀는 한 달 남짓, 천서정령의 기억 회복 능력으로 끊임없이 공부해온 덕분에 이제는 운문의 일반 학자들은 우습게 볼 정도로 성장했다.
그녀가 이곳을 맡아 관리하고, 운천학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천제현은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공화련이 근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이 임무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거지?”
“이건 무안군의 명령과는 무관해요.”
천제현이 신비한 웃음을 지었다.
“전 이 임무 자체가 흥미로워요. 정확히 말하면 뇌주에 떨어진 심연의 악마가 말이죠. 아마도 그들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저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면서 모험을 하려고 하는 거야?”
“안심하세요. 제게 비밀무기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