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제259장 긴급 임무
공화련이 설명을 이어갔다.
“염양군(炎陽君) 남궁염, 무안군(武安君) 동방건, 문성군(文成君) 상관장봉이 바로 그 삼대봉군이야!”
“염양군, 무안군, 문성군?”
바보가 아닌 이상 천제현이 그 이름을 흘려들을 리 없었다.
바로 남하왕국 삼대 가문 아닌가.
삼대 가문이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건 군 작위 덕분이었던 것이다. 동방 가문의 가주 무안군은 남하국 군부의 수뇌였다. 거의 모든 군사 기밀과 병력 배치권이 그의 손에 있었다.
사실상 삼대봉군 중의 최고 실권자는 무안군이었다. 남하국 백성들은 그를 수호신으로 떠받들었다. 백만대군의 선봉에 서 마수령과 맞서 싸운 그가 아니었다면 남하국 이억 백성의 평화 역시 없었을 것이다.
북방 전선이 뚫린다는 것은 곧 남하국 전체가 아비규환의 나락으로 떨어짐을 의미했으므로.
그런 거물급 인사가 중주에 친히 내릴 만한 명령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운천학은 불안감이 엄습해옴을 느꼈다.
무안군이라면 인정사정없기로 유명한 냉혈한이 아닌가. 그의 명령을 거부한 자들 중 대다수가 멸문지화를 피하지 못했다.
중주 사대 가문이라 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군령이 가짜일 리는 없다.
풍운룡이 겁도 없이 무안군의 군령을 위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신풍후라 해도 그 죄는 무마해주지 못할 테니.
군령이 내려왔다면 필시 군서(君書) 역시 있을 터. 군령은 일종의 증표일 뿐, 전달할 내용은 군서에 적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안군의 군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성주가 이 상황을 천제현을 손봐줄 기회로 이용하려 든다면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성주가 목청을 높여 외쳤다.
“군서를 읽어라!”
문관 두 명이 앞으로 나와 화려한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은 교룡 무늬가 은은한 두루마리였다. 천천히 두루마리를 펼쳐 든 문관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무안군서
왕국 중남부 뇌주(雷州)에 불타는 요석이 떨어져 성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노라. 또한 요마가 창궐해 왕국의 옥토를 더럽히고 백성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음이라.
이에 남주(南州)와 중주(中州)에 명하노니 속히 뇌주로 향해 백성들을 돕고 요마를 토벌하라. 젊은 인재들은 이를 실력을 갈고닦을 기회로 생각하라. 참여 인원은 본성 성주가 선발하되 거부는 용납하지 않는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리라!
사안의 위중함을 고려하여 곧장 실행할 것을 명하노라!
시일을 지체하는 자 삼족을 멸하리라!
***
군서가 다시 상자에 들어간 후, 풍운룡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설명은 군서에서 충분히 된 듯한데, 뭐 다른 궁금한 점이라도?”
운천학의 표정이 침통했다.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뇌주에 천재지변이라.
가까운 거리의 중주와 남주가 지원에 나서는 것이야 당연했다.
다만 이를 청년 인재들의 훈련 기회로 삼겠다는 무안군의 계획이 풍운룡의 꿍꿍이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군서의 설명은 간략했으나 다른 지역에서 지원군을 보내야 할 정도라면 뇌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는 알만했다. 임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는 얘기였다.
더 환장할 노릇은 인원 선발이 성주 재량에 달렸다는 점이었다.
풍운룡이 말했다.
“중주성의 젊은 인재라 하면 천성하, 낙강룡, 양천랑, 운요 네 사람이 가장 유명하지 않소? 원래대로라면 이 넷을 보냈겠지만 그중 셋은 지금 부상이 심각한지라. 그래도 마침 운요가 혼성 5성의 경지를 이뤘으니 대장을 맡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소이다만!”
운천학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군서와 군령이 성주의 손에 있는 이상 거부는 용납되지 않는다.
“듣자 하니 요즘 중주성이 ‘새로운 사대 공자’라느니 하는 말로 떠들썩하던데. 유명공자 천제현과 봉황공자 남궁혜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할 테지!”
공화련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성주의 개인적인 보복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피치 못할 난관이렷다.’
운천학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늙은이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 이 늙은이가 중주 지원군의 우두머리를 맡도록 하지요!”
“진혼급 고수 한둘이 꼭 들어가야 할 자리이긴 하나, 학자의 몸으로 나서기에는 적당치 않은 임무인 듯하오.”
풍운룡의 눈이 기분 나쁘게 번뜩였다.
“그 자리에 제격인 인물이 있소이다. 천씨 가문 태상장로 천시가 최근 중주성에 돌아왔다 들었소. 마력도 고강하겠다, 명성도 운 가주보다 못하지는 않겠다, 그 자리는 음혈검 천시에게 맡길까 하오!”
운천학이 결국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 작정하고 벌이는 짓거리가 아닌가! 그렇게는 못 하오!”
천제현 일행을 천시의 손에 맡겨 머나먼 뇌주까지 보낸다고?
과연 살아 돌아올 확률이 1할이나 될까.
풍운룡이 이죽거렸다.
“지금 뇌주 땅이 얼마나 위험할지야 자명한 일, 자연히 최고의 실력자를 보내야 하지 않겠소이까? 운 가주와 천시, 둘 다 진혼급 고수인 건 똑같으나 실전능력으로 치자면 천시가 한 수 위일 듯싶은데!”
풍운룡이 싸늘하고 비열한 웃음을 보였다.
‘군령과 군서가 이 손안에 있다. 과연 네놈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지 어디 보자꾸나!’
풍운료으이 행동은 사적인 분풀이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아주 황당한 인물을 내세우진 않았기에 왕성에 보고가 올라가도 문제 될 건 전혀 없었다.
“이제 막 돌아온 천시는 쉬게 놔두시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모두 흠칫 몸을 떨었다.
“뇌주 금전후(金箭候)와 남주 사방후(四方候)도 몸소 나선다는 판국에 우리 중주만 체면을 구길 수야 없는 일. 내가 직접 가겠네. 채향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군.”
공중에서 내려온 두 사람이 사뿐히 바닥을 딛고 섰다.
신풍후와 풍채향이었다.
풍채향은 예전과 완전히 다른 기운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혼성 4성을 달성했음을 짐작한 풍운룡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또 신풍후가 끼어들 줄이야! 하늘이 내린 기회라 생각했거늘!’
신풍후의 등장으로 풍운룡의 계획이 모조리 꼬여 버리고 만 것이다.
풍운룡에게 잠시 시선을 준 신풍후가 말했다.
“다른 의견 있나?”
“아…… 아닙니다!”
못마땅한 시선을 느낀 풍운룡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그럼 정해진 것으로 알겠네.”
신풍후가 손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배를 대기시키게. 질풍기병단(疾風騎兵團) 최정예를 소집해 내일 저녁 전에 출발할 걸세! 최대한 속히 뇌주에 도착해야 하네!”
***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터져 버린 돌발 상황이었다.
무안군은 남하삼군 중 한 명으로 신풍후조차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하는데, 하물며 중주성의 이 작은 가문은 어떠하겠는가.
“이번 임무는 아주 위험해. 분명 성주가 기회를 틈타 널 해코지하려 들 거야. 널 죽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에게 큰 피해를 입히려고 하겠지.”
성주가 떠난 후 공화련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낯빛이 어두워졌다.
“신풍후께서 네게 신세를 진 것도 있으니 아마 이번 일을 무마시켜주지 않을까? 군자는 위험을 피해갈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어.”
천제현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큰아가씨, 제가 걱정 되나요?”
“뭐라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공화련의 백옥 같은 뺨이 붉게 상기되었고, 눈빛은 다소 흔들렸다.
“흥! 그러게 누가 너더러 회장하래? 우린 네 옆에 있어야 콩고물이라도 얻을 수 있단 말이야. 기적상회의 미래가 달린 이 중요한 순간에 실수 따위는 용납할 수 없어. 그리고…… 유인책일 지도 모르잖아? 네가 신풍후 마마와 함께 본성을 떠나면 중주성에서 우리의 입지는 좁아질 거란 말이야.”
‘이 여자, 부끄러움도 잘 타네. 분명 나한테 관심이 있으면서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 내다니 말이야.’
천제현이 피식 웃었다.
신풍후는 천제현에게 빚을 졌고, 천제현은 이를 잘 이용할 수 있다.
무안군의 무력은 절대적이긴 하지만, 남하국에서의 신풍후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무안군 역시 신풍후의 체면은 세워줄 것이다.
남하국의 삼군과 팔후.
삼군은 왕성을 관리하며, 팔후는 주(州)에 배치된다.
군작은 후작보다 지위가 높지만 후작 역시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위기의 순간이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요.”
천제현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 알아본 다음에 말해 줄게요.”
천제현은 바보가 아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면 굳이 위험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천제현은 군서에 기록되어 있는 ‘연소요석(燃燒妖石)’에 구미가 당겼다.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연소요석은 도시 전체를 괴멸시키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재앙으로 많은 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하루아침에 떠돌이 생활을 전전해야 했고, 도시 전역에서 요마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 요석이 대체 뭐기에 이토록 가공할 힘을 가진 것인가.
그러니 우선 정확히 알아본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천 회장님, 풍 아가씨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저분들이 자료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같이 보러 가죠!”
풍채향, 남궁혜, 운요는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중주성 최고의 천재이자 임무 수행 차 뇌주에 갈 후보들이다. 신풍후가 가져온 기밀자료는 군서와 함께 하달되었다.
“맙소사! 현장에서 즉사한 사람만 200만 명이고 45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네!”
남궁혜가 자료를 자세히 살펴본 후 아연실색한 얼굴로 말했다.
“군서를 보면 이처럼 심각해 보이진 않았는데!”
풍채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군서는 대중에게 공개되는 문서예요. 그러니 대중이 받을 영향을 최소화하여 껄끄러운 상황을 피하는 데 목적이 있죠. 그런데 자료를 보니 뇌주 인구의 5분의 1이 피해를 입은 것 같아요. 고작 하늘에서 떨어진 요석 때문에 말이죠. 대체 뭐길래 이토록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걸까요?”
운요 역시 놀랍기는 매한가지였다.
“무안군께서 2급 최상품 성약을 포상으로 내걸었어. 최고의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겠다고!”
2급 최상품 성약이라면 진혼 고수라도 탐낼 상품이 아닌가.
‘무안군은 과연 남하삼군답게 통이 크군!’
풍채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무것도 아냐. 만약 무안군의 눈에 들기라도 하면 그깟 성약이 대수겠어?”
맞는 말이다.
무안군은 남하삼군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남하왕이 총애하는 초월급 군신이니 무안군의 눈에 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무안군이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영광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작전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때 천제현이 공화련, 심빙우와 함께 들어왔다.
남궁혜가 급히 손짓했다.
“대장! 이리 와서 봐봐! 이번에 엄청 재밌을 거 같아!”
남궁혜는 왈가닥답게 모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자료를 대충 훑어본 공화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폭발 한 번으로 이토록 엄청난 재앙이 일어나다니? 정말 무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