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제257장 강해지는 데에도 돈이 필요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 시대의 단약 조제술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남하국 단약 제조사가 중품 성약으로 만든 단약의 효능은 천제현이 하품 성약으로 만든 단약에도 한참 못 미쳤다.
그러니 천제현이 운요에게 만들어준 성단은 사실상 겉으로 보는 등급을 훨씬 뛰어넘는 보배인 셈이었다.
게다가 운요 본인의 잠재력에 천제현이 직접 개량한 무공까지 더해졌으니 혼성 5성 달성도 결코 어려운 목표가 아니었다.
임목, 방한, 운소 역시 이미 혼성 3성을 달성했다. 임목과 방한은 다음 단계인 혼성 4성을 대비해 시련탑에서 성약을 손에 넣었다.
운소는 운소대로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최약체였던 세 사람의 앞날에도 괄목상대할 변화가 예고됐다.
이와 함께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천제현, 공화련, 공서련, 임목, 방한, 남궁혜 모두 성급 단약이 필요했다. 보조 재료로 쓸 반성급 약품을 사는 데만도 운씨 가문에서 빌린 금화 일억 냥으로는 부족했다.
기적상회에서 금화 수천만 냥을 더 끌어와서야 겨우 액수가 맞았다.
수련에 드는 돈 또한 엄청났다.
그걸 다 메꾸려면 기적상회 경영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대 가문이 후계자 넷만을 중점적으로 키우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대 가문에 다른 인재가 없어서?
그럴 리가.
천부적인 자질의 소유자는 차고 넘쳤다. 사대 가문이라는 거대 세력조차도 동시에 여러 명에게 금전적 지원을 들이붓기란 힘에 부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를 골라 집중 육성하는 것이다. 천제현은 일찌감치 간파했다.
대륙 최정상급 세력을 만드는 건 그 안에 소속된 천재의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독점한 자원의 규모라는 걸.
세력 형성이든 개인 수련이든, 결국 핵심은 둘 다 돈이었다.
***
천성하가 천제현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소식이 성안을 한바탕 뒤흔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주성은 묘한 안정국면에 접어들었다.
삼대 가문이 기적상회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칩거에 들어가다시피 한 결과였다.
한편 기적상회는 과감한 행보를 이어갔다. 운씨 가문를 비롯한 수십 개 가문과 손을 잡고 사대 가문의 뒤를 잇는 거대 세력으로 거듭난 것이다.
성주 풍운룡은 눈엣가시 같은 천제현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지만 신풍후 풍운천이 있는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지금 누리는 권세는 모두 신풍후가 양보한 것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줬던 그대로 다시 빼앗아갈 수도 있으리라.
안 그래도 상관명을 부추겨 천제현에게 싸움을 건 일로 신풍후의 심기를 건드린 상황이다.
풍운룡이 눈치를 보는 것도 당연했다.
중주성에서의 영향력이 풍씨 집안과는 천지 차이인 사대 가문조차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까딱 실수했다가는 수십 개 중형 세력의 눈 밖에 나 성주로서의 실권을 잃을 수도 있었다.
풍운룡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적상회의 성공을 눈 뜨고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천제현이 낙강룡, 양천랑과 결투를 벌인 지도 어언 보름.
공서련, 공화련, 임목, 방한, 천제현이 연이어 혼성 3성 정점에 올랐고 운요는 혼성 4성 정점을 달성했다.
남궁혜, 풍채향, 운요의 성취가 가장 빨랐는데, 다행히 필요한 재료는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세 사람에게 먹일 성급 단약은 천제현이 무극 조롱박을 이용해 직접 만들어냈다.
천제현의 단약 조제술은 이 시대의 기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하품 성단은 이 시대의 중품 성단보다도 효능이 뛰어났다. 게다가 무극 조롱박 자체도 귀하디귀한 보물이었다.
무극 조롱박으로 만든 단약은 순도 높은 대지의 기운을 품은 덕에 그 효능이 남달랐다.
운요가 혼성 4성 정점에서 혼성 5성으로 올라서는 과정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 허혼기에서 현혼기로 넘어가는 남궁혜와 풍채향은 까다로운 고비를 맞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천제현이 적극 돕는다면 성공률이 최소 7, 8할은 될 것이다.
무극 조롱박의 힘은 천제현조차도 놀라워할 정도였다.
무극 조롱박 스스로 단약에 대지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이고 조제 과정에서 나온 잔여물은 조롱박에 흡수되어 비료로 재활용됐다.
조롱박은 살아 있었다.
생명력 넘치는 어린 모종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적절했다.
무극 조롱박은 천제현이 주는 생명수를 마시며 서서히 성장했다. 용량이 계속 커지고 있을뿐더러 충분히 자라면 새로운 기능까지 얻을 수 있었다.
“천제현! 천제현! 얼른 나와 봐!”
공서련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좋은 소식이 있어!”
천제현이 물었다.
“뭔데요?”
공서련은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염천웅 숙부랑 같이 염씨 가문에 다녀왔어! 염무기 대장군이랑도 얘기 다 끝냈어. 이제 중주 염씨 가문도 기적상회랑 손을 잡기로 했다고!”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염씨 가문은 사대 가문의 뒤를 바로 잇는 중주의 명문세가였다. 다만 대대로 군벌 집안이었기에 사업 수완이 없었다.
사대 가문만 한 부를 축적하지 못했기에 자연히 사대 공자같은 천재를 키워낼 여력이 안 됐다.
이에 염천웅이 나서 줄을 댔고, 공서련이 곧장 염무기 대장군을 만나 계약을 맺은 것이다.
공서련은 대형 통조림 공장을 열 개 더 늘릴 계획이었다. 기적상회에서 직접 사람을 뽑고 공장을 짓기에는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는지라 믿을 만한 대리상이 필요했다.
공서련이 염씨 가문을 택한 이유는 부지, 인력을 비롯한 각종 자원을 두루 보유하고 있을뿐더러 가문 자체의 기반 역시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앞으로 기적상회에 납품할 통조림은 염씨 가문이 책임지고 생산하게 됐다.
이번 계약으로 염씨 가문은 매년 억대의 금화를 벌어들일 것이다. 이는 가문 수입을 거의 두 배로 끌어올리는 액수로, 염씨 가문으로서는 경사 중의 경사였다.
기적상회 역시 통조림 생산량을 급속히 늘릴 수 있게 됐다. 열 개 공장이 전부 가동을 시작하면 한 달에 5백만에서 6백만 개에 달하는 통조림을 만들어낼 것이다.
거기에 지금 짓고 있는 소형 통조림 공장 몇 군데를 더하면 남하국 전역에 제품을 공급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생산비 약간 쥐여 주고 염씨 가문을 통째로 기적상회에 끌어들이다니. 확실히 남는 장사가 아닌가.
공서련이 또 한 건 올린 것이다.
두 사람이 한창 대화중이던 때였다. 돌연 창공을 뒤덮는 거대한 형체가 있었다. 무시무시한 위용의 신수였다. 구름마저 붉게 물든 광경, 기적상회 본사 전체가 들썩였다.
공서련이 외쳤다.
“봉황!”
“남궁혜예요!”
천제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폐관수련을 잘 끝낸 모양이에요. 성단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군요.”
기적상회에서 제일 먼저 혼성 중기에 접어든 사람은 남궁혜였다.
본래 강력한 전투력의 소유자인 데다가 혼성 4성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양천랑이나 낙강룡도 이제 남궁혜를 못 당하리라.
그 둘이 아니라 천제현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불멸체에 혼성 4성, 무공과 무학 역시 일류. 신급 정령의 힘까지 더하면 지금의 남궁혜는 천제현보다도 한 수 위였다.
천성하에게는 아직 못 미치므로 얼추 천제현과 천성하의 중간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수의 탄생은 기적상회 전체에 흥분과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달려 나와 남궁혜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운씨 가문 총부에 요란한 번개가 내리꽂혔다. 운요 역시 다음 단계로의 성취를 이룬 것이었다.
운요가 사대 공자 중에서 제일 빨리 혼성 5성을 달성했다. 금방 도태될 것으로 여겨졌던 최약체가 나머지 셋을 추월하다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이로써.
중주 사대 공자 명단이 새로 짜였다.
이제는 천검공자 천성하, 유명공자 천제현, 봉황공자 남궁혜, 자전공자 운요가 그 넷이었다.
결전에서 패배한 천랑공자와 용호공자는 더 이상 위의 네 사람을 따라잡을 가망이 없었다.
넷 중 누가 가장 강한지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마력으로 따지면 자전공자 운요가 최고였다.
운천학이 이 사실에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그는 당장에 기적상회와 협력세력들을 초청해 성대한 축하연을 열기로 했다.
운요가 얻은 성과는 기적상회를 비롯한 연맹 세력 모두가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덕분에 삼대 가문의 기세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었다.
천제현도 물론 연회에 참석했다.
호위무사 심빙우와 부회장 공화련도 그와 함께였다.
공화련은 등장과 동시에 모든 이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미모가 아니라 그간 중주에서 보여준 빠르고도 명철한 경영 능력이 그 이유였다. 공화련은 확실히 이 방면에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기적상회에서의 위치는 천제현 쪽이 더 중요할지 몰라도 상회의 대소사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은 공화련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제현은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대부분 천제현보다는 이 머리 좋은 미녀에게 잘 보이는 쪽을 택했다.
누가 알겠는가, 옆에 있다가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지.
천제현에게 포권을 해보인 염무기가 말했다.
“황석성에서 만났을 때도 보통 인물이 아닌 줄이야 알았지만, 중주 전체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을 줄이야. 감탄했소이다!”
천제현이 가볍게 웃었다.
“모두 염씨 가문에서 도와주신 덕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다들 한 가족 아니겠소? 기적상회를 만났으니 우리 염씨 가문도 그만 빈털터리 신세를 면하겠구려.”
천제현과 인사를 나눈 염무기가 허허 웃으며 공화련을 쳐다봤다.
“마력이 이렇게 빠르게 늘다니! 벌써 혼성 3성 정점인가!”
공화련이 미소 띤 얼굴로 정중하게 답했다.
“대장군께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지요.”
“무슨 소릴! 나도 이제 오십이네. 전성기는 한참 지나갔다고. 마력 높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이십대인 부회장은 이제 한창때가 아니오!”
염무기가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상자 하나를 옮겨왔다.
“요즘 여기저기서 재료를 수집한다고 들었소. 마침 나한테 좋은 물건이 있어서 선물로 가져왔소이다.”
공화련의 눈빛이 흔들렸다.
성단 보조 재료를 모으기 위해 중주성 시장을 전부 뒤졌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았다.
천제현의 수련 속도를 늦추려는 삼대 가문이 뒤에서 방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기적상회는 남의 물건을 공짜로 받지 않습니다.”
상자를 냉큼 넘겨받은 공화련이 말했다.
“금액을 감정해 현금으로 댁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염무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