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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256화 (253/729)

# 256

제256장 기회를 노리는 천씨 가문(2)

문 안쪽으로 옥으로 만든 침상에 누운 천성하가 보였다. 산발한 머리에 낯빛은 백지장 같았다.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아이라 어려서부터 경쟁할 상대가 없었지. 연배 높은 고수들과의 대결이 아니고서야 져본 경험도 없고. 그런 녀석이 마력도 저보다 못하고 이름도 없는 애송이에게 당했으니, 가슴에 큰 응어리가 졌을 걸세.”

천산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성하는 천씨 가문의 미래였다. 가문의 부흥을 이끌어야 할 후계자의 날개가 이대로 꺾여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원흉은 천제현 아닙니까? 당장 가문의 실력자들을 모아 놈을 죽여 버리겠습니다!”

“아니!”

천시가 천산하를 불러 세웠다. 심빙우가 곁에 있는 이상 어차피 성공할 확률은 낮았다.

괜히 그 미친놈을 자극해 봐야 천씨 가문에도 좋을 게 없었다.

“성하는 앞으로도 수많은 천재를 만나게 될 걸세. 그때마다 가문이 나설 수는 없지 않은가? 가슴의 응어리는 스스로 극복해야 하네!”

천시가 성큼 방안으로 들어섰다.

힘겹게 눈을 뜬 천성하가 입술을 달싹였다.

“태상장로님?”

천시가 매서운 투로 물었다.

“성하야, 패배에 승복하느냐?”

천성하의 눈에 억울한 분노가 맺혔다. 이번 패배로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좋은 눈빛이다. 아무리 강한 자도 항상 이기기만 할 수는 없음을 명심하거라!”

천시가 천성하의 눈에서 읽어낸 것은 타오르는 증오였다. 가슴에 증오가 남은 이상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으리라.

“한 번의 좌절도 감당하지 못하는 인물이 어찌 천씨 가문의 대업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 일어나거라! 자, 네가 천제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천성하가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절대로요! 정정당당하게 겨룬다면 놈을 단칼에 벨 자신이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낙강룡과 양천랑을 상대로도 애를 먹었거늘, 천제현이 진짜로 천성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 누워서 허송세월할 일이 아니다!”

천시가 호통 쳤다.

“네가 잃어버린 자존심은 네 손으로 찾아와야지. 천제현에게 도전장을 보내뒀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곧장 놈과 승부를 내거라!”

천산하가 흠칫했다.

“태상장로님, 성하가 몸을 추스르려면 아무래도 시일이…….”

“내가 급히 돌아온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천시가 품에서 옥으로 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받게!”

천산하가 상자 틈새를 살짝 벌리는 순간.

놀라운 영력이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방안 가득 휘몰아치는 영력 주변으로 희미한 환상이 번뜩거렸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천시가 말했다.

“우연한 기회로 얻은 칠곡영삼(七曲靈蔘)이네. 하늘이 내린 영약이지. 삼사만 년은 묵어 이미 성약이 된 물건이야. 더 보태자면 조금이나마 선약의 성질도 갖고 있다네.”

“반선급 영약이란 말씀이십니까!”

“거기까지는 아닐세. 영기가 척박한 남하국 땅에서는 선약이 나기가 어렵지. 반선급까지는 아니어도 최상품 성약이라네. 금화 십억 냥을 줘도 모자란 물건인 만큼 상처 치료만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마력을 증진시키는 효능이 있어. 성하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줄 걸세.”

‘최상품 성약이라고?’

재료 등급은 일반급, 영물급, 성물급, 선물급, 신물급으로 나뉜다.

같은 등급 안에서도 하품, 중품, 상품, 최상품으로 다시 구분되는데 천제현이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지장과도 겨우 중품 성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남하국 전체를 샅샅이 뒤져도 몇 없을 이 칠곡영삼은 그야말로 돈 주고도 못 살 초월 성약인 것이다.

칠곡영삼의 가치를 잘 아는 천산하가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천성하에게 말했다.

“뭐하는 게냐! 어서 감사드리지 않고.”

황급히 몸을 일으킨 천성하가 천시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태상장로님, 감사합니다!”

천산하가 말했다.

“중주 사대 공자 중 낙강룡과 양천랑은 이미 끝났고, 운요는 천제현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느라 바쁘다. 천제현을 공개적으로 꺾기만 하면 중주에는 네 경쟁자가 없을 테니 예전을 넘어서는 명성을 얻게 될 거야!”

상자를 건네받은 천성하의 눈에 독기가 스쳤다.

‘천제현에게 받은 수모는 반드시 백 배로 갚아주고야 말 것이다!’

“당분간은 기적상회를 저대로 내버려 두게.”

“손 놓고 있다가는 중주 전체가 우리 천씨 가문을 겁쟁이로 볼 텐데요?”

“천제현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함이네. 때가 오면 단번에 쓸어버릴 것이야.”

천시의 얼굴이 악랄하게 일그러졌다.

“양씨 가문과 낙씨 가문의 두 늙은이가 왕성에 있다기에 서신을 보내뒀네. 그들이 중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태상장로 셋이 손을 잡은 이상 삼대 가문은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천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사십여 년 전, 네 명의 가주 중 가장 출중한 인물은 운천학이었다.

그러나 후계를 세우고 마음 편히 세상을 떠돌며 무공 수련에 힘쓸 수 있었던 나머지 세 태상장로와 달리 운천학은 가문을 떠나지 못했다.

뒤를 이을 사람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고 운씨 가문 자체의 학구적인 풍조에서는 굳이 수련에 목을 맬 필요가 없는 것도 이유였다.

운천학이 홀로 중주성에 남아 있는 동안 다른 세 명은 꾸준한 수련으로 그와의 격차를 벌려왔다.

“부러지지 않으려거든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세월도 천시의 집념은 앗아가지 못한 듯했다.

“신풍후의 힘에 천제현 본인도 한창 운을 타고 있으니 아직은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긴 세월을 버텨온 삼대 가문이 그리 간단히 쓰러질 리는 없었다.

가문의 핵심역량만 보전한다면, 그리고 세 태상장로가 손을 잡는다면, 신풍후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다.

적절한 때만 잘 노리면 천제현을 없애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비난은 얼마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던가.

사실 이건 천시가 남겨둔 차선책에 지나지 않았다. 천성하가 천제현을 죽이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둔 것이었다. 물론 천시는 천성하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문제는 신풍후가 끼어들어 방해할 가능성이었다.

천산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상장로가 전면에 나섰으니 이제 걱정할 일은 없다.

오늘날 천씨 가문의 세력은 대부분 태상장로가 일궈낸 것이었다.

나머지 집안의 장로들 역시 다년간 이어진 권력투쟁에 진력이 난 몸으로, 노련하고 음흉하기로는 당해낼 자가 없었다.

한편 신풍후는 어떠한가?

전장의 백전노장이라고는 하나 음모와 계략 방면에서는 다른 셋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기다리고 있거라! 천제현, 네놈이 발 뻗고 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다음날.

천씨 가문 태상장로의 등장과 함께 천성하가 천제현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소식이 중주성 전역에 알려졌다.

천씨 가문은 한 발 나아가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통해 오만함을 한껏 드러냈다.

약해빠진 지금의 천제현을 이겨봤자 천성하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될 뿐이라며 천제현이 현혼 경지를 이룰 때까지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중주성이 들끓기 시작했다.

천성하의 공개 도전이라니, 말만 들어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천제현이 약한 자이던가?

물론 아니다.

혼자서 사대 공자 중 두 명인 낙강룡과 양천랑을 꺾은 인물이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천제현에게는 천성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충분했다.

세간에서는 천제현을 새로운 천재 반열에 올렸고, 그의 기묘한 검법에서 착안해 ‘유명공자(幽冥公子)’라는 별명을 붙이기까지 했다.

천제현이 얼마나 주목받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천씨 가문에서 쏟아낸 말을 전해 들은 천제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천씨 가문이 언제부터 성인군자 흉내를 냈다고, 현혼 경지까지 기다려줘? 헛소리인 게 뻔하지 않나!’

천성하가 아직 싸울 몸 상태가 못 되는 까닭에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밖으로는 관용을 베푸는 척 연기하는 것이다.

천제현의 추측은 꽤 사실에 근접했으나 딱 들어맞진 않았다.

천성하가 완치 전인 건 맞지만, 시간 끌기의 목적은 단순한 치료만이 아니라 실력을 키우기 위한 폐관수련이었던 것이다.

최상품 성약은 무턱대고 꿀꺽 집어삼킨다고 다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건 아까운 약을 쓰레기통에 처넣는 짓이다.

성약의 효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조 재료부터 구해야 했다.

한편 운요는 영 불안한 눈치였다.

“정말 도전에 응하는 거야? 천성하는 앞에서 상대했던 둘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천성하의 실력이라면 잘 알고 있어.”

천성하의 검법이 얼마나 심오한 경지에 달했는지는 시련의 공간에서 충분히 느꼈다.

몇 단계 수준 높은 고수라도 천성하가 전력을 다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덤벼 보라지! 도전하겠다는데 못 받아줄 건 또 뭐겠어!”

운요는 천제현이 천성하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간 보여준 기적들이 있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어딜 봐도 천성하한테 이길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또 뭔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다면?

시련탑 때도 누구 하나 천제현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는 결국 놀라 뒤집어질 결과를 만들어냈었다.

대결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놓고, 천제현은 일단 공화련, 공서련, 남궁혜 등 주변인의 수련을 돕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공화련과 공서련은 혼성 1성 정점에 성광불멸체를 유리체 정상급까지 연마한 상태였다.

성진석과 약물을 동원한 덕에 두 자매를 정상급 불멸체로 인도하는 길은 수월했고, 수준 역시 혼성 2성에 이를 수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천제현은 만년영밀을 섞은 반성급 약물을 아낌없이 사용해 둘의 실력을 끝내 혼성 3성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공화련과 공서련의 역할은 어차피 전투가 아니었기에 굳이 매 단계 시간을 들여 실력을 다지거나 공격 무공을 수련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마력 향상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결과 둘은 엄청난 성취 속도를 보였고, 열흘 이내에 한 단계 더 도약해 혼성 3성 정점을 이룰 것으로 점쳐졌다.

천제현과 남궁혜 역시 그사이 혼성 3성 정점을 찍었다.

수련에 힘쓰는 동안 지출은 무서운 기세로 불어났다.

금화 1~2억 냥은 족히 쓴 듯한데, 이는 사대 가문의 지출 규모에 갖다 대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기적상회의 확장세는 순조로웠지만 자금 대부분을 투자 및 연구비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결국 상회 명의로 운씨 가문에서 돈을 빌려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었다.

부담스러울 만한 액수였기 때문에 천제현은 운씨 가문에 일종의 이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운요의 혼성 5성 달성을 도울 성단을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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