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제254장 기적상회 발표회
공화련이 며칠간 이끌어온 행사 덕에 기적상회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였다.
개업 첫날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점포가 꽉 들어차다 못해 거리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빨리 따라와!”
갓 도착한 천제현이 부들부들 매끈한 손에 이끌려 대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천제현을 끌고 달리던 공서련이 말했다.
“언니가 기자들한테 완전히 포위당했어, 얼른 가서 도와줘!”
천제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겨우 이 정도 일에 큰아가씨가 당황하실 리가요.”
기적대주점의 개업일, 공화련은 기적상회가 중주성에 정식 진출했음을 알리는 설명회를 바로 이곳에서 열기로 했다.
실로 기발한 생각이었다.
기자회견장이 마련된 장소는 진작부터 발 디딜 틈이 없는 상황이었다.
삼대 가문이 뒤를 봐주는 언론사들을 솎아낸 뒤 나머지 영향력 있는 신문사에서 고른 대표들만 해도 삼사십 명은 되는 데다가, 수십 개에 달하는 중소 협력 가문의 대표들까지 모여 있었다.
단상에 놓인 팻말은 네 개였다.
정중앙이 ‘회장’ 천제현, 그 옆은 ‘부회장’ 공화련과 ‘운씨 가문 대표’ 운요, 마지막으로 ‘사회자’ 팻말에는 풍채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풍채향이 몸소 사회를 맡다니,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이 안에 풍채향이 누군지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 모인 사람 모두 발표회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풍채향은 격식 있는 황색 예복을 차려입고 단상에 올랐다.
정성 들여 틀어 올린 머리에 옅은 화장까지 한 얼굴이었다.
신풍검이 없는 풍채향은 훨씬 온화하고 상냥한 느낌이었다.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이 미모의 여인에게 쏠렸다.
“기적대주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전략 설명회 및 협력계약 체결식을 진행하겠습니다!”
풍채향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장내에 퍼졌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풍채향입니다. 이제 천제현 기적상회 회장님과 공화련 부회장님, 협력대표 운요님을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공서련이 천제현을 슬쩍 밀쳤다.
“얼른 가, 얼른!”
내키지 않는 얼굴로 단상에 올라간 천제현이 좌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군중들 사이로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설의 소년을 직접 보게 되다니!’
함께 단상에 오른 공화련은 이번에도 티 한 점 없이 새하얀 옷이었다.
풍성하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잘 빠진 허벅지, 늘씬한 몸매와 경국지색의 용모 덕에 그녀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독 돋보였다. 고귀하고도 차가운 특유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여신이었다.
“그래도 오긴 왔군!”
손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려던 공화련이 천제현을 향해 눈을 흘겼다.
이어서 단상에 등장한 운요 역시 미인인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범접하기 힘든 날카로움을 뿜어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문세가의 직계손에 사대 공자 중 한 사람이지 않은가.
운씨 가문이 대표로 그녀를 내보낸 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일이었다.
점점 커지는 박수소리와 함께 청중들의 얼굴에도 흥분의 기색이 짙어져 갔다.
천제현을 직접 보는 건 좌중 대부분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에서라니, 여기저기서 감탄성이 이어졌다.
“진짜로 엄청 젊잖아!”
“말도 안 돼, 저렇게 온화한 얼굴로 정말 상관 집안 특사의 사지를 잘랐단 말이야?”
“혼자서 천랑공자랑 용호공자를 쓰러뜨렸다잖아. 사대 공자에 맞먹는 유명인이지!”
웅성거림이 사그라들 줄 모를 때였다.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풍채향이 막대 형태의 확성기를 들고 말했다.
“우선 공화련 부회장님께서 기적상회의 향후 전략을 소개하겠습니다.”
대기하던 공화련이 곧장 확성기를 넘겨받아 연설을 시작했다.
“참석해주신 언론사와 협력자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도움 덕분에 기적상회는 설립 후 짧은 기간 안에 여러 신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신형 부적, 마력등, 마력 요리법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뒀죠. 향후 저희는 생산규모 확대를 통해 기적상회의 놀라운 제품들을 본성 및 주변 도시에 널리 보급할 예정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거죠!”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헀다. 공화련은 사람들의 반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기적상회는 이미 기린무도관을 설립해 남궁혜님과 운요님에게 관리를 맡겼으며, 기적방송상회의 운영에는 풍채향님이 참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조만간 중주성 주민 수백만 명이 기적상회의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제별로 특화된 채널을 열 개 이상 만들어 중주성 주민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지식의 보고, 마음의 양식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밖에도 적극적인 협력자 모집을 통해 기초 생산시설 확보 및 방송 채널 개발, 신기술 연구에 힘쓸 생각입니다. 이로써 중주성에는 오만 개 이상의 새 일자리가 생길 것이며 세수 역시 금화 수만 냥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청중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 기적상회!’
‘이 얼마나 혁신적인 광폭 행보인가!’
공화련의 연설이 끝나자 풍채향이 확성기를 천제현에게 넘겨줬다.
“이어서 회장님께서 앞으로의 협력계획을 설명하겠습니다.”
‘제길! 내가 설명은 무슨 설명을 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천제현의 얼굴이 어두워지려는 찰나, 공화련이 뒤로 조용히 연설원고를 건네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천제현이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기적상회는 황천용병단을 인수해 1차로 금화 오천만 냥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정예 용병단 육성을 목표로 두 달 안에 인원 규모를 삼천 명까지 늘릴 것입니다. 또한 운문과 천진상회 등 십여 개 협력단체들과의 협력에 금화 일억 냥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대상 가문 상회로는…….”
“각 협력 파트너들의 역할은…….”
“…….”
한차례 전율이 장내를 휩쓸고 지나갔다.
‘겨우 며칠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세력과 동맹을 맺다니!’
천제현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 계약 체결식을 갖겠습니다.”
곧바로 풍채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협력자분들께서는 차례로 단상에 올라와 주십시오!”
임목과 경호를 비롯한 이십여 명이 걸어 나왔다.
천제현이 발굴한 인물은 임목, 경호 둘뿐.
나머지는 공화련이 중주성에서 모집한 중견상회, 용병단, 선단, 언론사 등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었다. 이런 막강한 협력자들이라면 앞으로 자원, 생산력, 영향력, 무엇 하나 걱정할 게 없을 것이다.
천제현조차도 공화련의 수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설마 이 정도였다니!’
단기간 내에 이만한 규모를 만들어 내다니 기적상회의 앞날은 이미 탄탄대로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풍채향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다음은 질문 순서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내에 소란이 번졌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손을 들었다.
“성원이 대단하군요.”
풍채향이 질문자 한 사람을 골랐다.
“이쪽에 계신 숙녀분께서 먼저…….”
발표회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무시무시한 기운이 순식간에 행사장을 뒤덮었다.
청중들의 얼굴이 일순 새하얗게 질렸다.
‘대체…… 이 무슨 위압감이란 말인가!’‘
이토록 강력한 기운을 발할 수 있는 인물은 중주성 안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체 누가 감히 기적상회의 행사장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지?’
‘천제현이 어떤 인물인지 모른단 말인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심빙우 역시 이질적인 기운에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자못 살기 어린 그녀의 눈동자에 한 줄기 두려움이 스쳐 지났다.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는 기운.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칼날이 목울대를 겨누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피를 갈구하는 그 예리한 날이 살갗을 찢으려 꿈틀거리는 감각이 생생할 지경이었다.
심빙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리만치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떠들썩하던 행사장이 물이라도 끼얹은 양 조용해졌다. 모두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중주성에 이런 고수가 있었단 말인가.
“천제현, 간덩이가 부었구나!”
쩌렁쩌렁한 음성이 날아와 꽂히는 동시에 행사장 사방의 유리가 요란하게 터져나갔다.
“천씨 가문을 배반하고 멋대로 상회를 열더니, 아예 가문 전체를 적으로 돌려? 비열한 놈, 낯짝도 두껍구나!”
한마디, 한마디, 예리하게 날을 세운 검처럼 위협적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중주 땅에 진혼 경지를 이룬 고수는 몇 되지 않는다.
저런 인물이 갑자기 땅에서 솟았단 말인가,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인가.
설마하니 상관 가문이 복수를 위해 보낸 자인가.
그들과 신풍후의 관계를 생각하면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게다가 정말 상관 가문의 소행이라 쳐도 상관명이 중주를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들이 보낸 자객이 벌써 도착했을 리가.
천제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순간, 암적색 그림자가 행사장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의 노인.
마른 체격이었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힘이 느껴지는 몸이었다.
검객들이 입는 암홍색 긴 도포에 머리에는 흑옥관을 쓰고 있었다.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한 기운은 흡사 피에 젖은 보검을 연상케 했다.
등골이 서늘해지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저자를 잘못 건드리면 여기 있는 모두 순식간에 저승객 신세가 되리라.
“음혈검 천시!”
“앗, 어떻게 음혈검이?”
“천씨 가문의 태상장로라면 4년 전에 중주를 떠난 게 아니었나?”
하나같이 아연실색한 표정들이었다.
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천씨 가문의 전임 가주이자 현재는 태상장로의 지위에 있는 천시, 세간에서 음혈검으로 통하는 자였다.
음혈검이라 하면 사십여 년 전 중주를 뒤흔들었던 인물이다.
태상장로는 실권이 없는 지위였으나 음혈검의 존재감은 현임 천씨 가주를 능가했다.
지난 4년간 천시는 천하를 돌며 무공을 수련하는 동시에 외지에서 천씨 가문의 세력을 키워왔다.
이 시점에 그가 중주성에 돌아오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물론 천씨 가문으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천씨 가문에도 드디어 진혼급 고수가 버티고 선 것이다.
천시가 단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을 내딛는 자리마다 울컥 피 웅덩이가 솟구칠 것만 같은 위압감이 일었다.
중간에 서 있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에게 길을 터줬다.
음혈검. 피에 미친 살인광.
누가 감히 그의 앞을 막겠는가.
죽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은 이상에야!
행사장 분위기가 급속히 얼어붙는 순간,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성큼 천시의 앞을 막아섰다.
덕분에 음혈검의 흉흉한 기세가 꺾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참았던 숨을 가까스로 내쉬었다.
살기로 번뜩이는 심빙우의 두 눈이 한때 중주를 주름잡았던 음혈검을 노려봤다.
심빙우의 목소리는 눈빛만큼이나 서늘했다.
“한 발만 더 움직이면 공격하겠다!”
“건방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