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제253장 연구의 시작(2)
천제현의 말에 모두가 전율을 느꼈다.
‘이렇게 빨리 연구 시작한다고?’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진행해야 할 연구는 총 세 개가 있습니다. 각각 단기, 중기, 장기 연구지요.”
“먼저 단기 연구는 ‘방송체계 유료 채널’ 구축 작업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기적상회의 방송체계는 날로 개선되고 있지 않습니까?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사업이라 할 수 있지요. 그중에서도 유료 채널은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될 것입니다. 그 기술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서 저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지만, 일종의 훈련 차원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자 합니다. 그 참에 여러분의 실력도 알아보고 싶고요. 그래서 7일이라는 기간을 두었습니다!”
‘그런…….’
‘7일이라니, 너무 짧지 않은가!’
모두들 당황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운천학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럼 중기 연구는 또 뭔가?”
“그건 ‘자음통신기술’ 연구라는 겁니다!”
말을 마친 천제현이 가볍게 박수를 치자 심빙우가 앞으로 나오며 모두에게 자료를 나눠 줬다.
“일단 모두 그 자료를 보시지요.”
그 모습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심빙우가 천제현의 비서 겸 경호원 직을 맡고 있다니. 옛날 같았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 고고하고 차가운 미인이 자처하여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물론 천제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운천학을 포함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다수의 저명한 학자들이 고분고분 그의 말을 듣는 것도 다 같은 이유 때문 아니었던가.
손에 든 자료를 펼쳐 훑어본 운천학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가 경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건…… 자음탑 관련 자료 아닌가!”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자음탑이 어떤 물건인가.
수정통신기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그건 장차 인류의 역사와 생활 형태를 바꿔놓을 발명품이었다. 수정통신기 판매 수익 외에도 일부 유료 채널을 통한 수익은 화수분처럼 엄청날 것이다.
그 수정통신기의 핵심기밀인 자음탑 자료를 이렇게 대대적으로 공개하다니.
“이건 자음탑의 일부 핵심 자료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천제현은 특별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전 여러분의 능력을 잘 알고 있기에 굳이 여러분을 괴롭힐 생각은 없습니다. 이 데이터와 자료들이 두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너무하는군!’
‘이건 대놓고 우리들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운천학을 포함한 학자들은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천제현은 다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자음탑의 용도는 방송에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향후 자음탑을 기초로 ‘통신’을 개발하고 통신 설비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통신이라고? 무슨 통신 말이오?”
“모두 아시겠지만, 자음탑의 본질은 매개체입니다. 마력진에 들어간 음파가 신호로 전환되어 자기장 범위 안에 있는 수신기로 전파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기적상회는 이것을 기초로 수정통신기를 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자음탑을 매개체로 해서 동시에 두 개의 단말기를 서로 연결하여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실시간 통신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현장에 있는 수십 명의 학자들이 동시에 몸을 떨었다.
천제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저 젊은이가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 물건은 수정통신기와는 좀 달랐다. 수정통신기가 음성 신호를 수신하기만 하고 송신을 할 수 없었다면, 그 새로운 물건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형태였다.
매개체는 여전히 자음탑이었다.
두 개의 단말기가 자음탑을 통해 서로의 음성 신호를 수신하고 송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자음탑의 자기장 범위 안에만 있다면 거리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실시간 통신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 아니, 대륙 전체의 문명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할 발명이 될 것이다.
운천학 등 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게 그 연구는 역사에 기록될 찬란한 사명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통신기술 연구는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진행되어야 합니다.”
천제현은 눈앞에 있는 노인들의 상기된 표정에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향후 2주 동안 여러분을 훈련시키겠습니다. 먼저 필요한 기초지식을 알려 드리죠. 그 기초지식을 기반으로 통신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십시오. 이 연구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배정하겠습니다!”
천제현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장기 연구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이건 당장 급한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준비가 필요한 사업입니다!”
‘단기와 중기 사업도 이렇게 놀라웠는데 장기 연구는 또 어떤 것이란 말인가?’
“기적상회가 오늘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마력등과 마력 화로, 자음탑 등 훌륭한 발명품들의 힘이 컸지만, 이제 제가 설명할 물건은 시대에 획을 긋는 위대한 발명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발명품을 ‘마력 행렬 컴퓨터’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마력 행렬 컴퓨터?’
‘대체 뭐길래 이렇게 이름이 생소하지?’
천제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력 컴퓨터는 기적상회의 핵심 전략입니다. ‘컴퓨터’란 명령어에 따라 각종 자료와 정보를 자동으로 가공, 처리하는 설비를 말합니다.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기술이자 발명품이 되겠지요. 컴퓨터의 응용으로 인류는 복잡한 정신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사회 각 분야에서 정보의 수집, 처리 및 전파 속도와 정확성이 개선되면서 정보화시대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물건이 나오면 앞으로 우리의 연구와 생활이 훨씬 편해진다는 거로구먼.”
늙은 학자 한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너무 엄청난 얘기였나?’
학자들의 반응에 천제현은 내심 자신이 너무 앞서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헀다.
하지만 일단 말을 꺼냈으니 시도라고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어쨌든 마력 행렬 컴퓨터의 발명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엄청난 재력과 인력은 물론이고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죠.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연구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기초지식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마력 행렬 컴퓨터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겠죠! 저를 따라 오시면 다른 건 몰라도 최첨단 지식과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열의에 불타는 원로 학자들을 연구소에 두고 나오는 길, 심빙우는 천제현의 뒤를 따라 걷는 내내 들뜬 가슴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망설이던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 두 가지, 정말 실현 가능한 연구인가?”
천제현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운천학 일행이 문제였다.
대륙의 발전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기술, 강대국에서조차 듣도 보도 못했으리라.
제아무리 알아주는 학자라고 해봐야 겨우 남하국 학자일 뿐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한 운천학이 무슨 재주로 제국에서도 못 해낸 일을 해낸단 말인가.
“무슨 소릴! 제가 확신 없이 덤비는 걸 본 적 있습니까?”
천제현이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핵심 부분은 제가 진행할 거예요. 저분들은 그 뒤의 번거로운 작업을 맡게 될 거고요. 예를 들어 제가 일종의 수치 계산법을 개발해 가르쳐주면, 그 계산법이 적용되는 설계는 저분들이 알아서 도맡는 식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저들에게 온전히 연구를 맡긴다고?’
가당치도 않다는 건 바보라도 알 만한 일이었다.
수준 낮은 자음통신기술조차도 구현을 위해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마력진이 필요했다.
충분한 이론적 지식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운천학이 백 년을 매달린대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천제현이 살던 시대에 자음통신은 폐기된 지 오래였다.
당대의 기술이 아니었던 탓에 천제현도 이론만 알았지 당장 구현해낼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화약 제조에 들어가는 성분과 대략적인 배합비율은 누구나 알지만, 안정적이면서도 성능 좋은 화약을 만들어내는 건 또 다른 문제가 아니던가.
천제현이 개발할 통신체계의 핵심기술은 기본적인 화약 배합에 빗댈 수 있었다.
운천학과 다른 학자들의 임무는 바로 수 없는 자료 수정과 실험을 거쳐 ‘완벽한 화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몸이야 고단하겠지만.
덕분에 천제현은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것이고, 운천학 등은 어차피 배우는 재미에 빠져 힘든 줄도 모를 것이다.
기적상회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설비 유지와 수리 기술을 갖춘 인력을 키울 필요가 있으니,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었다.
한편, 심빙우는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 느긋한 표정의 소년이 이룩해낼 성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입구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주세요.”
지하 실험실의 탁자 위에는 액체가 담긴 비커 열댓 개가 늘어서 있었다. 마력진 위에서 끓고 있는 붉고 진득한 액체, 그 안에 담긴 힘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고대 신으로부터 신혈을 넘겨받은 천제현은 신이 남긴 기억의 파편 속에서 신혈의 또 다른 활용법을 알아냈다.
신혈강시 제작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이용할 방도를.
신혈에는 세상의 모든 저주를 풀 만한 힘이 담겨 있을뿐더러 대다수의 맹독을 무력화시키는 효과까지 있었다.
체질개선에 이용한다면 강인함과 회복속도가 크게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저주나 독극물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지사, 그러나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그 안에 깃든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신혈을 약재로 활용하려면 극히 옅은 농도로 희석하는 게 먼저였다.
유리관 십여 개에 담긴 액체는 신혈 한 방울을 희석해 놓은 것이었다.
“흠, 힘의 밀도가 여전히 엄청나잖아? 이대로 썼다가는 위험하겠어.”
신혈은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이토록 막강한 힘이라니!’
과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생명체다웠다. 일단은 계속 희석해 보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때였다.
남궁혜가 헐레벌떡 실험실로 달려 들어왔다. 거대한 쇠망치를 둘러맨 남궁혜는 심빙우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오늘 기적대주점 개업일인 거 몰라? 총회장이라는 인간이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당장 따라와! 공서련이랑 공화련 언니가 목 빠지게 기다린다고!”
‘맙소사, 깜빡할 뻔했군!’
공씨 자매를 난감한 상황에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지못해 작업을 중단한 천제현이 희석된 신혈을 조롱박에 담았다.
새끼 여우가 훔쳐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알았어요, 재촉은. 지금 당장 가요!”
개업식이 다 끝날 판인데 회장이란 작자는 아직 그림자도 안 비쳤으니, 마음이 안 급하고 배기겠는가.
천제현은 기적상회의 영혼이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수많은 가문이 기적상회와 동맹을 맺고자 하는 배경에는 천제현의 막강한 지위와 영향력이 있었다.
협력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천제현은 반드시 개업식에 얼굴을 내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