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제251장 신혈강시
상관명의 두 눈에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개처럼 다뤄 주마! 쉬지 않고 짖는 개는 때려서 고쳐야 하는 법! 내가 네 입버릇을 고쳐 주겠다!”
“검도 뽑지 않고 반격도 하지 않고 저는 그냥 여기 이대로 있겠습니다!”
천제현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할 수 있다면 해보시죠!”
운천학은 자신의 자랑인 하얀 수염이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저런 미친놈!’
정말이지 미쳤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뭘 믿고 저렇게 허세를 부린단 말인가.
상관명은 혼성 5성의 고수다. 그런 그를 조무래기 취급하다니.
“좋다! 좋아! 상관 가문 앞에서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놈은 오랜만이구나. 입버릇을 고치는 것으로는 용서가 안 되니 손발을 잘라 주마!”
상관명이 휙하고 붓을 들어 이상하게 생긴 주문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열화폭염주!”
허공에 그려진 주문들이 천제현을 향해 날아오며 폭발했다.
쾅! 쾅쾅!
화염이 연달아 터지며 경기장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그들을 보고 있던 운천학이 해설했다.
“저게 바로 붓 정령의 능력이오. 세상 만물을 부적의 매개체로 만들 수 있지!”
폭발로 인한 연기가 차츰 걷혔다.
그러나 천제현은 열여덟 호위 중앙에 아까 모습 그대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상관명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방금 그 일격에 5~6할의 힘을 쏟아 부었는데!’
그 정도의 힘이면 낙강룡이나 양천랑 등의 고수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다.
‘그런데 저놈은 어째서 저렇게 멀쩡하단 말인가?’
천제현은 방금 그 공격을 한 마디로 평가했다.
“약하군요!”
그 말을 들은 관중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상관명의 체면을 철저히 짓밟는구나!’
상관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인정하마! 내가 널 너무 얕봤구나!”
그는 창피함과 분노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내 앞에서 넌 개미처럼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내가 제대로 상대하면 넌 도자기 인형처럼 일격에 깨져 버리겠지. 우리 상관 가문의 진정한 절학을 보여 주마!”
어쨌든 그도 상관 가문의 장로였다. 혼성 3성에 불과한 애송이가 감히 그를 무시하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거대한 붓이 다시 한 번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이어서 붉은 마력 두 줄기가 채찍처럼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 붉은 마력은 두 마리의 화룡처럼 용트림을 하며 천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력이 스친 지면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때, 천제현이 가볍게 방울을 흔들었다.
그러자 흑의인 열여덟 명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천제현의 앞에 일렬로 서서 동시에 한 팔을 뻗었다.
그들의 동작은 수백 번의 연습을 거친 것처럼 질서정연했다.
곧 그들로부터 해일 같은 힘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콰과광!
해일 같은 힘과 붉은 마력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흑의인 열여덟 명이 내뿜은 힘의 파동은 여전히 남아 앞으로 뻗어나갔다.
상관명은 허둥지둥 붓을 들어 막았지만 몇 장 밖으로 밀려나갔다.
완전히 막지 못한 듯 상관명은 온몸의 기혈이 들끓으며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젠장!’
상관명이 느끼기에 저 흑의인들 하나하나가 전부 혼성 4성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상관명뿐만 아니라 운천학, 심빙우, 풍운룡, 그리고 공화련까지 모두가 얼어붙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공화련은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저 열여덟 강시는 지난 한 달여 동안 밤낮없이 그녀를 지켜준 호위들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중주탑에서 돌아온 천제현이 갑자기 그 강시들을 데려갔었다.
‘그게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그런데 지금.
혼성 초기에 불과했던 강시들이 전부 혼성 중기로 진화해 있었다.
이건 단순한 힘의 개선 정도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변화이자 질적인 발전이었다.
기적상회에 현혼급 호위병 열여덟 명이 있는 한 중주성의 그 누구도 감히 천제현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그래서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었구나!’
상관명이 혼성 5성의 실력자라 할지라도 동시에 혼성 4성의 강자들 열여덟 명을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관명은 속으로 성주 풍운룡의 조상 18대까지 욕을 했다.
천제현 옆에 저런 실력자들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저 열여덟 명은 삼대 가문에 들어가도 바로 장로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기적상회에서 호위나 하고 있다니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신중했을 텐데!’
그러나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물러나고 싶다고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뭐죠? 입으로는 그렇게 대단한 양 떠들어대더니! 입가죽만 튼튼했나 보군요! 그래서 특사가 된 건가요? 입가죽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 천제현은 이미 특사 대인께 열 번은 넘게 죽었겠습니다!”
“하룻강아지 주제에 감히!”
상관명의 태도가 180도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애들 장난처럼 시작했다면, 지금은 정식으로 악전고투를 치를 생각인 것이다.
“그 정도 실력으로 감히 날 어쩌겠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관명이 다시 한 번 붓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주문들이 화살처럼 빽빽하게 천제현을 향해 날아갔다.
“어린애들 장난 같기는!”
천제현은 단박에 상관명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다.
거대한 위력을 지닌 진법을 만들어 천제현과 호위들을 한 번에 제압할 생각인 것이다.
일반인이었다면 그대로 당했겠지만 천제현이 해법을 찾지 못할 리 없었다.
그가 보기엔 상관명의 수작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에 불과했다.
열여덟 강시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천제현은 신식 능력이 크게 올라간 이후 자신의 분신을 조종하듯 쉽게 강시들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진법? 짓밟아 주마!’
열여덟 강시가 반격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상관명을 포위했다.
상관명은 속으로 경악했다.
그 열여덟 명의 고수들은 혼성 4성의 실력을 지닌 건 물론이고 서로 완벽한 합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이런!’
상관명은 전법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고수들은 놔두고 저놈부터 공격해야겠군!’
“꺼져라!”
상관명이 붓을 들어 힘껏 앞을 향해 찌르자 붉은 화염이 용솟음쳤다.
흑의인들을 겁 줘서 틈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흑의인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힘을 모아 화염을 후려쳤다. 오히려 상관명이 쏜 화염이 마력에 튕겨져서 되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흑의인 한 명의 옷이 찢어졌다.
찌이익!
흑의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모두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저건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 흑의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눈동자는 풀어져 있었고 그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건 그냥 시체잖아!’‘
‘설마 강시인 걸까?’
그러나 관중들의 눈앞에 있는 강시는 일반 강시와 큰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강시는 힘에 따라 겉으로 보이는 균사의 색깔도 달랐고, 그걸로 실력 고하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제현의 주변에 있는 강시의 피부는 새까맣고 번들거렸다. 심지어 금속처럼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온몸에 붙은 근육은 강철처럼 단단했고, 신비로우면서도 심오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제야 천제현의 손에 있는 방울을 발견한 운천학이 입을 열었다.
“저건 고대 서적에 기록된 어혼방울 아닌가? 그런데 그가 조종하는 강시들은 왜 저렇게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운천학이 그 내막을 알 리가 없었다.
사실 강시협곡 안에 있던 고대 문파는 강시 조종술이 뛰어나긴 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천제현 역시 그쪽 분야에는 아는 게 없었지만, 최근 손에 넣은 고대신의 기록을 통해 개선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재료까지 얻게 되어 신령의 피로 실험을 해보게 되었다.
그 결과, 열여덟 강시는 환골탈태하여 더욱 강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지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령의 피로 인해 신성을 지니게 되었다.
즉, 스스로 수련을 하여 성장함으로써 더더욱 강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렬!”
열여덟 강시가 진법을 만들었다.
그렇다.
양천랑을 상대할 때 썼던 방법을 다시 한 번 쓸 생각인 것이다.
그때 열여덟 강시들은 양천랑과 실력 차이가 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천랑을 흠씬 두들겨 패 줄 수 있었다.
‘상관명 따위쯤이야!’
완벽한 합을 이루는 열여덟 강시가 상관명을 둘러싸고 각종 악독한 초식들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상관명은 공격은 고사하고 포위조차 뚫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퍽!
강시들의 일장에 상관명의 몸이 경기장 가장자리로 날아갔다.
그가 몸을 채 일으키기도 전에 열여덟 강시가 다시 포위해 들어왔다. 차갑고 감정 없는 녹색 눈동자들 앞에서 상관명은 깊은 공포를 느꼈다.
“됐다!”
궁지에 빠진 상관명이 소리 쳤다.
“강요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 어서 저놈들을 치워라!”
“특사님, 머리가 나쁘시군요!”
천제현이 얼음처럼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가 얻은 성과를 가로채려 한 것은 물론이고 제 무공을 폐해 가둬두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찌 그리 잔악한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래 놓고 말 한 마디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건가요? 그렇게 쉽게 용서해 드린다면 앞으로 개나 소나 다 절 찾아와 귀찮게 굴 겁니다!”
상관명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난 상관 가문 사람이다! 왕국의 특사란 말이야!”
퍽!
강시들이 발을 들어 그의 무릎을 짓밟았다.
무릎 뼈가 산산조각 나자 상관명이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상관 가문 좋아하시네. 난 여태까지 누군가를 두려워한 적이 없는 사람이야!”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도 천제현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먼저 네 무공을 폐해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줘야겠다. 나, 천제현을 건드리는 자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된다는 것을!”
그 말에 질겁한 상관명이 소리 쳤다.
“네가 감히!”
천제현의 두 눈에 한기가 돌았다.
“내가 못 할 것 같나?”
“아, 아니다! 안 돼!”
깜짝 놀란 상관명이 애걸하기 시작했다.
“용서해다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줘!”
‘저런 게 상관 가문 사람이라고?’
‘바닥에 쓰러진 채 천제현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사람이?’
상관명을 바라보는 관중들의 시선들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