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제244장 대결 임박
“화련 아가씨!”
운천학이 공화련 옆으로 와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물었다.
“결투까지 딱 하루 남았는데, 이 늙은이가 보기엔 다들 태연해 보이는구려. 천제현이 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듯하군요. 숨겨 둔 묘책이라도 있는지요?”
공화련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운천학은 다리가 후들거려 무릎을 꿇을 뻔했다.
신중하고 사려가 깊은 데다 천제현과 가까운 공화련이었다. 공화련조차 전혀 모른다니, 무슨 희망이 더 있단 말인가.
“그대 자매들은 조금도 걱정이 안 되는 게요? 이건 생사가 걸린 결투란 말이오!”
운천학은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천제현을 타일러 봐요. 그래도 준비를 좀 해야지!”
공화련도 약간 답답해졌다. 믿을 구석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걱정이 안 될까? 오랫동안 천제현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 여유 있고 자신만만한 성격에 물이라도 들은 걸까?’
공화련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설마 나까지 서련이처럼 천제현을 덮어놓고 믿게 됐단 말이야? 아냐, 그럴 리 없어!’
공화련은 동생처럼 이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운천학의 말대로 천제현을 찾아갔다.
천제현은 멋쩍은 듯 씩 웃었다.
“하루밖에 안 남았다고요? 알겠어요. 그렇다면 돌아가서 준비를 좀 해야겠네요. 작은 아가씨, 제가 맡긴 임무를 잘 해내야 합니다!”
공서련이 웃으며 말했다.
“문제없어! 넌 그 못난 공자들이나 두들겨 패면 돼. 나머지 일은 전부 이 몸에게 맡기라고!”
‘말은 쉽지!’
천제현이 본부로 돌아와 실험실로 들어갔다.
실험실은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운천학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천제현 역시 이처럼 좋은 실험 환경을 구축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험실 안에는 커다란 나무통 18개가 놓여 있었다,
나무통은 6척 정도 높이로,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공간이었다.
나무통의 표면에는 선홍색의 동물 피로 부적 주문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대량의 부적이 붙어 있어서 음산하고 기괴한 느낌을 자아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가운데 앉아 있었다. 실험실을 지키는 듯했다. 그녀는 바로 빙설여왕 심빙우였다.
“거의 다 됐어요!”
천제현이 심빙우를 향해 씩 웃었다.
“심 선생님이 직접 이곳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빙우가 일어나더니,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천제현이 족자 하나를 꺼냈다.
“중주탑에서 고대 무공을 하나 가져왔는데, 선생님 무공의 결함을 보완하기에 제격입니다. 잘 익히시면 전보다 훨씬 나아질 거예요. 가져가서 보시다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오셔서 물어보세요.”
심빙우는 흥분하여 얼른 족자를 펴고 훑어보았다.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믿을 수 없는 듯 희색이 만면한 표정을 드러냈다.
가슴이 벅차올라 금방이라도 옷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대단한데!’
지켜보는 천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실험을 계속해야 하니, 묻고 싶은 게 없다면 우선 자리를 비켜 주세요.”
“그러지.”
심빙우는 상을 받은 아이처럼 들뜨고 기쁜 얼굴로 나갔다. 정문을 나서기 직전, 심빙우는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또 무슨 일이죠?”
“고…… 고마워!”
심빙우는 말을 마치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천제현은 약간 어두운 얼굴로 웃었다. 무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심오하게 쓰여 있기 때문에, 심빙우는 여러 번 물어보러 올 것이다.
한 번 물어볼 때마다 한 번씩 신세를 지는 셈이니, 어쨌거나 심빙우를 붙잡아 놓을 수 있는 건 확실했다.
“좋아! 그럼 어디 내 성과를 좀 확인해 볼까!”
천제현이 나무통 하나를 열었다.
그 자리에 누군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기겁을 했을 것이다.
커다란 통에 가득 들어 있는 약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무언가를 조제하는 듯했는데, 조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체였지만.
시체는 거품이 있는 액체 속에 온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시체의 표면에는 검은 털이 많이 나 있었다. 그것은 흑모 강시로 수준이 혼성술사와 같았다.
천제현이 방울 하나를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불의 세기는 알맞군!”
천제현이 유리잔 하나를 찾아 선홍색 단약을 몇 알 넣었다. 천마교 타주를 무너뜨릴 때 피의 연못에서 찾은 단약인데, 각 알갱이에는 수련자 천 명의 정혈이 응축되어 있었다.
이 단약은 마공을 연마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일단 복용하면 정혈 보양에 아주 좋아서 마력 증진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천제현으로서는 이러한 것들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원기 손상이 심했기 때문에 자기 몸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때마침 유용하게 쓰이게 됐다.
단약이 서서히 녹았다.
커다란 잔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정혈이 조제되었다.
천제현은 품속에서 병 하나를 꺼내 조심스레 병 입구를 열고 유리잔 안으로 어두운 금색의 액체인 신혈(神血)을 두 방울 떨어뜨렸다.
신혈에 들어 있는 힘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 방울 떨어뜨리자마자 유리잔 속에 있는 정혈이 금색으로 바뀌었다.
천제현은 그 정혈을 18개로 고르게 나눈 후, 커다란 나무통에 나눠 넣었다.
천제현이 하고 있는 것은 기억의 정수에 있던 고대 시신 정련술이었다.
“쓸모가 있어야 할 텐데…….”
천제현이 중얼거렸다.
“안 그럼 귀한 신혈만 두 방울 낭비한 게 되잖아!”
신령의 피가 얼마나 진귀한 것이던가.
천제현은 요즘 고대신이 남긴 기억의 파편을 연구 중이었다.
그중 절대다수의 내용은 산산조각이 나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서 쓸 만한 부분을 찾아냈다.
고대의 시신 정련술도 그중 하나인데, 이 강시들을 신혈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제련에 성공한다면 강시 열여덟구는 더 강력한 살육 병기로 탈바꿈할 것이고, 천제현으로서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강시를 얻게 될 터였다.
모든 게 완성됐다.
천제현은 정식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공자와의 결투 시작이 딱 하루 남은 시점이었다. 천제현은 잘난 척을 잘하기는 하지만,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런 준비도 안 했을 리는 없었다.
그 두 녀석들도 꽤 골치 아픈 상대가 아닌가.
지난 이틀간은 재료를 다 구하지 못해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여기저기 뽐내고 다니며 두 가문이 경계를 약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
성약을 이용해 성단을 조제하지는 못하더라도 보조 단약을 조제할 정도는 충분했다.
천제현은 일시적이지만 단번에 마력을 높일 수 있는 승원단(升元丹)을 조제했다.
승원단은 싸우는 동안 계속해서 천제현의 마력을 보충해 줄 것이다.
시간은 대략 하루 정도 지속되는데, 약효가 끝나고 난 후에 아무런 부작용도 남지 않았다.
단약이 비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천제현은 단약의 힘을 빌려 일시적으로 3성 정점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적잖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승리를 자신하기엔 충분했다.
천제현과 천랑공자, 용호공자의 싸움이 임박했다.
이 엄청난 소식은 사흘 동안 중주성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주변의 성까지 소식이 퍼져나가자, 수많은 수련자와 행상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고 본성으로 몰려왔다. 중주성의 세력 구도를 바꿀 이 역사적인 싸움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중주성의 경기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수용 인원의 2배가 들어왔는데도 인파가 끊이지 않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었다.
“꼭 이겨주세요!”
“힘을 내요!”
젊은 소년 소녀들도 수많은 인파 속에 뒤섞여 깃발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천맹, 만세!”
그중 가장 열성적으로 외치는 건 임범이라는 수수한 소년과 임선이라는 늘씬한 소녀였다.
그렇다. 천남성에서 온 임씨 가문 남매였다.
임범과 임선 남매는 천맹이라는 조직까지 만들었다. 조직을 꾸릴 때만 해도 6~7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지금은 자그마치 60~70명으로 늘어났다.
전부 스물이 채 안 되거나 스무 살 남짓한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소년은 천제현의 열혈 신봉자였다. 대다수가 한미한 가문의 자제거나 고아, 자유 수련자였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신념과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제현의 뒤를 따르며 천제현을 본보기로 삼아 성장하는 것이었다.
임범의 수준은 연체 8성이었고, 임선 역시 연체 7성이었다. 본래 중주성으로 와서 천맹을 키우다가 기회를 봐서 기적상회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게 지금일지 누가 알겠는가.
천제현이 두 공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주성을 뒤흔들 만한 이 어마어마한 소식을 들은 임범 남매는 천맹의 핵심 일원 십여 명을 데리고 밤낮으로 말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 아침 본성에 도착해 곧장 무예 경기장으로 왔다.
다행히 늦은 건 아니었다.
중주의 사대 공자가 누구던가.
그들은 중주성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임범과 임선이 사는 천남성에서도 사대 공자의 명성은 자자했다.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우상과 정면 대결을 펼치게 됐는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긴장되고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임범과 임선은 천제현을 존경했지만, 이번 싸움이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사대 공자가 제아무리 횡포를 부리고 난폭하게 굴어도 중주성 젊은이를 대표하는 가장 걸출한 인재임에는 틀림없었다. 더구나 사대 가문은 중주성의 얼굴이 아니던가.
혜성처럼 나타난 천제현은 불과 허혼급의 수준으로 시련에서 사대 공자 중 세 명을 연이어 무너뜨렸다.
그리고 사대 공자 중 가장 압도적인 명성과 위엄을 갖춘 천성하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이 역시 천제현의 솜씨였다.
천제현은 시련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동시에 두 공자에게 도전하겠다고 선포했다.
정확히는 양천랑과 낙강룡이 먼저 천제현에게 도전을 한 것이고, 천제현이 받아준 것이었지만.
소문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 와전되고 또 와전이 되어, 천제현이 삼대 가문을 누르기 위해 도전했다는 식으로 퍼지고 있었다.
아무튼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중주성 전체가 후끈 끓어올랐다.
오늘의 승패가 어떻게 되든 천제현은 사대 공자와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될 것이고, 중주성 젊은이들의 우상이 될 것이다.
물론, 죽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앞에 붙겠지만 말이다.
“젠장, 경기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
운소는 대회장 주변까지 늘어서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놀라워하며 바라봤다.
“이딴 결투가 무슨 대수라고. 그저 구경이라면 환장을 하지!”
운요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공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그분이 우릴 초대한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