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제243장 복수를 꿈꾸는 자들(3)
낙씨 가문.
낙연성은 높은 보좌 위에 앉아 있고, 가문의 오랜 장로 10여 명이 양측에 도열해 있었다. 낙강룡은 고개를 숙이고 포권의 예를 취하며 대당 아래에 서 있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무겁고 엄숙하여 흡사 모종의 의식을 행하는 듯했다.
낙연성은 석상처럼 정자세로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강룡, 이번 결전의 사명을 알고 있느냐?”
“맹세컨대 천제현을 죽여 낙씨 가문의 명성을 바로세우겠습니다!”
“알면 됐다!”
낙연성이 냉랭하게 말했다.
“천제현의 등장으로 중주성의 세력 균형에 금이 생겼다. 이제 운씨 가문이 그놈과 한통속이 됐고 신풍후의 비호까지 받고 있어 다른 가문들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지. 그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중주성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야!”
낙강룡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버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천제현의 실력은 별거 아닙니다. 이번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그리 자신 있다니 다행이구나! 허나 적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양천랑은 적을 얕잡아보고 천제현을 죽이겠다며 홀로 천남성으로 갔기에 이처럼 명성이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이야!”
낙연성은 여기까지 말한 후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가져오시게!”
연륜 있는 장로 하나가 보물함을 받쳐 들고 엄숙한 표정을 한 채 대전 중앙으로 걸어왔다.
“이 물건이 소주께 힘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이건…….”
낙강룡이 보물함을 열었을 때였다.
대전 안이 난데없이 흉악한 분위기에 휩싸이더니 별안간 사자와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왔다.
모두들 그 흉악한 기운에 공포심을 느꼈다.
보물함 안에는 어두운 금색의 완갑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보물의 빛과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낙강룡이 놀라 말했다.
“구사구호(九獅九虎)의 다리군요!”
낙강룡에게 낯선 물건은 아니었다. 이는 낙씨 가문의 중요한 보물 중 하나로, 낙씨 가문 무공인 사호쌍상과 완벽한 결합을 이뤘다.
이를 패용하는 자는 사자 9마리와 호랑이 9마리의 힘을 얻게 된다. 가히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물건은 원래 태상장로가 가장 아끼는 무기였으나 낙씨 가문을 떠나면서 남기고 갔다.
“구사구호의 다리는 최상품 혼기다! 신풍후가 젊은 시절 사용하던 신풍검에 결코 뒤지지 않지!”
낙연성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천제현의 수중에 있는 보검은 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유명검이다. 통령 혼기지. 하지만 유명검은 방치되어 먼지로 뒤덮여 있었어. 이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그 기령이 회복되지 못했을 거야. 이 구사구호의 다리라면 유명검을 제압하기엔 충분하다!”
낙강룡의 얼굴에 잠시 기쁨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곧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닭 한 마리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다니요?”
“웬 말이 그리 많으냐. 쓰라고 하면 써! 이번 싸움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알았느냐?”
“명을 받들겠습니다!”
낙강룡이 두 손으로 보물함을 받았다.
“가주께 아뢰옵니다!”
이때 연륜 있는 장로 하나가 대당으로 들어섰다.
“성주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넌 물러가 있거라!”
낙연성이 눈빛을 번뜩이더니 곧 낙강룡에게 눈짓을 하자, 낙강룡이 얼른 자리를 떴다. 낙연성이 일어나며 말했다.
“성주를 모셔 오시게!”
***
성주 풍운룡이 낙씨 집안 장로들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왔다.
평복 차림에 수행하는 시종도 없이 혼자였다. 안색이 어둡고 약간 초췌해 보였다. 불과 며칠 만에 훌쩍 늙은 모습이었으나 서릿발처럼 차가운 두 눈 때문에 애타게 복수를 갈망하는 매서운 노인 같았다.
풍청운은 음독 검법에 중상을 입어 1~2년 내에 완치가 힘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까지 떠안게 됐다.
그 일로 실력이 크게 하락할 것은 자명했다. 과거 쓸모없던 시절의 풍채향과도 비교가 안 될 터였다.
여러 해 동안 은거한 풍운룡이었다. 본래 강력한 세력을 빌려 일어선 후 자신의 지위를 한층 공고히 하며 겸사겸사 가문의 지위도 튼튼히 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을 막판에 그르치게 될 줄이야. 그가 증오심을 품는 건 당연했다.
“성주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낙연성은 성주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성주께서 상석에 앉으시지요.”
“아니오. 난 여러분의 계획을 듣고 싶소.”
결전을 약조한 일을 풍운룡이 모를 리 없었다. 이번에 평복 차림으로 찾아온 것은 상황을 소상히 알아보고자 함이다.
“천제현 그놈이 안하무인격으로 날뛰는데, 신풍후 형님께서는 그 녀석의 편만 드니 정말 해도 너무하오. 본 성주는 도저히 참을 수 없소! 여러분이 이번 기회에 천제현을 제거한다면, 본 성주를 크게 도와주는 셈이오!”
“성주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낙씨 가문과 성주부는 한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성주님의 원수는 곧 낙씨 가문의 원수지요.”
낙연성이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성주님, 심려 마십시오. 강룡의 실력이 본디 약하지 않은 데다 구사구호까지 전수하여 전투력이 배로 상승했습니다.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성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문제없겠구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반드시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오!”
“천제현이 자멸의 길을 걷는 건 틀림없는 일입니다. 허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는 확실히 해야겠지요.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 해도 천제현이 살아 나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낙연성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외람되지만 천제현은 신풍후의 비호를 받고 있습니다. 곁에는 심빙우와 운천학도 있지요. 우리 삼대 가문이 중주에서 견제 세력을 형성할 순 있지만, 완벽하게 우위를 점했다고 보긴 힘듭니다. 그러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외부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내부의 힘이 부족하면 외부의 힘을 빌려야지요.”
낙연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천제현이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귀에 일부러 소식을 흘려 놓으면, 자연히 외부 세력이 개입하겠지요. 우린 중주 본토의 가문으로서 신풍후의 체면을 세워 드릴 수밖에 없지만, 다른 지역이나 왕성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풍운룡의 눈빛이 번뜩였다. 몹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 일은 본 성주가 맡겠소!”
“성주 대인께서 온 힘을 기울여 도와주시니, 그 건방진 놈은 이제 독 안에 든 쥐 신세군요!”
은밀한 모의를 마친 후 성주는 작별을 고하고 자리를 떴다.
낙연성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천제현, 이 녀석아. 네 재능은 뭇 사람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지만, 아직은 너무 애송이로구나! 중주에서 백 년 전쟁을 치르며 힘을 키워 온 사대 가문이다. 우리의 술수를 네놈이 감시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
큰 나무는 가장 먼저 바람에 꺾이기 마련이다.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난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 잘난 척하고 안하무인인 놈은 늘 오래 가는 법이 없었다.
***
무시무시한 기운이 엄습하는 중주성이지만, 폭풍의 한가운데 있는 천제현에게서는 폭풍 전야의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제현은 운씨 가문조차 가지 않고, 종일 공화련, 공서련과 함께 자음탑의 건설 상황을 살폈다.
또 통조림 공장 몇 개를 사들여 공서련이 통조림의 조리법을 개선하도록 도왔다.
공화련은 요란하게 눈길을 끌며 중주에서 기적상회의 판로를 확장시켰다.
마력등, 단약, 부적, 축음기, 수정 통신기 등의 예약 판매 행사도 진행했다.
중주.
이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 지금 기적상회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천제현은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중품 성약 지장과를 얻긴 했지만, 주요 약재 하나만으로는 성급 단약을 조제할 수 없었다. 대량의 보조 약재도 필요로 했다.
중품 성약은 주요 약재로, 보조 약재가 돼 줄 여러 종류의 반(半)성급 약재가 필요했다. 운씨 가문에서 찾지 못한다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그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더구나 남궁혜, 임목, 방한 등도 키워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약재를 사들인다는 소식을 퍼뜨리고, 중주성에서 대대적인 세력을 확장해 기적상회가 돈을 벌어들이도록 해야 했다.
마침 자원을 필요로 하는 몇몇 사람이 있었다.
천제현이 천랑공자, 용호공자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기에 이 두 가문은 온통 그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따라서 기적상회에서 복작대는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덕분에 기적상회는 안정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 그렇지!”
“이 자리가 좋겠다!”
“나팔축음기를 달아!”
천제현은 직원들을 지위하며 광장에 나팔탑을 세웠다. 나팔 모양의 물건이 이제 중주성의 식당, 객잔, 인파가 많은 거리 등 공공장소에 설치됐다.
생사를 건 결전이 임박했다.
그런데도 천제현은 싸움 준비는커녕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물건들만 만지작거렸다.
적잖은 나이의 운천학은 매일 천제현 뒤치다꺼리로 바빴다.
운씨 집안은 천제현에게 모든 것을 걸었고, 삼대 가문과 반목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천제현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운씨 집안은 그야말로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상전이로고! 정말 상전이 따로 없구나! 너도 우리에게 뭘 좀 보여 줘야지. 희망을 좀 보여 달라고!’
운천학은 천제현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제아무리 이리저리 분석하고 평가해 봐도 패배가 자명한 싸움이었다.
‘사흘 후라는 시간은 또 어떻고!’
낙씨와 양씨 가문이 가만히 앉아만 있을 리 없었다. 두 가문의 저력은 엄청난 엄청났다.
양천랑과 낙강룡에게 수많은 비책을 건넸을 게 틀림없었다. 천제현에게는 한 줄기 희망도 없는 듯 보였다.
공화련이 마수차를 타고 급히 와서 공사 상황을 물었다.
“나팔축음기를 총 몇 개 설치했지?”
공서련이 손가락을 꼽으며 세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62개야. 중주성의 공공장소는 거의 다 포함됐어. 더 설치해야 해?”
“설치해야죠! 열댓 개에서 스무 개쯤 더 달아요!”
천제현이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이 나팔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이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우린 또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고요!”
“좋아!”
공서련은 천제현이 시키는 대로, 얼른 다음 목표를 이루러 갔다.
공서련은 천제현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깟 잡종개공자가 대수인가! 얼룩고양이공자는 또 어떻고!’
공서련은 천제현을 믿었다. 그가 여태껏 보여준 기적같은 일들을 생각하면 이번 일은 위기 축에도 끼지 못한다.
‘감히 천제현에게 맞서려 하다니, 아주 꿈도 야무져! 천제현이 언제 진 적 있어?’
그래서 공서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줏대 없이 구는 그 흰 수염 할아버지는 대체 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안에 떠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임무 수행이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