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제241장 복수를 꿈꾸는 자들
분명 새끼 여우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진기한 보물 몇 점과 바꿨을 수도 있다. 녀석의 그 침처럼 말이다.
그리고 전부 배 속에 숨겨 놨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 쓰면 되니까.
새끼 여우는 주인이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고 확신한 듯했다.
천제현으로서도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배를 갈라 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신의 뼈를 가져가게 도와준 것을 생각하여 따끔하게 혼내주는 선에서 일을 눈감아주고자 했다.
“너한테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이 일은 나중에 따지겠다!”
천제현은 엉덩이가 퉁퉁 붓도록 맞은 여우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시련 공간의 문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천지가 갑자기 요동을 치더니 엄청난 천제현의 힘이 몸을 밀어냈다.
천제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 천제현은 이미 중주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제현은 중주탑에서 2박3일을 머물렀다. 다른 사람이 머무른 시간의 족히 두 배는 되는 시간이었다.
새끼 여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예상대로 주인이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았는가.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긴 했지만 맞을 짓을 했고, 여우로서는 단번에 큰 수확을 얻었으니 말이다.
새끼 여우는 천제현의 어깨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삼대 가문 중 천씨 가문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주둔 중이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눈부신 빛을 내뿜는 중주탑 꼭대기에는 1,352라는 엄청난 숫자가 떠 있었다.
“무려…… 1천을 돌파하다니!”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주탑의 기록은 자그마치 세 번이나 갈아치워졌다.
300에서 400을 돌파하더니 종국에는 1,000을 넘는 수치로 급상승한 것이다. 마지막 점수는 가히 기적에 가까운 수치였다.
‘이건 유례없는 성적이야!’
천제현이 양천랑을 쓰러뜨리고, 낙강룡까지 쓰러뜨리더니.
결국 천성하까지 쓰러뜨리더니, 종국에는 단번에 1천 3백 점이 넘는 시련 점수를 획득하며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엄청난 전율을 안겨 준 것이다.
역대 수많은 천재 역시 천제현의 발끝에도 못 미쳤다.
“와…… 와…….”
공서련이 신이 나서 달려 나왔다.
“천제현! 정말 대단해! 네가 존경스러울 정도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공화련도 같이 달려와 말없이 공서련의 뒤에 섰다. 동생처럼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공화련의 아리따운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으리라.
천제현의 기록은 중주의 신화로 남을 게 틀림없었다.
끼잉!
새끼 여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속에서 정교하고 고풍스러운 구리거울을 하나 꺼내 공서련에게 공손히 바쳤다.
“와! 정말 예쁜 거울이야!”
공서련이 기뻐하며 받았다.
“새끼 여우는 정말 다정해! 내게 줄 선물까지 잊지 않다니! 이건 적어도 상품 혼기는 될 거야! 정말 귀한 거라구!”
새끼 여우가 시원스레 발을 흔들었다.
보잘 것 없는 선물에 불과합니다. 사양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입속에서 옥으로 된 연갑 한 벌을 꺼내 공화련에게 두 앞발로 공손히 바쳤다.
공화련이 활짝 웃었다.
“나한테 주는 거야? 예쁘네, 고마워!”
천제현은 또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나도 아직 선물을 안 줬는데, 망할 여우 놈이 선수를 치다니. 나보다 더 주목을 끌게 됐잖아!’
기껏해야 상품 혼기 두 개가 아닌가. 두 개를 합쳐도 시련 점수 1백 점 정도다.
그가 받은 총점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인데, 녀석은 그걸로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잡지 않았는가.
천제현은 시련탑에 천제현의 점수만 떠 있고, 새끼 여우의 점수는 떠 있지 않은 게 특히 못마땅했다.
‘녀석이 밀항자인 것과 관계가 있나?’
어쨌거나 공씨 자매는 새끼 여우를 점점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운천학은 놀라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천제현은 번번이 사람을 마음 졸이게 하고, 엄청난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면 죽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번엔 그야말로 기가 막힐 정도였다.
천제현이 시련에 대해 몹시 흡족해하며 모두를 데리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양씨 가문과 낙씨 가문이 사람들을 데리고 천제현 주위를 에워쌌다.
천제현 일행의 진로가 순식간에 막혀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운천학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뭣들 하는 짓인가!”
사실 이번 중주 시련에서 가장 큰 패배를 당하고 타격을 입은 것은 양씨 가문도 낙씨 가문도 아닌 천씨 가문이었다.
천성하는 천제현 때문에 처절하게 몰락했다. 천씨 가문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손실이었다.
천성하는 줄곧 신풍후의 뒤를 이를 만한 자로 여겨졌다. 천씨 가문의 수많은 문객 역시 천성하를 보고 찾아온 것이었다.
천성하가 제후에 책봉되면 콩고물 좀 떨어질까 기대한 게 틀림없으리라.
이제 그 신화가 깨졌으니, 얼마나 큰 풍파가 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천씨 가문은 일가와 문객을 다독여야 했다. 게다가 천성하까지 중상을 입지 않았는가. 그래서 최후의 결과까지 남아 기다릴 시간이 없어 서둘러 자리를 뜬 것이었다.
천씨 가문이 자리를 뜬 후, 양씨 가문과 낙씨 가문은 상의 끝에 합의를 봤다.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 없다!
반드시 천제현을 막으리라!
낙연성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천제현이 중주탑에서 봉인된 소장품을 얻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중주탑은 중주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니, 소장품 역시 중주 사람 모두의 것이지. 그러니 순순히 내놓거라! 소장품을 혼자 챙겼다간 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는군!”
운천학이 달갑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중주성이 세워진 이후로 규정이 생겼다. 중주탑 시련자가 탑에서 획득한 모든 수확물은 시련자 본인의 소유로 귀속하는 것이지. 시련자 마음대로 처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이리 대놓고 협박을 하다니, 망신을 당해도 상관없단 말이냐!”
양천랑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범한 보물이라면 그래도 되지! 하지만 중주탑의 소장품엔 중주성의 번영과 대계가 걸려 있으니, 결코 일개 새파란 놈의 손에 넘길 순 없다! 저놈이 억지로 소유하려 한다면 극형에 처하겠다!”
“말 잘했소!”
“보물을 내놔라!”
“보물을 내놔라!”
두 가문의 정예병 수백 명이 한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양무도는 늑대처럼 험악한 눈을 번뜩였다.
“그전엔 여길 살아서 나갈 생각 마라!”
사실 이들은 원래부터 보물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이들에게는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천제현을 제거할 이유가.
진혼급 고수인 운천학과 심빙우 두 사람이 화를 벌컥 냈다.
공포와 거대한 위압감이 순식간에 두 가문을 에워쌌다.
하지만 낙연성과 양무도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우리 중주성의 이익을 위한 거다! 운가 놈아, 너희 운씨 가문도 사대 가문 중 하나라고 설치지 않느냐! 그러면서 보물을 훔친 도적놈을 두둔하는 거냐! 우리 가문은 중주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혈전도 불사할 것이다!”
“맞소!”
“간적 천제현을 죽이자!”
“우리 중주의 보물을 되찾자!”
양씨와 낙씨 가문은 사람이 많고 세력이 커서 혼성술사가 백 명에 달했다.
운천학과 심빙우의 마력이 심후한 건 사실이지만, 두 가문과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면 필시 양패구상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때,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인들, 그만 기분 푸시는 게 좋겠소!”
중주 대장군 염무기가 정예군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었다.
염무기는 중주군의 대장군으로 중주의 모든 병력을 통솔했다.
염씨 가문은 일류 가문에 준했지만, 세력은 사대 가문만 못했다. 하지만 염무기 개인의 능력은 결코 삼대 가문의 가주에게 뒤지지 않았다.
“염무기, 그대는 중주성 대장군이니, 중주성의 이익부터 생각해야지 않소!”
양무도가 무거운 낯빛으로 말했다.
“그러니 시시비비를 분명히 하고, 잘못된 편에 서지 마시오!”
“대장군, 중주의 보물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지요.”
낙연성은 좀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염씨 가문도 한몫 챙길 수 있을 거요!”
운천학은 흠칫 놀랐다.
염무기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양씨 가문과 낙씨 가문만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웠는데, 여기에 장군부의 세력까지 가세한다면 오늘 일이 꽤나 골치 아파지게 생겼다.
“하하하하!”
“염무기 장군, 갑자기 왜 그렇게 웃는 것이오.”
“네놈들이 눈치가 없어 웃는다! 아둔하기 그지없는 놈들이구나! 싸움을 붙이는 네놈들도 웃기고! 중주탑 보물은 언제나 시련자의 것이었는데 보물을 나눠 갖는다고?”
염무기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천제현은 우리 군부의 사람이다. 너희들이 그자를 건드리려 한다면, 우선 이 대장군의 동의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뭐라? 군부의 사람이라니!”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그렇다!”
염무기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천제현은 중주 유격대 장군이다! 즉, 우리 군부의 사람이라고!”
세 가문은 분통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운씨 가문이 그들과 맞서는 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겠으나, 염무기까지 대놓고 나설 줄이야.
‘그깟 염씨 가문이 무슨 대수라고!’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양천랑이 또다시 못 참고 나섰다.
“천제현이 안 죽으면, 중주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낙강룡 역시 소리쳤다.
“맞아! 천제현은 살려 둬서는 안되는 자다!”
양천랑은 더욱 분노하여 외쳤다.
“천제현, 나와 일대일로 붙어 보겠느냐?”
‘일대일?’
모두가 멈칫했다.
낙강룡 역시 따라 소리쳤다.
“네가 사내라면 비열한 수작 부리지 말고, 나 낙강룡과 정정당당하게 일전을 벌이자! 할 수 있겠느냐?”
“그래 봤자 마력만 믿고 사람을 핍박할 거면서!”
남궁혜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자신 있으면 동급 마력을 조건으로 천제현과 겨뤄 보든가!”
양천랑과 낙강룡은 남궁혜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할 거냐, 안 할 거냐?”
“좋다! 잡종 공자와 얼룩고양이 공자가 아직 혼이 덜났나 보구나. 아직도 날 죽이겠단 마음을 못 버렸으니 말이야.”
어차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던 천제현이 바로 포효하듯 내지르자 좌중은 일순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기회를 안 줬다는 말은 마라! 난 귀찮은 거 딱 질색이니까, 두 놈이 같이 덤벼!”
운천학이 화들짝 놀랐다.
“천…….”
천제현이 바로 말을 끊었다.
“그 누구도! 이 싸움에 끼어들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