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제238장 시련탑의 진정한 보상(2)
집채만 한 크기의 머리는 강철로 된 듯 몹시 단단해보였으며, 얼굴에 뿔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어떤 가공할 힘의 공격이라도 받았는지 머리의 3할이 박살 나 있었다.
죽은 지 몇 백만 년 되는지도 모를 고대신의 머리였지만 엄청난 위력을 뿜어냈다.
천제현은 발이 어떤 힘에 묶인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혼돈의 대륙이 파괴되고 혼돈의 시대가 저물면서 이 세상에 신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차원에서 신마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유해의 가치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높았다.
당시 천제현은 고대신의 시체를 연구하고자 대륙의 절반을 돌아다녔지만 유해 조각조차 찾지 못했다.
이미 발굴된 유해는 전부 여러 가문과 강대한 세력이 독점하여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뜻밖이었다.
이곳에서 고대신의 머리를 발견하다니.
머리는 7할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으나 이 정도로 온전한 건 매우 드물었다.
신마는 모두 수명이 무한한 존재라 이 시체가 있다면 천제현의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중주탑에 숨겨진 궁극의 보물이 바로 이 고대신의 머리란 말인가?’
여기에는 분명 생사를 초월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렇구나! 만고유제를 풀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
“고대신을 보고도 태연하구니.”
청동 전당의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젊은 인간이여, 그대의 자질은 생각보다 높구나.”
천제현이 콧방귀를 뀌었다.
“시체 머리에 불과하잖아요! 이게 무슨 상입니까? 됐으니까 가져가게 싸주세요!”
“내가 주려는 건 내 머리가 아니다!”
“뭐라고요? 당신의 머리라고요?”
천제현은 너무 놀라 오줌을 쌀 뻔 했다.
청동 전당에서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게 고대신의 신령이었다니.
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는 신마가 있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천제현은 갑자기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신령! 그래 이건 진짜 신령이다!’
이건 그가 꿈에도 그리던 경지 아닌가.
학자였던 천제현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혼돈시대가 남긴 미지의 수수께끼는 너무 많았다. 그런데 살아 있는 신령이 나타났으니 이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신령과의 대화 기회 하나만으로도 이번 시련은 헛된 게 아니었다.
천제현이 기대에 찬 얼굴로 신령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려는 찰나.
“나는 너의 의문에 답해 줄 수 없다.”
청동 전당의 음성이 매우 조용히 천제현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듯 말했다.
“나는 오래전에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까지 봉인되었기 때문에 기억이 다 소실되었다. 일종의 잔념(殘念)만 남은 상태이다.”
‘뭐?’
천제현은 어이가 없었다.
‘논리도 분명하고 사고능력도 온전한데 뭐가 잔념이라는 거야?’
잔념조차 이렇게 강하다면 온전한 의식은 얼마나 대단할까.
“그러나 실망하지 마라.”
전당에서 다시 소리가 나면서 회색 결정이 천제현 앞에 가볍게 떨어졌다.
“받아라. 이건 당시의 기억이 담긴 결정이다. 여기를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
‘고대신의 기억이 담긴 결정이라고?’
가치를 따질 수도 없는 보물이이었다. 천제현이 몹시 기뻐하며 조심스럽게 결정을 주웠다.
고대신의 몰락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기억 결정 역시 완전하지 못했다.
이 안의 내용은 몹시 복잡하여 천제현의 능력으로도 수수께끼를 해결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청동 대전에서 계속 음성이 들려왔다.
“네게 비범한 능력과 지혜가 느껴진다. 이 불완전한 지식이 도움을 주겠지만 근본적으로 널 바꿀 수 없다. 그것으로 너의 꿈과 포부를 이루기에는 너무 부족해,”
실제로 잔념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제현은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뭘 어떻게 해야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류가 닿지 못한 극한의 경지를 열 수 있습니까?”
“젊은이여, 너는 너무 젊다.”
전당에서 처량하고 의기소침한 탄식이 들려왔다.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신마 역시 숙명을 벗어날 수 없지. 혼돈시대가 멸망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천제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세상에 못 이룰 일은 없어요!”
전당이 거센 기운에 휩싸였다.
천제현은 눈 깜짝할 사이에 광활한 은하에 서 있었다.
사방에서 세찬 물길 같은 거대한 힘이 끊임없이 흘렀다. 수많은 작은 물고기가 이 거대한 은하의 힘에 밀려 앞으로 나아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천제현은 은색의 작은 물고기로 변해 있었다. 수많은 물고기들 사이에 섞여있는 그는 조금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천제현이 사력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물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저 물이 흐르는 데로 정해진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천제현은 뭔가를 알 것 같았다.
운명이란 강물과 같다.
‘신이나 개미, 제왕이나 거지는 강하고 약하고의 구분 없이 모두 강 속의 물고기처럼 한 방향과 종점을 향해 가게 정해졌단 말인가?’
천제현의 몸에 악취가 풍겼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비유야! 받아들일 수 없어!”
천제현이 소리치자 은색 물고기의 몸이 강력한 힘에 쌓이면서 두 눈에 만화경 같은 동공이 나타났다.
그리고 고대의 신비로운 힘이 깔리면서 물길의 흐름을 가로막았다.
은색 물고기는 조금씩 옆으로 헤엄쳐 강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환각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천제현은 다시 전당으로 돌아왔다.
“중생의 운명은 강의 물고기와 같다.”
전당의 음성은 마치 고찰의 종소리처럼 묵직하면서 지혜가 담겨 있었다.
“너처럼 강한 힘과 의식을 지닌 사람은 자신과 일부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물고기는 물의 방향을 바꿀 수는 있어도 물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지혜롭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어린아이를 부지런히 가르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인생은 흥망성쇠가 있지. 창조가 있으면 파괴가 있고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운명의 윤회는 정해진 것이야. 세상에 죽지 않는 것은 없다. 영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지. 너의 야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강해진다 하여도 운명에 함부로 도전하지 마라. 그러면 방향을 잃고 거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잔념일 뿐인데 천제현은 거대한 산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무수한 세월을 살아온 위대한 존재 앞에서 그는 사람의 지혜가 유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천제현이 생각에 잠겨 물었다.
“그럼 당신이 말하는 계승할 것이란 게 대체 뭡니까? 그게 내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요?”
“일종의 힘이다!”
청동 전당의 음성이 엄숙하게 변했다.
“그건 운명의 강에서 온 힘이다. 예전에 날 죽인 힘이기도 하지! 그 힘을 얻은 후 네가 운명의 강의 법칙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길 바란다.”
“신을 죽인 힘이라고요?”
“그렇다. 나는 혼돈시대가 멸망할 때 죽은 게 아니라 이 힘 때문에 죽었다!”
신마는 이론상 불사불멸의 존재였다.
혼돈시대가 끝나고 법칙과 질서가 바뀌고 충돌하며 결국 신마의 생존에 적합한 옥토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마는 불사의 몸을 잃고 신령이 대량으로 파괴된 것이다.
‘신마도 외부의 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단 말인가.’
“내 몸은 파괴되었지만 날 죽인 이 힘은 머리에 봉인되어 있다. 무수한 세월 천천히 정련되고 자라면서 이 힘은 지금 씨앗으로 변했지. 난 언젠가 이 씨앗이 세상에 싹을 틔우길 바란다. 이 시련탑을 건조한 목적은 바로 이 씨앗의 계승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 힘은 신까지 죽일 수 있는데, 과연 이걸 천제현이 감당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천제현일지라도 분명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여우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여우는 발톱으로 천제현을 긁으며 충동적으로 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천제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대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위압감을 견디며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갔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몸이 거대한 산에 눌리는 듯 압박으로 바닥이 파일 정도였다.
“재미있군요!”
천제현이 혼돈의 물이 담긴 연못가로 다가가 거대한 수정 기둥 앞에 서서 두 팔을 천천히 벌렸다.
“그럼 보여주시죠!”
“뜻대로 해주마!”
확!
장대한 힘이 폭발했다.
여우가 힘에 의해 튕겨져 날아갔다.
천제현은 순식간에 수정 기둥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의 육체가 빨려 들어간 게 아니라 그의 영혼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천제현은 어느새 거대한 머리의 눈앞에 있었다.
무형의 힘이 성스러운 물처럼 천제현의 영혼에 스며들었다.
그 힘은 너무나도 강했다.
“눈 하나는 극치(極致)의 힘을 뜻하고 아홉 눈은 극강(極强)의 힘을 뜻한다!”
청동 전당에서 놀란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신마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구나! 아주 좋다! 넌 아주 훌륭한 계승자야!”
천제현은 갑자기 영혼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런 느낌은 정령이 탄생할 때 생기는 것이다.
‘설마 또 정령이 탄생하는 건가?’
하지만 천제현은 두려워하기는커녕 호기롭게 외쳤다.
“겁을 잔뜩 줬지만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잖아! 어떤 힘이든 내가 다 받아주마!”
천제현이 크게 외쳤다.
수정 기둥이 통째로 흔들리며 깨졌다. 거대한 머리의 이마가 갈라지더니 새로운 눈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눈은 감겨진 채였다.
“아홉은 궁극의 숫자이며 지존을 뜻한다! 원래 가진 잠재력이 강하다보니 힘을 가볍게 받아들이는구나!”
청동 전당의 음성이 천천히 말했다.
“궁극의 숫자에 하나가 더해지다니 이건 무슨 조화인가? 정말 기대가 되지만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군!”
천제현은 허탈한 피로감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
고대신의 잔념은 천제현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느릿한 음성으로 설명했다.
“난 씨앗을 남기는 일만 담당한다.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우는지, 싹을 틔울 수 있는지는 전부 운명에 달려 있다!”
“평생 싹이 안 나고 자라지도 않으면 어떻게 하죠?”
“그 역시 운명이다! 네게 그 힘을 움켜쥘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건 너무 무책임하잖아!’
정령이 새 힘을 흡수하면서 어떤 변화가 생기긴 했다.
대체 어떤 변화인지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천제현은 허약해진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몸에 대량의 힘으로 메워야 하는 거대한 빈공간이 생긴 것 같았다.
천제현은 연못에 온몸을 담근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