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제236장 시련탑 밖의 이야기(2)
천제현 일행 중에서 가장 강한 운요조차 순식간에 당했다.
그런데 천제현 혼자서 어떻게 세 공자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셋 중에 가장 약한 양천랑조차 혼성 4성이다. 게다가 그는 혼성 4성에 진입한지 1년이 넘었다.
또한 가문의 무공인 요랑변을 대성의 경지까지 연마하며 양씨 가문의 여러 절세 무공을 익혔다.
양무도와 함께 자주 전장을 누비며 전투경험 역시 매우 풍부했다.
공격력과 폭발력, 속도 모두 현혼 강자조차 맞서지 못할 정도였다.
천제현이 천남성에서 요행으로 이겼다고는 하나 그게 뭐 대수인가.
그 승리는 천제현의 실력에 의한 게 아니라 순전히 강시와 진법의 힘 때문이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진짜로 양천랑과 겨뤘다면 천제현 정도의 수준으로는 목숨이 열 개라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힘을 지니고 근접전에 뛰어난 낙강룡에, 사대 공자 중 가장 강한 천성하까지 있다니.
운천학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심빙우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천씨, 낙씨, 양씨 세 가문에는 희색이 돌았다.
‘천제현, 네놈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이번에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니 죽지 않더라도 불구가 되어서 나올 것이다!’
공서련과 공화련이 운씨 가문의 진영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대경실색했다.
“이를 어쩌면 좋아?”
“언니! 이번에는 정말 큰일이야!”
양씨 가문의 장로 하나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천제현이 불구가 되면 너희들의 믿을 구석이 사라지게 된다. 운씨 가문에서 너희 둘을 위해 삼대 가문을 계속 적대시할 것 같으냐?”
운천학이 노여워하며 외쳤다.
“무슨 짓이냐?“
운천학의 일갈에도 양씨 가문의 장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운천학을 협박했다.
“동시에 삼대 가문을 적대시하면 온전치 못할 거요.”
양씨 가문의 장로가 냉소를 지으며 공화련 자매를 쳐다봤다.
“그러나 모든 일은 천제현이 벌인 것이니 자비를 베풀어 너희 자매가 살 길을 열어주마! 지금 당장 기적상회를 우리 세 가문에 넘기면 죽이진 않고 시종으로 삼겠다. 이 정도면 대단한 은혜지.”
“무엄하다!”
운천학이 대로하여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네놈들이 설치게 두지 않는다!”
공화련 자매 역시 분노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너무 비열하다!’
‘천제현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기적상회를 삼키려는 꼴이라니!’
하지만 양씨 가문 장로는 세 가문을 믿고 운천학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삼대 공자가 시련탑에서 천제현과 겨루고 있다. 천제현을 불구로 만들어 버린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신풍후도 막을 수 없다! 운천학이 노여워해도, 신풍후가 언짢아해도 시련탑에서 벌어진 일이니 죄가 아니다. 신풍후라도 삼대 가문을 전부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양씨 가문은 비열한 웃음을 띠며 음흉한 눈으로 공화련과 공서련의 몸을 훑었다.
“그러니 너희 둘도 잘 생각해. 운씨 가문은 결코 너희를 지켜주지 못한다. 천제현의 기적상회가 없는데 네깟 것들이 뭐라고!”
하지만 양씨 가문의 장로 말대로였다.
중주 사대 가문은 중주성의 기반이다. 중주의 주성부터 시골마을까지 사대 가문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세도가 하나를 없애려 해도 난리가 나는데 세 가문을 없앤다는 것은 신풍후도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 이유가 단지 한 소년 때문이어서야!
세 가문의 사람들은 다 이겼다는 모습이었다.
이미 세 가문 사람들은 천제현이 얼만큼의 부상을 입고 나올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때, 중주탑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가문의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드디어 천제현이 나오는 것인가?’ 드디어 한을 풀 시간이었다. 삼대 가문 사람들은 모두 기대에 찬 눈을 하고 시련탑을 바라봤다.
곧 탑 꼭대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숫자 몇 개가 밤하늘에 어른거렸다.
“236점!”
“어라, 236점밖에 안 되다니!”
양씨 가문에서 일부로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운씨 가문의 무용지물도 188점이나 받았잖아!”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비웃기 시작했다.
운소는 이를 갈 정도로 화가 났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실 그가 거둔 성적은 지난 시련이었다면 엄청난 주목을 받을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련에서는 가장 낮은 점수가 아닌가.
세 가문의 사람들이 한창 비웃을 때였다.
이때 호되게 당한 듯한 몰골의 인영 하나가 탑에서 세차게 날아와 땅에 처박혔다.
삼대 가문 사람들은 당연히 천제현이라고 예상하고 크게 비웃었다.
그러다가 인영의 정체를 깨닫고 웃음을 멈추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천제현이 아니야?’
‘이, 이건 양천랑이잖아!’
땅에 처박힌 청년은 요사스럽게 잘생긴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린 채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다.
“천제현, 이놈! 너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정말 양천랑이잖아!’
몇 초 전까지 점수가 낮다고 비웃던 양씨 가문 사람들은 피를 토할 뻔했다.
운소가 낄낄거리며 크게 웃었다.
“아이고! 이거 천랑공자 아닙니까? 그 유명하신 천랑공자께서 어째 이 점수밖에 못 받으셨습니까? 보아하니 유흥에 빠져 매일 기방이나 들락거리는 나와 천랑공자의 수준이 비슷했나 보군요!”
운씨 가문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세 가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중주탑에 세 공자와 천제현만 남았는데 어째서 천제현이 아니라 양천랑이 탈락한 걸까.
양무도는 칼에 베인 흉터로 가득한 얼굴을 찡그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양천랑의 창백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천제현에게 졌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양무도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몹시 화를 냈다.
“어서 말해!”
“천제현 때문입니다!”
양천랑이 눈을 딱 감고 말했다.
“그 비겁하고 사악한 놈이 절 급습했어요!”
모두 들끓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하하,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웃긴 농담이군. 천제현이 널 급습한 것은 잠시 접어두자. 설령 급습을 했다 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남궁혜가 비웃으며 말했다.
“천성하가 우릴 기습한 건 정당하고 천제현이 널 급습한 건 비열한 거란 말이야? 천제현의 말이 맞았어! 역시 잡종공자다워!”
공서련 역시 크게 화를 내며 맞장구쳤다.
“맞아요! 잡종이라 그런지 왈왈대며 아무 소리나 내뱉네요! 고작 너희 정도로 우리 기적상회를 집어삼키려고? 꿈 깨!”
양무도 부자가 대로했다.
둘이 화를 내기도 전에 중주탑이 크게 흔들리더니 탑 꼭대기에 숫자가 나타났다.
“257점이다!”
“이번에는 누구지?”
곧 낙강룡의 우람한 몸이 곧장 튕겨져 나와 땅에 세차게 널브러졌다.
이제 낙씨 가문에서 피를 토할 차례였다.
“어떻게 된 거야?”
천랑공자가 탈락한 건 그렇다 치자. 용로공자마저 탈락하다니.
“제…… 제기랄!”
낙강룡은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며 더욱 수치스러워했다.
“천제현에게 기습을 당했어요!”
운씨 가문 사람들과 주변의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웃음을 터트렸다.
“기습이라니 웃기는군!”
“천제현이 세 공자를 앞에 두고 먼저 양천랑을 급습한 후 낙강룡을 기습했다니!”
“그럼 세 공자는 머저리라는 건가? 기습을 알고도 당하다니!”
낙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원래 낙씨 가문은 천제현과의 원한이 가장 적었다. 장로 두 명과 집사 몇이 천제현에게 당하긴 했지만 그들은 평범한 장로와 집사일 뿐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중주성 대회가 열릴 때까지 그랬다.
그런데 대회에서 천제현이 낙금사를 반죽음으로 만들면서 낙씨 가문은 시련에 참가할 인원이 하나 줄었다.
이때부터 낙씨 가문은 천제현에게 깊은 앙심을 품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낙금사를 반불구로 만들고 낙강룡까지 시련탑에서 탈락하게 만들어 낙씨 가문 전체에 치욕을 안겼다.
엄청난 치욕이었다.
낙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눈이 벌개져서 치를 떨며 천제현을 작살내겠다고 다짐했다.
양씨, 낙씨 가문은 한마음으로 적개심을 불태웠다.
그러나 천씨 가문은 침착했다.
낙강룡과 양천랑은 이류에 불과했다.
사대공자의 순위에 대해 천씨 가문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무기와 용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중주성의 천재는 단 한 명 뿐이다.
그건 바로 천성하.
천성하는 마음가짐이나 자질, 기세, 담력 모두 월등했다. 그는 천씨 가문의 혼검결을 임신의 경지까지 연마하고 고대 무공인 어검화교결까지 대성에 이르렀다.
천성하 혼자서 다른 세 공자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그러니 양천랑이 탈락하고 다시 낙강룡마저 탈락했지만 천씨 가문 사람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천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은 천성하가 젊은 세대에서 천하무적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주성에서 현재 신풍후 같은 어마어마한 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강한 천성하가 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낙강룡과 양천웅이 탈락했다고?’
천씨 가문은 놀라거나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 시련이 끝나면 가문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다.
천성하가 시련탑을 나오고 나면 더 이상 사대 공자가 아니게 될 것이다. 천성하, 그는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었다.
대략 반시간이 더 흘렀다.
덜컹!
중주탑이 흔들리더니 빛줄기가 하늘에 뿜어져 나가며 숫자가 나타났다.
“400점!”
“400점을 돌파하다니!”
“딱 400점이다!”
모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운요가 기록을 세운지 2시간도 안 지났는데 더 높은 점수가 등장했다.
‘이게 천제현의 성적인가? 일리가 있는 성적이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천제현은 확실히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모두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풀이 죽은 듯한 그림자가 중주탑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푸른 도포에 금으로 된 검, 백옥관을 쓴 그림자는 키가 크고 몸집이 건장했다.
그 그림자는 마치 보검 같이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다만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보검이 오늘은 녹이 낀 듯 보였다.
‘맙소사! 천성하야!’
사람들은 너무 놀라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어째서 천성하가 나온 거지?’
‘말도 안 돼! 그럼 천성하가 진 거야?’
‘천제현이 혼자서 세 공자를 모두 이겼다고?’
모두 이런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천씨 가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성하는 천씨 가문의 신화였다.
신화가 눈앞에서 깨졌는데 어떻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