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제232장 격돌
천제현의 존재는 어떤 형태로든 천성하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적어도 천성하는 그렇게 느꼈다.
어쩌면 천제현의 능력은 어떤 면에서 자신을 뛰어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천성하는 본디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니 자기보다 그런 천져헨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있겠는가.
이 시련에서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그를 탈락시켜 그의 앞길을 막을 수는 있다.
“네놈이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낙강룡이 흉흉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천제현을 조롱하듯 바라보았다.
“네놈에게 방어부적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군. 아니었으면 천성하의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지. 그럼 널 너무 쉽게 보내주는 거잖아?”
“네놈이 보물의 문을 열었으니 이제 아무 쓸모가 없다!”
양천랑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의 빚을 좀 청산해 볼까!”
“이제 와서 뭔 말이 많아?”
천제현은 그 세 명에게 보물을 나누자고 설득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는 눈빛을 빛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한 명씩 덤빌래? 아니면 한꺼번에 덤빌래?”
“멍청한 놈!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만약 이 시련에 누군가 남아있다면, 천제현이 겁을 먹고 실성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만큼 천제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천제현의 도발에 천성하는 코웃음을 치더니 양천랑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까 약속헀던 대로, 양천랑. 네가 해결해!”
“고맙다!”
양천랑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온 순간인가.
양천랑은 두 말도 않고 가문의 전승무공인 요랑변을 시전하여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더니 네 발로 땅을 짚고 덮쳐왔다.
“죽어라!”
천제현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뜻밖에 그는 안심하고 있었다.
만약 세 사람을 동시에 상대해야헀으면 천제현에게는 일말의 희망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대일 구도가 됨으로써 조금이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이 생겼다.
한편, 천성하 역시 다른 속내가 있었다. 사실 그는 낙강룡, 양천랑과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분명 천제현에게는 무슨 숨겨진 수가 있을 것이다.
교활한 천성하가 어찌 그 사실을 모르겠는가.
그래서 양천랑을 탈락시킬 겸, 천제현의 비장의 수를 확인할 겸 그를 앞세운 것이었다.
“날 없애시겠다고? 그럼 내 꼭두각시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지!”
한 순간, 천제현 뒤에 있던 꼭두각시가 앞으로 나와 양천랑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양천랑도 결코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꼭두각시 거인의 주먹을 피해 하늘로 솟구치더니 허공에서 폴짝 뛰어오르며 4~5장 밖으로 물러났다.
“이 보잘것없는 잔재주로 날 막을 수 있다고 보느냐?”
양천의 말이 맞았다.
이 미궁 속에서 꼭두각시의 능력이 먹혀들어간 데에는 대부분 괴물의 지능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양천랑처럼 전투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꼭두각시와 억지로 붙겠는가.
꼭두각시를 피해서 천제현에게 공격을 가하면 끝이었다.
꼭두각시를 이기지 못해도 천제현만 탈락시키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웠다.
그러나 뜻밖에도 천제현의 입가에 괴이한 미소가 번졌다.
“네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거대한 손바닥 하나가 갑작스럽게 양천랑 쪽으로 다가왔다.
‘크윽! 뭐지!’
양천랑이 대응하기도 전에 거대한 손바닥이 양천랑을 정확하게 가격했고, 일격에 그의 호신마력이 깨지면서 강한 충격을 받았다.
곧 양천랑은 천제현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천제현과 양천랑의 싸움을 지켜보던 낙강룡과 천성하는 깜짝 놀랐다.
‘또 다른 꼭두각시라니!’
‘이놈…… 꼭두각시가 둘이었어!’
사실 천제현이 조종할 수 있는 꼭두각시는 둘이었다.
처음 양천랑을 공격한 꼭두각시는 천제현 본인의 꼭두각시였다.
그리고 이건 일종의 미끼였다.
자신의 꼭두각시에 정신이 팔려 방심을 하게 만든 후, 다른 꼭두각시로 공격을 하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꼭두각시의 정체는 남궁혜의 것이었다. 사실 꼭두각시를 활성화시킨 것은 천제현이었다. 그저 일시적으로 조종 권한을 일행에게 넘긴 것일 뿐, 본래 조종 권한은 천제현에게 있었다.
그리고 남궁혜가 탈락하게 되자 꼭두각시 조종 권한이 다시 천제현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방심한 틈에 당한 꼭두각시의 공격은 만만치 않았으리라.
양천랑은 치명적인 중상까지는 아니어도 한동안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천제현은 그런 양천랑을 가만히 내버려둘 정도로 마음씨 착한 인물이 아니었다.
천제현의 꼭두각시는 주먹을 쥐더니 양천랑을 향해 묵직하게 주먹을 내리쳤다.
쾅! 쾅! 쾅! 쾅!
꼭두각시는 마치 방아를 찧는 듯한 일정한 박자로 계속해서 양천랑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결국 양천랑은 포효하며 하얀 빛 속에서 사라졌다.
“별 거 아니군. 하긴! 잡종공자가 이 정도밖에 안 되겠지!”
낙강룡은 아직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천성하는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꼭두각시가 두 개인 것은 예상 못했지만, 양천랑이 당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저놈 혼자서 여러 꼭두각시를 부릴 수 있다니! 정신력을 분산할 수 있는 것인가?”
“신식의 힘인 것 같군.”
천성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놈의 신식은 이미 심안의 경지를 넘어섰어. 그러니 꼭두각시 여러 개를 조종할 수 있는 거지.”
“뭐? 심안의 경지를 넘어?”
이는 여태껏 들어본 적도 없는 경지였다.
천성하가 말을 이었다.
“낙강룡, 저놈을 처치할 수 있겠어?”
낙강룡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냉정함을 되찾았다.
“양천랑 그 멍청한 놈이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군. 내가 처리하지!”
천성하는 낙강룡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조롱하듯 냉소를 지었다.
진법의 중앙에 선 천제현 주변으로 꼭두각시의 심장이 회전했다.
그 앞에는 만신창이가 된 꼭두각시 거인 둘이 서 있었다.
마침 낙강룡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오자 천제현은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오, 꼭두각시 거인의 위력을 체험이라도 해보게?”
“꼭두각시 거인?”
낙강룡이 큰소리로 비웃더니 신비한 힘이 담긴 부적을 꺼내 자기에게 붙였다.
“장난감 주제에!”
낙강룡이 꺼낸 부적에서 갑자기 강렬한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광채는 빠르게 낙강룡의 몸을 뒤덮었다. 그러더니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빛 무리가 사라지자 그 속에서 10장 정도 크기의 넘는 거인이 나타났다.
그 거인은 바로 낙강룡이었다. 변신부의 힘을 사용해 거대화 한 것이다.
부적을 사용하기 전까지만 해도 꼭두각시를 한없이 올려다보던 낙강룡이 이제는 반대로 꼭두각시를 내려다보는 입장이 된 것이다.
낙강룡은 단번에 주먹을 휘둘러 넘어트렸다. 곧 이어 천제현이 손쓸 틈도 없이 발로 몇 번이나 짓밟고는 벽 쪽으로 뻥 차 버렸다.
그 후 낙강룡은 양손을 모았다.
이내 낙강룡의 손 안에 기운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두 마리 용의 형태를 띠더니 남아있는 꼭두각시의 가슴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꼭두각시 거인 두 개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낙강룡은 변신부를 통해 자기 전투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켰다.
여기에 낙가의 육탄전 전투 무공과 결합하니 꼭두각시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쟤들도 거미궁에서 얻은 게 있었구나!’
낙강룡은 부적을 통해 거인으로 변신하여 전투력은 5~6배 이상 증가했다. 지금 그의 전투력은 진혼급의 위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전투력 면에서 꼭두각시 거인은 훨씬 넘어선 것이다.
전투력만 본다면 철갑거인과 맞먹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철갑거인은 지능이 없지만, 낙강룡은 무공을 익힌 인물이 아닌가.
“이제 장난감들은 없어졌군!”
낙강룡의 목소리가 거칠게 변했다. 그는 한 자, 한 자 끊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네놈의 뼈 마디마디를 다 분질러 버릴 것이다! 그래도 날 위해 보물을 찾아주었으니 금방 끝내주마!”
낙강룡의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천제현은 태평했다.
낙강룡이 거대화 할 때도, 꼭두각시가 무참히 깨진 것을 보았을 때도 천제현은 무사태평이었다.
천제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중에 누군가는 보물을 차지하겠지.”
태평한 천제현의 얼굴에 상쾌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네가 아닐 걸!”
천제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천천히 손을 휘둘렀다.
곧 천제현의 손이 신호가 되어 거울에서 광선이 발사되었다.
낙강룡의 얼굴색이 단박에 바뀌었다.
“설마…….”
낙강룡이 눈치채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세상에서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까.
광선이 거울에 닿은 직후, 순식간에 몇 번이고 반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엄청난 힘을 지닌 광선이 되어 낙강룡의 거대한 몸을 가격했다.
“안 돼!”
낙강룡이 비명을 지르며 보물창고 끝까지 나가떨어졌다.
천제현이 쏜 빛이 낙강룡의 가슴을 관통했다.
곧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낙강룡 역시 시련의 공간에서 퇴출당했다.
천제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성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는 부드럽고 침착했으며, 마치 수년간 보지 못한 오랜 친구를 보는 듯 했다.
천제현이 천천히 천성하에게 다가갔다.
“천검공자, 넌 두 가지 실수를 했어. 첫 번째는 내 주위의 사람을 해하려고 한 거고, 두 번째는 네놈의 친구를 일부러 사지로 내몬 거야.”
천성하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뭐 어때서?”
천제현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널 무너뜨려 줄게.”
“사실 처음부터 널 탈락시킬 수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너희를 들여보내준 건 보물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천성하의 웃음소리는 낮고 어두웠다.
“그리고 네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내 힘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천성하가 검을 쥐니 금색 보검이 두 개로, 두 개가 네 개로…… 마지막에 16개로 분리되었다.
그 검들은 천성하 주변을 육안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네놈이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보지?”
천성하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 예리했다. 냉혹한 목소리가 보물창고를 뒤흔들었다.
“내가 똑똑히 알려주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천제현이 방실거리며 웃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