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제226장 거인 보물창고
물론 운소도 그 무기가 남궁혜에게 딱 어울리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울리는 것은 어울리는 것이고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남궁혜가 망치를 들어 올려 살짝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일었다.
운소는 곧바로 움찍했다.
‘앞으로 까불면 안 되겠다…… 저 망치에 맞으면 바로…….’
운소뿐만 아니라 나머지 일행도 겁이 나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남궁혜는 신나서 소리 내어 웃었다.
“묵직하네!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아주 마음에 들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망치가 육중하게 땅을 내리쳤다.
그러자 화염처럼 붉은 마력이 폭발하며 1장 범위 안의 지면을 모두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미처 방어할 시간이 없던 일행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오! 위력이 엄청난걸!”
남궁혜는 망치의 거칠고 거대한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대장, 고마워. 이제야 마음에 드는 무기를 갖게 됐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운요가 옆에 있던 운소에게 속삭였다.
“앞으로는 되도록 저 여자한테 가까이 다가가지 마. 알았지?”
운소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난 오래 살고 싶으니까!”
남궁혜가 든 망치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며 천제현이 말했다.
“용암의 힘은 남궁 가문의 무공과 충돌하지 않으니까 두 무공을 함께 수련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무공에 그 망치까지 가지면 전투력이 최소 2배는 올라갈 걸요!”
그의 얼굴에는 아까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무기와 무공이니 그것들과 궁합이 잘 맞는 남궁혜에게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일행 역시 모두 동의했다.
어차피 자신의 속성과 맞지 않는 무기 혹은 무공은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기 일쑤였으니, 기꺼이 동의한 것이다.
피화주는 천제현이 사용하기로 했다. 열화신장을 처치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남은 건 자금색 열쇠뿐이었다.
‘이 열쇠에 맞는 보물상자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천제현이 열쇠를 흔들며 말했다.
“다른 분들은 이제 보물상자를 찾아보도록 해요. 저는 이 열쇠를 좀 연구해 볼게요!”
보물상자를 찾기 위해 굳이 멀리까지 찾으러 갈 필요도 없었다. 대장장이 전당에도 수많은 보물상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남궁혜는 즉시 대장장이 거인들로부터 수집한 열쇠를 들고 보물상자를 향해 달려갔다.
홀로 남은 천제현은 열화신장이 남긴 자금색 열쇠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단순히 상자를 여는 용도가 아니라 뭔가 특별한 기능이 있는 열쇠 같았다.
그때, 대전을 훑어보던 그의 시선에 거대한 용광로가 들어왔다.
‘열화신장은 이 용광로 뒤에서 나왔었지!’
천제현은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거대한 용광로 뒤쪽으로 걸어갔다.
열화신장이 나타난 곳, 정확히는 이글거리는 화염이 가득한 용광로 안에 자금색 보물상자가 반쯤 잠겨있었다.
‘이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의외인걸?’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찾은 것이야 쉽게 찾았지만 막상 꺼내려니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용광로 안은 진혼급의 고수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간 그대로 녹아내리리라.
천제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간단한 답을 찾아내었다.
“용광로라면 불을 조절할 수도 있겠지!”
천제현은 용광로를 자세히 살펴보며 불을 조절하는 장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광로 위에 거대한 진법이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총 64개의 도안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 일부 그림은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금, 화, 수, 토, 풍?”
용광진에는 서로 다른 속성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속성들을 조합하면 용광로의 도안에 변화가 생기는 구조였다.
고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재료와 무기들을 제련할 때 이런 식으로 용광로를 사용했던 것이다.
‘으음. 용광로가 변화하나 확인해볼까?’
천제현은 조심스럽게 도안을 움직였다. 그가 움직인 도안은 불의 원소를 줄이고 바람의 원소를 키우는 방향이었다.
그러자 용광로 안에서 화르륵 화염이 일었다. 불길이 어찌나 센지 바깥까지 나갈 정도였다.
불원소를 줄이고 바람원소를 높이면 온도는 내려갈지 몰라도 바람으로 인해 불꽃 자체는 더 강력해지는 것이었다.
‘잘 반응하는구나!’
64개의 그림은 용광로 안에서 원소의 힘을 발휘하는 64개의 진법을 의미했다. 그 중 일부는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천제현은 서로 다른 그림을 움직여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용광로의 불길을 줄여야 했다.
방금 전의 조합을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불원소를 줄인다고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불원소진을 바람원소진으로 바꿨다가 불길이 더 거세졌던 것처럼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워보이진 않았다.
천제현은 원소들 간의 상생, 상극 원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용광로의 마력진 배치를 꿰뚫어본 그는 재빨리 용광로의 도안을 움직여 상극을 만들었다.
그러자 용광로의 온도가 빠르게 떨어졌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지!”
용광로의 불길은 여전히 맹렬해서 안에 뭐가 있는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 온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천제현은 피화주를 입고 불 속으로 들어갔다. 견디지 못할 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화주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 빨리 움직여야 했다.
찰칵!
보물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천제현은 안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손에 집어 든 후 번개처럼 용광로를 빠져 나왔다.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은 상태였다.
천제현이 들고 나온 물건은 총 세 개였다.
하나는 독특하게 생긴 사각 수정석으로, ‘보물창고 열쇠’였다. 또 하나는 옥으로 만들어진 부적으로 체신부(替身符)라고 쓰여 있었다.
이름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분신을 만들어 주인을 도망가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이것 역시 시련 공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밖으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무기 제조술이 새겨진 오래된 책이었다. 수많은 무기 제조 비법이 쓰여 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천제현의 관심은 열쇠에 쏠려있었다.
‘이 열쇠의 상자는 또 어디 있지?’
한편, 남궁혜 등 나머지 일행은 양손이 두둑해져서 돌아왔다.
대장장이 전당은 무기를 제조하던 곳이기 때문에 보물상자 안에 있는 것도 약재나 특수한 도구가 아니라 무기, 갑옷 등 각종 장비와 재료였다.
대부분이 혼기급 물건이었는데 다 모아보니 수십 개가 넘었다.
운소가 오두방정을 떨었다.
“이거 봐요! 고급 혼기 수십 개나 돼요!”
무기의 급은 가장 기본적인 일반급, 그 다음이 정령급, 그리고 혼기급이었다. 그 위로는 영웅급이 있지만 남하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기였다.
혼기급 무기도 무척 귀한 편이었는데, 혼기급 무기 하나도 엄청난 금액으로 거래되곤 했다.
그런 혼기가 수십 개가 있으니, 돈으로 환산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일 것이다.
사실 중주성에서 혼기를 만들 수 있는 제기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게다가 이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혼기는 사대 가문에도 얼마 없으리라.
과연 가문들이 시련의 탑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보물을 손에 넣느라 이곳에서 몇 십 분 정도 지체한 일행은 즉시 전리품을 챙겨 미궁의 핵심부인 정전으로 발을 옮겼다.
대장장이 전당에서 정전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거인 호위병 등 적지 않은 괴물들을 만났으나 전부 조무래기들이었고, 상대하지 않기로 결정한 일행은 빠르게 앞으로 전진했다.
3시간 후.
일행은 마침내 미궁의 핵심부인 정전에 도착했다. 아니, 정확히는 정전 안에 있는 거인 보물창고에 도착했다. 모두가 거인 보물창고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지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거인 보물창고를 바라본 일행은 상상과 너무 다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특히 운소는 휘황찬란하고 웅장한 궁전을 상상했다. 게다가 시련의 탑 한가운데 있는 궁전이니 그 무엇보다도 화려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소의 눈앞에 보이는 건 텅 빈 궁전이었다.
면적만 봐도 대장장이 전당보다 훨씬 작아 보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물창고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거울들만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놓여 있을 뿐이었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방의 모든 곳에 거대한 거울이 붙어 있었다.
“이런 젠장! 이게 뭐야! 보물창고라면서! 근데 왜 저딴 거울밖에 없는 거야!”
분노한 운소가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남궁혜 역시 당장이라도 손에 든 거대한 망치를 휘두를 기세였다.
하지만 천제현이 손을 들더니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만 기다려봐요!”
천제현은 방에 놓인 거울들을 주시했다.
약 1장 높이의 거울들은 회전 가능한 황금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거울 면은 먼지 한 점 없이 반짝반짝 빛났다. 거울마다 알 수 없는 힘이 감돌고 있었으며, 안쪽에서 고대의 기운이 느껴졌다.
또 거울의 뒷면에는 신비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사람의 몸에 늑대의 얼굴을 한 그림이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외모에 비늘 형태의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거대한 삼지창을 든 늑대 인간 그림.
그 붉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침입자를 노려보는 모습은 마치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보물상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보물창고라고 해놓고서는!”
아무리 봐도 다른 전당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천제현마저 얼이 빠져있었다.
“이게 어딜 봐서 시련 공간의 중심이라는 거지? 여기가 바로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는 신비의 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