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제222장 빈곤한 수확
천제현은 원래 좀 더 오래 운기조식을 하려 했었다. 그런데 돌연 머리 위에서 폭발음이 들리더니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그 사이로 온몸이 새빨간 거대 벌의 유충이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느껴졌다.
천제현은 놀라 소리쳤다.
“대전이 붕괴되고 있어요. 빨리 나가야 돼요!”
대전은 여왕벌이 죽을 경우, 유충들이 모두 자폭하여 붕괴시키도록 만들어진 것 같았다.
아마도 침입자와 동귀어진하는 것이 그 목적이리라.
천제현은 황급히 만년영밀을 챙기고 일행과 함께 대전을 나갔다.
우르르르.
천제현 일행이 대전에서 빠져나가자마자 대전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대전이 붕괴되며 벌집도 연달아 붕괴되기 시작했다.
벌집의 구조는 매우 복잡했으나 다행히도 새끼 여우가 길을 안내하여 벌집이 모조리 붕괴되기 직전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운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밖의 풍경을 보며 기겁하였다.
“저, 저건 또 뭐야!”
벌집 밖에는 수많은 거대 벌들이 하늘을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왕벌의 통제에서 벗어난 거대 벌들은 피아를 식별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살육을 벌이는 중이었다.
즉, 이제 위장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띠면 공격을 당할 것이다.
천제현은 온힘을 다해 앞장서서 길을 뚫었고, 일행들은 함께 정신없이 뛰어갔다.
한참을 달리자 그들 앞에는 거대한 대전이 나타났다. 지도에 적혀 있는 대로라면 이곳은 꼭두각시 밀실이었다.
대전 안은 빛이 밝게 들어와 사물들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은 대전 가운데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거인들이었다.
거인들은 호위병들보다 작았지만 더 정교해보였다. 물론 호위병보다 작은 것이지 거인들의 크기도 족히 10장은 되어보였다.
또한 그들의 몸은 매우 단단해 보였는데, 몸에는 부적 주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번쩍번쩍 빛이 났다.
‘산 넘어 산이군! 저건 또 뭐지?’
천제현은 거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비록 매우 강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마력의 파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천제현의 눈빛이 번쩍였다.
“이건 시련 공간의 괴물은 아닌 거 같아요.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천제현 일행은 천천히 그 거대한 물체 앞으로 다가갔다.
거인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서 예사롭지 않은 빛이 나기는 하지만 어떤 위압감이나 위험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죽어 있는 물체 같았다. 일행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를 쳐다봤다.
남궁혜는 주변을 훑어보더니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여기 보물 상자가 있어. 빨리 열쇠 줘봐. 열어봐야겠어.”
꼭두각시 밀실 안에는 구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보물 상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보물 상자는 구리로 만들어져 누런 빛깔을 띠었다. 매우 낡은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이곳에 놓여 있었던 듯싶었다.
일행들이 보물 상자에 관심을 돌리는 동안에도 천제현은 혼자 거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보물 상자를 둘러싸고 서 있는 일행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특히 남궁혜는 긴장한 듯 두 손을 마주 비비더니 눈을 빛내며 정교하게 만들어진 구리 열쇠 두 개를 보물 상자의 열쇠구멍에 대 보았다.
“빨리 열어 봐!”
운요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남궁혜가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자 열쇠가 자동으로 한 바퀴 돌아가더니 열쇠구멍을 중심으로 밝은 빛이 물결의 파장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찰칵!
보물 상자가 열렸다.
남궁혜가 보물 상자의 뚜껑을 힘껏 밀어 열었다. 그 안에는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황금, 보석, 다이아몬드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냥 보석에 불과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가치가 있는 진귀한 보물이겠지만 이들에게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보석들 위에 놓인 두꺼운 책 몇 권과 옥으로 된 부적 한 장이었다
“이건 뭐지?”
남궁혜가 책을 들어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설마 고대 무공이 적혀있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도안이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마치 도구들을 분해해 놓은 것 같았다.
남궁혜는 책을 내려놓고 부적을 집어 들었다.
부적 역시 알아볼 수 없는 주문이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
“시련 호신 부적?”
남궁혜가 부적을 들자 부적의 정보들이 순식간에 그녀의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그 덕분에 그녀는 순식간에 고대부적의 용도와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부적이 가진 능력은 위기의 순간에 방어막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비록 지속 시간은 길지 않지만 진혼급 이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호신용 도구에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부적을 유심히 살피던 운요가 기억났다는 듯이 말했다.
“이 부적은 시련 공간의 특수한 물건이기 때문에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어!”
그 말을 들은 남궁혜가 탄식을 했다.
‘정말 안타깝군. 유용한 도구인데!’
남궁혜는 또 다른 보물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해석할 수 없는 책 몇 권 있었다. 이전 상자의 것들이랑 비슷한 유형의 것이었다.
그러나 사뭇 다른 물건도 하나 들어있었다.
주머니 하나였다.
그 주머니는 시련 공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보관 주머니였다.
시련에서 얻은 물건들을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는데, 주머니 크기보다 훨씬 많은 양을 넣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주머니가 있으면 전리품들을 일일이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이 주머니를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면 그 값어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련 공간의 특수한 물건이었다.
호신 부적처럼 보관 주머니도 시련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물건이기 때문에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보상이 너무 적군! 아무리 구리 보물 상자가 최하급의 보물 상자라고 해도 너무하는데!’
거인 노예가 하급 괴물인 만큼 구리 보물 상자의 보상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리라.
“이건 다른 고대 종족의 문자에요.”
어느새 다가온 천제현이 책을 집어 들며 말했다.
“고대 정령들의 문자 같아요. 매우 오랜 시간이 흘러서 전해져 내려오는 자료가 거의 없어요. 저도 조금밖에 잘 모르겠어요.”
남궁혜는 더더욱 실망했다.
‘혹시 대장이라면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면, 무용지물 아닌가.
하지만 천제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책 전체를 해석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내용을 해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건 무공이 아니에요!”
천제현은 책에 그려져 있는 도형들을 훑어보았다.
“고대 기관의 일부를 적어 놓은 비급이에요. 제대로 해석할 수 없지만, 분명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겐 전혀 값어치가 없는 물건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꽤 가치가 있는 물건이에요. 해독한 후에 동소어에게 가져다주면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남하국에서 이 책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일 것이다.
공화련.
그녀의 천서 정령에 비추기만 하면 그 어떤 고대 문자라고 해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구나!”
천제현이 돌연 흥분하여 눈앞에 있는 거대한 거인들을 가리켰다.
“저것들은 고대 종족이 기관술로 만든 꼭두각시에요!”
천제현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남궁혜가 깜짝 놀랐다가 다급히 말했다.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당연하죠! 사용방법만 알면 저것들을 조종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눈이 번쩍였다.
고대의 꼭두각시 거인들에게서는 진혼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만약 이들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 거대 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천제현은 기관술을 잘 몰랐다.
기관술은 마력 기계술의 전 단계로, 후대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천제현이 있던 시대에는 첨단 마력 기계술을 이용해 우주선과 같은 거대하고 정밀한 고급 무기들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사용된 기관술은 비술을 사용하여 마력진과 결합시킨 후, 제기술을 이용해 꼭두각시와 같은 단순한 무기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단순하다고, 그 위력까지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괜찮은 발상이네!’
천제현은 심안을 이용해 꼭두각시 거인들의 내부를 들여 보았다.
과연 제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의 신체 구조는 거대한 몸집에 비해 매우 단순했다. 그저 거대한 철 덩어리에 각 관절 부분만 움직일 수 있게 설계된 구조였다.
다만 가슴 부분에 기괴한 발광물질 하나만 유독 눈에 띄었다.
천제현은 꼭두각시 거인의 가슴으로 뛰어 올라 여러 차례 두드렸다. 그러자 가슴 부위가 열렸다.
기괴한 발광물질은 동그란 수정모양이었는데, 꼭두각시 거인의 심장과 같은 역할이었다.
천제현은 조심스럽게 심장에 손을 댔다. 그러자 시련자의 옥패가 정보를 그의 의식으로 전달했다.
“꼭두각시 거인의 심장을 획득했습니다! 꼭두각시 거인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시련 점수 20점이 필요합니다. 활성화 하시겠습니까?”
‘어이가 없군. 사용료가 필요하다니!’
천제현은 시련 점수의 가치에 대해 잘 몰랐지만 20점이면, 결코 낮지 않은 점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제현은 조금도 망설이거나 아까워하지 않았다.
“활성화!”
시련자 목걸이의 옥패에 있는 숫자가 은색 빛을 발하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총 20점이 감소하였다.
은색 빛은 주변으로 흩날리더니 천제현의 손에 들려 있는 꼭두각시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궁!
수정 심장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이내 어두운 금색 빛의 꼭두각시 거인이 활성화되었다.
두 눈과 온몸의 주름이 밝은 빛을 띠었다. 그리고 무서우리만큼 강대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멋지군!”
“이것들을 가지고 나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꼭두각시 거인의 파괴력은 진혼급에 가까웠다. 만약 정말 데리고 나갈 수만 있다면 중주의 고수들을 모조리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들도 분명 허구일 것이다.
천제현은 일행을 향해 꿈 깨라는 듯 말했다.
“이건 모두 시련이 만들어낸 허상일 거예요. 게다가 꼭두각시를 하나 활성화하는데 시련 점수 20점이 필요해요!”
“그렇게 많이? 그런 점수가 어디 있다고!”
모두들 아연실색했다. 그들에게 꼭두각시를 활성화할 점수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제겐 있죠!”
천제현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밖으로 가져가지는 못해도 시련에서 이 거인은 매우 유용할 거예요! 그러니 제 점수를 사용해서 활성화할게요!”
풍채향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100점도 넘는 점수를? 100점이면 시련 공간에서 성약도 가지고 나갈 수 있어!”
‘성약?’
천제현이 크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