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제218장 잃어버린 동료를 찾아서
남궁혜가 황급히 주먹을 휘둘렀다.
쾅!
붉은색 마력이 날아오던 검기를 산산조각 내고 거대 벌의 몸에 꽂혔다. 그 반동으로 몇 보 뒷걸음질을 친 남궁혜가 아슬아슬하게 다른 수정판 바로 앞을 밟았다.
1치만 더 갔어도 다른 수정판을 밟았을 것이다.
등골이 서늘해진 남궁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공격을 받은 거대 벌이 새까만 독침을 날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고, 독침은 함정이 있는 수정판에 꽂혀 버렸다.
수정판의 부적 주문이 바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안 돼!”
거대한 힘이 솟구쳐 올랐다.
그걸 본 운소는 그녀를 잡아끌려고 했다.
“비켜!”
그러나 남궁혜는 운소의 손을 치면서 소리 질렀다.
이미 늦은 것이다.
곧이어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었다. 제일 가까이 있던 남궁혜, 운소, 풍채향이 먼저 타격을 입고 돌다리에서 떨어졌다. 이내 그들은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거대 벌 몇 마리가 날아가 부상 입은 일행을 잡고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으악, 살려 줘…….”
운소의 처참한 비명만 어둠 속에 남았다.
남은 일행들도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 벌의 공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빌어먹을!”
운요가 인상을 쓰며 만신창이가 된 돌다리를 노려봤다. 분노로 눈을 부릅뜬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벌레들의 포로가 되다니,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 아냐!”
임목과 방한도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시련을 누가 통과할 수 있다는 거요!”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대체 누가 이 다리를 건널 수 있다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중주성 전체에서 다리의 함정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천제현이 유일하리라.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이 다리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걸로 모자라 괴물 떼까지 나타나다니, 해도 너무했다.
들어온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일행을 셋이나 잃었단 말인가.
“포기하긴 아직 일러요!”
천제현이 끝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벌은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이에요. 그러니 잡아온 사냥감을 바로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벌집에 가둬둘 테니 바로 쫓아가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벌집이라고요?”
임목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벌들조차 상대를 못해 이 지경이 됐는데 벌집에 무슨 수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방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사냥감을 찾는 건 제일 서열이 낮은 일벌들이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 벌집엔 여왕벌 같은 놈이 앉아 있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 상태라면 벌집은 고사하고 이 다리를 다 건널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방법이 있어!”
천제현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거대 벌 사체 몇 개만 가져 오겠어?”
그의 말에 임목과 방한이 조심스럽게 그럭저럭 형체가 보존된 거대 벌 사체 두 개를 끌고 왔다.
“이 거대 벌이라는 마수는 감각기관이 퇴화된 데다 지능도 높지 않아.”
말을 멈춘 천제현이 검을 들어 거대 벌의 사체를 반으로 가른 후 그 단면에서 촛농처럼 걸쭉하고 누런 액체를 긁어냈다. 그 액체에서는 특이한 냄새가 났다.
어느새 운요도 천제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천제현은 그런 운요를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건 밀랍이라고 하는 물질이에요. 이것을 몸에 바르면 공격을 피해갈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임목과 방한은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용병 신분인 그들은 이렇다 할 지식이 없었다. 만약 천제현의 말대로 벌떼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벌집으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일행 셋을 버리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위험할 걸 뻔히 알면서도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거대 벌들은 대체로 거인 노예들보다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놈들을 죽였음에도 시련 점수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죽여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빨리 이 거대 벌집을 통과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천제현으로서는 끌려간 남궁혜와 풍채향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는 위험할 걸 알면서도 제 발로 벌집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천제현과 운요, 임한, 방한은 온몸에 밀랍을 발랐다. 그러나 그 효과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재빨리 움직이지 않을 경우 나머지 일행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천제현을 따라 걷던 운요는 거대 벌들이 주변을 스쳐가면서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자 그제야 안심하고 감탄했다.
천제현은 정통 학문뿐만 아니라 잡다한 지식에도 정통한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채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데 언제 그 지식들을 다 습득했단 말인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책을 읽었을 리도 만무한데.
마침내 벌집이 일행의 눈앞에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 벌집을 살펴본 임목과 방한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용병인 둘에게는 모험이 일상이므로 대륙의 동서남북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심지어 마수 소굴에 들어가 마수 새끼를 사냥하거나 알을 훔치는 것도 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상황을 접한 둘은 여태까지 자신들이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은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다리 끝은 시작점과 같은 낭떠러지였고 전방에 새로운 미궁으로 이어진 거대한 문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는 거대 벌 천지였으며, 바닥에도 각종 분비물이 널려 있었다.
미궁의 문은 절벽 한가운데 있었다.
절벽 꼭대기에는 어두운 금색 물체가 거대한 종기처럼 솟아 있었는데, 그것은 빼곡하게 자리 잡은 금속 질감의 육각형 벌집 수천 개였다.
그 벌집은 장엄하면서도 기괴한 건축물 같아 보였다.
‘저 안에 거대 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생각을 한 운요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원래 벌은 나무에 수직으로 매달린 집을 짓는다. 그런데 저 거대 벌들은 산봉우리 전체를 차지하고 앉아서 거대한 소굴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말문을 잃은 세 명 옆에서 천제현이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운요가 말했다.
“저 벌집에는 방이 수천 개는 돼 보이는걸. 그러니 각 방으로 통하는 길은 더 많을 거야. 미궁보다도 훨씬 복잡할 거라고. 우리 일행이 어디로 잡혀갔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하나씩 뒤지면 몇 년이 지나도 찾지 못할걸.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 저 괴물들도 진화할 거란 말이야.”
그때, 휙하는 소리가 나더니 작고 하얀 그림자 하나가 천제현의 어깨 위에 나타났다.
새끼 여우가 또다시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운요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설마 이 여우가?”
“이 녀석이 다른 재주는 없어도 찾는 거 하나는 잘하거든요. 아마 우리 일행을 찾는 것도 문제없을 거에요.”
하지만 호언장담을 하는 천제현의 속도 그리 태평하지는 않았다.
‘아마가 아니다! 반드시 문제가 없어야 해!’
새끼 여우는 주인의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항의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지만, 천제현은 여우의 반응을 무시하고 꼬리를 잡아 들어 올렸다.
“자, 빨리 갔다 와!”
이 예의도 모르는 주인 같으니!
아직 협상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새끼 여우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벌집을 향해 달려갔다.
벌집 안은 벌들의 분비물로 축축했고 곳곳에 번데기와 유충들이 바글거렸으며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행히 벌의 크기가 큰 탓에 사람도 벌집 안을 수월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온몸에 밀랍을 바른 새끼 여우는 코를 킁킁거리며 복잡한 벌집 안으로 들어갔고, 네 사람은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넷은 새끼 여우를 쫓아가면서 수많은 벌들을 만났다.
어떤 방은 공간이 매우 커서 수백 마리의 거대 벌이 들어 있었는데도 발붙일 자리조차 없었다. 그 벌들의 수는 사람 머리카락 수만큼 많아 보였다.
천제현 덕에 그 벌들과 부딪히지 않고 잠입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생으로 달려들었다가는 삽시간에 온몸이 찢겼으리라.
끼잉!
그때, 새끼 여우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그걸 본 천제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찾았구나!”
넷은 새끼 여우가 향하는 거대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거대 벌들이 먹잇감을 저장해놓는 장소로, 꽤 공간이 컸으며 독특한 향기가 났다.
임목과 방한이 의아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대체 뭐가 있길래 이렇게 향기가 좋지?”
방 안에 실내 수영장처럼 열 개가 넘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각각의 웅덩이 안에는 옅은 금색의 액체가 들어 있었고, 괴상하게 생긴 일벌이 열심히 재료를 나르고 있었다.
“여긴 벌의 양조장인 것 같아! 일반적으로 벌집 안에는 모두 이런 장소가 있지. 꿀벌이 모은 꽃가루를 양조장에 넣고 발효시키면 최종적으로 벌꿀이 만들어지는 거여.”
천제현의 목소리가 갑자기 달라졌다.
“이 벌들은 체구가 엄청나니 꽃가루를 모으지는 못할 테고. 분명 약초나 영약 등 각종 생명체들을 잡아와 생명의 정수와 영력을 추출한 후 특수한 방법으로 양조를 하는 것 같아! 이것들은 거인들이 술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고, 그래서 거인의 꿀이라고 불러!”
그때, 새끼 여우가 흥분한 듯 크게 한 번 소리를 지르더니 웅덩이 안으로 몸을 날렸다.
여우는 웅덩이 속에서 아직 채 만들어지지도 않은 꿀을 탐욕스럽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걸 본 천제현이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설마 이 꿀들이 시련의 탑에서 만든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물질이란 말인가?”
새끼 여우의 행동이 그 대답이었다.
그놈이 들어간 웅덩이 표면에 기포가 생기는가 싶더니 꿀물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초가 지나자 전부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운요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한 거야?”
그 웅덩이는 사람이 들어가 수영할 수 있을 정도로 깊었다. 최소 1~2장은 됐으리라.
그러니 그 안에 있는 꿀물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 것을 1분도 채 되기 전에 해치워 버리다니.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천제현이 일행을 보며 말했다.
“거대 벌이 만든 꿀은 보약 중에서도 특효약이에요. 최상품 영약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웅덩이 안에 있는 것들은 전부 미완성품이라 거대 벌의 독과 분비물이 섞여 있을 거예요. 어차피 우린 먹을 수 없으니 저놈에게 줘버리죠! 이봐, 일단 사람부터 찾으라고!”
새끼 여우는 다시 남궁혜와 풍채향을 찾아 나섰다.
양조장의 제일 안쪽에는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거긴 재료 창고 같았다.
영약이며 약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그 한가운데 반투명한 막으로 꽁꽁 싸인 채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