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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217화 (214/729)

# 217

제217장 앞에는 함정 위에는 거대 벌

일행은 멍하니 눈앞의 공간을 바라봤다.

앞쪽에서 통로가 끊겨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건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어두컴컴한 심연. 그 무저갱을 본 일행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빨리 지도를 봐봐!”

지도를 펼친 천제현이 손가락으로 비밀통로를 따라갔다.

여태까지는 아무 표시도 없던 지도에 섬처럼 보이는 지형이 생겨 있었다. 그리고 그 지형 위에는 천족 문자로 ‘거대벌집’이라는 글씨가 써있었다.

“거대벌집? 그게 뭐지?”

앞을 살피던 임목이 소리쳤다.

“앞쪽에 돌다리가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따라 앞을 바라본 일행은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쩍 벌렸다.

허공 한가운데 돌다리가 떠 있었다.

하늘과 땅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암흑 그 자체인 심연 속에 그 돌다리 하나만 다른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듯 무심하게 공간을 가로질렀다.

일행은 괴이하면서도 쓸쓸해 보이는 그 광경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돌다리의 끝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세상에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 있다. 그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으니까.

“어차피 다른 길은 없어. 저 거인들한테 맞아서 고깃덩어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태어나 한 번도 도전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는 남궁혜가 먼저 돌다리에 올라섰다.

“가자고! 내가 앞장설게!”

“잠깐만요!”

천제현이 다리를 천천히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이 다리, 조금 이상해요. 함부로 올라섰다간 문제가 생길 거예요.”

‘괴력의 철갑 거인과 진화한 외눈거인이 뒤를 쫓는 상황에서 다리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금 장난해?’

그러나 천제현이 문제가 있다고 했으니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일행은 발걸음을 멈추고 다리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 돌다리는 끝없는 허공 한가운데 떠있어 매우 좁아 보였지만, 실은 너비가 3장을 넘을 정도로 꽤 넓었다.

돌다리의 바닥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수정판이 깔려 있었는데 수정판 하나하나에 모두 마력진이 새겨져 강력한 마력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함정과 기관장치에 특히 민감한 용병 출신의 임목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리 곳곳에 함정이 설치된 것 같습니다.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뎠다간 목숨이 위험해질 거예요.”

“맞습니다. 함부로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됩니다.”

천제현이 다리 바닥에 깔린 수정판을 몇 분 동안 자세히 살펴본 후 말했다.

“다행히 주문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으니 제가 딛는 곳만 그대로 밟으며 따라오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거예요.”

운요가 주변을 살폈다.

아름다운 수정판 가득히 주문이 새겨져 있었지만, 그녀의 견문과 능력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도 고대 문명의 유산인 것 같았다.

천제현은 부적 주문으로 이뤄진 진법을 깰 자신은 없었지만, 함정을 피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모두 제 발을 잘 보세요. 잘못 밟으면 안 됩니다.”

말을 마친 천제현이 돌다리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석판을 밟자 석판이 눈부신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제현은 신경 쓰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석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밟은 석판들은 하나같이 밝은 빛을 냈으나 함정이 작동하지는 않았다.

나머지 일행 여섯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제현이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시련의 공간에서 꼼짝 없이 갇혀 버릴 뻔했잖아!’

일행은 조심스럽게 천제현의 뒤를 따라갔다. 걷는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30분쯤 걸었을까, 돌다리를 반쯤 걸어왔을 때였다.

위이이잉!

갑자기 사방팔방에서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돌다리 주변의 무진 허공에 1장이 넘는 거대한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괴물들은 검정색과 노란색의 곤충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칼날처럼 예리한 발톱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꼬리에는 새까만 독침이 달려 있었다. 마치 벌이 거대화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괴물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빽빽하게 몰려든 모습이 최소 100마리는 넘어 보였다.

운소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런 망할! 여기가 왜 거대 벌집이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여긴 거대 벌의 서식지였던 거예요! 우리가 말벌 소굴에 발을 들인 거라고요! 어떡하죠!”

그러자 남궁혜가 그녀를 윽박지르며 말했다.

“고작 벌레 몇 마리에 무슨 호들갑이야! 창피하지도 않아?”

그러자 운소가 더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벌레라고요? 이봐요, 누님! 저것들이 어딜 봐서 벌레입니까? 세상에 저런 벌레가 어디 있어요? 이 미궁에서 벌레 같은 존재는 우리밖에 없다고요!”

일행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거대 벌들은 아무리 봐도 좋은 놈들 같지 않았다. 가뜩이나 돌다리에 새겨진 진법 때문에 마음대로 마력도 쓰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괴물들의 습격이라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운요가 팔을 휘두르자 뇌령주가 위로 떠올라 그녀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때, 귀를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셀 수 없이 많은 거대 벌들이 폭탄처럼 돌다리 중앙의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해치워 버려요!”

천제현이 검기를 발사하자 거대 벌 한 마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는 생각보다 강한 놈들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콰과광!

두 토막이 난 거대 벌의 사체가 10장 앞의 석판에 떨어져 함정이 작동됐다.

함정에서 번갯불 한 줄기가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 오르더니 순식간에 거대 벌의 사체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말 그대로 잿더미였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 재가 날아가자 맨들거리는 수정판 위에는 먼지 한 점 남지 않았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일행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돌다리는 죽음의 다리다!’

괴물들의 공격을 피하다가 자칫 한 걸음이라도 잘못 떼면 방금 전 그 거대 벌 꼴이 되리라.

뇌령주가 하늘 높이 치솟아 거대한 번개막을 만들었다.

번개막에 닿은 거대 벌들은 그 즉시 전기구이가 되어 튕겨나갔다.

“내 마력에는 한계가 있어. 방어막의 크기가 너무 커서 오래 못 갈 거야!”

운요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빨리 저놈들을 해치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부 끝장이야!”

“풍운검가!”

지금이야말로 풍채향이 능력을 보여줄 기회였다. 그녀는 바람 속성의 수련자로 원거리 공격에 능하고 공격속도가 빨랐다. 게다가 풍운검가는 밀집된 상대를 공격할 때 더없이 유리했다.

수없이 많은 푸른색 검기가 썰물처럼 덮치자 거대 벌들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괴물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채향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공격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숫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놈들이 돌다리를 빽빽하게 둘러싸는 바람에 이동 속도까지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그때, 거대 벌들이 꽁지를 들어 독침을 세우기 시작했다. 검녹색 독침은 소름 끼치도록 번들거렸다.

운소가 땀을 닦으며 외쳤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휙휙휙휙!

수백 개의 독침이 돌다리를 향해 비처럼 내리 꽂혔다. 어찌나 빠르고 많은지 거대한 그림자가 밀려오는 듯 보일 정도였다.

독침이 번개막에 닿아 폭발하자 콩 볶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운요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안 되겠어. 독침이 너무 많아. 내 번개막은 형체가 없는 방어 수단이라고. 이렇게 많이 쏘아대면 막을 수가 없어!”

번개와 화염은 모두 명확한 형체가 없는 물질이기 때문에 방어를 할 때는 금속이나 흙, 얼음 등의 속성이 훨씬 유리했다.

번개막은 자동으로 힘을 응축시켜 독침을 폭발시키므로 그 과정에서 마력 소모가 엄청났다. 그러므로 한 번 방어를 한 후에는 다시 힘을 모아야 했는데, 이렇게 빽빽하게 날라오면 과부하에 걸리는 것이다.

결국 독침이 번개막을 뚫고 일행을 향해 날라오기 시작했다.

“빙산 방패!”

방한이 온몸에서 흰색 기를 뿜으며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냈다. 독침은 방패를 깊숙이 뚫고 박혔지만 방패를 부수지는 못했다.

“가자!”

방한이 그 거대한 방패를 치켜들고 비처럼 쏟아지는 독침들을 향해 날아갔다.

“얼음 폭발!”

그의 외침과 함께 방패가 폭발하더니 수많은 파편으로 변해 사방을 향해 날아갔다. 그 통에 적지 않은 거대 벌들이 피하지 못하고 무저갱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했다.

마력이 강하지 않은 방한은 큰 피해를 주지 못했고 다시 한 번 독침 공격이 이어졌다.

일행은 황급히 각자 방어 무공을 시전해 독침을 막았다.

그러다 독침 하나가 일행 근처의 수정판에 박히자 즉각적으로 큰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인해 녹색 독기운이 구름처럼 퍼지며 일행을 향해 덮쳐 오기 시작했다.

일행의 얼굴빛이 납빛이 되었다.

‘큰일 났다!’

독침에도 수정판이 가동된다. 그 말은 독침을 방어하는 동시에 독침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흡수!”

임목이 버드나무 정령을 소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를 회복한 버드나무 정령의 가지가 독구름을 향해 뻗어나가 독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제현이 소리쳤다.

“방어하지 말고 전부 공격하세요! 저놈들을 없애 버려야겠어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그렇다면 아예 방어를 포기하고 배수진을 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가능한 한 빨리 저 망할 벌레들을 없애 버리는 거다.

“알겠습니다!”

“뇌조!”

운요가 두 손을 모으자 번개막이 뇌령주를 중심으로 응축되어 7, 8장 가량의 거대한 새가 되었다. 그 새는 날개를 펴고 거대 벌을 향해 날아갔다.

풍채향이 그 뒤를 이어 검기 수십 발을 쏘았다. 원거리 공격이 약한 나머지 일행들도 온 힘을 다해 그들의 공격을 엄호했다.

현혼 경지의 수련자답게 운요의 뇌조가 지나가는 곳마다 거대 벌들이 일망타진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거대 벌 수십 마리를 해치우자 남궁혜가 희색을 보이며 소리쳤다.

“좋았어!”

이 속도로 간다면 얼마 못 가 저 괴물들을 전부 소탕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때.

새까만 거대 벌 한 마리가 등장했다.

그 벌은 다른 놈들과 다르게 몸 전체가 금속처럼 번들거렸다. 놈이 쏜살같이 날아오며 낫 같은 앞다리를 크게 한 번 휘두르자 검기와 같은 기운이 돌다리를 향해 발사되었다.

“젠장!”

저게 바닥에 떨어진다면 최소 5~6개의 함정이 가동될 것이다. 게다가 발동 되는 것들이 어떤 함정일지 누가 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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