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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193화 (190/729)

# 193

제193장 이회전

항호, 임목, 방한이 차례로 쓰러지고 천제현과 풍채향, 풍청운 세 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다시 천제현의 순서가 돌아왔다.

“3번 경기장, 운소와 암우개!”

‘뭐라고? 운소?’

천제현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운소는 황당해서 게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젠장,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필이면 대장을 만날 게 뭐람.’

결국 그는 싸워볼 생각도 안 하고 손을 들었다.

“제가 졌습니다!”

그의 말에 관중석이 시끄러워졌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운소는 이번 경기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여태까지 진행된 경기에서 모두 선전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가 칼을 뽑으면 혼성 3성의 고수도 막아내리란 보장이 없었는데.

그런 그가 어째서 겨뤄보지도 않고 항복한단 말인가.

“머저리!”

“비겁한 놈!”

“네가 순위전에 진출한다는 데 돈을 걸었는데!”

사방에서 욕설이 들렸다.

그러나 운소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음껏 떠들어대라지!’

그 모습을 본 운천학은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운소를 탓하지는 않았다.

운소는 천제현을 따라 경기장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형님, 형님을 위해 천부지와 싸울 때 일부러 실력을 전부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전 지금 심신이 피폐해졌으니 이제 형님이 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정신적 피해라고?”

천제현이 코웃음을 쳤다.

“너처럼 얼굴이 두꺼운 놈도 사람들의 쑥덕거림에 신경을 써?”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나? 나한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고!’

그러나 운소가 채 말대꾸하기도 전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번 경기장, 풍채향과 남궁혜!”

‘풍채향과 남궁혜라고?’

운소의 눈이 반짝였다.

“큰 누님의 경기군요! 이건 놓칠 수 없지요! 형님, 빨리 갑시다!”

풍채향과 남궁혜는 여러 면에서 놀랍도록 비슷했다.

무엇보다도 둘 모두 혼성 2성 정점의 실력자로, 경국지색의 어마어마한 미인이라는 점이 그랬다.

나이 또한 열아홉 정도로 비슷했으니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풍채향은 오랜 시간 중주성 사람들에게 폐물 취급을 받아왔으나 얼마 전 갑자기 경맥이 뚫린 후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 혼성 2성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친은 바로 신풍후, 풍운천이다.

중주성 사람치고 풍운천의 딸 사랑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는 딸의 경맥이 막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영단이며 보약들을 아낌없이 그녀에게 투자했다.

심지어 자신의 마력을 소진하면서까지 풍채향의 마력을 끌어 올려주고자 눈물겨운 노력을 했었다.

풍채향은 경맥이 좋아지자마자 바로 푸른 난새 정령을 각성했고, 십여 년 동안 무공을 섭렵한 것이 그제야 빛을 보며 눈부신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력으로 어제 있었던 예선 경기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며 수많은 참가자들을 쓸어 버렸다.

아직 혼성 3성의 경지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녀의 능력이라면 낙금사 같은 고수들과도 충분히 겨뤄볼 만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참가자였다.

한편, 남궁혜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사원 중 하나인 주작원의 장원이며, 중주학당 역사상 최강의 신입생이라는 것 외에는. 그러나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운소의 뇌정삼도를 막아낸 걸로 봐서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라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선을 끄는 건 남궁혜의 정령이 봉황이라는 점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신급 정령은 중주성의 그 어떤 정령보다도 강할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그녀는 왕가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가 사람으로, 그녀가 익힌 분천공 역시 남하국 최강의 무공 중 하나였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남궁혜 또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정말이지 기대되는 전투가 아닐 수 없었다.

곧이어 두 사람이 경기장 위에 올라왔다.

단출한 빨간색 전투복을 입은 남궁혜는 대담하고 섹시해 보였다. 옥 같은 다리는 희고 길었으며, 티 한 점 없는 두 팔은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비록 가슴은 공화련보다 작았지만 풍만하면서도 아름다웠고, 움직일 때마다 살짝 살짝 가슴골이 드러났다.

불꽃 같이 붉은 머리는 시원하게 하나로 묶어 올렸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얼굴에 머리칼이 날려 더욱 야성적이고 매혹적으로 보였다.

풍채향은 오늘도 고급스러운 궁중 여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옥실로 짠 천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그녀는 공주처럼 고귀하고 우아해 보였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은 폭포수처럼 어깨를 스치고 허리께까지 닿아 있었는데, 한 가닥도 흩어지지 않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빼어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아 온화하면서도 평화로운 느낌을 줬다. 그야말로 고귀하면서도 누구나 말을 걸어보고 싶은 친근감을 주는 공주 그 자체였다.

‘아름답다!’

‘이런 게 눈을 정화시킨다는 거군!’

빼어나게 아름다운 두 미녀 고수의 대결.

남궁혜의 실력을 잘 아는 풍채향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가볍게 허리춤으로 가져간 그녀는 천천히 맑은 빛을 뿜는 보검을 뽑았다.

검이 뽑히는 순간.

평화로웠던 경기장에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명검, 신풍이다!”

“신풍후의 신풍검이구나!”

“최상품 혼기야! 저 정도면 검에 영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성주와 원장을 포함한 사대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검을 바라봤다.

그 검은 신풍후 풍운천이 젊을 때 사용하던 것으로, 한때 마수령 족장들을 벤 것으로 유명한 무기였다.

‘신풍후가 자신의 검을 딸에게 줬구나!’

신풍검을 본 천제현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품질 면에서 보면 신비로운 힘을 지닌 유명검이 신풍검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명검은 오랜 기간 봉인된 터라 힘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원소원석을 사용했는데도 힘을 전부 회복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지난날의 위용을 떨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저 신풍검의 위력은 지금의 유명검과 비슷하지 않은가.

연체 경지일 때 풍채향은 정령급 무기인 추수검을 들고 다녔었다. 더 좋은 무기를 지녀봤자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성 경지에 오른 지금의 풍채향에게 혼기인 신풍검은 날개를 단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주리라.

신풍후는 딸이 자신의 계승자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흥! 너무하네!”

운소는 참지 못하고 씨근덕거렸다.

“저 보검은 뭐란 말이야! 우리 누님하고 공평하게 겨루라고!”

“어리석기는!”

천제현이 운소의 머리통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

“무기 또한 실력이야! 그럼 내가 유명검을 들고 너와 싸우면 너는 그것도 비겁하다고 할 거야?”

풍채향은 요요한 빛을 내뿜는 보검을 들고 남궁혜를 향해 예의 바르게 포권을 했다.

“남궁 아가씨, 시작하시지요!”

남궁혜는 입을 삐죽거리며 불량스럽게 대꾸했다.

“아니, 그쪽이 먼저 시작하지! 힘 조절에 실패해서 신풍후의 금지옥엽한테 상처라도 내면 어쩌라고!”

성격이 좋은 풍채향은 남궁혜의 가시 돋친 말을 듣고도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이윽고 맑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하늘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푸른 난새가 광풍과 함께 등장한 것이다. 엄청난 위압감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푸른 난새는 바람 계열 성수(聖獸)이므로 풍채향의 속성 또한 바람이었다. 이를 보아 그녀가 신풍후의 뒤를 잇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새 형태의 정령은 그 주인에게 공중 부양의 능력을 준다. 풍채향은 그 능력을 이용해 가볍게 도약한 후 하늘로 올라가 푸른 난새와 한 몸이 되었다.

이윽고 그녀가 신풍검을 몇 번 휘두르자 푸른색 검기가 교차되며 힘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폭풍처럼 모아진 검기는 화려하면서도 공포스러웠다.

“풍운검가(風云劍歌)구나!”

“신풍후의 절기!”

검을 사용하는 천제현은 이 독특한 검법을 본 순간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린 채 시선을 고정시켰다.

천성하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검법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해서는!”

남궁혜는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자신만만했다. 상대가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난 것 같다 판단한 그녀는 비로소 공격 태세를 갖췄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화염처럼 이글거리는 마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곧이어 청아한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허공에서 마력이 폭발했다. 그 통에 경기장 반이 붉은 빛에 뒤덮이고, 하늘의 구름까지 붉게 보였다.

“엄청난 마력이다!”

“남궁혜의 마력은 같은 단계 수련자보다 최소 3배는 강해 보이는걸!”

“봉황 정령 때문인가?”

사대 가문 일족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풍운천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풍채향의 수준은 남궁혜와 비슷했지만, 마력만 놓고 봤을 때는 남궁혜에게 몇 수 접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푸른 난새 정령은 봉황에 비할 바가 못 되었기 때문이다.

푸른 난새의 마력 증폭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난새가 내뿜는 푸른 빛 역시 봉황에 의해 반 이상 잠식당해 버렸다.

고대 신수의 위엄 앞에서 성수인 푸른 난새조차 빛을 잃는 것이다.

풍채향의 푸른 난새 정령은 천성하의 황금교룡검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봉황 정령이 그 모두를 뛰어넘고 있었다.

전투에서 마력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령은 주인의 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정도로 강한 정령을 갖고 있으면 다른 부분에서 부족한 게 있어도 충분히 만회 가능했다.

푸른 난새와 봉황이 공중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인 데다 최상품 혼기까지 지니고 있는 풍채향이 조금 유리했다.

“내 주먹 맛부터 좀 보시지!”

남궁혜가 붉은 머리칼을 날리며 오른 주먹을 내지르자 거대한 추 같은 주먹 앞에 풍채향이 모은 마력 일부가 흩어져 버렸다.

그 바람에 경기장 전체가 진동했다.

풍채향은 화들짝 놀랐다.

남궁혜의 공격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남궁혜가 가까이 다가왔더라면 자신은 그대로 패배했으리라.

“구천의 바람신이여, 내게 돌풍의 힘을. 무서운 하늘의 위엄이여, 내 검으로!”

신풍검의 움직임에 따라 푸른 마력이 수십 개의 검기로 갈라졌다.

곧이어 수십 줄기의 검기가 한 데 모이더니 빛으로 이뤄진 초승달 모양 칼날을 만들며 풍채향의 몸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점점 속도를 내면서 육안으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며 예리한 바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풍운검가인가?”

검술 가문으로 유명한 천씨 일가도 풍운검가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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