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제191장 일회전
사실 직위로 따진다면 신풍후는 아무런 직위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중주의 수호자이자 남하팔후의 한 명이었다.
게다가 신풍후, 그 석자의 이름의 무게는 성주의 직위보다도 무거웠다.
풍씨 가문은 원래 남하국 본성의 명문세가로써, 마수들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풍운천은 가문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웠고, 살아서 돌아온 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풍운천은 그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워 신풍후에 봉해졌으며, 20년 전에 남은 가족들을 데리고 중주로 오게 되었다.
그 치열하고 참혹했던 전장에서 풍씨 가문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풍운호, 풍운룡은 풍운천의 동생들이기는 하지만 친형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풍운천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약화시켰고, 풍운호와 풍운룡의 직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가주의 자리도 그들에게 양보하여 그들이 풍씨 가문에서 주류가 되게 하였다.
풍운천의 외동딸이 선천적으로 경맥이 막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풍씨 가문은 자원낭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진귀한 보물을 그녀에게 사용하였고,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풍운천은 원래 가주였고, 가문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지만,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다. 그러니 풍씨 가문이 어찌 그의 후손을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풍씨 가문은 바로 이러한 가문이었다.
사실 풍운천이 세운 공을 생각해볼 때 풍씨 가문은 중주 전체를 다스리는 게 옳았지만, 마수와의 전장으로 인해 가문의 인원이 많지 않았기 중주를 다스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중주의 권리를 너무나 쉽게 양보한 풍씨 가문의 덕과, 풍운천의 강함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풍씨 가문과 적대하려 하지 않았다.
“형님을 뵙습니다!”
“상석에 앉으시지요!”
중주성의 성주인 풍운룡도 신풍후 앞에서는 매우 예를 차렸다. 풍운천은 사양하지 않고 바로 최고 상석에 가서 앉았다.
“시작했는가?”
“이제 시작합니다!”
풍운호는 중주학당의 원장으로 이번 대회의 심판을 맡고 있었다.
“대회를 시작합니다!”
금종이 다시 한 번 울렸다.
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3번 경기장, 제1경기!”
“암우개 대 천명”
천제현은 어리둥절했다.
‘응?’
상대가 뜻밖에도 천씨 성을 가진 사내였다.
많은 거물들이 천제현의 첫 시합에 관심을 가졌다.
운천학이 일어서며 말했다.
“저 녀석이군!”
천성하는 눈을 크게 뜨고는 검과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천제현을 훑어봤다.
“저 녀석 말입니까?”
당연히 풍운천도 천제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천제현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후 말했다.
“변신술이 꽤 괜찮군. 나도 간신히 알아볼 정도이니, 이 많은 사람이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군.”
천명은 천씨 가문의 문객이었다.
천씨 가문은 운씨 가문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운씨 가문이 학술 가문이라면 천씨 가문은 무술 가문이었다. 운씨 가문이 중주의 학자들을 대대적으로 초빙하고 있는 반면, 천씨 가문은 무예에 소질 있는 사람들을 모아들이고 있었다.
천씨 가문 사람들의 실력이 운씨 가문 사람들보다 강한 것은 천씨 가문이 더 좋은 대우를 해줬기 때문이다.
물론 천하에 공짜란 없는 법. 천씨 가문은 대우가 좋은 만큼, 조건도 매우 까다로웠다. 최고 대우는 공봉(供奉)이고, 최하는 문객이었는데, 천씨 가문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 성을 천씨로 바꿔야 했다.
천명도 마찬가지였다.
천명은 원래 유명한 젊은 기재였다. 그러다 천씨 가문의 눈에 들어 높은 가격에 천씨 가문에 팔리게 된 것이다.
10년 안에 천씨 가문을 위해 공을 세우게 된다면, 천씨 가문은 조건대로 최상급 무공을 전수하고 그를 키우게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천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천씨 가문의 사람들은 천명을 보고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장로가 말했다.
“천명의 자질은 천씨 가문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지요.”
“그러게 말이오!”
또 다른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이제 스무 살인데 벌써 혼성 2성에 들어섰지요. 천씨 가문의 일반 장로를 이미 뛰어넘었어요.”
“가장 놀라운 것은 그의 검술이 이미 경지에 이르렀다는 거예요. 동급의 고수 중에는 천명의 검을 받아낼 자가 없을 겁니다. 아마 우리도 막아내기 힘들 거예요.”
“물론! 우리 천씨 가문의 검술은 남하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오. 과연 막아낼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소?”
“저 무명의 자유 수련자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오!”
천씨 가문은 자신만만해 했다.
오직 천성하만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때, 천명이 만검(彎劍)을 뽑으며 차갑게 천제현을 쳐다봤다.
“패배를 인정해라! 나는 천씨 가문의 사람이다. 너 같은 자유 수련자가 나와 싸우게 된다면 죽게 될 것이다!”
천제현은 검도 뽑지 않고 두 손으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이런 유치한 말이나 하고 있다니, 한심하지 않아요? 그대가 천씨 가문의 노예가 아니라 진짜 천씨 가문의 사람이어도 상관없어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덤비기나 하세요!”
‘천씨 가문의 노예?’
이 한 마디가 천명의 가슴을 후벼팠다.
“네가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스스로를 원망하거라!”
만검을 쥐고 있는 천명이 조금의 미동도 없더니 돌연 천제현을 향해 돌진했다.
만검이 차가운 검광을 그리며 천제현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천명의 몸이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천제현의 앞에 나타났다. 그의 차가운 검광이 엄청난 기세로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천제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검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자는 어찌 피하지 않는 거지?”
그러나 검광이 천제현의 몸을 관통하려는 찰나 천명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제야 모두들 깨달았다.
천명이 수련한 것은 암살류의 무공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흉흉한 공격이었지만 실은 허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이 진짜와 너무 흡사하여 허와 실을 구별하는 것이 실로 어려웠다.
만약 천제현이 그의 공격을 막거나 회피하려는 동작을 취했다면 분명 허점을 노출하여 천제현에게 당했을 것이다.
잔상이 막 사라진 순간 천제현은 검광이 자신의 목덜미를 향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입미!’
천제현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자 차가운 검광이 그의 살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고 지나갔다.
천명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땅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그의 모습이 다시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천제현은 냉소를 지으며 오른 손에 웅후한 마력을 모았다 그러자 두 손가락이 점차 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금강절맥지!”
천제현의 손가락이 공기를 가르며 찔러갔다.
그러더니 두 금빛 손가락으로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던 검을 잡았다.
쨍!
천제현이 손가락에 힘을 주자 검이 두 동강났고, 천명은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몸을 드러내고 비틀대며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간파당했다!’
방금 천명이 보인 것은 천씨 가문의 환신검법(幻身劍法)이었다.
수중의 부러진 장검을 바라보는 천명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난 천씨 가문에서 훈련을 받은 기재다! 그러데 이런 자유 수련자 하나 어떻게 못하다니!’
천명이 이를 갈며 얼굴을 붉혔다. 이내 천제현을 향해 소리쳤다.
“널 죽여주마!”
천명이 다시 마력을 끌어올려 공격을 하려는 순간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바라보자 가슴에 눈처럼 하얀 검 조각이 박혀 있었고,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 안 돼!”
천명은 가슴을 움켜쥐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다가 땅 위에 쓰러졌다.
“이게 천씨 가문의 검술이에요?”
천제현이 쓰러져 있는 천명에게 다가가 마치 축구공 차듯 그의 몸을 경기장 아래로 걷어찼다.
“정말 형편없군!”
그 모습을 바라본 관중들은 모두 놀라 입을 벌렸다.
‘놀라운 솜씨다!’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검으로는 중주, 아니 남하국 최강이라 해도 이견이 없을 정도인 천씨 가문의 검법이 보고 형편없다고?
그런 광오한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이 중주성에 몇이나 있겠는가.
그 말은 천씨 가문에 대한 철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천산하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저놈, 너무 건방지군.”
***
천제현이 경기장에서 내려올 때, 항호도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걸어왔다.
그는 일회전에서 떨어졌다.
그야말로 진짜 자유 수련자였다.
최근 운 좋게도 풍운천의 기명제자가 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기명제자였다. 신풍후의 성격으로 보아 친히 가르칠 리가 없었다.
아마도 그에게 영약 몇 개 던져줬거나, 무공 몇 개 던져줘서 혼자 연습하게 했을 것이다.
평소에는 산속에서 잡일이나 시켰을 테니, 제자라기보다는 하인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중주 시련 참가자들은 대부분 혼성 2성이었고, 심지어 혼성 3성의 고수들도 있었다.
항호는 풍채향이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데려온 자로 일회전에서 떨어진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천제현이 항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임목이라는 용병, 좀 골치 아프겠어.”
“일회전에서 낙금사를 만났다지!”
천제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임목은 정말 재수가 없군.’
임목은 두 번째 경기장에 서 있었다. 그의 상대는 덩치가 큰 거한이었다. 사실 나이는 20여 세에 불과했지만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해서 마치 서른은 족히 넘어 보였다.
거한은 어떤 병기도 지니지 않고, 그냥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굵은 두 팔에는 붉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어떤 부족의 전사와도 같았다.
현무원의 장원 낙금사.
중주 낙씨 가문 용호공자 낙강용 밑의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진 기재였다.
낙금사는 수사자와 같은 위엄어린 눈빛으로 용병 임목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
“미천한 용병 따위가 감히 나를 상대하겠다고? 경고하는데, 가서 네 일이나 하거라. 중주 시련은 너 같은 쓰레기가 올 곳이 아니야.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야!”
임목은 혼성 2성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낙금사는 이미 혼성 3성이었다.
낙금사는 낙씨 가문에서 집중적으로 키운 후계자이다. 가문에서 그에게 쏟아 부은 자원은 분명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니 동급의 실력자라도 보통 수련자들은 결코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하물며 그보다 수준이 낮은 임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임목은 담담하게 말했다.
“양씨 가문도 용병인데, 그렇게 용병을 폄하하는 걸 보니 내가 아닌 양씨 가문을 욕하는 것 같소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양씨 가문 사람들의 낯빛이 안 좋아졌다.
“네 이놈…….”
낙금사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말재간이 뛰어나군. 난 네 같은 놈들을 제일 싫어하지. 오늘 네 주둥아리를 찢어 버려 영원히 말을 못하게 해주마!”
임목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야말로 낙씨 가문의 절학을 배우고 싶었던 참이오!”
“죽음을 재촉하는군! 날 원망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