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제189장 원소원석 흡수
휙!
채 1초도 지나기 전에 이글거리는 검광이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조원의 무기와 갑옷이 박살 나고 호신 마력이 사라지며 불에 휩싸여 버렸다.
‘너무 빠르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어.’
휙휙휙휙!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몇 번 귓가에 스쳤다.
척패가 소년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강력한 검광이 눈앞에 나타나더니 그의 손 안에 있던 무기를 두 동강 내버렸다.
그의 갑옷과 투구도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소년은 그들을 봐주고 있었다.
정말로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열 번은 죽었을 것이다.
간단하게 척패 조 여섯 명의 무장을 해제한 천제현은 다시 검을 등에 메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계속 싸울 건가?”
“우…… 우리가 졌다!”
‘이 소년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우리가 눈이 멀었구나. 저런 자를 조원으로 데려왔으면 채향과도 한 번 붙어볼 만했을 텐데!’
‘후회스럽구나! 부끄럽도다!’
척패 조 여섯 명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평범해 보이는 소년에게 존경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살려주지 않았는가.
그런 배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살려주셔서 감사하오! 우리가 졌소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에 사과 드리는 바요!”
그들은 몇 마디 탄식을 하고는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천제현은 결코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잘잘못을 꼬치꼬치 따지는 게 오히려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놓아준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했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관중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풍채향은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제현은 연체 9성일 때도 엄청난 방어력과 정령의 힘으로 혼성 1성 수련자와 겨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이번엔 신급이라 불리는 검 정령은 소환조차 하지 않았고, 그 강력한 방어무공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진정한 힘의 5할도 사용하지 않은 셈이다.
저 신출귀몰한 검법에 철옹성 같은 방어력, 거기에 상식을 뛰어 넘는 정령의 힘까지 더하면 대부분의 혼성 3성 수련자도 한 수 접고 들어갈 것이다.
‘역시 암우개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한편 풍청운은 천제현의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고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으나 바로 평정심을 되찾고 물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더니.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결승 진출은 어불성설이지. 중주 시련은 어중이떠중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는 일부러 천제현의 귀에 들리게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천제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풍청운이 채향과 어떤 은원 관계이든 그건 천제현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저들 가문의 일 아닌가. 하지만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직접 그 대상에게 말할 것이지, 다른 사람한테 분노를 표출하는 건 무슨 이치란 말인가.
‘채향의 얼굴을 봐서 참고 있는데 저렇게 계속 사람을 도발하다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건가!’
천제현은 겉으로는 매우 평온한척했지만 눈에는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눈빛만큼이나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풍청운이라고 했던가? 너는 자신의 실력에 매우 자신감이 있나봐.”
풍운천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당치도 않아. 하지만 그대를 처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싶군.”
풍청운은 계속 도발했다.
“어때? 한 번 대련을 해볼까?. 내가 십초를 양보하지. 어때?”
‘이렇게 까지 도발을 하다니.’
천제현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풍채향은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두 사람 사이에 가서 섰다.
“청운! 이제 그만해! 불만이 있으면 내게 풀어, 왜 자꾸 내 친구를 괴롭히는 거야!”
“제가 어찌 감히 신풍후의 따님께 불만을 풀 수 있겠어요!”
풍청운은 천제현을 힐끗 쳐다보며 괴이한 말투로 말했다.
“여자의 보호 따위나 받는 쓰레기 같으니라고, 출수를 하지 않으려면 말아라!”
풍청운은 말을 마치고는 거만하게 천제현의 옆을 지나갔다.
풍채향은 매우 미안한 얼굴을 하고 천제현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청운은 오랫동안 외지에서 수련을 하다가 얼마 전에 중주성에 돌아왔어. 그동안 실력이 크게 늘어 그와 정면충돌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천제현은 천성하의 체면조차도 봐주지 않았다.
‘그런데 저놈이 뭐 대수라고?’
하지만 천제현은 매우 궁금해 하며 물었다.
“당신들은 사촌지간인데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거죠?”
풍채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난 청운에게 너무 미안해.”
“왜요?”
천제현이 호기심이 생겼다.
“무슨 일인데요?”
“알다시피 예전에 난 태어날 때부터 경맥이 막혀 있어서 수련할 가치도 없었던 몸이었어. 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은 가장 좋은 자원들을 내게 쏟아 부었어. 그렇게 수많은 귀한 자원들을 낭비했지.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약 내가 없었다면 이 모든 자원들은 청운의 것이 되었겠지. 그랬다면 그의 천부적인 자질로 보아 절대 사대 공자보다 못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서 아가씨한테 앙금이 있었구만요.”
천제현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가씨는 이제 경맥이 막혀 있지 않잖아요. 그리고 천부적인 자질도 그에게 뒤진다고 볼 수 없어요. 몇 년간 체내에 쌓여 있던 영기덕에 아가씨의 성장속도는 미친 듯이 빨라졌어요. 저자가 지금 아가씨한테 못되게 구는 건 아가씨에 대한 질투와 두려움 때문이에요! 저렇게 속 좁은 놈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 거예요. 아가씨도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게 좋겠어요. 아가씨 잘못이 아니에요.”
풍채향의 고운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이 모두가 네가 치료법을 준 덕이야. 아버지께서 비밀리에 너를 만나보고 싶어하셔.”
“신풍후 어르신은 이미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만나보고 싶네요!”
풍채향의 부친이 누구인가.
이에 대한 답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풍채향은 바로 신풍후 풍운천의 딸이었다.
천제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일전에 신풍후가 왜 자신을 도와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에 설령 천제현이 양천랑을 인질로 잡아 양무도를 퇴각시켰더라도, 천남성은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풍운천이 나타나 일을 중재해 줬을 뿐만 아니라 양씨 가문에게 천남성에 오지 못하도록 했기에 천제현은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던 것이다.
‘그 자는 대단한 인물이니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봐야겠군!’
만약 자신이 풍채향을 치료해줬다는 것을 풍청운이 알게 된다면 그는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될 것이다.
필시 천제현을 죽이려 할 것이다.
솔직히, 풍천운은 약하지 않았다.
적어도 풍채향보다는 약하지 않았다.
설사 제대로 된 유명염화겁법의 신출귀몰한 속도와 위력을 본다 해도 풍청운은 여전히 오만하게 천제현에게 십초를 양보할 것이다.
그건 그만큼 풍청운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제현에게 숨겨둔 비기가 아무리 많다 해도 지금 그를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허혼기일 뿐이야. 강해 봤자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선발전이 끝나고 두 조가 올라갔다.
그중 한 조는 당연히 천제현이 속한 조였다.
또 다른 조도 실력이 결코 낮지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자유 수련자였지만 사실은 명문세가의 문객이거나 그들의 젊은 기재들이었다.
이들은 젊은데다가 천부적 자질이 뛰어나 명문세가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들이었다.
‘내일이면 시합이 시작된다.’
천제현은 준비를 해야 했다.
천제현은 돌아간 후에 바로 폐관실에 들어갔다.
폐관실 중앙에는 거대한 돌이 놓여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이 돌은 그 안에 활활 타오르는 녹색 화염을 봉인하고 있었다.
원소원석.
운요가 천제현의 요구대로 원소원석을 사서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
원소원석에 다가가자, 유명검이 갑자기 공명하기 시작했다.
기령이 원소원 안의 에너지를 감지한 것이다. 기령은 그 에너지를 갈망하고 있었다.
“서두르지 마! 어차피 너에게 줄 거니까!”
짙은 남색의 검날이 원석을 찌르자, 날카로운 검 끝이 어두운 불꽃의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원석이 갑자기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정거울처럼 매끄러운 검날 위쪽에 주문이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생겨났다.
유명화가 천제현의 통제에서 벗어나 안에서 튀어 나와 검날을 화염으로 뒤덮었다.
이내 한 줄기 거대한 마력이 강물처럼 유명검 안으로 흘러들어 검에게 엄청난 마력을 공급했다. 유명화는 점점 거세져서 그 강도가 몇 배는 더 상승했다.
또한 천제현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발생하고 있었다.
정순한 영기가 칼자루를 통해 몸 안으로 전해졌고 경맥을 통해 몸 안 곳곳으로 흘러들어 온 것이다..
이 원소원석은 아마도 고급원소 생명체가 남겼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도 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둠의 정수와 화염의 정수가 모두 유명검에 흡수되자 대량의 생명의 힘만 남게 된 영기는 검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기에 천제현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람이 검을 강하게 하고, 검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이 또 검을 강하게 한다.
천제현은 유명염화겁법을 수련하면서 유명검의 위력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유명검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천제현도 역시 그 영향을 받아 강해졌다.
이건 천제현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원소원석에 내포되어 있는 생명의 영기는 고체 상태로 원소와 함께 존재했었다.
이 힘은 직접 빼내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유명검에 이런 힘을 빼내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잘 됐군!’
천제현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온몸의 경맥을 열었다. 그러고는 체내로 밀려들어오는 영기를 받아들여 모두 정련시켰다.
생명의 힘의 규모는 거대했다.
천제현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천제현은 체내의 마력 규모가 점점 거대해져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천우일조의 기회를 어찌 그냥 넘길 수 있단 말인가.
‘힘을 모아 단번에 모든 혈맥을 뚫어 버리자!’
천제현의 몸에 새로 생겨난 거대한 마력이 단전에 모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