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제184장 무도관에 찾아온 심빙우(3)
도장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천제현과 남궁혜는 다음 계획을 의논하고 있었다.
“기린무도관의 수익이 나쁜 건 아니지만 발전에는 한계가 있어. 지금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적상회를 위해 길을 닦아 놓는 거잖아. 기적상회야말로 우리의 목표니까. 눈앞의 유혹에 빠져 본말이 전도되면 안 되지.”
“경호에게 연락해서 순조롭게 자원 정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첫 번째 자음탑도 비밀리에 완성되었고요. 이제 다음 자음탑 건설을 계획 중이죠. 동소어가 수정통신기 도안을 설계하면 천진상회의 공장에서 바로 생산을 시작할 거예요.”
‘역시 대장은 다르다!’
남궁혜는 본성에 온 후로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데 천제현은 오자마자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지 않았는가.
언뜻 보기에는 계획도, 준비도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기적상회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있었으니.
천제현이 다시 말했다.
“축음기도 어느 정도 비축이 되면 기적상회를 통해 정식으로 시장에 내놓기로 하지요.”
“이번에 그 축음기 많이 만들었지?”
남궁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나도 좀 살래! 그거 진짜 쓸모 있더라!”
축음기는 완벽한 저장매체로서 향후 일상생활의 각 방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이다. 특히 음악이나 예술 분야에서 엄청난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이면 도장에서 진행되던 수업도 거의 끝났으리라.
그때, 기린무도관의 회원 한 명이 들어왔다.
“누님, 누님을 뵙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바쁜 거 안 보여?”
남궁혜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안 만나! 썩 꺼지라 그래!”
“하지만…….”
그 자는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 태도가 아주 강경합니다. 누님을 만나기 전에는 안 갈 것 같아요.”
남궁혜가 다시 분통을 터뜨리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요.”
천제현이 남궁혜를 막으며 그 자에게 말했다.
“운소에게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하게!”
“네!”
그 자는 급히 운소에게 달려갔다.
남궁혜를 찾아온 건 검은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었다.
검은색 천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나 몸매로 봤을 때 이만저만한 미녀가 아닌 것 같았다.
운소는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도 여자, 특히 미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작자였다.
상대를 보고 눈을 빛낸 운소는 건들거리며 다가가 물었다.
“이봐요, 예쁜 아가씨. 도움이 필요한가요? 먼저 제 소개를 좀 하죠. 전 운소라고 합니다…… 그래요. 도전광마니 무공대사니 하는 별명으로 불리는 게 바로 저예요. 한때 주작 서열 2위 정도의 고수를 쓰러뜨리기도 했죠! 흠, 흠! 어때요? 저한테 좀 관심이 생기나요?”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그 여인은 심빙우였다. 그녀는 여기 들어온 원래 목적 따위는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기린무도관의 흡인력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는 것도 이해가 될 정도로.
심빙우 자신조차도 그 유혹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방금 들은 수업의 내용이 자꾸만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 수업은 고급 내용이라고 했다.
외부인은 다음 강의를 들을 수 없으며 수업을 듣고 싶으면 기린무도관에 가입해야만 했다.
“무도관에 가입하겠소!”
“엥?!”
운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그건 힘들겠는데요!”
심빙우는 살짝 불쾌해져서 말했다.
“문제라도 있는 거요?”
“이봐요, 예쁜 아가씨. 다른 건 뭐든 도와줄 수 있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운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첫 번째 수강생 모집이 벌써 끝나서 한동안은 수강생을 모집할 계획이 없거든요. 그러니 아가씨가 아무리 우리 무도관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도 다음 모집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럴 순 없다.
자신이 지위와 신분까지 내려놓고 기린무도관에 가입하려고 하는데 이렇게까지 체면을 안 세워주다니. 심빙우는 그 점이 못마땅했다.
“규칙이 있으면 변통할 방법도 있을 것 아니오? 사람 한 명 더 받아준다고 크게 문제가 될 리도 없고. 학비는 열 배를 내겠소. 어떻소?”
“아가씨, 그건 아니죠. 저희도 원칙이라는 게 있는데!”
운소는 신념이 투철한 사람인 양 허세를 부리며 덧붙였다.
“무도관에서 정한 규칙이긴 하지만 그걸 만든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쉽게 어길 순 없죠. 죄송하게 됐네요. 돌아가 주세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그게 누군데?’
이때, 심빙우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물었다.
“당신이 말한 그 사람이 혹시, 이번 수업을 진행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오?”
운소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순간,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심빙우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었다.
극도의 흥분과 기쁨, 긴장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 수업을 진행한 자가 기린무도관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더더욱 기린무도관에 가입해야겠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심빙우는 황급히 말했다.
“남궁혜를 불러 주시오. 그녀를 만나야겠소!”
“큰 누님은 그분과 중요한 일을 의논 중입니다. 우리 큰 누님의 성격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지금 귀찮게 했다간 제가 혼 줄이 납니다!”
‘그 자가 지금 이 순간 기린무도관 안에 있다고?’
그녀의 심장이 사정없이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싼 공기까지 달라진 것 같았다.
한편 운소는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머리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에휴, 그럼 잠깐 기다릴래요? 가보고 올게요.”
“아, 아니요. 그냥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소.”
경솔하게 그 자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안 좋은 인상이라도 심어주면 큰일 아닌가.
‘이 여자 뭐야?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안절부절 못하는 태도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그녀를 보고 운소도 할 말이 없어 대꾸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럼.”
심빙우는 원망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렇게 깊은 지식과 지혜를 갖춘 자라면 남하국에서 보기 드문 인물일 것이다.
그녀는 한때 대학자로 유명한 고천추도 만나본 적이 있었다. 박학다식하긴 했지만 그녀의 존경과 숭배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방금 수업을 진행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야말로 심빙우가 일생에서 처음으로 존경의 마음을 품은 인물이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공개수업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생산 분야와 무공, 무학을 아우르고 있었다. 그것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은 각 분야에 정통한 전능형 인재임에 틀림없다.
뛰어난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수십 년간의 연구와 공부를 통해서만 그런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상대는 못해도 운천학처럼 나이 지긋한 노인일 것이다.
이제 그녀는 존경심과 함께 감탄의 마음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는 지식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생을 바쳐 얻은 성과를 전부 대중에게 공개하다니.’
기린무도관의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쳐주는 건 물론이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논문을 쓰고 학술기관에 발표하며 무공과 제약을 통해 더 큰 이익을 얻는 것도 전부 허용하고 있지 않은가.
‘너무나 고매한 일이다! 이렇게 이타적일 수가!’
그녀 역시 명리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황혼이 지자 기린무도관에도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하나 둘씩 흩어졌으나 심빙우는 조각상처럼 여전히 무도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한편, 무도관 안에 있던 천제현은 조급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
그가 답답해하고 있을 때, 운요가 옆문을 통해 들어오며 눈짓을 했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온 건가?’
천제현의 눈동자가 황급히 운소를 향했다.
“만나보라던 사람은 어떻게 됐나?”
“아, 그 이상한 여자 말입니까?”
운소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반나절을 그렇게 기다리네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반나절이나 기다렸다면 그 열정을 높이 봐 줄 만하군. 아가씨, 가서 만나 보세요! 요구 조건이 좀 까다로워도 해달라는 대로 해주시고요. 알았죠?”
“응!”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경씨 일가에 가서 자음탑 상황을 좀 보고 올게요!”
천제현이 운요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운요가 대답했다.
“왔어! 빨리 가봐. 안 그러면 위험해진다고!”
천제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됐네. 그럭저럭 때를 맞췄어. 그럼 빨리 가자!”
운요가 천제현을 바래다주고 있을 때, 운소는 남궁혜를 심빙우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앗!”
심빙우를 발견한 남궁혜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심 이모! 이모가 여긴 어떻게!”
운소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남궁혜를 바라보고 다시 그 여인을 바라봤다.
‘저 여인이 진짜 누님하고 아는 사이였다고? 이상하잖아. 아무리 봐도 20대 같은데 이모는 또 뭐야?’
“언제 오신 거예요?”
남궁혜가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달려갔다.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요!”
심빙우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좌우를 둘러봤다.
“그 강의를 진행한 선배님은 어디 계시지? 함께 있는 것 아니었어?”
“선배는 무슨 선배요?”
남궁혜는 심빙우가 누구를 찾는지 즉시 눈치 채고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가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은 벌써 갔어요!”
‘뭐라고? 갔다고?’
심빙우는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지만, 바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혜야, 너하고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구나!”
“말씀만 하세요!”
남궁혜는 씩씩하게 가슴팍을 쳐 보이며 말했다.
“이모의 일이 제 일이죠!”
“내가 기린무도관에 들어가고 싶은데 말이야.”
그녀의 말에 남궁혜는 하마터면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심빙우였지만, 남궁혜가 그녀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심빙우는 풍신후의 벗으로, 그의 추천을 받아 중주학당의 부원장이 된 여인이었다.
운천학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지위와 신분을 지녔으나 워낙 겸손한 인품이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심빙우는 한때 남궁 가문의 공봉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가문과는 깊은 인연이 있었다.
무예 또한 뛰어나 중주성의 고수들을 통틀어도 그녀와 견줄 자는 신풍후 정도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기린무도관에 가입하겠다니.
남궁혜는 경악과 흥분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