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제182장 무도관을 찾아온 심빙우
사실 운천학은 이미 기린무도관에 대해 알아볼 대로 알아본 상황이었다.
빠른 시간에 기적같이 성장한 기린무도관.
그리고 그 원동력은 축음기라는 신기한 기계와 한창 이름을 떨치고 있는 천제현의 신묘한 강의 덕분이었다.
정체와 그 능력의 끝을 모르는 이상한 소년 암우개.
그리고 그가 관련된 기린무도관에서 갑자기 등장한 천제현의 강의.
운천학은 혹시 암우개와 천제현의 동일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는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제현과 암우개의 행적을 조사했다.
암우개의 행보를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천제현의 행보를 알아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운천학은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근거는 충분했다.
운요가 만시고묘에서 암우개와 만났던 시기에 천제현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운요와 암우개가 헤어진 이후 다시 천남성에서 천제현이 등장했다.
이 정도는 우연이 겹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암우개가 중주에 있는 지금 또다시 천제현이 천남성에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둘 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가!
운천학은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을 가진 이후에 되레 더욱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중주에서 흉명과 악명이 자자했다.
흉명은 양무도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고, 악명은 삼대 가문이 소문을 퍼트린 결과였다.
천제현은 전무후무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나, 삼대 가문과의 원한관계가 너무 깊다.
삼대 가문이 기린무도관을 조사하는 와중에 암우개의 정체를 알게 될 수도 있다.
운천학이 일어나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 늙은이가 직접 조사해보겠습니다.”
그때 낙씨 가문 출신의 고위층 인사 한 명이 급히 말을 꺼넀다.
“원장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기린무도관에 중요 멤버가 한 명 있는데, 그게 바로 부원장의 손자 운소입니다.”
그 말은 들은 풍운호가 쌀쌀하게 한 마디 말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운노인이 맡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심 부원장이 나서는 것이 어떠실지?”
운천학의 안색이 변한다.
‘뭐? 그녀가 맡게 한다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또 다른 부원장에게 쏠렸다.
운천학이 학문을 담당한다면, 심빙우는 무공을 담당했다.
심빙우는 삼대 원장 중 가장 젊은 사람으로, 40살도 안 된 나이지만 수련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녀는 회의 시작부터 모든 것들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심빙우가 천천히 눈을 뜬 순간, 회의실 전체의 온도가 몇 도나 떨어졌다.
풍운호조차도 심빙우를 조금 꺼려했다. 그래서 의견을 구하는 어투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심 부원장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심빙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차갑게 말했다.
“좋습니다.”
운천학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망했다!’
심빙우의 별명은 빙설여왕이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성격은 얼음같이 차가웠고, 일 처리 역시 냉혹하게 처리했다.
심지어 그녀는 신풍후 풍운천의 친한 친우였다. 신풍후의 추천으로 심빙우는 부원장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풍운천의 친우답게 그녀의 경지는 매우 높았다. 그녀의 실력은 운천학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심빙우가 기린무도관을 노리기 시작하면 설령 운천학이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심빙우가 천천히 일어나 돌아서서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풍운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운노인, 심원장의 능력을 아직 못 믿으시겠습니까? 그녀를 보내세요!”
풍운호는 마치 일부러 기린무도관을 괴롭히려는 것 같았다.
운천학은 회의실에서 나와 가문으로 돌아왔다.
운요는 운천학을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와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새로운 소식을 들었어요. 삼대 가문이 암우개에게…….”
운천학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기린무도관 상황이 심상치 않다. 너는 빨리 암선생에게 소식을 전해라. 심빙우가 오늘 내로 찾아가 말썽을 일으킬 것이라고!”
“뭐라고요?”
운요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기린무도관은 완전히 끝난 것 아니에요?”
“내가 직접 움직이기 어려우니, 너는 어서 암우개에게 소식을 전해라!”
운천학이 절박하게 말했다.
“최대한 서둘러라! 시간이 없어! 심빙우는 잔인하고 악랄한 여자이니 그녀는 도리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운요가 급히 떠나고 운천학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제현이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지.’
운요가 기린무도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천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곧 회원 한 명에게 천제현의 위치를 물어봐서 수련 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운요는 곧장 수련장으로 들어가 천제현을 끌어내며 사나운 기세로 말했다.
“무도관을 닫고 며칠 상황 지켜보며 피해 있어!”
천제현이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왜?”
“지금 심빙우가 기린무도관을 찾아 올거래! 어쩌면 심빙우가 폭력적으로 무도관을 부술 지도 모른다고!”
천제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심빙우? 그게 누군데요? 그리고 여기엔 운요 씨가 있잖아요?”
운요는 어쨌든 혼성 4성의 현혼 고수였다.
천제현은 심빙우가 누군지는 몰라도 운요보다 강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운요는 초조한 얼굴로 천제현에게 말했다.
“단순히 삼대 가문 사람이면 내가 너를 도와 막아줄 수 있어. 그치만 심빙우는…… 난 막을 수 없어! 심지어 할아버지가 와도 막을 수가 없다고!”
“운 할아버지도 못 막는다구요? 심빙우가 도대체 누군데요?”
“바보같은 소리! 빙설여왕도 못 들어봤어? 심빙우는 중주성에서 신풍후에 버금가는 고수로 통하고 있어!”
천제현은 생각에 잠겼다.
심빙우라는 인물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천제현이 입을 뗐다.
“무도관을 닫는 것은 상책이 아니에요. 한 때 숨을 수는 있어도, 평생 숨을 수는 없어요.”
천제현은 눈빛을 몇 번 반짝이더니 말했다.
“제게 계획이 하나 있어요. 조금 위험하지만 한 번 해볼 만 해요! 성공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운요는 완전히 어이가 없어졌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야!’
심빙우가 기린무도관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검은색 장포에 달린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얼굴에 얇은 천을 두르고 있었다.
그녀의 언행은 매우 조심스러워서 아무도 그녀가 진혼 급의 초고수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기린무도관 문 앞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필기본 팝니다!”
“필기본 팔아요!”
“최근에 작성된 필기본입니다. 본전도 안 되는 가격 금화 오백 냥!”
영악한 소년 몇 명이 공책 한 무더기를 끌어안고 기린무도관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 소년들은 곧바로 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한 권 다오!”
“나도 한 권 사겠다!”
“나는 기초 제약학 입문2!”
“기초 진법학 입문3을 다오!”
순식간에 몰려든 학생들이 너도 나도 손을 내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연체 경지의 수련자들로 기린무도관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나 학비가 부족해 필기본이라도 구하려는 것이었다.
“흥!”
심빙우의 짙은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얼굴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기린무도관이 무슨 자격으로 감히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거지? 다들 속고 있는 거야! 남궁혜 그 계집애를 어떻게 믿고!’
풍운호는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심빙우는 남궁 가문과 따로 인연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알릴 생각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알게 모르게 남궁 가의 천재로 불리는 남궁혜를 돌봐주고 있었다.
얼마 전, 딸이 천남성을 떠날 때 남궁의가 천제현에게 중주학당의 고위층에 남궁 가문 사람이 있다고 말한 바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심빙우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남궁혜는 중주학당에 온 첫날 심빙우에게 인사하러 온 후로는 다시는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학당에서 싸우고 장난치고 일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무도관을 열었다고?’
만약 무도관을 차린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부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남궁혜다 보니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워줄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금박이 새겨진 흰색 옷을 입은 소년 한 명이 무도관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운소 아닌가?’
“공개수업입니다!”
“공개수업!”
“무도관에서 공개수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개수업은 회원이 아니어도 들을 수 있어요! 인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빨리 신청하세요!”
‘공개수업이라. 한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군!’
조심스러운 언행에 간단한 위장, 말도 안 되는 외모까지 더해져서 심빙우는 20대의 젊은 여성으로 보였다.
그런 그녀를 누가 중주학당의 부원장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중주학당에 이런 미녀가 있다는 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물론 남녀노소 모두가 지식을 구하러 찾아오는 기린무도관에서는 미녀든 아니든 줄을 서야만 했다.
심빙우가 무도관에 들어갔을 때 남은 자리라고는 제일 뒷자리밖에 없었다.
아무려면 어떠랴.
그녀의 수준과 실력이면 모기 소리도 천둥소리처럼 들을 수 있는 것을.
“여신님이시다!”
“남궁 여신님께서 나오셨다!”
남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련복을 입은 붉은색 머리카락의 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거리는 몸매에 불 같은 기운,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그녀에게서는 일반적인 여성에게 찾아보기 힘든 영웅호걸의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그녀를 본 남자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궁혜는 무도관을 한 바퀴 돌며 수백 명의 관객들을 훑어보더니 거드름 피우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행운아들입니다! 기린무도관의 첫 번째 회원 모집이 성황리에 끝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오늘 하루 무료 공개수업을 진행하기로 했거든요!”
심빙우는 더욱 못마땅해졌다.
중주학당에 오고 나서 자신의 수업도 몇 번 안 들어온 남궁혜다.
매일 같이 패거리들이랑 싸움질이나 하러 다니던 계집애가 이제 와서 누굴 가르치겠다고.
‘이 정도로 주제를 모르는 아이였단 말인가?’
그러나 남궁혜는 심빙우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