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제170장 허세 부리게 해줄게
운요는 천제현이 말한 일에 대해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제현의 능력만큼은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운소처럼 수중에 돈은 충분했지만, 다만 그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일지 호기심이 생겼다.
“재미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는 정말 딱이지!”
“어째서?”
천제현이 운소를 살피며 말했다.
“너 허세부리는 거 좋아하잖아! 앞에 나서는 것도!”
운소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뭐 어때서? 남자라면 허세는 있어야지!”
“허세 부리는 자세가 별로라는 거야!”
허세에도 급이 있다면 대사급인 천제현은 전문적이고 예리한 눈빛으로 운소가 앞으로 ‘허세계’에 떠오르는 샛별이 될 것임을 간파했다.
“내가 2~3일 동안 잘 가르쳐줄게. 어떻게 허세를 부려야 잘 부렸다고 소문날지!”
운소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런데……. 이게 돈 버는 거랑 관련이 있어?”
천제현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엄청나게 관련이 있지! 돈도 벌 수 있고, 사람들의 주목도 받을 수 있어! 중주학당 학생들도 널 우러러 보게 될 거야. 이런 느낌 좋아하지 않아?”
운소는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 수많은 미녀들도 나한테 달려오겠네?”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가 내 백분의 일만큼만 따라와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그럼 뭘 더 기다려! 시작하자!”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이 운씨 가문 도련님은 기꺼이 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럼 먼저 그 도법부터 연마하자! 이 도법은 좀 고칠 필요가 있어!”
운소가 멍해져서 물었다.
“어떻게 고치는데?”
“십삼도는 너무 많아. 간략하게 삼도로 끝내자!”
운요 남매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뇌명십삼도는 운가의 유명한 무공이다. 이 뇌명십삼도가 유명한 이유는 도법의 위력이 중첩된다는 데 있다. 칼을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그 기운이 쌓여 마지막에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다.
그런데 십삼도를 삼도로 간략하게 줄인다니.
어떻게 순간적으로 기세를 축적하여 적을 단박에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천제현의 생각은 달랐다.
뇌명십삼도는 삼도로 수정하면, 그 위력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질 것이고 이 무학의 가치는 10배 이상 뛰어오를 것이다.
천제현이 운요에게 말했다.
“우선 우리가 따로 행동해야 해. 넌 중주학당의 교재를 가져와. 모든 교재를 한 번 봐야겠어. 그리고 약재도 좀 필요해. 일부는 운소가 쓸 거고, 일부는 내가 쓸 거야. 수고스럽겠지만 좀 구해다줘.”
운요와 운소는 천제현이 도대체 무얼하려고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암우개가 교재를 가져오라면 가져와야지. 할아버지도 암우개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잖아?’
운천학은 중주학당의 원장이다.
천제현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못 보게 할 리가 없다.
운요는 교재를 가지러 바로 중주학당으로 향헀다.
운소는 멀어져가는 운요를 멍하니 쳐다보며 물었다.
“우린 뭐해?”
천제현이 말했다.
“요 며칠 동안 네가 배우고 싶은 걸 다 가르쳐 줄게. 내가 좀 험하게 대할 거야. 난 인내심이 없으니까 최대 3일의 시간을 줄게. 네가 배우려면 쓴맛을 좀 해야 할 거야!”
운소는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뭐가 무서워? 내가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유독 무서워하지 않는 게 바로 쓴맛을 보는 거라고!”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왜 내 옆에 두게 해달라고 했는지 알아? 난 네가 허세부리는 모습이 보고 싶거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당장 시작하자!”
천제현의 미소를 본 운소는 왠지 모르게 오싹함을 느꼈다.
‘약간 후회할지도…….’
손자와 손녀가 암우개와 함께 떠난 후 이틀 밤낮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운천학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운요는 혼성 4성의 현혼 고수이자 중주성에서 손꼽히는 기재라고 해도 전투경험이 적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암우개는 그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나이가 어리고 나서는 걸 좋아하니, 설마 무슨 사달이라도 난 건 아니겠지?’
그리고 손자에 대해서는…….
운천학은 아예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놈은 지금껏 좋은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운천학 자신도 실은 너무나 궁금하다는 거였다.
‘암우개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대체 무얼 할 속셈이지?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게 아니고 살짝 몰래 지켜보는 것은 되지 않을까?’
운천학은 스스로 위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후 야심한 밤에 몰래 운문 후원 부근에서 잠복했다.
세 사람이 이곳에 나타나자 운천학도 약간 긴장되었다.
‘100살을 앞둔 나는 평생토록 공명정대하게 살았다. 이런 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는데!’
“아! 아!”
“나 안 해! 안 할래!”
“너 이 악마 같은 자식!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 당장 가서 할아버지한테 다 이를 거야!”
운천학이 후원에 막 들어오기 전, 안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운천학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운소가 아닌가? 이렇게 처절하게 소리를 지르다니!’
운천학은 살금살금 담 위로 기어 올라갔다.
지름이 일 장쯤 되는 마력진이 정원의 중앙에 그려져 있고 운소가 반바지를 입은 채 마력진 중앙에 서 있었다.
그의 등, 어깨, 허벅지, 가슴, 팔 등 몸 구석구석에 부적이 붙어 있었다.
이 부적은 땅에 있는 마력진과 반응하였고, 이 가운데 모종의 힘이 그를 짓누르는 듯 했다.
“나 못 참아!”
꽈당!
운소가 눈을 번뜩이며 땅에 넘어졌다.
천제현은 안락의자에 앉아 왼손에는 뜨거운 차를 들고 오른손에는 중주학당의 교재를 쥐고서 운소의 말은 흘려듣고 있었다.
그러다 운소가 바닥에 쓰러지는 걸 보고 날카로운 눈썹이 일그러지더니 즉시 수인을 만들었다.
그러자 운소의 붙은 부적에서 빛이 났다.
붉은 빛이 마치 전류처럼 운소를 감돌더니 순간적으로 그를 자극하여 일으켜 세웠다.
“악!”
“아파 죽겠어!”
“멈춰! 어서 멈춰!”
운소는 잉어가 튀어오르듯 바로 섰다.
“죽은 척 하지 마! 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
천제현의 목소리가 그 소년 같지 않았다.
“이천 번 또 연마해! 오늘 이 삼도를 완성하지 못하면 밥 먹을 생각도 하지 마! 알았어? 그리고 내가 몇 권 적어놨으니까 한 글자도 남김없이 다 외워! 그래야 잘 수 있으니까!”
“악마!”
“이 악마 같은 놈!”
운소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다시금 메아리쳤다.
‘정말 무섭군!’
어떤 잔인한 인체 실험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운천학은 그 광경을 지켜보니 걱정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운소가 아무리 제 구실을 못해도 운가의 적자로 장성한 사내인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운천학이 슬쩍 물어보기라도 할까 망설이는 순간.
쌩!
씨 하나가 그의 가슴 쪽으로 날아왔다.
운천학은 크게 놀랐다.
‘설마 들켰나? 불가능해!’
그는 진혼 경지에 가까운 강자다.
이때 털이 보송보송한 하얀 여우가 그의 옆 담장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품안에는 시뻘건 과일 몇 개를 안고 교활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큰일났다!’
“쉿!”
운천학은 새끼 여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을 했다.
‘이 새끼 여우, 참으로 신출귀몰하구먼! 언제 옆에 있었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동안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니! 안 돼! 이러다가 들키겠어!’
운천학의 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래도 나잇살 먹은 어른인데 담장에 올라가 훔쳐보기나 하고 있다니! 들키면 창피해서 얼굴도 들 수 없을 거야!’
새끼 여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운천학의 뜻을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천학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때 새끼 여우가 자기 발로 입을 가리키며 다른 발을 뻗었다.
‘네가 이 여우님의 입을 닫을 수는 있지. 하지만 입막음 비용은 줘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애완동물이 이토록 똑똑하단 말인가.
운천학은 비둘기 알만 한 보석을 꺼내자 새끼 여우가 눈빛을 반짝이며 달려들었다.
먼저 코로 곳곳에 냄새를 맡은 다음 뱃속에 바로 집어넣었다.
끽끽!
새끼 여우가 엄지발톱을 위로 올리며 흡족함을 드러냈다.
이 보석은 3급 마수의 내단으로 혼성술사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손바닥만 한 새끼 여우가 단숨에 삼켜 버린 것이다.
새끼 여우는 배를 둥글게 부풀리며 토닥토닥 쳤다.
그러더니 또 자기 입을 가리키면서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 배가 부르지 않으니 하나를 더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운천학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이 녀석한테 3급 내단을 뭘로 보고!’
이때 운천학 근처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할아버지, 위에서 뭐하세요?”
정원에서 나온 운요였다.
운천학의 표정이 굳어졌다.
“암우개도 할아버지가 오신 줄 알고 있어요. 저더러 말 좀 전하라고 하셨어요.”
새끼 여우는 나쁜 짓을 하다 걸린 듯 민첩하게 뛰어올랐고, 순식간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운천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리둥절해 했다.
‘지금 저 교활한 새끼 여우한테 속은 건가?’
“여기서 말하기는 곤란해요. 저희 장소를 좀 옮기죠.”
운요는 운천학을 운문 연무장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운천학이 입을 열기도 전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 곧 100살이나 되시는 분이 담장에 기어 올라가 훔쳐보다니요!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걱정 마세요! 암우개가 운소에게 특훈을 시키고 있어요. 그도 정도라는 걸 알고 있으니 절대 죽게 놔두지 않아요!”
“특훈?”
“암우개가 운가의 뇌명십삼도를 뇌진삼도(雷霆三刀)로 바꾸는 데 성공했어요. 근데 이걸 운소가 이틀 안에 익혀야 하고요.”
운천학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뇌명십삼도를 뇌진삼도로 바꿨다고? 그게 가능한 것이냐?”
“저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가 정말 해내더라고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그럼 어떻게 한 일인지 아실 거예요.”
운요는 칼의 정령이 없어 도법의 정수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운요에게는 도법의 기초도 없는 상태가 그저 대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운천학은 일대 무학의 대사인데 그 내용을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운천학은 단숨에 알아챘다!
‘이것이 무슨 도법을 바꾼 것인가? 그냥 아예 환골탈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십삼도를 통해 축적해야 하는 기세를 겨우 삼도로 완성한다.
위력은 조금도 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강해졌다.
‘암우개가 이 무공을 이렇게 바꾸다니!’
일반 상승 무학이 눈 깜짝할 새에 남하국의 최고 무학으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