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제169장 운씨 가문 도련님(2)
끼잉!
새끼 여우가 차를 마시는 도중 찻주전자를 보며 소리를 냈다.
찻주전자를 탐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천제현은 목덜미를 잡아 여우를 끌어냈다.
끽!
‘영차를 잘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흐름을 깨다니’
새끼 여우는 화가 나 주인에게 끽끽대며 항의했다.
물론 이 고집불통 주인 놈은 여태껏 자신의 불만을 제대로 받아준 적도 없었지만.
천제현은 운요, 운소 남매를 데리고 운천학 앞으로 가서 말했다.
“저는 한동안 이분들을 데리고 일을 좀 보겠습니다. 운 할아버지께서 여기에 간섭하지 말아주십시오. 때가 되면 제가 직접 운가로 가서 협력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동안 부탁할 일 있으면 운요를 시켜 말을 전하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운천학이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이 녀석이 운문에 온 것은 이미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운천학은 답을 알고 싶었지만 당장은 호기심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안심하십시오.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천제현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운가의 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너무 크게 떠들어대는 것도 시기상 좋지 않다.
운소는 운가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니 굳이 운천학을 통할 것 없이 그를 통해 계획을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천제현은 남매와 함께 운문을 참관했다.
운문은 문파이기 보다는 사실 사립 학자 기관에 가까웠다.
주로 제약, 부적제조, 제기, 진법, 무공, 무학 등의 연구를 위주로 했다.
중주학당은 공립 학부인 반면, 운문은 사립 학부라 운문의 원생 모집 조건은 중주학당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중주학당의 원생들은 수년에 한 번 졸업생을 배출하는 반면, 운문은 졸업이라는 게 없이 학자의 지위가 평등했다.
게다가 운문의 다수 학자들이 중주학당의 강사였다.
“운문은 중주성에서 가장 큰 연구기관이야. 실험실만 해도 팔십여 개가 있지. 중주에서 가장 좋은 연구 환경과 자원을 갖추고 있어. 중주성에서 매년 배출되는 지식인들 중에서 최소 삼분의 일이 운문 출신이야. 이들은 상업과 군사 분야를 이끌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 대단하지!”
‘괜찮군! 역시 운문은 기반이 튼튼하군!’
4대 가문 중 천가는 무예, 낙가는 정치, 양가는 사병 양성에 치중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오로지 운가만이 천제현과 협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운소는 곤죽이 된 얼굴을 쳐들고는 거들먹거리면서 앞장서서 걸었다.
그는 온갖 잘난 체를 하며 운문을 자랑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장차 운문을 잇게 될 사람이야! 강호 사람들은 날더러 매력남이라고 부르지. 얼굴도 준수하니 잘 생겼고, 뇌명십삼도(雷鳴十三刀)도 경지에 올랐지. 내가 칼을 한 번 잡으면 질풍처럼 빨라 아무도 당해내지 못한다고. 그러니 네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할아버지가 나더러 널 따라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존비가 유별하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말라고.”
‘낯짝 두꺼운 걸로 치면 나랑 비슷하겠는데?’
운요가 인상을 쓰며 운소를 발로 걷어찼다.
“너 헛소리 좀 하지 마! 뇌명십삼도는 운가의 상승 무공이라고. 네가 경지까지 연마했다면 매번 왜 이렇게 곤죽이 돼서 오는 거야?”
운소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박살 날 뻔한 엉덩이를 문질렀다.
“누님! 손님 앞에서 제 체면 좀 세워주세요! 제가 뭐라고 해도 운가 훈남의 상징이잖아요.”
‘성질나 죽겠네! 운가의 손자가 어떻게 이토록 아무 노력도 안할 수 있는 거지?’
동생의 재능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열심히 수련만 한다면 자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 운요가 느끼는 압박도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천제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뇌명십삼도? 이 도법은 들으면 대단히 힘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네.”
운소가 무시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겨뤄보시게? 잘 알아두라고. 중주성에서 칼을 쓰는 사람 중 이 어르신이 몇 손가락 안에 든단 말이지. 여태껏 칼을 뽑아서 피를 안 본 적이 없다니까. 그러니 괜한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럼 못 볼꼴 당할지도 모르니까!”
새끼 여우가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주인 놈이랑 참 닮았네! 이 세계는 이렇게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천제현은 몸을 돌려 말했다.
“그럼 한 번 해봐. 시작해!”
운소는 천제현이 자신을 도발하는 것도 모자라 버릇없이 자기한테 뒤를 보였다는데 격분했다.
“무슨 뜻이냐? 뇌명십삼도는 속도로 승부를 보지. 네놈이 감히 등을 내게 보여? 죽고 싶은 게냐? 내가 너를 죽인다 쳐도 무예 모르는 놈을 이기는 꼴이 될 거다. 이 도련님은 워낙 공명정대해서 이따위 짓거리는 안하지.”
“날 베고 나서 다시 말해!”
운요는 손끝에서 번개를 생성해 강하게 튕겨 운소 얼굴을 때렸다.
“아야!”
운소가 곤죽이 된 얼굴을 매만지며 화가 나 소리쳤다.
“누님! 왜 예고도 없이 갑자기 때리는 거요! 다른 곳은 아무리 때려도 괜찮아요! 하지만 제 생명과도 같은 얼굴을 때리다니! 제가 앞으로 이 얼굴로 먹고 살지 어떻게 알아요!”
운요는 그를 사납게 째려보더니 천제현을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 바보!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줄 알고!’
운요는 운소를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할아버지조차 예절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대했거든! 너같은 놈이 감히 덤빌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자신마저 천제현에게 패하지 않았는가.
운소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웃기 시작했다.
“알겠어요! 누님! 저 녀석 좀 손봐주라는 거죠? 누님은 사 공자의 신분이니 직접 손쓰기는 힘드니까요. 이런 소소한 일은 이 동생에게 맡기시라고요!”
운요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됐다! 그냥 암우개가 저 바보 멍청이를 혼쭐내겠지. 뭐!’
운소가 천제현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봐! 애송이! 준비됐냐? 이 어르신의 칼은 워낙 빨라 반응도 할 수 없을 게다. 한 번 두고 보라고!”
“참 말이 많군. 빨리 공격해!”
천제현은 천천히 눈을 감고 심안을 떴다.
순간 만물이 온통 신식으로 자욱했다.
운소는 온몸이 떨렸다. 비록 심안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무형의 감지 능력이 자신의 온몸을 꿰뚫었다는 사실 정도는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어찌 된 일이지?’
“하압!”
운소가 방출한 뇌광이 응집되어 장도가 되었다.
번개 정령은 맞지만 운소의 정령은 운요의 정령에 비해 폭이 더 좁고 긴 도의 형태였다.
정령의 기세에는 맹렬함은 없었으나 운소아 정령을 다루는 솜씨는 생각보다 능숙했다. 게다가 부적이 빽빽하게 들어차 고대의 기운이 자욱하게 깔리니 더욱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갖게 되었다.
“똑똑히 보아라!”
허리춤에 차고 있던 패도를 꺼내든 운소는 벼락이 내리치듯 맹렬한 기세로 천제현의 등 쪽으로 날아갔다.
천제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살짝 옆으로 피하니 칼끝이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손쉽게 공격을 피한 것이다.
도의 기운이 뇌전과 얽혀 한쪽으로 비행하더니 땅에 커다란 흔적 남겼다.
“좋다! 운이 좋군! 이 공격도 받아라!”
이번에도 천제현은 손쉽게 공격을 피했다.
운소는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 녀석, 어떻게 이리도 미꾸라지 같지?’
운소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 상황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도법을 완전히 펼치기 시작하였다.
뇌명십삼도는 운가의 절기였다.
빠르고 용맹하며 강하다.
모든 공격에 파멸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
일단 시전하면 번개와도 같은 기세에 누구도 당해낼 수 없으나 천제현의 눈에는 그저 허점이 많고 하찮아보였다.
‘이 정도면 봐줄만큼 봐준 거겠지?’
운소가 정령의 기운을 담아 도를 휘둘렀다.
천제현은 돌연 몸을 돌려 살짝 피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운소의 도신을 가볍게 잡았다. 그러고는 도에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내 힘을 주어 비틀어 버렸다.
딱!
이내 천제현의 손에서 도신이 부러졌다.
도신이 부러지며 뇌전이 폭발하자 천제현은 미리 준비한 성광불멸체로 몸을 보호했다.
운소는 폭발에 튕겨나갔고 온통 멍투성이인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마치 닭 벼슬처럼 위로 솟아올랐다.
천제현이 눈을 떴다.
조금도 다친데 없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웃었다.
“어때?”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네놈이 어떻게 뇌명십삼도를 피할 수 있지!”
천제현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탈탈 털어냈다.
“배우고 싶다면, 내가 몇 초식 알려줄게.”
운소는 허겁지겁 일어나더니 존경에 찬 얼굴로 말했다.
“알겠다! 어쩐지 우리 할아버지가 너한테 설설 기더라니. 너도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군! 나한테도 가르쳐줘. 그러면 다음에 기방에 가도……, 아니지, 다음에 노래를 들으러 가서 다른 사람한테 맞으면 맞았지, 돌아와서 또 맞을 일은 없겠네!”
천제현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럼 조건이 있어.”
운소가 평소답지 않게 움찔하며 물었다.
“무슨 조건?”
“오늘부터 나한테 형님이라고 불러! 내가 동쪽으로 가라면 동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가라면 북쪽으로 가라고!”
“음…….”
운소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운요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운씨 가문에 어떻게 저런 바보가 나왔지?’
저놈은 운씨 가문의 장손 아닌가.
‘그런데 지금 저놈이 가문의 망신은 다 시키고 있잖아!’
“이번일은 너희한테 나쁜 일이 아니야. 나는 돈을 벌려고 해.”
천제현이 신비롭게 웃었다.
“우리가 협력해서 돈을 벌게 되면 너희 두 사람한테도 나눠줄게.”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살아왔다. 그런 그들이 이제와 돈을 탐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신선한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두 사람, 모두 동의하지?”
운요가 흥하고 코웃음 쳤다.
“지금 우리를 돈으로 유혹하는 거야?”
반면 운소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그에게 돈이란 단지 숫자에 불과했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뭔가 재미있는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돈은 됐고, 재미있는 게 중요한데!”
“이 거래를 허투루 보지 마. 대단히 전망이 좋고 재미있다고!”
천제현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동안 구체적인 말은 안 할게. 그런데 이 일은 혼자서는 못해. 너희 말고는 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물론 모두에게 수익은 공평하게 돌아갈 거야. 이렇게 계산을 하면 나는 최대 6할만 가져가는 거라고.”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네가 6할을 가져간다고?”
두 남매는 멍한 눈으로 천제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천제현은 당당했다.
“많이 일 한 사람이 더 가져가야지! 너희가 쓸모가 없다면 구리 조각 하나라도 꿈도 꾸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