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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168화 (165/729)

# 168

제168장 운씨 가문 도련님

운천학은 학자이므로 다른 가문의 지도자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천제현이 운문 가입을 거절한다고 해도 운가의 재도약에 도움을 준 사람임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절대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될 일이다.

“선생, 이리 앉으시오. 내 일찍이 운요에게서 들었는데, 이제야 선생을 뵈니 이 늙은이가 운이 참 좋구려.”

운척학은 옥으로 정교하게 만든 찻주전자를 열었다. 은은한 차향이 객실 전체에 가득 퍼졌다.

찻잎은 반짝이고 윤기가 흘렀으며, 생명을 기운을 강하게 내뿜고 있었다.

이 찻잎을 물에 넣자 찻잎에 주문이 나타났다.

막강한 생명의 힘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차가 옥처럼 깨끗한 비취색으로 변하였다.

천제현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좋은 차군요!”

운천학이 차를 소개했다.

“엘프의 나라에서 공수해온 찻잎이오. 이 찻잎은 모두 억만 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것이지. 차를 달인 물도 생명천수에서 추출한 것이라 골격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수명 연장에도 도움이 된다오. 게다가 마력 증대에도 효과가 좋소. 내 하찮은 솜씨 좀 부려보리다.”

흥! 운요가 참지 못하고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할아버지가 평소 아껴 마시는 이 영차를 이토록 후하게 모조리 다 가지고 나오다니!’

천제현이 운천학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곧 100살이 되는 운천학은 마치 스승을 뵙는 제자처럼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물어볼 말이 정말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젊은이는 성격이 괴상하여 혹시나 푸대접이라도 하게 되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운천학은 재차 심사숙고한 끝에 질문은 나중에 하고 우선 그를 극진하게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제현은 차를 들더니 마시지 않고 향만 맡았다.

“남방의 비취 평원에서 생산된 엘프의 녹차군요. 나무 엘프의 재배 방식인 월아천수를 백 년 동안 관개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상품의 찻잎은 엘프 자신들이 즐기기 위해 남겨 두고, 중품의 찻잎은 외부의 동맹자에게 판매하지요. 어르신의 이 찻잎은 하품 찻잎으로 품질이 낮은 편에 속합니다.”

운천학은 크게 놀랐다.

냄새만 맡고도 이 차의 품질을 가늠하고 품종의 내력과 재배 방식까지 알 수 있다니.

운요는 불만이라는 듯 말했다.

“그냥 좀 마셔! 이 찻잎이 얼마나 귀한 줄 알아?”

“요아, 말버릇 하고는!”

운천학이 탐탁지 않은 듯 말했다.

“정원에 나가 서 있거라! 여기서 선생을 방해하지 말고!”

“쟤는…….”

“빨리 안 나가느냐!”

“알았어요!”

운요는 천제현을 노려본 후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남하국과 같은 소국에서 아무리 낮은 품질이라도 나무 엘프의 찻잎을 공수한 것만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너무 많은 걸 바라서도 안 되지요.”

천제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만 손님 대접에 조금 더 신경을 쓰셔야겠습니다. 이곳에 두 명이 있는데, 차는 한 잔뿐이군요. 어찌 손님 대접이 이리 소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두 사람?’

운천학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흥!

새끼 여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여우는 가슴을 부풀리고 엉덩이를 삐죽 내민 채 두 발을 팔짱끼고 거만하게 서 있었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운천학을 바라보며 한 마디 쏘아주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쟤한테는 차를 주고 나한테는 차를 안 줘? 이 여우님을 무시한 거야?’

운천학이 깜짝 놀랐다.

‘정말 기인이로구나! 애완동물마저도 이리도 신통하다니!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로고!’

운천학이 즉시 영차 한 잔을 더 우려냈다.

“아, 아! 이 늙은이가 실수 했구려!”

새끼 여우는 양발을 뻗어 찻잔을 안아 들고는 방금 끓인 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꿀꺽꿀꺽 단숨에 비워 버렸다.

여우는 뒷맛을 자세히 음미하려는 듯 입가를 훔쳤다. 그러고는 분홍색 혀로 입가를 핥더니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듯 양발로 찻잔을 들어 건네고, 작은 발로 텅텅 빈 찻잔을 가리키다가 자기 입을 가리켰다.

“또 달라고?”

운천학이 바로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

새끼 여우가 다시 단숨에 마셨다.

‘정말 신기하구먼! 영차의 힘이 결코 작지 않거늘! 이렇게 조그마한 새끼 여우가 몸이라도 터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영차를 마시고 멀쩡한 것도 놀라웠지만 역시 가장 놀라운 것은 여우의 행동이었다.

‘이 새끼 여우에게 인격이 있지 않고서야 어쩌면 사람과 이리도 똑같단 말인가.’

운천학의 태도와 모습에 천제현은 적잖이 만족스러웠다.

이 노인은 일가의 주인이자 운문의 문주임에도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자신과 여우를 극진히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높은 신분에 예의와 겸손을 아는 사람은 이 시대에서 대단히 드물었다.

‘운천학은 장립청과 같은 부류로군. 이런 사람이 진정한 학자지!’

운천학은 지식, 마력, 지위 모두 장립청을 능가했다.

지금 천제현은 중주성 사대 가문 중 이미 세 가문과 척을 진 상태다.

중주성에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들 중 하나와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

운천학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녀가 버르장머리가 없어 일전에 선생께 폐를 많이 끼친 줄 알고 있소. 이 늙은이가 한 잔 올려 사죄드리도록 하겠소. 손녀를 보살펴줘서 고맙소!”

“입에 올리기로 송구할 정도로 소소한 일이었습니다.”

천제현은 차를 입가에 가져가 아주 조금만 마셨다.

신비하고 청량한 향이 입에서 퍼져 나갔다. 마치 온몸을 적시는 것처럼 전신의 모공이 벌어져 청량한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역시 엘프의 녹차는 다르군.’

“암 소협은 아주 먼 곳에서 중주성까지 왔는데 혹시 머물 곳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천학이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우리 운가에서 머무르시는게…….”

운천학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실컷 얻어터진 몰골을 한 청년이 밖에서 뛰쳐 들어왔다.

그는 영문도 모르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누님! 제가 기방에 갔다가 낙가 그놈한테 당했습니다. 누님이 제 대신 복수 좀 해주세요!”

운요는 문 앞에 서서 매우 난감한 듯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기침했다.

“너 이 불효막심한 놈!”

운천학의 얼굴이 시커매지더니 노기등등한 얼굴로 탁자를 힘껏 쳤다.

“운소! 이놈아! 하루라도 이 할애비 체면 좀 봐주면 온몸이 근질근질한 것이냐!”

얼굴에 멍투성이인 청년이 운천학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그가 방실거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할아버지가 여기 계신 걸 몰랐잖아요. 오늘 제가 수련을 못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놈! 썩 돌아오지 못할까!”

청년은 울상을 하며 운천학 앞에 갔다.

운천학이 잔뜩 가라앉은 얼굴로 차를 마시며 물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

운소가 사실대로 고하기 시작했다.

“이 손자가 원래는 방안에서 얌전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못된 친구들의 꾐에 넘어가 묘옥방에 잠시 다녀오게 되었어요. 저는 그저 유명한 옥련 아가씨가 부르는 노래 몇 소절 듣고자 갔을 따름이에요. 하지만 낙가 그놈들이 다짜고짜 새치기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들과 싸움이 붙었어요. 그래서…….”

운천학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기방에 간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얻어터지고 와서는 큰소리를 떵떵 치며 지원을 요청하다니!

운천학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운가 체면이 네놈 때문에 땅에 처박혔구나! 오늘부터 두 달 동안 어디 나갈 생각도 하지 말거라. 조용하 책 읽고 수련에 정진하도록! 밖에 한 발자국이라도 나갔다간!”

운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할아버지, 이건 저한테 죽으라는 거잖아요?!”

“운요! 네 동생을 썩 데리고 가거라! 이 선생 앞에서 너희들은 창피한 줄 모르겠지만, 나는 창피하다!”

“잠시만요!”

천제현이 일어났다.

운천학도 덩달아 같이 일어났다.

“선생, 무슨 분부라도 있으시오?”

천제현이 운소 앞으로 다가가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훑어보았다.

“이 자의 기골이 참으로 좋군요. 하지만 마력이 좀 약하네요.”

운소가 이 말을 듣고는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꼬맹아! 너 지금 이 몸 면전에서 뭐라고 종알대는 거야? 이 몸은 혼성 1성의 마력을 지녔단 말이다. 딱히 나보다 나을 것도 없어 보이는 놈이 무슨 자격으로 이 몸을 평가하는 것이냐!”

탁!

“예를 지켜라!”

운소가 지팡이에 맞고는 순간 멍해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래? 이 별것도 아닌 놈한테 할아버지가 쩔쩔매다니?! 할아버지의 손님인가?’

천제현은 몇 초간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뒤를 돌아 운천학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 할아버지, 이 사람 가두지 마세요!”

‘뭐라고? 운 할아버지?’

운소가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 말도 못했다.

‘이 녀석 간이 배 밖으로 나온거 아니야?’

감히 운천학을 그렇다 부르다니.

중주성에 그 누가 운천학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운천학은 4대 가문 중 한 가문의 가주가 아닌가?

그 실력만 따져도 진혼 경지에 가까웠다.

눈앞의 소년따위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인물이었다.

그러나 운소를 더 갸우뚱하게 만든 것은 할아버지가 화를 내기는커녕 소년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무슨 뜻인가?”

천제현이 말했다.

“지금 제가 일을 보려는 데 수행원이 한 명 부족합니다. 이 애를 잠시만 빌려주세요. 제가 며칠 동안만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운소를 가르친다고?’

운천학에게는 정말이지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아닌가.

운소는 운가의 직계자손이다.

매일 먹고 마시고 기방과 도박을 좋아하며, 현재에 안주하려고만 하니 이미 운가의 골칫덩이나 다름없다.

‘그런 구제불능인 놈을 맘에 들어 한다니 평생의 복이 아니겠는가!’

운천학이 손자의 귀를 잡아당기며 호통을 쳤다.

“오늘부터 너는 이 선생을 옆에서 잘 보필하거라! 한 시도 떨어지지 말고, 차와 물도 알아서 내드리고! 잘 모셔야 한다! 조금이라도 게을리 했다간 네놈 다리를 분질러 버리겠다! 알겠느냐!”

운소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위풍당당한 운가의 직계 장손인 내가 외부인 시중이나 들어야 한다니! 할아버지가 노망이라도 드셨나?’

운소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감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운천학은 바로 천제현한테 물었다.

“선생, 또 다른 분부가 있으시오? 말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지원하겠소!”

“아직 다른 건 없습니다.”

천제현이 운소와 운요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두 사람이 저를 좀 따라와야겠습니다. 운문을 좀 살펴보고 싶어요. 이 정도는 괜찮겠지요?”

운천학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당연하지! 당연해! 니들 뭐하고 멍하게 서 있는 것이냐? 어서 암 선생을 뫼시고 가지 않고!”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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