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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163화 (160/729)

# 163

제163장 운문과 충돌(3)

운광암의 낯빛이 안 좋아졌다. 암우개의 언변이 매우 교활하여 그럴 듯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강기의 언행이 곱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늘 안하무인이어서 운문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암우개의 말이 매우 자극적이기는 했지만 사실과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다.

“흥! 됐다!”

고호연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강기는 운문의 사람이니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운문에서 처리할 일이다! 어디서 감히 젖비린내 나는 것이 관여하려 하느냐!”

이태도 한 마디 했다.

“어디 이름 모를 어린 것이 감히 운문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학문의 성지를 모욕하는 것이냐. 네놈을 죽여 천하에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암우개가 미친 듯이 웃었다.

“원래 운문의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왔는데, 저런 무능한 늙은 개구리 같은 것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소. 좋소.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디 논쟁이나 한 번 벌여보는 게 어떻겠소?”

“뭐라? 논쟁?”

“하하하하!”

“올해 들어 들어보는 가장 웃기는 소리군!”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어느 이상한 산골짜기에서 튀어나온 두꺼비 같은 놈이 감히 논쟁을 하자고?”

“…….”

사람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겁 없는 놈을 많이 봤지만 이 정도로 겁 대가리를 상실한 놈은 처음이었다.

운문에는 학자들이 구름같이 몰려 있었고, 고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감히 도전을 한다고?

지식은 마력과는 완전히 다르다. 천부적인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랜 시간을 거쳐 쌓아야 하는 것이다.

고호연과 이태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대학자 고천추의 제자로 이런 이름도 모르는 꼬맹이가 도전을 해오니 이건 그야말로 엄청난 치욕이었다.

운광암은 더 분노하여 소리쳤다.

“어린 것이 감히 무슨 자격으로 운문에 도전을 한다는 거냐!”

‘내게 무슨 자격이 있냐고? 내가 도전이란 단어를 쓴 것 자체가 너희의 체면을 살려준 거라고!‘

암우개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소인이 천문과 지리에 정통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진법, 부적, 무기제조, 제약, 무학, 학문, 예술 등에는 나름 조예가 있소이다!”

암우개는 조금도 겸손해하지 않고 오만방자하게 말했다.

“운문은 모두가 함께 덤비시오! 이곳 책벌레들에게 과연 무슨 재주가 있나 구경이나 해봅시다!”

‘운문 모두가 함께 덤비라고? 정말 죽고 싶은 건가?’

운광암이 장검을 빼들려고 했다.

“건방지구나!”

그는 이런 모욕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때.

“장로 멈추시오!”

고호연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저놈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야 대수로울 것 없지만, 운문의 명성을 더럽혀서는 안 될 것이오. 기왕 도전을 해오니 그에게 기회나 줍시다!”

운광암의 낯빛이 변했다.

“그게…….”

이태가 천제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진다면 사제를 놔주고 스스로 두 다리를 부러뜨려라!”

운광암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둘의 모습을 보니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둘은 운문에서 지위가 매우 높았다. 최근 들어 운문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매우 중요한 손님이었다. 이들과 같이 외부에서 온 학자들은 운문의 세력을 유지시키는 핵심이었다. 그렇기에 절대 이들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됐다.

“그대들에게 향을 하나 태울 시간을 주겠소. 누가 먼저 나서겠소?”

“내가 상대해주지!”

한 젊은이가 일어섰다.

“약신경(药神经)이 무엇인지 아느냐? 누가 만들었으며 언제 인간들에게 전해졌는지 말해 봐라!”

‘이건 뭐 역사와 문화 시험을 보는 거 같군!’

약신경은 전설 속에 나오는 서적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아마 이 책의 내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천제현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약신경은 제약학의 기초가 되는 서적으로 홍황무공이 그 전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무공은 홍황시기(洪荒時期)에 고대의 신 아라한이 만들었는데, 그 후 태고의 용왕인 카사디가 수정을 했고, 후에 또 엘프왕 마굴랍을 중심으로 한 대현자들이 그 무공에서 제약학의 기본 이론만 뽑아내어 약신경을 만들었지요. 그러나 얼마 후에 마수령(魔獸经)족에게 도둑맞았습니다. 그리고 삼천 년이 지나 인류와 마수령족과의 전쟁에서 인간들의 손에 넘어 오게 되었지요!”

질문을 한 젊은이가 온몸을 크게 떨었다.

고호연, 강기, 운광암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에 관한 자료는 매우 적어 아는 자가 거의 없는데 이 소년이 뜻밖에도 매우 자세히 알고 있었다.

천제현이 말한 대로 약신경은 제약학의 기초가 되는 매우 귀중한 서적으로 확실히 홍황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는 만물의 정기를 흡수하여 사용하는 무공인데, 홍황시기가 끝나고 천지격변이 일어나면서 이 무공은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매우 난해하고 심오한 파본과 일부 구결만이 전해졌는데, 후에 엘프들이 이를 정리하여 약신경을 편찬하였다.

이번에는 다른 젊은이가 일어났다.

“약신경의 오천 자를 외워보아라!”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이는 너무 지나친 질문이었다.

약신경은 매우 난해하고 복잡하여 외우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들어본 적조차 없을 뿐 아니라, 웬만한 대사들도 약신경의 첫 장만 보면 머리를 아파할 정도다.

그런데 어찌 이를 외울 수 있단 말인가?

천제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실룩거렸다.

‘약신경이 뭐 그리 대단하고?’

후대에는 약신경이 이미 다 복원된 데다가 대폭 수정까지 되어서 천제현은 이미 전체를 물 흐르듯이 외우고 있었다.

“진정한 약신경은 총 팔천 자이나 마수령족을 거쳐 인간에게 넘어오는 과정에서 인간의 문자로 번역되었는데, 이때 많은 부분이 빠져 버리게 되었지요. 만약 진정한 약신경을 연구하고 싶다면 반드시 고대 엘프어를 알아야 할 것이오!”

암우개의 말은 멈출 줄 몰랐다.

“내가 마침 고대 엘프어를 알고 있으니 그대들을 위해 한 번 외워보겠소!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오! 얼마나 기억할지는 여러분들 능력에 달려 있소이다!”

천제현이 한 손으로 강기를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는 유명검을 뽑아 들면서 벽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입에서 매우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성조만 이십여 개가 넘는 것 같았다.

음의 높낮이가 매우 변화무쌍하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고, 주문을 외우는 것 같기도 했다.

이 기이한 매력의 언어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약신경.

수많은 학자들이 일생을 다 바쳐 약신경을 연구했으나 털끝만한 이치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천제현이 완전한 고대 엘프어를 사용하여 약신경의 전체를 외워 보였다.

그 심오하고 오묘한 문자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천제현은 약신경을 외우면서 검을 휘둘렀다.

매우 복잡한 문자들이 벽에 새겨졌고, 매 글자마다 고대 지혜의 기운이 깃들어져 마치 엘프가 사는 숲 속의 신비한 기운이 천지를 뒤덮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천제현의 외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검의 속도도 점점 빨라져서 마치 몸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바로 이 순간 그는 광활한 대지를 자유롭게 가르는 호방한 협객 같았고, 높은 학식과 경륜을 지닌 서예의 대가 같았다.

천제현이 벽에 새긴 문자는 지혜와 예술의 집결체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있었다.

마지막 구절이 끝났다.

이내 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중주성에 있는 모든 책들을 다 합친 것보다 가치 있는 글귀가 무너져 내렸다.

운문 학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 돼! 안 돼!’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단 말이야!’

소년이 몸을 돌리자 햇볕이 무너진 벽을 넘어 그의 청아한 미소와 호방한 자태를 밝게 비추었다.

그의 온몸이 마치 황금처럼 밝게 빛났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모습은 마치 신이 세상에 강림한 것과 같았다.

천제현의 놀라운 시연에 놀란 것은 구경꾼들뿐만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누각에 있던 한 노인과 소녀도 놀람과 흥분이 서린 눈빛으로 몸을 일으켜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노인이 운천학, 소녀는 바로 운요였다.

이들은 난리가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 바로 현장에 왔다.

운요는 강기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암우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두 사람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암우개는 거침없이 고대 문자 팔천 자를 써 내려 갔다.

그리고 그 글자들은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둘은 이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했고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사실 운요는 이 소년이 이렇게까지 박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고대 엘프어를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다니, 그것은 중주성의 그 어떤 천재며 학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놀란 건 바로 운천학이었다.

박학다식한 걸로 유명한 운천학은 완전한 약신경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완벽하게 외우다니,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재?

아니다.

저 나이에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은 널렸다.

‘암우개는 천재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어!’

운천학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기재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운요가 운천학을 막아 섰다.

“할아버지, 급할 것 없잖아요? 저 자에게 또 어떤 재주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 말에 운천학은 귀가 솔깃했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운요가 말했다.

“전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거든요. 오늘 여기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계획이 있다는 뜻이에요. 절 보러 왔겠죠. 제가 없으니까 소란을 일으켜 얼굴을 내밀게 한 거고요!”

이 정도면 기재를 넘어 괴재(怪才)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운요가 알기로 저놈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며 원하지 않는 일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작자였다.

그러니 지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마음껏 재능을 펼쳐 보이게 두자. 진정한 천재란 어떤 건지 운문 사람들의 견식도 넓혀주고 할아버지에게도 구경 시켜주고!’

“알았다! 좀 더 지켜보자꾸나!”

사실 운천학은 강렬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저 소년이 또 어떤 생각지도 못한 재주를 부릴까?’

운문의 체면 따위는 이미 그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참에 갈수록 오만해지는 가문의 학풍을 고쳐놓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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