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제162장 운문과 충돌(2)
운씨 가문에는 두 개의 저택이 있었는데 하나는 남쪽에, 다른 하나는 북쪽에 있었다.
남쪽의 것은 남원이라고 불리며 운씨 가문에 방문한 손님도 볼 수 있도록 만든 연구소였고, 북쪽에 있는 북원은 운씨 가문의 내부 연구소였다.
운씨 가문은 뼈대 있는 학자 가문이었다. 하지만 가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운씨 가문은 저명한 학자들을 초빙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남원은 바로 이를 위해서 건설된 것이다.
남원은 대문의 크기만 해도 높이가 4장에 폭이 8척에 달했다.
문 전체가 모두 백옥으로 만들어져 조금의 흠집도 없이 매우 아름다웠다. 문에는 심오한 문자와 부적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천남성 사람들은 이 문을 백문이라고 불렀다.
중주성의 학자들은 백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걸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여겼다.
백문은 이미 수많은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 신앙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콰앙!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굉음이 들렸다.
완전무결한 백문의 한 귀퉁이가 박살이 나면서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쓴 자가 안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놀랍게도 누군가 사람을 날려 그 유명한 백문을 박살 낸 것이다.
대문을 지키던 호위병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호위병 하나가 황급히 달려가 땅에 쓰려져 있는 자의 두건을 벗기자 시퍼렇게 멍든 코와 퉁퉁 부은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슬프게 울부짖었다.
“살려 주시오! 도적놈이 날 죽이려 하오!”
“저건 강기 선생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펑!
이때, 얼음과도 같은 검을 걸친 한 사내가 천천히 백문 앞으로 걸어왔다. 얼음처럼 차가운 검날이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남문이 파괴됐다.
남원의 강기 선생이 중상을 입었다.
운문의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화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보더니 조금의 두려운 기색도 없이 크게 웃었다.
“난 짚고 넘어갈 게 있어서 왔소! 시간 없으니 조무래기들은 물러가고 가서 책임자를 불러 오시오!”
운문에서 강기의 지위는 결코 낮지 않았다.
그는 이곳의 학자였다.
감히 운문의 사람을 때린 것도 모자라 직접 찾아오다니, 이는 운문을 우습게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운문에게 도전하는 행위였다.
‘도대체 어떤 능력자이길래?’
소년은 회색의 소박한 도포를 입고 등에는 낡은 삿갓을 걸치고 있었다. 평범한 칼집에 낡은 보따리를 매고 있는 소년은 누가 봐도 객지를 떠도는 나그네 같았다.
그는 매우 젊어보였는데,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외모는 지극히 평범하여 어디 하나 특출나 보이는 데가 없었다.
한편 강기의 온 얼굴에는 분노와 수치가 서려 있었다. 그는 지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 소년의 무서움을 깨달았을 땐 이미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운문은 중주성 학자들의 성지이다.
그런 곳에서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운문의 손님인 강기는 이곳까지 끌려오면서 소년에게 맞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폭력을 휘두른 자가 아직도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마치 억울한 사람은 본인인 듯 말이다.
이게 이치에 맞는 것인가?
이것은 적나라한 시위였으며, 적나라한 도발이며 운문에 대한 모욕이었다.
운문의 제자들은 분기탱천하여 천제현을 노려보았다.
중주성 사대 가문인 천씨, 양씨, 낙씨, 운씨 중, 유일하게 운씨 가문만이 정치와 상업에 관여하지 않고, 용병을 키우거나 세력을 넓히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운씨 가문의 지위를 의심하지 못했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운씨 가문이 진정한 학술가문이기 때문이다.
중주성의 유명한 제약사, 부적사 중 절반이 모두 운문 출신이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부적, 단약의 절반 이상이 모두 운문에서 발명한 것들이다.
중주성의 부적사 조합과 제약사 조합, 심지어 중주성학당에도 운문의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천씨 가문이 중주성 최고의 무골 가문이라면, 운씨 가문은 중주성 최고의 학자 가문인 것이다.
운문의 제자들은 자부심이 매우 뛰어났으며, 중주성의 학자들은 운문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런데 천제현이 운문의 학자를 겁박했으니, 자존심 강한 이들이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감히 운문에서 소란을 피우지 못했거늘!”
문 안에서 위엄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겁이 없는 녀석이구나!”
한 중년인이 두 노인과 함께 걸어 나왔다.
운문의 장로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중년인은 지위가 높은 고위급 장로인 것 같았다.
그의 분노한 눈빛에는 살기가 감돌았다.
두 노인 중 하나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다른 하나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둘 다 학자처럼 보였고, 역시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강기가 두 노인을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오사형, 육사형, 저 좀 살려주시오!”
중년인의 이름은 운광암으로 운씨 남원의 상무장로였다. 그는 운문의 일상적인 업무를 담했한다.
그의 옆에 있는 두 노인 중 크고 마른 노인의 이름은 고호연, 작고 뚱뚱한 노인의 이름은 이태였다.
고호연, 이태는 녹록치 않은 인물이었다.
둘은 대학자 고천추의 제자로, 중주성으로 유학을 왔다가 운문에 들어와 남원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고천추는 어떤 인물인가?
남하국의 국사(國師)로 왕족의 자제들을 교육하기에 남하국에서 대학자라는 칭호를 내렸다.
그는 모든 남하국 학자의 우상이었다.
고호연, 이태는 고천추 밑에서 수학하여 그 지위가 매우 높았다.
그리고 천제현에게 겁박당한 강기는 바로 이 둘의 사제였던 것이다.
이는 강기도 고천추의 제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
강기가 이렇게 제멋대로 굴고, 경호가 그의 비위를 마쳤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하하하!”
천제현이 빽빽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태연하게 웃었다.
“확실히 알아야 할 게 있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운문을 욕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오. 운문의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서이오. 만약 이런 벌레 같은 놈을 계속 운문에 놔둔다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오!”
‘운문이 화를 당한다고?’
운광암이 대로하여 말했다.
“네가 뭔데, 감히 이런 막말을 하느냐? 이렇게 미처 날뛰는 것을 보니 운문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구나!”
“저는 암우개로, 하늘을 지붕 삼아 천하를 떠도는 자유 수련자입니다. 제가 천리를 마다않고 이곳에 온 이유는 학문을 절차탁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주성의 운문은 학식이 높고, 역사가 깊어 자전공자와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가주이신 운천학 어르신은 백 세의 고령으로 고금에 통달하고 박학다식하며, 인재를 중히 여기는 어진 분이라 들었습니다. 운문에는 중주성의 학자 6~7할이 모여 있으며, 실력이 웅후하고 전국에 명성이 자자합니다. 학자라면 모두 꿈에 그리는 성지라는데, 맞습니까?”
운광암이 노하여 말했다.
“학문을 논하려 왔다는 자가 어찌하여 사람을 다치게 했는가!”
“그건 저자에게 물으시지요.”
천제현이 검날로 강기의 얼굴을 툭툭 쳤다.
“이 얼간이 같은 놈은 실력도 없으면서 안하무인격으로 제 생각이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 혀를 뽑아 버리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극악무도하고 시시비비를 분간 못하는 자가 운문의 학자라고 사칭하는데, 어찌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참을 수 없어 그만 그를 때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정말 운문의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요.”
천제현, 아니 암우개는 진심으로 실망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실망입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도 운문에서 기거하는 걸 보니, 그동안 들어왔던 운문의 명성도 다 헛것이었나 봅니다. 운문의 학자들도 그저 보잘것없는 소인배들에 불과하겠지요.”
강기는 너무 화가 나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운광암은 부들거리며 화를 냈다.
“강기 선생은 대학자인 고천추의 제자이거늘, 뭐가 어째? 어디서 이름도 모르는 어린놈이 나타나 강기 선생을 겁박하고, 중주 학자들의 성지인 운문에까지 쳐들어와 운문을 모욕하는 것이냐. 내 너를 용서할 수 없다!”
“하하하. 한 명은 대학자의 귀하신 제자고, 또 다른 한 명은 이름도 모르는 어린놈이라. 운문이 별거 아니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소인배들이 가득한 집단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암우개가 크게 호통쳤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했거늘, 존귀하신 운문의 장로께서 도의를 모르고 힘으로 약자를 누르고, 권력에 빌붙어 아첨하니 운문의 기개와 학풍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이란 말이오? 그러고서도 중주성 제일의 학술기관이라 할 수 있겠소!”
천제현은 분노에 찬 운광암을 앞에 두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비난했다.
“이곳에 운문의 젊은 제자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이들이 자기 가문 장로의 이런 모습을 보고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군요. 양씨 가문은 손속이 악랄하여 악명이 자자하더니, 결국 얼마 전에 낭패를 보았지요. 제가 보기엔 운씨 가문도 이대로 간다면 곧 양씨 가문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네, 네놈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구나!”
“그대는! 가문을 위해 공헌을 하지는 못할망정, 벌레 같은 놈을 두둔하기 급급하니. 겉으로는 운문의 장로인척 하지만 사실은 운문의 적이 아니고 뭐겠소이까!”
운문의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저 어린 자유수련자의 언변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장로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욕을 해대고 있었다.
게다가 이자는 마치 미친 것 같았다.
중주성에서 그 누구도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