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160화 (157/729)

# 160

제160장 다시 만난 경호

동씨 가문으로 들어온 남자 뒤에는 용맹스러워 보이는 십여 명의 호위들이 서 있었다. 그는 큰 걸음으로 거들먹거리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떤 놈이 감히 내 예비 신부를 빼앗으려는 게야. 죽고 싶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천진상회의 경호다!”

금포를 입은 청년이 바로 경호였다. 저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니 자신 몸속에 맹독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는 듯 했다.

그는 팔을 휘저으며 큰 걸음으로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너희 동씨 가문이 먼저 정략결혼을 요청하고 예물을 받아 처먹은 것도 이미 이 바닥에 다 소문이 났는데,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내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게야? 우리 천진상회의 체면을 아주 그냥 똥통에 처박아 버리는 구나!”

경호가 경멸의 눈빛으로 동씨 가문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그의 눈빛은 우월감으로 가득했다.

‘감히 나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해? 난 지금 중주성에서 제일 잘 나간다고! 경씨 가문의 초신성이란 말이지! 이런 조그만 가문의 찌꺼기들은 상대도 안 되지!’

경호의 시선이 모든 사람을 훑고 지난 후,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천제현에게 향했다.

천제현은 암우개로 변장했기 때문에 경호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경호가 호통을 쳤다.

“무엄하군! 본 도령을 보고도 감히 앉아서 차를 마셔?”

동악이 원한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

“도련님, 바로 저자입니다!”

경호가 흥하며 콧방귀를 뀌더니 막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표정이 굳어 버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괴상하게 변해 있었다.

‘어? 저 검을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경호가 소년의 등 뒤에 있는 검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봤더라. 잠깐!’

경호는 마치 번개에 맞은 것과 같은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저건 천제현의 검이 아니었던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너…… 그 검을 어디서 주웠느냐?”

천제현이 천천히 일어나면서 미소를 지었다.

경호는 그 미소가 매우 익숙했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미소였다.

“이 검 말인갑쇼? 당연히 소인의 것이지요!”

얼굴은 달랐지만, 목소리, 표정, 말투 모두가 똑같았다.

경호는 매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때, 천제현의 등 뒤에서 머리 하나가 보였다.

흰 새끼 여우가 천제현의 표정을 흉내 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괴이한 눈빛으로 경호를 훑어봤다.

‘흰 새끼 여우까지! 정말 그 미친놈이란 말인가!’

“며칠 못 본 동안 난 또 네가 죽은 줄 알았지.”

천제현이 웃으며 물었다.

“근데 죽기는커녕 얼굴만 더 번질번질해져가지고 신부를 맞이하려고 준비 하고 있었군. 이거 내가 다 부끄러워지네.”

“이놈이 감히!”

천진상회의 호위들이 화를 냈다.

“경호 도련님, 용서하십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동박문이 황급히 일어나 얼굴에 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천제현은 천하태평한 모습으로 아직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 소년은 정말……. 감히 겁도 없이 경호 도련님을 도발하다니! 큰일이다. 다 끝났어. 경호 저자의 성격으로 보아 오늘 동씨 가문은 큰 화를 당하겠구나.’

“동박문 저놈도 한패입니다!”

동악이 옆에서 부추겼다.

“도련님도 봤다시피 지금 저놈들이 도련님의 신부될 여자를 빼돌리려고 합니다. 이 일이 새어나간다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겁니다!”

“꺼져!”

경호가 갑자기 화를 내며 몸을 돌리더니 동악의 뺨을 갈겼다.

그 충격에 동악은 몇 미터나 날아갔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도대체 왜…….”

그는 피를 한 움큼 토하더니 바로 기절했다.

경호는 마치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뭘 보고 있느냐, 저놈을 끌어내어 두 다리를 분질러 버리거라!”

모두가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경호가 고개를 돌리자, 그의 얼굴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얼굴에 가득했던 오만한 기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비굴함과 아첨으로 가득했고, 매우 어색한 기침을 해댔다. 그가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사실, 최근에 수련을 하다가 사고가 좀 있었소. 지금 몸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라오. 눈앞이 어지럽고 혈액순환도 안 되고, 기억력이 점점 감퇴하고 있소. 오죽하면 최근에는 기방도 자주 안 간다오.”

말을 하는 동안에 그는 계속 기침을 했다.

“음…… 지금 몸 상태를 보아하니 아마도 결혼은 무리인 것 같소. 이곳에 온 것도 결혼을 취소하기 위해서라오.”

‘경호가 결혼을 취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그걸 믿으라고?’

방금 대문을 박차고 들어올 때만해도 동씨 가문 식솔들을 모두 끌어내 두들겨 팰 기세였다.

‘그런데 뭐가 어째? 결혼을 취소하기 위해 왔다고?’

천제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색을 너무 밝혀 양기가 허약해진 것 같네요. 젊은 나이에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해요. 앞으로는 색을 좀 멀리 하는 게 좋겠어요!”

‘양기가 허약하다고!’

경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극히 옳으신 말씀입니다!”

천제현이 말을 이었다.

“제가 의술을 좀 익힌 바가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치료해드릴까요?”

경호가 황급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감히 그래도 될는지요, 그럼 제가 경씨 가문으로 모시겠습니다!”

동박문은 이제야 눈치를 챘다.

경호는 천제현을 매우 꺼려했다. 아니 두려워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천제현은 경호의 말을 무시하고 동소어의 옆으로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왜 널 도우려는지 알아?”

동소어가 어쩔 줄 몰라 말했다.

“소협께서는 좋은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좋은 분이라?”

천제현이 턱을 만지면서 껄껄거리고 웃었다.

“당연히 좋은 사람이지. 게다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너 기관 만드는 걸 좋아하니? 내가 널 한 번 시험해 보겠다. 도면 두 개를 줄 테니, 네가 이걸 만들어서 3일 안에 경씨 가문에 보낸다면 내가 더 놀라운 선물을 주겠다.”

천제현은 말을 하면서 족자 두 개를 꺼내 동소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경호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동소어는 족자를 펼쳐보더니 순간 넋을 놓고 쳐다봤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기관을 만드는데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천제현이 준 도면은 매우 모호했고, 완벽하지 않았지만, 동소어는 이것이 매우 흥미로운 물건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 신비로운 오라버니는 도대체 누구일까?’

한편 동박문은 얼굴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동씨 가문이 귀인을 만났구나! 정말 귀인을 만났어!’

동박문은 족자를 뚫어져라 보고있는 동소어를 보며 물었다.

“소어야, 만들 수 있겠느냐?”

동소어가 족자를 접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면은 거의 완벽해요. 오라버니께서는 기관술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단지 놀라운 기억력과 구상능력으로 이 도면을 그려낸 거 같아요. 그래서 몇 곳이 좀 부족하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완벽해질 거예요.”

천제현은 다시 오만방자하게 굴었고, 경호는 천제현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천진상회의 호위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도련님께서 왜 저러시지?’

‘저자와 아는 사이인가?’

이들은 경호가 장음진에서 천제현을 도발하고 기적상회를 손에 넣으려다가 죽도록 두들겨 맞고 수천 만 냥의 자산을 날린 것을 모르고 있었다.

천제현이 경호, 경현에게 강제로 독약을 먹였기 때문에 이들은 천제현의 해독약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중주성에는 식심독을 해독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천제현이 죽거나 실종되면 그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경호는 장음진을 떠난 후 화를 식히지 못하고 복수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중주성에 돌아가자마자 너무 놀라 하마터면 바지에 오줌까지 쌀 뻔 했다.

경호는 천제현이 천남성에서 양씨 가문의 십여 고수를 박살 낸 일.

그리고 천제현을 잡으러 천남성에 간 사대공자 중 하나인 양천랑이 오히려 그에게 산채로 잡힌 일을 듣게 되었다.

양천랑은 혼성 4성의 실력이다.

무려 혼성 중기의 현혼 고수였다.

그보다 강한 자는 중주성에서도 몇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별다른 저항도 못해 보고 천제현의 손에 잡혔던 것이다. 이는 중주성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더 놀라운 일은, 분노한 양무도가 흑랑용병단의 최고 정예들을 이끌고 아들을 구하러 천남성으로 향했지만 되레 체면을 구기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양천랑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엉덩이가 발가벗겨진 채 맞았고, 심지어 팔까지 잘려 나갔다.

양무도 역시 천제현에게 한바탕 꾸지람을 들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신풍후까지 나타나서 이들을 중재하였다.

양씨 가문은 결국 수모만 당한 채 천제현의 머리털 하나 건드리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게다가 천제현은 여전히 겁 없이 날뛰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무사태평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이런 일은 중주성역사상 전무후무했다.

경호는 그제야 자기가 건드린 인물이 어떤 자인지 알게 되었다.

양무도조차도 안중에 두지 않던 자인데 작은 가문인 경씨 가문이야 오죽하겠는가?

그에 대한 복수심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의 마음속에 남은 것은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이런 엄청난 괴물을 건드려놓고 이렇게 무사히 돌아 온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지금의 천제현은 폭탄과도 같았다.

중주성에 원한을 산자가 셀 수 없이 많아 만약 신분이 드러나게 된다면 중주성이 발칵 뒤집히게 될 것이다. 천제현은 물론이고 경씨 가문에도 재앙이 될 것이다.

천제현이 경호에게 말했다.

“잘 기억해둬. 내 이름은 암우개고, 경씨 가문에서 최근에 받아들인 문객이야. 알았지? 네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내말 알아들었어?”

천제현의 신분이 들어났을 때 닥치게 될 재앙에 생각이 미치자 경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연하죠, 제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데요!”

“내가 말한 물건은 찾았느냐?”

“말씀하신 삼생요충, 유화초, 전자수정석 모두 창고로 수송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루트를 통해 사들여서 값이 조금 비쌌…….”

“왜? 내가 돈이 없어 보여?”

“어찌 감히!”

경호가 황급히 땀을 닦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