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제158장 재능을 가진 소녀, 동소어
청년의 곁에 있던 여자아이가 황급히 청년의 옷을 잡아끌면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그냥 가요. 우리가 잘못한 거 같아요!”
“뭘 무서워하는 거야? 그저 자유 수련자일 뿐이야. 우리 가문이 비록 크지는 않지만 저딴 자유 수련자 하나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고. 저렇게 파렴치하게 구는데 체면 따위 봐줄 필요는 없지!”
“짜증나게 하는군.”
천제현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별로 현명한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청년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화를 냈다.
“거지같은 놈,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보군. 여봐라! 저놈을 길가로 끌어내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짝하는 소리가 나면서 천제현이 청년의 뺨을 갈겼다.
청년은 몇 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이 몇 개가 부러졌다.
청년은 얼이 빠진 얼굴로 천제현을 쳐다봤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연체 9성 정점의 실력으로 저 미꾸라지같은 놈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다니!’
젊은 여자 판매원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당신이…… 당신이 감히 도련님을 때리다니! 여기요, 여기 이자가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취보객의 호위들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천제현이 다시 발로 청년을 짓밟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오빠를 건드리지 마!”
여자아이가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나무 부스러기를 한 줌 꺼내 천제현에게 던졌다.
그러자 나무 부스러기들이 공중에서 나무로 된 벌떼로 변했다.
그 광경은 매우 신기했는데, 나무로 된 벌마다 극강의 기운을 뿜어내는 수정석이 끼워져 있었다.
아마 나무벌의 파괴력은 매우 강력하리라.
천제현은 나무벌떼가 자신을 둘러싸도록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고는 여자아이를 처다 보며 조용히 말했다.
“너도 내게 덤비려는 것이냐?”
“나, 나는…….”
여자아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백옥같이 흰 피부, 그러나 성격은 매우 내성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말까지 더듬었다.
“미안해요…… 오빠는 그저…… 내 병을 치료하려고 그런 거예요!”
청년이 뺨을 만지며 일어섰다.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천제현을 노려봤다.
“자신이 혼성의 실력이라고 굉장히 대단한줄 아나본데. 중주성에는 너같은 놈은 쌓이고 쌓였어! 감히 우리 동씨 가문의 물건을 넘보려고 하다니, 살려두지 않겠다! 소어, 저놈을 처치해!”
여자아이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만해요. 이 약은 가져가세요!”
나무벌이 다시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아이는 주머니를 꽉 조이더니 몸을 돌렸다.
“오라버니, 우리 그만 가요!”
청년이 화를 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저건 네 병을 치료하는데 쓰일 물건이라고!”
여자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리가 늦게 왔잖아요. 남의 물건을 빼앗는 건 나쁜 짓이에요.”
“잠깐!”
천제현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기관충(机关蟲)은 너 혼자서 만든 거니?”
여자아이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듯했으나 기관충 얘기를 듣자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네, 제가 혼자 만든 거예요.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말을 더듬는 아이는 기관을 다루는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천제현은 속으로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제 이름은…… 동소어예요.”
이때, 호위들이 몰려왔다.
젊은 여자 판매원이 천제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예요, 저자가 난동을 부렸어요!”
호위들이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감히 취보객에서 난동을 부리다니, 꼬마야, 죽고 싶냐? 어서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박살을 내주마!”
천제현은 이 흉악스러운 호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자아이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넌 병에 걸린 게 아냐, 단지 특이한 체질을 갖고 있는 거지. 내 말이 맞지?”
여자아이가 놀라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치료해 줄게!”
동소어가 믿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천제현을 바라봤다.
“정말인가요?”
“소어, 그를 믿지 마!”
청년이 여자아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그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천제현을 바라봤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자의 말을 어떻게 믿어!”
천제현이 담담히 말했다.
“결정은 너희 스스로가 하는 거니까. 너희가 영잠옥을 사려고 한 건 영잠옥이 기운을 흡수하기 때문이지. 그걸 이용해서 동소어 체내의 어두운 속성 기운을 빨아들이려는 거지? 하지만 이건 완전한 치료법이 아니야, 그저 고통만 줄여줄 뿐이지!”
청년이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정말 내 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거냐?”
천제현이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건 해봐야 알지.”
“좋아. 그럼 한 번 해봐라!”
청년은 천제현의 차림을 다시 살펴봤다.
‘행색을 보니 이제 막 본성에 온 자유 수련자 같은데, 잘못돼봤자, 치료에 실패하는 것뿐이니 한 번 맡겨보는 것도 나쁘니 않겠어.’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천제현에게 치료를 맡기기로 했다.
“만약 소어를 치료한다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 하지만 치료에 실패한다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오라버니!”
동소어의 말투에 원망이 섞여 있었다.
청년은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를 떴다.
“흥, 소어. 가자!”
청년은 부잣집 자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리에 밝았다.
남들 앞에서 자신에게 망신을 준 자가 동생의 병을 치료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자마자, 자신의 화를 억누르고 그에게 동생의 치료를 부탁했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
동가부.
대전 안에는 위엄이 있어 보이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동악이 위엄어린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에 불만이 가득 했다.
“명아, 소어야, 저 사람들은 누구냐? 왜 데리고 온 거지? 동가부가 아무 사람들이나 함부로 들일 수 있는 그런 곳이더냐? 이곳 규율도 모르는 것이냐!”
청년 동명이 황급히 말했다.
“큰 숙부, 저자들은 취보객에서 만난 자들인데, 자신들이 소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어요, 시험이라도 해볼 겸 데리고 왔습니다.”
“어리석은 소리!”
찻잔이 박살 났다.
동악이 일어서자 거센 기운이 몰아쳤다.
혼성 1성 정점에 달하는 실력에 불과했지만, 동명과 동소어는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 어느 대사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이야. 어디 길가에서 이상한 놈을 데리고 와서 대사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치료하게 한다고?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게냐, 없는 게냐?”
동명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비록 동명의 부친이 동씨 가문의 가주이기는 하지만 동악의 배분이 더 높아 가문에서의 위상은 더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명은 그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동악이 냉랭하게 말했다.
“소어는 보름 후에 정략결혼을 하게 될 것이야. 이 정략결혼이 우리 동씨 가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너희도 잘 알게다. 지금 중주성의 모든 가문들이 우리를 함부로 여기지 못하는 것은 다 이 결혼 때문이야. 이런 중요한 시기에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동명이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네!”
“저자들을 어서 쫓아내라!”
천제현이 냉소를 지었다.
“당신이 뭔데, 나보고 가라, 마라야?”
동악은 천제현이 감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해 소리쳤다.
“어디 외간 놈이 동씨 집안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는 게냐! 여봐라 저놈의 다리를 분질러 버리거라!”
동씨 가문의 호위들이 달려들었다.
“너희에게 그럴 능력이 있나 한 번 볼까!”
천제현이 유명검을 뽑아 들었다.
그때.
“왜 이렇게 시끄러운 게야?”
온화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매우 기품 있어 보이는 한 중년인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형님, 또 무엇 때문에 그리 화를 내십니까?”
동명, 동소어의 얼굴에 기쁨이 빛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동시에 소리쳤다.
“아버지!”
“박문아, 마침 잘 왔다!”
동악이 냉랭하게 말했다.
“수련자 나부랭이 하나가 소어의 병을 치료해 준답시고 동씨 집안에 함부로 들어와 소란을 피우고 있구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느냐?”
동박문이 놀라운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뭐라고? 소어의 병을 치료해 준다고? 그대가 정녕 소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단 말이냐?”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아요!”
동악이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동박문이 그에게 말할 시간을 주지 않고 황급히 말했다.
“그럼, 빨리 해보 거라!”
“너…….”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동악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좋다. 한 번 치료해 보거라!”
천제현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누가 가주이지?’
물론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니었다.
천제현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동소어의 기관과 기계에 대한 천부적인 자질이었다. 그는 그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여우야, 나와 봐!”
주먹 크기의 눈처럼 하얀 새끼 여우가 그의 옷 안에서 천천히 나와 천제현의 어깨 위에 올라가 앉더니 하품을 했다.
“가라!”
여우는 천제현의 생각을 읽은 듯, 동소어의 몸으로 뛰어 올랐다. 그러고는 두 손을 그녀의 배에다 올려놓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동소어 몸의 모든 모공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온 어두운 속성의 기운이 한데 뭉쳐서 점점 커지더니 여우의 뱃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여우는 분홍빛 혀를 날름거리며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다시 천제현의 어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동소어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완전히 좋아진 것 같아요!”
천제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몇 년 동안 경맥 속에 머물러 있던 어두운 속성의 기운은 다 빼냈습니다. 하지만 체질적인 문제로 시간이 흐르면 더 강력한 어두운 속성의 기운이 생길 거예요. 그러니 완전히 나을 때까지 저와 함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동악이 천제현의 말을 듣고 대로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소어는 보름 후에 시집을 가야 한다!”
천제현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이렇게 어린데 벌써 시집을 가나요?”
동소어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 결혼은 필시 가문에서 결정한 것이리라. 그리고 소어는 이 결혼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소어는 너랑 같이 갈 수 없다!”
동악의 시선이 천제현의 어깨 위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여우에게 꽂혔다. 그의 눈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