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제157장 취보각 구경
지금 천제현의 실력으로는 온힘을 다한다고 해도 승산이 낮았다.
게다가 그것은 같은 마력일 때 얘기였고, 천성하는 이미 혼성 4성 정점의 경지 아닌가.
‘천씨 가문? 천성하? 두고 보라지! 이 몸의 원래 주인이 갖고 있는 원한과 증오가 아니더라도 오늘 일로 네놈들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천제현은 작은 일로 꽁하는 쩨쩨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부당한 일을 당하고 참는 성격도 아니었다.
용서도 사람을 보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천성하에게 당한 일은 그에게는 일종의 모욕이자 수치였다.
천제현은 언젠가 기회를 잡아 천씨 가문에 이 빚을 돌려주리라.
물론 지금은 실력 차이가 너무 컸으므로 일단 참는 수밖에 없었지만, 힘과 세력을 갖추는 그날, 반드시 오늘 일을 갚아줄 생각이었다.
“가자. 중주성 시장에나 가서 쓸 만한 게 없나 좀 보자.”
천제현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새끼여우를 품 안에 넣은 후 상처를 치료하느라 머물렀던 작은 여관에서 나왔다.
지금 그가 천성하보다 약한 이유는 무공의 경지 때문이었다.
성광불멸체가 오묘하고 강인한 무공이라고는 하나 천제현은 육체의 근간을 다지는 효과에 더 집중했다.
유명염화검법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천제현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더 뛰어난 수련 재료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더 뛰어난 무공을 연마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유명염화검법은 공수를 겸비한 파괴력 있는 무공이기 때문에 지금 천제현에게 딱 어울렸다.
하지만 무공의 경지가 너무 낮았다.
한시라도 빨리 수련 재료들을 찾아 무공 경지를 높여야 한다.
성광불멸체나 유명염화검 중 하나라도 무공 경지를 높이면 같은 마력이라는 조건 하에서 천성하와 비등하게 싸울 자신이 있었고, 두 가지 다 경지를 높일 경우 그에게 이길 자신도 있었다.
한편, 중주성 중심부에는 성에서 가장 큰 거래 장소인 취보각(聚宝阁)이 있었다.
취보각은 각 가문이 연합해서 설립한 대형 거래장으로, 어떤 가문에도 속해 있지 않는 게 특징이었다.
그곳에서는 용병단이나 각 가문들에서 공급받은 십여 종류의 약재와 보물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천제현은 취보각에 처음 가봤지만, 상당히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보각은 팔각 궁전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흰색 옥석을 재료로 사용해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각 면마다 난 여덟 개의 문은 경비병들이 철통처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이곳은 최고급 상품을 판매하는 장소이므로 상품의 수량이 많지는 않았다.
가장 저렴한 물건도 금화 수만 냥에 달해 혼성 경지의 수련자들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취보각의 중심부에 들어간 천제현은 그곳에 전시된 상품들을 보고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천년용혈초가 금화 백오십만 냥에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2급 영약인 용혈초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뛰어난 효능을 가지게 된다.
지금 천제현의 눈앞에 있는 용혈초는 2,550년 됐다는 검증을 거친 약초로 반 성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직 완벽한 성약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가치는 다른 영약보다 최소 십여 배 높을 것이다.
이런 약초가 금화 백오십만 냥이라면 결코 비싸다고 볼 수 없었다.
천제현은 계속 걸으며 구경했다.
취보각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보통 십만 또는 백만 단위를 우습게 넘어갔다. 물론 그중에는 천제현에게 필요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그가 지금 지닌 돈은 따로 쓸 데가 있었기에 정말 큰 도움이 되는 물건이 아니라면 함부로 살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앞쪽이 시끌시끌해졌다.
“비키시오!”
“모두 물러나시오!”
갑자기 이백 명쯤 되는 경비병들이 사람들을 막으며 길을 텄다.
이어 흰 옷을 입은 노인 여섯 명이 황금으로 만든 손수레를 끌고 왔다.
그들은 붉은 천으로 덮인 물건을 취보각 중앙으로 끌고 와 거대한 금강석 진열대 앞에서 멈춰 섰다.
“금제를 풀어라!”
노인들이 동시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금강석 진열대가 열렸다.
일꾼 몇 명이 물건을 그 안에 넣고는 위에 덮인 붉은 천을 끌어내렸다.
그 물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직경 일 장 정도의 검고 거대한 바위였다. 전체가 먹물처럼 검은 그 바위의 표면에는 초록빛 화염이 이글거렸다.
“아니!?”
“원소 원석(元素源石)?”
여태까지 취보각에서 많은 보물들을 봤지만, 이것을 본 천제현은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이 세상에는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원소생명체(元素生命體)라고 불리는 생명체는 특히 신기한 존재였다.
원소생명체는 피와 살로 이뤄진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완전하고 순수한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식 환경이나 번식 방법, 각종 습관 등이 모두 일반적인 생명체와 크게 달랐다.
원소족들은 암수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번식 방법도 매우 특이했다.
원소족을 번식시키려면 먼저 원소족의 육체를 둘로 나눈 다음 안전한 용기 안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분리된 부분은 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의식이 생겨나 완전히 다른 원소생명체가 만들어진다.
지금 천제현의 눈앞에 있는 바위는 바로 그 원소족의 원석 같았다.
에너지가 어둠 쪽에 가까운 걸로 봐선 악 속성 원소의 자손임이 분명했다.
원소원석은 보통 땅속 깊은 곳에 존재하며 지표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저런 게 어떻게 중주성에 나타났을까!’
그때, 유명검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위가 품고 있는 순수한 에너지에 공명한 것이다.
천제현은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원소 원석의 속성이면 유명화를 키우고 유명검의 힘도 회복시킬 수 있으리라.
그렇게만 되면 유명염화검의 경지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좋은 물건이다!’
그러나 가격표를 본 순간 그의 기대가 일시에 사그라졌다.
‘금화 삼천오백만 냥?’
사실 원소원석 하나에 이 정도 가격이라면 비싸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어디에서 금화 삽천오백만 냥을 공수해온단 말인가?
간신히 힘과 마력 무공을 높여줄 수 있는 보물을 찾았는데 이렇게 입맛만 다셔야 하다니.
천제현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금화 삼천오백만 냥은 작은 돈이 아니지만 어떻게든 손에 넣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 그가 걱정하는 단 하나는 돈을 구해오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저 물건을 사가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와!”
“금화 삼천오백만만 냥이라고?”
“저 낡아빠진 돌덩이가? 사기 아니야?”
구경꾼들은 하나씩 자기 생각을 말하며 시끄럽게 굴었지만, 대부분이 가격에 놀라거나 원망하는 자들이고 그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사실 원소원석은 그렇게 큰 가치가 없었다. 사봤자 사용법을 모르니 관심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참을 시끄럽게 굴던 구경꾼들은 잠시 후 하나 둘씩 사라졌다.
규칙에 따르면 이렇게 비싼 물건은 한 달 안에 팔리지 않을 경우 판매자가 다시 회수하거나 저가에 경매에 붙여지곤 했다.
‘희망이 있다!’
천제현은 결정했다.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삼천오백만 냥을 모아 원소원석을 손에 넣어야겠어!’
천제현은 원소원석을 뒤로한 채 취보각을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
취보각에는 괜찮은 재료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 같이 가격이 너무 비쌌다.
천제현은 지금 자신이 가진 돈으로는 중주성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적상회는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강해지기 위해선 더 많은 돈과 자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아주 특별한 물건이 천제현의 시선을 끌었다.
그건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벌레였는데 온몸이 백옥처럼 하얬다.
‘영잠옥(灵蚕玉)이다!’
영잠옥은 살아 있을 때는 누에지만 죽으면 옥으로 변하는 상당히 귀하고 유용한 2급 영약이었다.
영잠은 약초만 먹고 자라기 때문에 체내에 강력한 영기가 축적된다.
영잠이 죽으면 그 영기 때문에 약재 효과를 내는 옥으로 변하는데, 그게 바로 영잠옥이었다.
게다가 영잠옥의 큰 특징은 영잠이 죽었을 때 영기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완벽히 보존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잠옥은 약을 조제할 때 무척 유용한 2급 영약으로 사용되었다.
저게 있으면 곧바로 마력을 높일 수 있고 천제현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그는 급히 그쪽으로 다가가 물었다.
“그 영잠옥, 얼마에 파십니까?”
“금화 이십만 냥이에요!”
젊은 여자 판매원은 자유 수련자 행색의 천제현을 보고 무시하는 어조로 강조해서 말했다.
“취보각에서는 흥정 같은 거 없어요!”
2급 영약이 그 정도 가격이라면 비싸다고 볼 수 없었다.
일반 수련자들에게 금화 이십만 냥은 어마어마한 돈이었지만, 천제현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천제현이 금화수정조각 한 묶음을 꺼내 물건을 사려고 할 때.
“잠깐!”
그의 등 뒤에서 소리치는 자가 있었다.
“그 영잠옥, 내가 사겠소!”
한 청년이 천제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옆으로 다가오더니 영잠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포장해주시오! 시간이 없으니까!”
그의 복장과 휘장을 본 판매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즉시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도련님이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바로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청년은 온몸에서 귀티가 흘렀다. 그의 등 뒤에는 한 여자아이가 바짝 붙어 있었다.
소녀는 열세네 살 정도로 보였고, 피부는 백옥처럼 하얬다. 반짝이는 그녀의 눈에는 부끄러움의 빛이 가득했다.
천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먼저 산다고 하지 않았나요! 도대체 왜 그에게 파는 거예요!”
“돈을 내셨나요?”
물건 파는 아가씨는 경멸의 눈빛으로 천제현의 손에 들려 있는 금화수정조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돈을 내지 않았으니 당연히 팔기로 한 게 아니죠.”
“그 말대로라면 저자도 돈을 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젊은 여자 판매원은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이 약재는 당신보다 동씨 가문의 사람에게 파는 것이 더 가치 있게 쓰일 거예요. 당신이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에요.”
“어디서 굴러온 놈이냐?”
청년이 비웃으며 말했다.
“조용히 말할 때 얌전히 꺼져라. 생긴 건 꼭 진흙탕속의 미꾸라지처럼 생겨가지고, 가서 거울이나 봐. 어디 감히 내 물건을 넘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