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제155장 천검공자와 조우
그 검객들은 모두 똑같은 복장을 하고 청옥용린구(青玉龙鳞驹) 위에 타 있었다.
청옥용린구란 매우 강력한 전투마로, 크기가 십오 척에 달했으며 금석처럼 단단한 몸을 자랑하는 마수의 피가 섞인 말이었다. 또한 하루에 만 리를 이동할 수 있으며 연체 9성 정점의 전투력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한 줄에 여덟 명씩 세 줄이니 총 스물네 명이 있는 셈이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엄청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구경꾼 한 명이 경탄하듯 말했다.
“저게 바로 이십사 천검위로군! 전부 혼성 2성의 실력자라며? 천검공자가 고대 무공을 전수해주고 어딜 가든 항상 데리고 다닌다고 들었어. 천검공자의 충직한 호위무사들이자 천씨 가문 최고의 수호자들이지!”
“천검공자의 권세가 이 정도였군!”
“과연 천검공자야!”
그 자리에 있던 자유 수련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물네 명이나 되는 호위무사들 전부 혼성 2성이라니.
한 명 한 명의 기세를 보건대 특수한 무공을 수련해서 그런지 같은 급의 수련자보다 몇 배는 강해 보였다.
이십사 천검위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의장대가 몇 줄로 정렬한 채 나타났다.
그들은 아름답고 용맹스러운 흰색 전투마를 타고 있었는데, 그 말들의 키는 일반 말보다 3척은 더 커 보였다.
손에 금색 창을 든 백여 명의 전사들이 그 거대한 전투마를 타고 마수차 하나를 둘러싼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마수차도 보통 마수차가 아니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마수차는 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마수차가 나타나자 구경꾼들은 머리가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위용 있고 위풍당당한 기운은 마수차로부터 흘러나왔다. 그건 천지를 뒤덮는 해일과도 같이 보는 이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으르렁! 크헝!
거대한 짐승 두 마리가 황금마수차를 끌고 있었다. 호랑이같은 사지에 교룡같은 몸통을 가진 그 짐승은 웅장하고도 위엄 있었으며,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호교(虎蛟)다!”
“고대의 영물, 호교야!”
천검공자의 행렬을 처음 본 자유 수련자들은 감격해서 무릎 꿇고 절이라도 올릴 태세였다.
호교는 교룡 혈통을 지닌 고대 짐승으로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마수차를 끌고 있는 두 마리의 호교만으로도 혼성 3성 이상의 실력을 낼 수 있었다.
호교 황금마수차가 등장한 순간, 온 거리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거대한 산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묵직한 통증을 느꼈다.
“천검공자를 뵙습니다!”
“천검공자를 뵙습니다!”
그 엄청난 위압감 앞에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제왕이라도 알현하는 양 무릎을 꿇었다.
천제현은 호교 황금마수차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마어마한 기운을 발산하는 황금마수차나 위풍당당한 호교나 모두 중주성에 있을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능성은 딱 한 가지.
천성하가 고대의 전승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갖고 있는 물건들은 모두 선대에서 계승되어 내려온 유물인 게 분명했다.
‘이렇게 운이 좋은 놈인 줄은 몰랐는걸.’
저런 상황에서라면 강해지지 않기가 더 힘들 것이다.
호교 황금마수차의 양 옆에는 천검공자의 최측근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서생 복장을 하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애꾸눈의 거한이었다.
서생처럼 보이는 자는 다름 아니라 얼마 전에 천제현에게 걸렸다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천통문이었다.
천검공자가 내뿜는 위압감으로 인해 무릎을 꿇은 사람들 사이로 오직 천제현만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서 있는 게 누군지 슬쩍 쳐다본 천통문은 순간적으로 그를 알아보고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저놈은?”
천통문이 보기에 천제현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며칠 못 본 새에 더 젊어진 것 같았다.
황금마수차 안쪽에서 차갑고 거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기운을 느끼고도 무릎을 꿇지 않다니, 한 가닥 하는 자 같군. 통문 선생, 저 자를 아시오?”
천통문은 잠시 머뭇거렸다.
체면 때문에 사실대로 고하기가 힘들었던 그는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전에 저한테 빚을 진 적이 있는 놈입니다. 딱히 친분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하하하하!”
애꾸눈의 거한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통문 형님께 빚을 지고도 멀쩡히 살아서 중주성을 걸어 다닌단 말입니까? 나, 천패천이 통문 형님 대신 저놈 목숨을 거둬들이지요!”
안색이 새파래진 천통문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애꾸눈 거한이 발로 땅을 한 번 차 황금마수차 옆에서 휙하고 사라지더니 천제현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의 오른 주먹에는 수많은 부적 주문들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 애송아, 넌 참 재수도 없구나.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이유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천제현이 천검공자를 보고 꿇어 엎드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목숨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태산처럼 거대한 거한의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무고한 행인들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천제현의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상대는 혼성 3성의 실력자이므로 지금의 천제현으로서는 그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광불멸체의 힘을 모아 그 공격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포스러운 힘에 천제현의 몸이 몇 장이나 밀려나갔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내상을 입어 피를 토했다.
천제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성광불멸체에 거북이 등 같은 균열이 일어나더니 산산조각 났다.
천제현은 깜짝 놀랐다.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닌데! 엄청난 파괴력이다!’
그러나 천패천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고작 혼성 1성의 실력으로 내 오성역도를 막다니. 허나 이번에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할 것이다.”
“패천, 돌아와!”
천패천이 상대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려 하고 있을 때, 호교 황금마수차 안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 주저하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마수차 곁으로 돌아갔다.
호교 황금마수차가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수차가 천제현의 눈앞을 지나갈 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자네는 재능이 뛰어나군. 여기서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걸. 내 하인이 되어 나한테 충성하는 게 어때? 그렇게 하면 내가 직접 자네를 가르쳐 주지.”
‘네놈 하인이 되라고? 직접 나를 가르쳐?’
천제현은 두 번의 인생을 살았지만, 누군가 자신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했다.
“나한테 신경끄시지!”
순간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천검공자 천성하가 직접 손을 내미는데, 그것도 직접 무공을 전수해주겠다는데 이 얼마나 영광인가?
현재 중주성에서 훗날 제후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천성하가 유일했고, 수많은 혼성술사들이 그를 따르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저 무명의 소년이, 문파도 없는 자유 수련자 주제에 감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천검공자의 손을 뿌리치다니.
그야말로 백주대낮에 천검공자에게 모욕을 준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호교 황금마수차 안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위압감을 느꼈다.
마수차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별로 현명한 선택 같지 않은걸. 이유가 있나?”
그러나 천제현은 그 태산 같은 기세 앞에서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소인은 덕이 없어 남과 같이 지내는 걸 잘 못 합니다. 척추가 굳어서 허리를 숙이지도 못하고요!”
덕이 없어 남과 같이 지내지 못하고 척추가 굳어서 허리를 숙이지도 못한다니!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몇 마디가 천성하의 성질을 긁고 있었다.
천제현의 인내심이 부셔지는 소리가 사람들에게 들리는 듯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던 성 사람들 수천 명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저 기개와 기백을 보라. 저 소년이 천검공자와 같은 큰 인물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이나 해봤을까?
자존심이 정말 목숨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천통문과 천패천은 경악했다.
사실 그 둘은 천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 민간에서 발굴된 인재들이었다.
천검공자의 힘이 무서워서, 또는 그의 위용을 흠모해서 자신의 성을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주인인 천성하의 수하가 된 것이다.
천검공자를 보고 그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든 그를 보면 자기 자신이 초라해지는 걸 느꼈으니까.
그런데 얼마나 자신이 있고 얼마나 오만하길래 저 천검공자의 후광을 거부한단 말인가!
천통문과 천패천은 둘 다 천검공자의 사람이었다. 특히 천통문은 천제현과 사연이 있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무섭게 성장한 그 무명의 소년에게 놀라움을 넘어 탄복의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저 소년은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태풍에 저항하는 나무는 꺾이는 법.
이제 이 세상에서 저 소년의 존재는 사라지리라. 그러니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천성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마치 왕이 천민을 대하듯 저항할 수 없는 위엄을 담아 입을 열었다.
“중주성에서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넌 꽤 자신이 있어 보이니 한 번의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큰 은총이라도 베푸는 듯한 어조였다.
“일검이다. 오직 일검만 출수하겠다. 또한, 너와 같은 수준으로 내 마력도 제한하도록 하지.”
천검공자 천성하의 목소리가 신 같은 위엄을 담고 울려 퍼졌다.
마치 저 하늘의 구름과 바람까지도 부릴 수 있는 양.
“내 일검을 받고도 살아남는다면 목숨을 연명할 자격이 있는 셈이지.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 세상을 영원히 하직해야 할 것이야.”
그의 말을 들은 구경꾼들은 하나 같이 소년을 동정해 마지않았다.
천검공자가 그 말을 한 순간부터 소년의 목숨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천검공자에게는 유명한 별명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일검절명(一劍絶命) 천성하였다.
지금까지 같은 경지의 수련자치고 그의 일검을 받아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세 공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검공자의 강함은 이미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