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제154장 중주성 입성
천제현은 다시 한 번 예전에 하던 대로 변장을 하고 신분을 위조해 조용히 성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먼저 중주성의 남궁혜와 연락해 비밀리에 기반을 다진 다음, 때가 무르익으면 신분을 드러내고 전광석화처럼 기적상회가 중주성에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다.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열여덟 강시도 데려가지 않기로 했다.
강시들은 혼성 4성의 초고수를 상대할 수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 신분이 탄로 날 가능성이 컸다.
공서련의 커다란 두 눈에 걱정의 빛이 감돌았다.
“혼자 중주성에 들어가도 정말 괜찮겠어?”
천제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걱정할 거 뭐 있어요? 아직도 제가 못 미더운 거예요? 걱정 말고 천남성에서 수련과 상회 경영에 힘쓰세요. 중주성 일은 다 제게 맡기고요! 절대 게으름 피우면 안 돼요! 2주 후에 돌아왔을 때도 마력이랑 성광불멸체가 그대로면 엉덩이 맞을 줄 아세요!”
그의 말에 서현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씩씩거렸다.
“걱정 마! 내가 곧 널 이겨줄 테니까!”
공화련은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긴 했다. 기적상회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중주성의 각 세력가들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천제현이 중주성에 들어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리라.
생각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준비해놓을게!”
그녀의 말에 천제현이 대답했다.
“중주성의 환경은 천남성과 큰 차이가 있죠. 특히 각 가문들의 세력이 엄청나고요. 현재 천남성에서 개발한 기술들이 필요해요. 마력등이나 마력화로 같은 거요. 하지만 그것들을 중주성으로 가져가면 바로 정체가 탄로 날 테니 다른 걸 준비해야겠어요.”
그의 말에 공화련이 입을 열었다.
“자음탑하고 수정통신기를 만들 생각이구나!”
“맞아요. 지금 계획 중이죠!”
천제현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량으로 재료를 보냈다간 바로 들통날 거예요. 장음진의 광산은 오랫동안 천진상회 소유였으니, 천진상회에 장음석 비축분이 꽤 있겠죠. 금화 500만 냥만 정도만 갖고 가면 될 것 같아요!”
현금을 가져가서 필요한 걸 바로 조달해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기적상회와의 연락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 더 안전할 것이다.
공화련은 즉시 자금줄을 끌어 모아 금화 700만 냥을 만들고, 그것을 만 냥짜리 금화수정조각 700장으로 바꿨다.
천제현은 순식간에 다시 평범한 외모의 소년, 암우개로 변신하고 자유 수련자 복장을 했다. 그리고 낡아빠진 천 조각 안에 거액의 돈을 넣고 짐을 싸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조심해야 돼!”
“나랑 언니도 보름 후에 출발할게!”
천제현을 배웅하는 공서련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걱정 말아요. 제가 언제 실망시킨 적 있어요?”
천제현은 그녀의 코를 꼬집으면서 큰소리로 웃어 보였다.
“그럼 먼저 갑니다. 보름 후에 봐요!”
멀어지는 천제현의 모습을 지켜보던 공서련은 다시 대문으로 뛰어가서 소리쳤다.
“조심해야 돼! 나도 열심히 수련하고 공부할게!”
천제현은 공서련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저 꼬맹이 녀석!’
사실 천남성에는 공화련이 있으니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남궁의, 염천웅, 장립청, 염빙 등이 기적상회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줄 테니까.
워낙 총명한 공화련인지라 천제현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워 이제 그의 제자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공화련은 천서 정령 덕에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학습 능력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해 천제현에게 배운 기간이 길지는 않았어도 주요 제품과 관련된 기술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천제현이 없더라도 기술적인 면에서 곤란을 겪지는 않으리라.
천제현은 좋은 말을 한 필 사서 중주성 방향으로 달려갔다.
말 위에서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시대에 처음 왔을 때부터 공서련과 공화련, 남궁혜를 만나기까지……. 짧은 기간이었는데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이제 그는 완전히 이 시대에 적응해 있었다.
그리고 기적상회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사실 공화련과 공서련은 천제현의 덤덤한 표정을 보며 그에게 상회는 수련을 위해 돈을 모으는 도구에 불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지만 천제현은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있었다.
처음치고 훌륭하지 않은가.
이 추세로 계속 발전해 나간다면 기적상회는 몇 년 안에 대륙의 모든 자원을 손에 넣은 초대형 상회로 크게 되리라.
그리고 충분한 물질적, 기술적 기반을 다진 후에는 자신의 목표와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꿈이자 숙원.
지식은 있어도 자원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했던 것.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혼의 영역으로 나가는 것.
그렇게 되면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천제현은 하고 싶은 일이 아주아주 많았다. 지난 삶에서 이루지 못한 그 꿈들이 지금은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문을 향해 계속 전진하리라!
중주성은 천남성으로부터 직선거리 약 삼천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워낙 거리가 있다 보니 마수의 혈통이 섞인 준마를 타고서도 이틀이나 지나서 중주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주성은 지리적 이점이 뛰어난 곳으로, 동쪽으로는 끝없는 산맥이 이어졌으며 원시림이 산맥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각종 진귀한 영수와 약재가 서식했다.
산맥 외곽 지역은 이미 개발이 시작되어 광산, 임업장, 사냥터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또 남쪽에는 하늘과 맞닿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하며 천만 마리가 넘는 양과 소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논밭, 약재밭 등이 수없이 많았다.
북쪽 지역은 안개 자욱한 호수가 넓게 자리 잡고 있어 수많은 배들이 화물을 실어 나르는 수상 교통지로 발전했으며, 만 명이 넘는 인구가 운수업에 종사 중이었다.
이렇듯 끝없는 숲과 초원, 호수 가운데 중주성이 우뚝 서 있었다.
흰색의 단단한 돌로 지어지고 해자를 두른 그 성은 밖에서 보면 꼭 하얀 요새 같았다.
네다섯 겹으로 구성된 성벽의 두께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높고 두꺼워져서 정교하고 거대한 계단 형태를 이루며 심미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주의 본성이다.
영기가 넘쳐흐르고 자원과 물자가 풍부하며 교통까지 편리한 대도시.
천제현은 중주성 주변에 수많은 고대 유적들이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중주성 안쪽에서도 고대의 기운이 느껴졌다.
고대의 금제, 그리고 자연의 금제가 주변 수백 리 안에 있는 영기를 중주성 부근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천제현은 지금껏 이런 금제를 본 적이 없었다. 형태를 봐선 인간이 만든 게 아닌 것 같았다. 고대인들의 걸작이 분명하다.
그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중주성은 유적 위에 만들어진 도시였다.
수많은 비밀, 심지어 태곳적 신비를 품고 있는 유서 깊은 도시!
중주성이 발전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천제현은 먼 길 떠나온 여행자 행색을 하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중주성의 거리들은 천남성보다 몇 배는 넓었으며, 모든 거리에 큰 길과 작은 길이 두 개씩 나 있었다.
하나는 마수차가 다니는 길, 또 하나는 행인들이 다니는 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수차들의 왕래가 잦은데도 교통 정체 현상이 없었다.
“중주성은 역시 놀라운 곳이야!”
천제현은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거리마다 각종 상점들이 빼곡했으며 무예관이나 도장은 더 많았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수련자들의 복장 또한 다채로웠다.
서로 다른 색깔과 문양들이 자신이 속한 가문과 세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천제현은 자유 수련자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든든한 세력 기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제현은 행인들의 시선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중주성의 번화한 풍경을 감상했다.
중주성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중주학당이라는 학습기관이 있었다.
수만 명의 학생이 적을 둔 그 교육기관은 하나의 문파처럼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끌벅적한 상업도시의 면모 한 편으로 수련하는 자들의 학술적 분위기가 엿보였고, 어딜 가든 무예관과 도장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실 천제현은 중주학당하면 남궁혜가 떠올랐다.
‘남궁혜도 여기 온 지도 꽤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완전히 적응했겠지!’
중주학당에 가서 남궁혜를 찾아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중주학당의 규모가 워낙 큰지라 어딜 가야 그녀를 찾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기에는 신문이 탄로 날 게 걱정되었다.
‘일단 기다리자! 지금 그게 급한 건 아니니까!’
천제현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더니 난폭해 보이는 호랑이를 탄 여덟 명의 남자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그들은 다른 마수차들을 밀어내고 행상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억지로 길을 비우고 있었다.
“꺼져!”
“썩 비키지 못해!”
“천검공자께서 납신다. 잡것들은 모두 길을 터라!”
그들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툴툴거리던 행인들은 천검공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황급히 길을 열었다.
감히 원망의 말조차 내뱉는 사람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천제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혼잣말을 했다.
“천검공자? 천성하를 말하는 거겠지? 해도 너무하는군!”
새끼여우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오랜만에 주인의 생각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네가 뭘 안다고 고개를 끄덕여?”
천제현은 여우를 타박한 후 주변에 있던 행인에게 말을 걸었다.
“천검공자가 대체 누군데 이러는 겁니까?”
“천검공자는 중주 최고의 천재라오!”
“우리 중주의 얼굴이자 자랑이지.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간 목숨이 위태로울 거요!”
행인들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천제현을 타일렀다.
천검공자를 욕하는 건 중주성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듯이.
천제현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놈이 대단하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자기가 뭐라고 중주성을 대표한단 말인가?
바로 그때.
“이랴! 이랴! 이랴!”
은색 도포를 입은 천씨 가문의 검객들이 세 줄로 열을 맞춰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