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제144장 전리품 수확
‘저 조그마한 게 영특하기 그지없으니 날 속이고 있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천제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우는 손에서 빠져나가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순간이동으로 피의 늪 위로 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공중에 떠있었다.
여우가 힘껏 복부를 조여 거칠게 숨을 들이키자 정혈이 들끓기 시작했다.
무수한 핏방울이 중력을 잃은 듯 하늘로 떠올라 서로 모이더니 선홍빛 줄기를 이루었다. 이윽고 이 줄기가 새끼 여우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늪에 가득 찼던 정혈이 10초도 채 되지 않아 빠르게 고갈되어 아주 깨끗하게 새끼 여우 입속으로 들어갔다. 이를 지켜본 천제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빌이먹을 여우는 대체 못 먹는 게 뭐야? 숨겨진 능력이 또 뭐가 있지?’
천제현은 지금까지 저 여우에 대하여 하나도 알지 못했다.
새끼 여우는 특별한 전투력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순간이동에 가까운 능력을 보였으니, 정탐하거나 도망칠 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새끼 여우는 파살수와 유사한 능력도 있어 모든 사악한 사물을 제압할 수 있다.
새끼 여우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능력은 분명 이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천제현은 강시왕이 새끼여우를 자센에게 맡기려고 한 사실을 떠올렸다.
‘게다가 그때 성주 뭐라 뭐라 했는데…… 그건 또 뭐지?’
하지만 천제현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조금씩 알아보는 수밖에.’
새끼 여우가 그 많은 정혈을 다 흡입하자 하얗고 보송보송한 털이 선홍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겨우 몇 초에 불과했다. 선홍색이 다 스며들자 다시 티끌하나 없이 새하얀 몸으로 돌아왔다.
끽끽!
새끼 여우가 피의 늪 바닥에 내려와 여기저기를 빙글빙글 돌며, 천제현에게 빨리 오라는 듯 움직였다.
천제현이 텅텅 빈 늪에 뛰어 들어갔다.
새끼 여우는 몸을 곧게 세운 후 빠르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발로 옆에 쌓여 있는 물건을 가리켰다.
고풍스러운 그릇, 암홍색 영패, 오래된 무기와 방어구 몇 개, 흑옥으로 장식된 문서 몇 개가 있었다.
창, 단도, 낡고 피 묻은 옷, 핏빛으로 빛나는 미세한 침도 있었다.
이것들은 천마교 교주가 남긴 장비였다.
중품 혼기는 최소 금화 수십 만 냥에서 많게는 백 만 냥 정도는 된다.
더욱이 상품 혼기라면 그 가치는 훨씬 높아 수백만 냥에 해당할 것이다.
다만 수백 년 동안 방치된 관계로 그중 혼기 몇 개의 기령이 이미 쇠퇴해 버렸다.
이 때문에 가격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미세침은 좀 흥미로운데!”
천제현이 미세침을 잡았다.
미세침은 몇 촌 길이에 소의 털처럼 가늘어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혼기의 파동도 없어 그냥 보면 보통의 물건처럼 보였다.
하지만 천제현은 이것을 조금도 흘려보지 않았다.
‘이 침의 재료는 절대 평범한 게 아니야!’
이 가늘고 긴 침은 사실 혈음강(血陰鋼)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었다.
혈음강은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굉장히 복잡한 방법을 거쳐 제련된 것이며, 그 과정은 역시 피비린내 날 만큼 잔인했다.
하지만 일단 완성되면 대단히 진귀한 물건이 된다.
이 미세침은 2급 혈음강을 사용하여 주조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혼성술사라도 방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침을 쏜다면, 대단한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천제현은 미세침을 채 넣기도 전에 새끼 여우가 새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갑자기 미세침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입을 벌리고는 침을 한 입에 삼켜 버렸다.
“빌어먹을! 이것도 먹어? 뱉어! 빨리 뱉으라고!”
새끼 여우가 두 발로 입을 막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벽에 찰싹 붙어 노기등등한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우는 고개를 힘껏 내저으며, 절대로 못 내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안 맞아서 근질근질하지!”
주인과 보물을 가지고 싸우다니, 오늘 혼쭐을 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주인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을 것이다.
새끼 여우가 돌연 두 발을 펼치더니 힘껏 숨을 부니 붉은 잔영이 쌩하고 스쳐지나갔다.
천제현은 뺨에 차가운 무언가를 느꼈고, 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후르르 잘려나갔다.
탁!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늪의 벽에 방사형태의 균열이 생겼고, 균열의 중간에는 작은 구멍이 생겼다.
그 안에서 미세침이 천천히 빠져 나왔다.
마기가 미세침의 표면을 휘감은 채 희미한 주문이 위로 펼쳐져 있었다.
주문이 빛을 발하더니 침이 천천히 새끼 여우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새끼 여우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침을 보고는 작은 발을 앞으로 쑥 내밀어 잡았다.
그러고는 천제현을 바라보더니 좋은 걸 가로챈 듯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야, 이놈아!”
천제현이 새끼 여우를 한 대 쥐어박았다.
끼잉!
새끼 여우가 아픈 듯 머리를 감싸 안으며, 억울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애완동물이 주인의 보물을 뺏으면 안 돼! 알았어?”
새끼 여우는 이빨을 드러내 반항하려고 했지만, 천제현이 다시 손을 들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두 발로 작은 침을 들고는 앞으로 가서 주인에게 바치는 동작을 취했다.
“흥!”
천제현이 입을 삐죽거리며 무시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는 좋아. 이건 이 주인님이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 너한테 상으로 줄게.”
새끼 여우가 눈을 반짝이며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여우가 정말 자기 취한 보물을 바친걸까?
아마 이 여우는 아마도 천제현의 생각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바치는 시늉을 하며 천제현의 화를 풀고 침을 돌려받는 방법을 취한 것이리라.
보통 영악한 여우가 아니었다.
사실 미세침은 그 자체로는 살상력이 강하지 않다.
단지 마력을 무시하는 특징이 있어 마력 방어막을 쉽사리 뚫을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기습용 무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보잘것없는 새끼 여우가 이 침을 가지고 있으면, 의외로 더욱 허를 찌르는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천제현은 딱히 기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침은 새끼 여우의 간사한 분위기에 더 어울렸다.
천제현은 또다시 다른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그릇이 눈에 띄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윤기가 흐르는 선홍색 구슬이 있었다.
“정혈주(精血珠)인가?”
정혈주는 살아 있는 사람의 정혈을 응집하여 만든 재료였다.
이는 사파무공을 연마할 때 반드시 필요한 수련재료로 천마교 교주가 정혈주를 만들어 내상을 치료한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은 써보기도 전에 비명횡사했지만.
정혈주를 직접 복용하면 마력을 향상 시킬 수 있으며, 약효도 2급 영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혈주의 제조과정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극히 악독하고 잔인하다.
정혈주에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깊은 원한이 서려 있기 때문에 천제현은 이것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흑옥으로 된 문서 몇 부에는 보기에도 아찔할 정도로 부적 주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천마교의 마공 수련법을 기록한 비급인 것 같았다.
하지만 천제현은 슬쩍 훑어보고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아무렇게나 말아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암홍색 영패는 3급 희귀 옥석인 마혈옥(魔血玉)으로 만든 것이었다.
표면에는 수많은 금기어가 새겨져 있고, 더욱이 크게 마(魔)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천마교의 어떤 신물인 것 같았다.
천제현이 새끼 여우를 보며 말했다.
“보물이라고? 이것들은 나한테 필요가 없다고! 그나마 좀 쓸만한 건 네놈이 가져갔잖아!”
새끼 여우는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동물을 학대하는 주인 같으니라고, 쌤통이다!’
“그 오합지졸은 다들 도망쳤소!”
임목과 방한은 전신에 피가 묻은 채로 돌아왔다.
잔인하고 격렬했던 싸움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두 사람을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대전에 쌓여 있던 약초와 영약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천제현은 민망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저 녀석이 전부 다 먹어치웠어요.”
새끼 여우가 일부러 배를 부풀린 다음 양발로 톡톡 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여우님이 해치웠지. 너희가 너무 늦은 거야!’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많은 재료가 한 시진 동안 밥 한 그릇도 못 먹을 만큼 작은 저 여우의 배 속에 들어갔다고?’
‘저 녀석 배 속은 다른 공간이랑 이어져 있는 거 아니야?’
“이 몇몇 장비는 피의 늪에서 찾은 거예요. 아마 그 교주가 당시에 썼던 것 같아요.”
천제현이 창, 단도, 피 묻은 옷을 꺼내 보였다.
“전 필요 없으니, 두 분이 가지세요!”
“이…… 이것은 혼기!”
두 사람은 이 장비들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기운을 느끼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처럼 이제 막 용병단을 창설한 용병들이 무슨 경로로, 무슨 돈으로 이 혼기를 살 수 있겠는가?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령은 이미 고갈되었지만, 품질이 괜찮은 혼기라 여전히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할 거예요. 이후 적합한 마수혼을 찾으면 제기사에게 맡겨 기령을 제련하면 될 거예요!”
천제현은 천마교 교주가 남긴 흑옥 문서도 넘겼다.
“이 마공도 여러분께 드릴게요. 마공의 위력이 크지만 수련 과정이 지극히 잔인하고 주화입마에 걸릴 위험도 대단히 크죠.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하셔야 해요.”
“암우개! 정말 고맙소!”
마공은 부작용이 크지만, 고급 무공에 속하니 어느 누가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마공을 전부 수련하지 않고, 이 중에 한두 개 비술만 터득해도 대단히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천제현이 말했다.
“이제 좀 서둘러야 겠어요. 중주성에서 곧 소식을 받고 사람을 보낼 거예요. 이곳의 물건은 옮길 수 있는 대로 옮겨야 해요.”
대전에 쌓인 물자는 상단에게서 약탈한 것이다.
중주성에서 이곳을 관할하는 사람을 파견하면, 대부분 이 물자를 착복하려고 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기회가 있을 때 크게 한몫 챙기는 게 낫지!’
천제현은 삼생요충, 장음석을 담은 상자를 들었다.
이것은 본래 기적상회의 물자로 천제현은 이를 주변 산속, 은밀한 곳에 묻어두었다 시기가 되면 몰래 운반할 계획이었다.
임목, 방한도 많은 장비와 무기를 챙겼다.
두 사람이 용병단을 운영할 때는 이 희귀 장비들이 금은보화보다 훨씬 유용할 것이다.
세 사람이 바쁘게 물자를 옮기던 그때, 산채 밖에서 대규모 군대가 몰려들었다.
이윽고 순식간에 주변을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수많은 궁수가 원거리 엄호를 하였고, 창병 수백 명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