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140화 (139/729)

# 140

제140장 마굴

‘저 동굴은 대체 뭐지?’

얼핏 느끼기에도 마기가 느껴지는 걸로 봐서 마굴(魔窟) 같았다.

천제현은 동굴에 들어가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호기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적상회의 물건을 찾기 위해서라도 들어가서 살펴봐야 한다.

다만 마굴 주변에 흑의인 열댓 명이 떡하니 보초 서 있고, 게다가 다들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모두 연체 9성의 마력을 지녔으니 천제현이 저들을 전부 쓰러뜨리려면 어느 정도는 힘을 써야 한다.

은신부를 사용하여 기습한다고 해도 아무 기척 없이 한 사람씩 다 제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흑풍채의 도적은 수천에 달해 민첩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벌집을 건드리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제현은 마굴 안에 잡입 하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어쩔 수 없군. 그걸 사용하는 수밖에!’

천제현은 몸을 숨긴 바위에서 걸어 나와 어슬렁어슬렁 마굴 쪽으로 걸어갔다.

천제현은 흑풍채 도적의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도적들의 정신만 빼놓으면 그의 정체를 쉽사리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무기를 꺼내 들고는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넌 뭐야! 여기 출입 금지구역인 거 몰라? 어서 꺼져!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쾅!

무형의 위압감이 순식간에 방출되었다.

흉물스러운 윤곽이 천제현 뒤에서 피어올랐다.

마치 태곳적 마신이 현 시대에 강림한 것처럼 오래된 어떤 기운이 모든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흉물스러운 윤곽이 순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천제현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이윽고 눈동자의 색깔이 괴기스러운 은백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왼쪽은 은색, 오른쪽은 흰색이 되었고, 눈동자 위에 동공은 7개로 나뉘었다.

이중 하나가 중간으로 이동하자 나머지 동공 6개가 꽃잎처럼 그 주위를 둘러쌌다.

동공의 색깔은 저마다 달랐고, 서로 중첩되거나 교차되어 마치 괴이한 꽃이 만개한 것 같았다.

도적이 천제현의 눈을 본 바로 그때였다.

쾅!

도적의 눈에는 온 세상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그 도적이 보고 있는 풍경이리라.

이내 도적의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신을 잃었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땅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뇌의 움직임이 정지하고 심장도 움직이지 않았다.

안팎으로 상처는 없지만 누가 봐도 죽음에 이른 모습이었다.

이 모든 게 1초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졌다.

천제현은 이들을 한 번 쓱 훑어보는 것으로 단번에 모두 다 죽여 버렸다.

주 정령을 이용한 정신 공격이었다. 이 공격은 정신을 붕괴시키는데서 끝나지 않고 뇌의 활동까지 정지시키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위력이 강한 만큼 천제현에게 돌아오는 부담도 매우 컸으며, 상대가 정신방벽을 단단히 하고 있으면 지금처럼 눈빛만으로 상대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이고 머리야!’

천제현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선 심호흡을 하고는 조금씩 진정시켰다.

천제현은 주머니에서 정원초를 꺼내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고갈된 마력 일부가 금세 회복되었다.

‘주 정령은 사용할 때마다 정신적 부담이 너무 커!’

대량의 유성초로 신체를 담금질한 덕분에 천제현의 경맥은 일반 사람보다 몇 배는 더 강인했고, 마력도 동급 수련자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도 주 정령을 사용하여 공격하면, 겨우 한 번 공격할 수 있을 뿐이다.

‘힘을 너무 뺐어!’

몸을 전부 다 쥐어짠 것만 같다.

새끼 여우가 훌쩍거리며 보송보송한 몸을 한껏 옴츠렸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반짝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제야 이 주인님의 대단함을 알았구나! 앞으로 계속 성질 피워봐!”

새끼 여우는 금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불만이 있는 듯 천제현을 쳐다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천제현은 여우를 깔끔하게 무시한 채 어깨를 으쓱하며 마굴 속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유적인 것 같은데, 연대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아. 그냥 봐서는 한 몇백 년쯤 되려나?’

기나긴 돌계단이 아래로 경사졌고, 양옆의 검은 돌 벽에는 요괴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천제현은 괴이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돌계단 끝으로 걸어갔고, 뒤이어 적막하고 음침한 대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전 구석구석마다 보물 상자가 쌓여 있었다. 마치 보물이 숨겨진 동굴처럼 금은보화와 무기 재료 등이 천지에 널려 있다.

‘맙소사! 드디어 찾았네!’

천제현은 수많은 상단 깃발도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것들이 모두 약탈한 물건이라고 직감했다.

대전의 정중앙에는 깊은 늪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 걸쭉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천천히 꿈틀대고 있었다.

황석성의 성주 염무양은 흑의를 입은 도적 20명과 함께 늪 주변을 빙 둘러쌌다.

염무양은 대전 중앙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채 연신 머리를 박으며 절을 했다. 마치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고, 그 모습은 마치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순간, 그가 갑자기 일어나 오른손을 휙 저었다.

“데려와라!”

도적들이 임목 일행 쪽으로 걸어갔다.

“이게 무슨 짓냐?”

“놔라! 놓으란 말이다!”

황호한과 먼저 잡혀있던 자유 수련자 3명은 포로로 잡힌 채 흑의 도적에 떠밀려 피의 늪에 빠졌다.

흑의인과 염무양은 동시에 머리를 박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주인이시여, 제물을 받으시옵소서!”

임목과 방한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이 개자식들!”

늪에 빠진 네 사람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위로 떠올랐다.

걸쭉한 핏물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두 사람 몸에 있는 일곱 구멍으로 쉴 새 없이 들어갔고 이들의 온몸에서는 경련이 일었다.

곧 그들의 생명력 마력이 빠르게 소실되었고 피부는 금세 말라비틀어졌으며 육체는 점차 노화되어갔다.

천제현은 구석진 곳에서 유명검을 든 채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이 피의 늪이 사람의 생명과 마력 통째로 먹어치우는 것 같네. 정말 무섭군.’

“좋아, 좋아…….”

늪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혼성 경지에 이른 수련자의 정혈과 정기는 참으로 맛있구나! 이 혼성술사들을 먹기만 하면, 본좌는 능히 소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불쾌하고 사람을 소름끼치게 하는 소리였다.

“최근에 약탈한 물자와 재산은 성결교의 자본으로 쓸 것이고. 너희는 본좌가 마력을 회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는 본교에 공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지. 내 너희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염무양은 감격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땅바닥에 박았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이 몸 불 속이라도 뛰어 들어가겠나이다! 너희들은 무엇을 보고 섰느냐! 저들을 빨리 처넣어!”

“잠깐!”

피의 늪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쥐새끼 한 마리가 기어들어왔구나!”

염무양이 깜짝 놀라 즉시 뒤돌아보았다.

“누구냐!”

천제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으! 만만치 않겠구나! 기회를 봐서 기습하려고 했는데 대전에 들어오자마자 발각될 줄이야! 됐어! 어차피 들킨 거 이제 숨을 필요도 없지.’

천제현은 구석에 있는 커다란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염 성주! 우리 또 만났네!”

임목과 방한은 놀라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저 녀석 바보 아니야? 죽고 싶은 건가!’

‘겨우 도망가 놓고선 왜 자기 발로 돌아온 거야!’

염무양 역시 생각지도 못한 얼굴에 깜짝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염군은 어디갔지?”

천제현이 헤실거렸다.

“뭐가 급해? 곧 한 자리에 모이게 해줄게!”

염무양이 분한 나머지 고함을 내질렀다.

“여봐라, 저놈을 죽여라!”

흑의 도적 스무 명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고는 스무 개의 그림자로 변해 각자 다른 방향에서 한꺼번에 천제현 쪽으로 돌진했다.

이들 모두는 연체 9성의 마력을 지녔으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혼성 1성의 수련자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입미!’

천제현이 입미 상태에 들어가자 천지만물의 움직이는 속도가 순간적으로 느려졌다.

흑의인의 모든 동작이 정확하고 분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곧이어 신마의 검 정령이 나타났다.

천제현이 유명검을 들어 도약하니 아름다운 검광이 유려한 광선처럼 도적들 중간을 빠르게 뚫고 지나갔다. 누구도 그의 일검을 막을 수 없었다.

천제현은 이 도적들을 연이어 통과한 후 대전 중앙에서 걸음을 멈췄다.

쿵! 쿵!

흑의를 입은 도적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 단칼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간결하고 예리하며 시원시원한 공격이었다.

염무양의 동공이 약간 축소되었다.

“입마 경지? 염군 그 멍청이가 정말 네 손에 죽었구나!”

천제현은 피의 늪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정신을 집중했다.

황호한과 다른 수련자는 완전히 주검으로 변해구나.

“이 피의 늪은 2천 명이 넘는 연체술사로 만들어졌군.”

천제현의 눈빛이 싸늘히 식어갔다.

“사리사욕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이리도 많이 도륙하다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이 벌하는 법이지!”

염무양이 광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난 이미 육십이 넘었다. 이 작은 성에서 20년 간 성주로 있었지. 난 내가 평생 그럴 줄 알았다! 이 세상은 이토록 광활하고, 다채로운데, 남하국은 여기에 비하면 좁쌀 한 톨만도 못하지. 사람이 평생 죽을 때까지 이 작은 도시에서만 산다면! 난 싫다, 난 싫어!”

염무양의 표정이 한층 더 기괴해졌다.

“주인님은 그런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 내게 천마교의 기공을 전수해주셨어! 내가 새롭게 살 기회를 얻었다고! 너 같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내 심정을 알 턱이 있겠느냐!”

천제현은 탄식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숙명이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천제현은 염무양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 이토록 광활한 천지에서 염무양은 분명 하찮은 개미에 불과하다.

평생 작은 도시에서 쳇바퀴를 돌리며 살았던 그가 더 먼 곳으로 나가고 싶다는 게 잘못된 일인가?

잘못되지 않았다.

천제현도 그렇지 않겠는가?

천제현의 꿈과 이상향은 사실 염무양과 다름없었다.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곳을 유랑하는 상상은, 그 역시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갈망이었다.

이윽고 염무양의 피부가 점차 검게 변하면서 온몸에 주문이 나타났다.

이 주문은 마치 고대 악마의 상징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천제현의 눈썹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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