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제139장 천도마공
염무양의 음모를 꿰뚫어본 천제현은 임목에게 암시를 주었다.
그러나 그 멍청한 놈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코웃음을 치고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천제현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저 혼자라도 사는 수밖에.
“진법이 발동되었으니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겠구나!”
천제현은 멀리서 진동을 느꼈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진법 때문에 전투력이 크게 떨어진 임목 일행은 함정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귀찮게 됐군.’
사실 그들이 죽든 살든 천제현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게 누가 남의 말을 그렇게 무시하래?’
그냥 가버릴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기적상회의 물건이 아직 저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대로 떠나 버리면 금화 백만 냥 이상의 유화초와 삼생요충, 전자수정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금화 일이백만 냥은 별거 아니라고 칠 수 있다.
문제는 유화초와 삼생요충이 몹시 귀한 약재라는 것이다.
천진상회를 통해서도 단시간 내에 그 정도밖에 모으지 못했는데, 다시 보름을 기다린다면 기적상회는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시간이 돈이다!’
천제현이 흑풍채 밖에서 서성이며 고민하고 있을 때.
“하하하하…… 이제야 찾았군!”
어스름한 어둠 저쪽에서 유령이 달려들 듯 강력한 기운을 담은 검이 날아왔다.
천제현의 입꼬리에 냉소가 맺혔다.
그가 오른손으로 유명검을 뽑자 눈부신 검광이 번쩍이며 허공을 베었다.
퍽!
검은 그림자가 그 기운에 맞아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
염군은 두 동강 난 자신의 칼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령급 상품 무기인 내 칼을 이렇게 만들다니, 보통 검이 아니구나!”
달빛을 받은 유명검의 검날은 수만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얼음 같이 차갑고 흠집 하나 없었다.
천제현은 소박한 푸른 도포를 걸치고 오른손에 검을 잡은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는 호수처럼 고요한 눈을 들어 주변을 살피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하도 없이 혼자서 날 쫓다니, 현명한 생각이 아닌데?”
“하하하하!”
염군은 앙천대소했다. 이윽고 그의 두 눈이 점점 빨개지더니 온몸에서 마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좋은 무기 하나 가지고 있다고 날 이길 수 있을 성 싶으냐?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해주마!”
그의 마력이 뭉치더니 푸른색의 거대한 원숭이 형태를 띠었다.
정령이 나타나자 염군은 힘이 몇 배나 강해지면서 근육이 바람이라도 넣은 듯 부풀어 오르고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팔이 네 개 달린 원숭이 정령?’
네팔원숭이 정령은 무척 강한 영수에 속했다. 네팔원숭이는 태어날 때부터 팔을 네 개 갖고 있는데, 엄청난 힘에 금강불괴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가장 무시무시한 건 이 희귀한 정령이 인간의 무공을 일부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네팔원숭이 정령을 소환한 염군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상승하여, 무공 수련 속도도 몇 배는 빨라진다.
그러므로 그의 전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제현은 네팔원숭이 정령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마공을 수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말해 줘야겠군. 네 수련방법은 틀렸다. 그 마공이 단기간 안에 실력을 대폭 상승시켜 줬는지는 몰라도 우물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야! 너희는 이용당한 거다!”
“하하하하!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나? 내 주먹에 죽을 놈이!”
염군의 거대한 주먹은 검은 기운이 서려 있어 검은색으로 보였다.
그야말로 사악한 귀신이 주먹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귀소권(鬼嘯拳)!”
폭주하는 힘이 무섭게 닥쳐왔다.
그러나 천제현이 검을 가로로 들고 그의 주먹을 막자 그 광포한 힘이 옆으로 새나갔다.
그건 마치 거대한 바위가 호수에 떨어진 것 같았다.
호수 수면에 물결이 일고 바닥의 진흙은 몇 미터나 밀려나지만, 바위는 오간데 없이 사라진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검이 내 힘을 흡수하는구나!”
염군이 전력을 다한 주먹과 부딪혔으니 일반 무기였다면 진즉에 가루가 되어 부서졌을 것이다.
그런데 저 장검은 공격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힘 대부분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빨아들인 힘은 전부 천제현에게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유명검의 특징이었다.
사실 유명검은 뛰어난 무기이자 방어구였던 것이다.
“하앗!”
천제현이 기합을 넣으며 신마의 검 정령을 소환했다.
그러자 정령의 힘을 받은 유명검의 검광이 폭발하듯 솟아오르며 몇 배나 더 강해졌다.
염군은 그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뒤로 날아갔다.
몸을 일으킨 염군의 눈빛에 두려움이 스쳤다.
‘엄청난 정령의 기운이다! 검의 정령을 지닌 자는 몇 명 없을 텐데. 이런 정령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 검의 정령은 여태까지 그가 본 그 어떤 정령보다도 강했다. 심지어 전설로만 듣던 신급 정령과도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정령을 지닌 수련자라면 단계를 뛰어넘어 자신보다 강한 수련자에게 도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위험한 검에 위험한 정령.
상대의 무공이 별 볼일 없다 해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염군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믿는 구석이 있긴 했구나. 하지만 그 정도 능력으로는 우리 교파의 천도마공(天都魔功)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천도마공?”
천제현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빨리 덤비기나 해!”
“흥! 천도마공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염군이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자 그의 피부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상하기 이를 데 없는 무늬들이 뱀처럼 그의 온몸에 생겨나더니 문신 같은 무늬를 만들며 짙은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제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력이 최소 두 배,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이 강해진 것 같군!”
염군이 무공을 시전하자 그의 온몸에 요사스러운 주문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공포스러운 도안을 몸에 새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피부가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며 괴이한 느낌을 주는 마기를 뿜기 시작했다.
천제현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새끼 여우는 그 모습을 보고 한가하게 꼬리를 흔들거렸다.
여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말을 마친 염군은 땅에서 솟구치더니 모습을 감췄다.
아니, 사실은 모습을 감춘 게 아니라 속도가 너무나 빨라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빠르다!’
그의 움직임을 놓친 천제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염군이 등 뒤에 서 있었다.
염군은 한 손을 검처럼 수직으로 세워 천제현의 몸을 뚫어버릴 생각이었다.
이 위기일발의 상황에 새끼 여우가 코를 벌름거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염군 체내의 마력이 저절로 그의 온몸에 있는 모공을 통해 빠져 나와 새끼 여우에게 흡수된 것이다.
염군은 대경실색했다.
그 주먹만 한 새끼 영수는 조금도 특별해 보이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영수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유리체!”
천제현의 몸이 순식간에 유리처럼 투명한 성광으로 뒤덮였다.
염군의 손날이 그의 몸을 찌르자 찢어질 것 같은 굉음이 들리며 유리에 금이 갔으나, 사라지진 않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힘으로 그의 공격을 반사했다.
그 공격에 염군의 손뼈가 산산조각 났다.
염군은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이제 보니 너도 전혀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구나!”
천제현이 새끼 여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확실히 적을 깔보고 있었다. 이 시대의 무공들은 배울 점이 꽤 있었다.
천도마공은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무공이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새끼 여우가 염군의 마기를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일격에 목숨을 잃거나 최소 중상을 입었으리라.
새끼 여우는 재채기를 하고는 두 다리로 일어나서 사람처럼 앞발로 팔짱을 꼈다.
누가 봐도 잘난 척하는 모습이었다.
“자, 상이다!”
천제현이 강시 내단을 하나 주자 새끼 여우는 신이 나서 그것을 끌어안고 우악스럽게 입에 넣기 시작했다.
염군은 전투력을 상실한 채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공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그건 무슨 무공이지? 자신보다 높은 단계에 있는 나의 천도마공을 막다니!”
염군은 자신이 시전한 공격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영수에게 마력을 많이 흡수당했다고는 해도 힘이 최소 반은 남아 있었을 텐데. 동급의 방어 무공을 익힌 수련자도 막기 힘든 공격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혼성의 경지에 들어온 자가 생으로 그걸 막고 자신에게 중상을 입혔다고?
‘믿을 수 없는 방어력이다!’
검 정령은 100% 공격형 정령이다.
방어 측면에서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방어에 특화된 무공을 대성의 경지까지 따로 연마하지 않은 이상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생각은 틀렸다.
천제현의 성광불멸체는 이제 막 소성의 단계에 올랐을 뿐이었으니까.
“천도마공이라고? 전투력을 증가시키기는 하지만 몸 안에 있는 모든 힘을 짜내기 때문에 자신도 피해가 크지. 자신이 8의 손해를 입고 상대에게 10의 피해를 주는 무공이지. 그런 무공으로는 최고수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
말을 마친 천제현이 손에 들고 있는 유명검을 내리치자 염군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염군을 해치운 천제현은 고개를 들어 흑풍채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자들이 이 고대 마공을 어디에서 배운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이 재밌어지네! 흑풍산채의 비적들은 황석성의 정예병들이 분명해. 혼자 정면돌파하는 건 무리겠지.”
그러자 강시 내단을 반쯤 먹은 새끼 여우가 발톱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보라고?”
새끼 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제현은 여우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흑풍채의 순찰병들을 피해 조금 더 걸어가자 산골짜기 깊은 곳에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은 수직으로 지면까지 통해 있는 것 같았고, 주변에는 가면을 쓴 도적 십여 명이 지키고 있었다.
짙은 마기가 동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천제현은 직감적으로 그 동굴이 저들에게 마공을 알려준 자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제현이 동굴에 들어가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천제현은 놀라 급히 기운을 숨겼다.
염무양이 제일 앞에 있었고 도적들이 상처투성이 일행을 천천히 호송해오고 있었다.
‘모두 잡힌 건가?’
“들어가라!”
염무양이 강제로 임목 일행을 컴컴한 동굴 속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