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제136장 빼앗긴 화물
신풍후와의 약속, 게다가 남궁 가문의 객경이 된 마당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최소한 한동안은 이들 가문이 손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천제현이 양천랑을 인질로 삼고 양씨 가문의 수많은 용병들 앞에서 한 미친 짓들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 되었다.
염라대왕을 노하게 할지언정 절대 천제현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이 천남성 내에 떠돌기 시작했다.
천제현이 거처로 돌아오자 천남성 대소 가문의 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도씨 가문에서 선물을 보냈습니다!”
“이씨 가문에서 보내온 선물입니다!”
“흑마상회에서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맹호용병단이 보내온 선물입니다!”
“…….”
각양각색의 선물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자 공화련 자매는 쉴 틈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기적상회는 불과 한 달 만에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여 이제는 천남성의 핵심 상회가 되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선물들을 볼 때마다 공화련은 꿈속을 걷고 있는 것과 같았다.
한 달 전.
남운상회는 아무런 조력자도 없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다른 상회에 밉보일까봐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지내왔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두 자매는 화려한 변신에 성공하여 이제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혼성술사가 되었다.
눈 밖에 날까 두려워 비위를 맞춰주었던 상대들이 이제는 남운상회에 잘 보이기 위해 선물을 들고 찾아와 두 자매의 앞에서 공손한 태도로 무릎을 꿇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서로를 의지해오면 하루하루를 버텨왔던 두 자매가 언제 이런 귀한 대접을 받아봤겠는가?
기적상회는 강대해졌다.
남운상회는 강대해졌다.
공화련, 공서련 모두 강해졌다.
천남성에서 두 자매를 무시하는 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천제현은 집으로 돌아와 남궁의가 했던 말을 공화련에게 얘기했다.
공화련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신풍후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과 같은 존재다.
중주에서 그의 뜻을 거역할 사람은 없었다.
양무도와 같이 악독한 자라도 말이다.
공화련은 안심을 하고 상회를 더 확장할 준비를 했다.
“우리가 생산한 마력등이 5만 개는 돼. 그중 8할이 보통 마력등이고, 나머지는 대형, 휴대용 등이야. 이제 천남성 백성들에게 마력등을 팔아도 될 거 같아!”
천남성에서 오랜 준비를 거치면서 마력등 공장은 점차 완벽해져갔다.
기적상회는 어느 정도 생산성을 갖추어 판매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천제현은 평소부터 장사에 관한 일에 신경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천진상회의 유화초밖에 없었다.
유화초만 손에 넣는다면 천제현은 유명염화검법을 익힐 수 있게 된다.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어! 실력이 있어야 해. 그래야 몸을 지킬 수 있다!’
천제현은 신풍후만 믿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양무도가 감히 대놓고 복수할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암암리에 손을 쓰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마력등은 돈이 많이 남는 장사예요. 시장도 매우 크고요. 수련자들뿐만 아니라 보통 백성들에게도 필요한 물건이지요. 수익뿐만 아니라 기적상회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거예요.”
여기까지 말하던 천제현이 뭔가 생각난 듯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마력전지 제조기술을 알려줄게요. 마력등의 제조와 판매는 모두 큰아가씨가 맡으세요.”
마력전지 제조기술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기밀이다.
기적상회가 이미 비밀리에 수정의 눈물을 채굴했다고는 하지만 마력전지를 공개적으로 판매한 적은 없었다.
공화련은 천서 정령을 가지고 있어서 지식습득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천제현이 한 번 알려주자 1급 마력전지 제조기술을 모두 외워 버렸다.
공화련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마력전지 제조기술이 새어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회장님!”
호위병 하나가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밖에 자칭 천진상회 소속이라는 사람 둘이 와 있습니다!”
천제현은 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왔다!’
천제현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본 천제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었고, 온몸에 네다섯 군데의 자상이 있었으며, 갑옷은 엉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중 한 명은 천제현도 아는 사람이었다.
‘저건 경범이잖아?’
천제현은 급히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경범은 성에 들어와서야 그동안의 천제현의 행적에 대해 알게 되었고, 비로소 그가 얼마나 무서운 자인지 깨달았다.
털썩!
경범은 땅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은 채로 천제현의 면전까지 기어가서 통곡했다.
“천 회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물건을 싣고 중주에서 출발했는데 도중에 비적떼를 만나 전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뭐라고요?”
천제현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물건을 분실했다고요? 비밀리에 운반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경범은 거듭 용서를 빌며 말했다.
“보안만큼은 철저히 유지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 물건이 기적상회로 향한다는 것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감히 비적 따위가 천진상회의 물건에 손을 댔다고요?”
천제현뿐만 아니라 그 누굴 데려와도 믿지 못할 얘기긴 했다.
혼성술사인 경범이 직접 물건을 호송했다.
혼성술사는 어딜 가도 적을 찾아보기 힘든 존재 아닌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개뼈다귀 같은 비적 놈들이 천진상회를 이렇게 곤경에 처할 정도라면, 중주는 진작에 비적들의 천지가 되었으리라.
“천제현, 조급해할 것 없어. 일단 조사부터 하자.”
공화련은 경범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물건이 사라져서 초조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 물건 안에는 천제현에게 당장 필요한 유화초는 물론이고, 연기단 제련에 필요한 삼생요충 같은 중요한 재료들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범은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순조롭게 물건을 운반하던 천진상회의 상단이 황석성이라는 작은 성 부근을 지날 때 수십 명의 흉악한 비적들을 만났다.
그 자들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물건을 빼앗아 갔다.
경범은 당장 칼을 빼 들고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실력은 상상 외로 엄청났다.
“비적 두령이라는 놈은 최소 혼성 2성 정점의 수련자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무공을 연마했는지 보통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상대도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물건을 포기하고 도망쳐 이렇게 보고만 하게 된 것입니다.”
‘일개 비적이 그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왜 비적 따위를 하고 있는 거지?’
그의 말을 듣던 천제현은 한 가지 정보에 집중했다.
“무공을 연마했다고 했습니까? 어떤 무공이죠?”
경범은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공이었습니다. 중주의 무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엄청났습니다.”
‘정체가 수상한 비적이군.’
단서 부족으로 인해 그놈들이 중주의 어떤 가문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공화련이 천제현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천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직접 가봐야겠어요!”
화련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천남성을 벗어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양무도의 함정이면 어떡해?”
“그럴 확률은 낮아요. 일단 시간적으로 맞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넌 매우 위험한 상황이야, 들키기라도 한다면…….”
“걱정 마세요. 성안에 강시를 두고 예전 방법을 이용해서 나갔다 올 테니까요. 그렇게 하면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천제현에게 지금 잃어버린 물건은 공화련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러니 위장을 해서라도 조사하러 가야 했다.
황석성은 중주성 관할 도시 중 하나였다.
그곳은 산세가 험하고, 숲이 우거져 교통이 불편한데다 자원이 보족했다.
황석성은 천남성과 비교해도 매우 가난한 도시였다.
가문의 세력도 매우 약했고, 상인들의 왕래도 드물었다.
인구도, 수련자도 적었다.
이것이 바로 황석성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황석성에 도착한 천제현은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외지고 가난한 도시에 어째서 그 많은 비적떼들이 나타난 거지?’
천제현은 나그네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소박해 보이는 회색 장포에 너덜너덜한 삿갓을 쓰고 등에는 유명검을 차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암우개로 변신한 것이다.
다만 예전의 암우개랑은 조금 달랐다.
수염이 있었으며, 피부는 더 검고 투박했다.
이번에는 좀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천하를 떠도는 24~25세의 청년처럼 보였다.
“어디부터 조사를 해야 하나?”
이때 품속에서 흰 새끼여우가 복슬복슬한 머리를 내밀더니 맑은 눈으로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발톱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병사 몇 명이 다 무너져가는 담벼락에 커다란 방문을 붙이고 있었다. 주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군관이 큰 소리로 말했다.
“최신 소식이오!”
성주부에서 발표하는 적색 등급의 꽤 위험한 임무였다.
“혼성술사들을 모집하오. 보상은 황금 30만 냥이오!”
군관이 말을 마치자 백성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황금 30만 냥의 임무?’
황석성처럼 가난한 도시뿐만 아니라 천남성 같은 도시에서도 황금 30만 냥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황석성의 성주부에서 이렇게 큰돈을 아끼지 않는 걸 보니 필시 보통 임무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흑풍산에 도적떼가 출몰하는데, 지나가는 대형 상단들을 전문적으로 노린다고 하오. 관아에서 정예 정찰대를 파견했는데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소! 참다못한 성주님께서 대대적으로 고수를 모집하기로 하신 거요!”
“그래도 엄청난 금액인걸요!”
“안 그러게 생겼소이까? 그 비적 떼들이 약탈한 재물이 얼만데! 흑풍채만 소탕하면 성주님은 돈방석 위에 앉게 되실 거요! 무기며 무공이며, 돈 등 없는 게 없겠지!”
“황석성은 가난하고 작은 성인데 혼성술사가 있어 봤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누가 그 일을 하려고 할까요?”
“모를 일이지요. 상금이 두둑하니 용기 있는 자들이 몰리지 않겠소?”
“…….”
성 사람들이 방문 앞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천제현은 성주부를 찾아가 혼성술사임을 밝히고 그 임무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