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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127화 (126/729)

# 127

제127장 남궁 가문과 천랑공자

문이 천천히 열리고 수려하게 생긴 한 소년이 들어왔다.

소박한 푸른색 옷을 입고 어깨에는 흰색 새끼 여우가 앉아 있었으며, 등에는 오래된 보검을 맨 청년이었다.

별처럼 빛나는 눈빛을 가진 그는 세상 그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딸랑딸랑!

그의 허리에 달린 낡은 방울이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방울소리에는 사람의 영혼을 위협하는 듯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천제현이 나타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봤다.

검은 도포를 입은 열여덟 명의 일행은 그를 따라 들어오지 않고 밖에 머물렀다.

수많은 눈이 천제현에게 집중되었다.

차를 마시던 노인이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을 멈추고 횃불 같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자 천제현은 강력한 위압감을 느꼈다.

‘역시 현혼기의 실력자가 분명해! 정령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의 위압감을 줄 수 있다니!’

연체 경지의 다른 수련자였다면 그 눈길을 받으며 앞으로 걸어가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으리라.

그러나 천제현은 잠깐 발걸음을 멈췄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남궁의는 그런 천제현의 모습에 몹시 흡족해서 벌떡 일어나 소개했다.

“남궁해 장로님, 이 젊은이는 천제현이라고 합니다.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그 천재 소년이지요.”

그러나 남궁해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평이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남궁의가 자네를 꽤나 높이 평가하더군. 그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인가?”

남궁의는 몰래 천제현에게 눈짓을 했다.

일단 조용히 있으라는 의미였다.

이어 그는 천제현 대신 대답했다.

“장로님, 솔직히 천제현은 제가 여태까지 본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재능 있는 청년입니다. 우리 남궁 가문은 항상 인재를 귀하게 대우했지요. 전 저들을 객경으로 삼아 우리 가문의 인재 중용 기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궁 가문의 객경 자리는 주고 싶다고 쉽게 줄 수 있는 게 아닐세.”

남궁해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객경의 가장 기본 조건은 혼성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지. 혼성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일족들이 받아주지 않을 걸세. 하물며 한 번에 세 명이라니? 남궁 가문의 객경 자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그의 말을 가만히 듣던 천제현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궁의와 남궁해는 같은 가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벽이라도 있는 듯 무척 불편해 한다는 점이다.

남궁의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남궁해가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됐네. 객경 일은 일단 보류하는 걸로 하세!”

남궁해는 몸을 일으켜 남궁의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이 있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천남성에 온 건 자네와 양씨, 천씨 가문 사이에 생긴 문제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네. 남궁의, 가문에서 자네를 중주성에 보낸 건 우리 가문의 세력을 키우기 위함이란 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하지만…….”

“변명은 필요 없네! 자네는 우리를 실망시켰어!”

남궁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가문에서 절 어떻게 생각하든 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 젊은이는…….”

그러자 남궁해의 어조가 날카로워졌다.

“자네 대체 자신의 사명을 아는 건가 모르는 건가? 가문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는 못할망정, 현지 세도가와 척을 지다니. 어쩌면 자네 때문에 우리 가문 전체가 강력한 아군을 잃을 지도 몰라!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그러나 남궁의는 결연하게 말했다.

“현지 세도가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한량들에 불과합니다. 우리 남궁 가문이 왜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합니까?”

“덕을 쌓으면 누구나 도와주려 하고, 덕을 잃으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지. 이 이치를 모르는 건가?”

남궁해는 한층 더 엄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널리 인재를 초빙하겠다면 나도 반대할 생각은 없네. 허나 먼저 자신의 임무부터 확실히 하도록 하게!”

남궁의는 조금 화가 났다.

‘사고방식이 저렇게까지 낡아빠졌다니. 참고 들어주기가 힘들 정도로군!’

남궁 가문이 양씨, 천씨 가문을 비롯한 세도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한들 천제현을 얻는 것만 할까?

남궁의는 분노해서 말했다.

“장로님, 그건 너무나 근시안적인 말씀입니다. 제가 이미 저 젊은이의 작품을 장로님께 보여드리지 않았습니까? 저 자의 재능을 아직도 알아채지 못하시겠습니까? 꼭 이렇게까지 방해하셔야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방해? 흥!”

남궁해는 천제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하나만 묻겠다. 너는 왜 남궁 가문의 객경이 되려고 하는 거지?”

천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일은 겉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으니 내가 대신 말해주지. 여러 세도가들과 원수가 되고 막다른 골목에 몰렸으니 방패가 되어줄 세력을 찾는 것 아니냐?”

남궁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남궁 가문의 보호를 받고 싶다면 성의를 보여야지. 열과 성을 다해 남궁 가문에 충성해야 우리도 너를 보호해주든 말든 할 것 아니냐? 그 정도 잔재주 좀 보였다고 내가 널 추천해 줄 성 싶은 것이냐? 천운으로 객경이 되었다 해도 얼마 못 가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남궁 가문의 체면은 누가 살려준단 말이냐!”

천제현은 남궁해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저게 무슨 거지발싸개 같은 말이야? 내가 알려준 수련법만으로는 객경 지위를 얻을 수 없다 이건가?’

설령 자신이 진짜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남궁 가는 조금도 아쉽지 않을 것 아닌가.

천제현도 온화한 성격은 아닌지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남궁 가문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면 객경, 안 하죠 뭐.”

“젊은이, 자네에게 재능이 있는 건 나도 알겠네. 다만 방법이 틀렸어.”

남궁해는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이렇게 하지. 내가 가문을 대표해서 자네를 기명제자로 받아 주겠네. 그리고 중주성을 떠날 때 자네와 함께 가도록 하지. 그렇게 되면 다른 가문들이 자네에게 복수할까 봐 겁낼 필요도 없지 않겠나? 남궁의도 자네 때문에 이곳 세도가들과 갈등을 빚지 않아도 되니 일거양득인 것 같은데.”

‘기명제자? 기명제자 좋아하시네!’

천제현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기명제자라 해봐야 별 볼일 없는 한 장로의 형식적인 제자일 뿐이다.

기명제자가 되면 남궁 가문의 보호는 고사하고 오히려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심할 경우에는 남궁 가문의 허수아비 역할까지 해야할 수도 있다.

천제현을 자신 옆에 두고 단물만 쏙쏙 빼먹겠다는 심산이 분명했다.

‘날 바보로 아는 건가?’

그러나 남궁해는 반론의 여지도 주지 않고 말했다.

“지금 당장 날 따르게!”

그의 작태에 남궁의도 분노해서 말했다.

“전 반대입니다!”

“남궁의, 자네 우리 남궁 가문 사람이 맞는 건가?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하도록 하게. 자네는 아직 장로인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치가 못 돼!”

남궁해는 차가운 시선으로 남궁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내린 결정은 누구도 번복할 수 없어!”

남궁의는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궁해가 아랫것들에게 명령해 천제현을 데려가려고 할 때, 성주부 전체에 격렬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위압감이 천남성 상공을 뒤덮었다.

흰 수염을 쓰다듬던 남궁해가 불쾌한 어조로 내뱉었다.

“감히 누가 우리 남궁 가문을 도발하는 것이냐!”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접대실 밖으로 날아갔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있었다.

무언가 강력한 힘에 뒤덮인 듯 잔인하고 포악한 기운이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대 마수의 기운이다!’

‘무시무시한 마수가 천남성 상공을 지나가는 게 분명해!’

이때, 거대한 금빛 대붕이 천남성을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저게 대체 무슨 마수지?”

금빛 대붕을 본 남궁의와 남궁해의 눈썹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금빛 대붕은 강력한 힘을 지닌 2급 마수지만, 아무리 센 놈이라고 해도 혼성2성 정도의 실력 밖에 안 된다.

당연히 고대의 마수도 아니려니와 이렇게 엄청난 기운을 내뿜지도 못한다.

“저길 봐!”

“대붕 위에 사람이 있어!”

천남성이 시끌시끌해졌다.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놀란 숨을 들이마셨다.

그 위풍당당한 금빛 대붕 위에 흰 옷을 입은 청년 한 명이 서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스무 살 안팎 정도 되었을까?

팔짱을 끼고 바람을 맞으며 대붕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그의 눈빛은 놀라울 정도로 형형했으며, 그 모습은 위풍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장면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저렇게 강한 자가 있단 말인가?’

고대 마수 같은 기운이 바로 그 자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남궁해는 상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강력한 위압감을 주는 자라면 현혼기의 강자임이 분명하다.

그의 눈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어떤 자든 상관없다. 감히 남궁 가문의 앞마당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자를 용서할 성 싶으냐?”

고함을 지르기가 무섭게 남궁해의 몸에서 붉은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마력은 일반인의 마력과 달리 점성 있는 액체처럼 그의 주변에서 넘실거리며 위압감을 풍겼다.

남궁해 역시 남궁 가문의 일원답게 순수한 불 속성 정령을 지니고 있었다.

작열하는 용암 형태를 띤 마력은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했다.

용암이 남궁해의 온몸을 덮자, 그의 몸이 몇 배나 커졌다.

그야말로 전설 속 용암괴물 같았다.

대붕위에 서 있던 청년이 남궁해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하하하! 남궁 가문의 분천공에 대해서는 들은 지 오래입니다! 오늘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청년이 대붕의 등에서 펄쩍 뛰어내리며 마력을 운용하자 그의 등 뒤에 거대한 늑대의 형태가 생겨났다.

흑옥처럼 온몸이 새까만 그 늑대의 두 눈은 횃불처럼 밝았고 어깨에는 거대한 날개가 돋아 있었다.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거대한 위압감의 주체가 바로 그 늑대였다.

남궁해가 뛰어올라 괴이한 청년과 허공에서 3, 4합 정도 겨뤘다.

화염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광풍이 휘몰아치는 등 격전이 펼쳐졌다.

그들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남궁해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제 갓 스물을 넘은 듯 보이는 젊은이가 이렇게 고명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니, 남궁 가문의 역사를 통틀어도 이 정도의 천재는 몇 없었다!’

반면 양천랑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과연 남궁 가문의 현혼 강자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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