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제126장 거울 정령(2)
천제현이 동작을 마치고 천천히 마력을 거둬들였다.
“어때요? 다 기억했나요?”
“뭘 가르쳐 줬다고?”
공화련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공을 전수할 때는 심법과 마력 운용 방법, 기교 등을 알려줘야 하는 거잖아! 한 번 시범 보여 준 걸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면 세상에 비기라는 게 왜 있겠어?”
하지만 공서련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녀는 갑자기 토끼처럼 펄쩍 뛰어오르더니 정원 중앙으로 나아갔다.
정원 중앙에 선 공서련은 두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어 보였으나 두어 번 반복하자 천제현과 완벽하게 똑같아졌다.
그리고.
그녀가 주먹을 내뻗자 맹렬한 바람이 일었다.
그 위력은 천제현이 보여준 무공의 60~70% 정도에 달했다.
천제현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충소권은 후세의 기초 무학으로, 정교함이 특징이다.
단순함으로 큰 이치를 담는다는 진리를 갖고 있는 이 무학은 아주 쉽게 익힐 수 있는 무공 중 하나다.
마력이 아무리 부족한 자라도 운용할 수 있고, 계속 연마하면 점점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공화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공서련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니, 실은 맹한 데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공서련이 처음 접하는 무공을 시범 한 번 보고 바로 따라 한다고?
마력을 운용하는 방법까지도?
공서련은 얼굴이 빨개졌으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방금 따라했어!”
“어느 정도는요.”
천제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제 금강절맥지를 가르쳐 줄게요! 이 무공은 위력이 어마어마하니까 제대로만 연마하면 앞으로 적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상대의 무공을 봉쇄하는 효과도 있어서 포로를 잡을 때도 유용한 무공이죠. 잘 보세요.”
천제현이 금강절맥지를 펼쳤다.
금강절맥지는 충소권보다 훨씬 복잡한 무공이다.
인체의 혈도와 경맥은 몹시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사람마다 혈도 위치도 전부 다르다.
금강절맥지는 여기에 방점을 둔 무공으로, 정확히 혈도를 찍지 않고 경맥 하나만 공격해도 그 힘이 자동으로 혈도를 타고 돌게 만들 수 있으며 바로 경맥을 끊어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천제현의 무공을 지켜보던 공화련은 그의 현란한 몸놀림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조금도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시범을 끝낸 천제현이 말했다.
“이제 아가씨 차례예요!”
“알았어!”
공서련이 다시 천제현의 무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좀 어색한 듯싶더니 네다섯 번 반복하고 나니 천제현의 움직임과 거의 비슷해졌다.
“서련이의 정령이 지닌 능력은…… 모방이구나!”
“맞아요. 그게 바로 거울 정령이죠. 지금은 실력이 부족해서 기초 무공만 모방할 수 없지만, 수련을 할수록 모방 능력도 강력해질 거예요.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죠!”
공서련은 신이 나서 말했다.
“그게 진짜야?”
“거울 정령의 특징은 강자 곁에 있으면 빠르게 강해지고 약자 곁에 있으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천제현은 허세를 부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는 정말 행운아라니까요. 저 같은 절세 고수가 옆에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빨리 성장하겠냐고요!”
공서련은 속으로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천제현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만 가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쏘아 붙였다.
“왕자병!”
공화련은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무공 말고 다른 것도 모방할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하지요!”
천제현이 말했다.
“큰아가씨, 정령을 불러 보세요!”
공화련이 천서 정령을 불러내자 공서련도 다시 거울 정령을 불렀다.
1초, 2초, 3초…… 10초 후.
공화련이 정령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서련의 거울 안에 천서 정령이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서가 은하수 같은 거울에 천천히 녹아들더니 물빛을 띤 책으로 변했다.
공화련은 깜짝 놀라 말했다.
“정령까지 모방이 가능한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일다.
“정령은 완벽하게 모방할 수 없어요. 잠깐 동안만 복제할 뿐이죠. 게다가 자기 정령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효과만 따라 할 수 있을 뿐이고요. 성장은 불가능할 거예요.”
천제현은 다른 실험을 해보고자 책을 한 권 꺼내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공서련이 전과 달리 놀라운 기억력을 보여줬으나 공화련에 미치지는 못했다.
또한, 기본적인 능력만을 모방한 것이므로 천서 안에 기재된 고대의 지식들은 거울로 베낄 수 없었다.
공서련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됐다. 언니의 학습 능력을 갖게 되다니. 전에는 여섯 시간씩 읽던 책도 이제 10분이면 다 끝낼 수 있다는 거 아냐! 또 잊어버리지도 않으니까 얼마나 좋아!”
“제 것도 해봐요!”
천제현이 신마의 검 정령을 꺼냈다.
“헤헤, 전부 습득해 버리겠어!”
자신감을 얻은 공서련은 바로 거울 정령에 천제현의 정령을 비췄다.
1초, 2초, 3초…….
정령을 복제하던 공서련은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를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피로가 점점 더 쌓이는 것 같았다.
“아아!”
시간이 약 8초쯤 지났을 때, 공서련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거울이 깨지면서 복제되던 검의 정령도 사라진 것이다.
공서련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은 거야?”
“나…… 나 좀 어지러운 것 같아!”
‘역시.’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 정령이라고 뭐든 모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거울의 복제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나치게 강한 대상을 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쨌든 거울 정령의 모방과 복제 능력이 꽤 쓸 만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공서련은 앞으로 수많은 정령의 능력들을 갖게 되리라.
물론 불완전한 능력들이겠지만, 양으로 질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천제현은 한때 두 자매의 재능이 너무 떨어질까 봐 걱정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 보니 쓸데없는 우려였다.
둘의 정령은 당장 엄청난 전투력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높아질수록 그 어떤 신급 정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정령으로 성장하리라.
“일단 좀 쉬세요. 오늘은 다시 정령 부르지 말고!”
천제현과 공화련은 방까지 공서련을 부축해서 침대에 눕혔다.
공서련의 얼굴에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능력 밖의 정령을 복제하면 강력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기분은 좀 어때?”
“나, 나…… 배고픈 것 같아!”
천제현과 공화련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단순한 꼬맹이가.’
공서련은 두 사람이 웃자 약이 올라 말했다.
“7일이나 폐관 수련을 하고 이제 막 나왔다고. 그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먹을 것 좀 가져다줄게!”
공화련이 나가자 천제현은 공서련의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불 속에서 보드랍고 작은 손이 나와 천제현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천제현, 고마워!”
천제현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공서련은 그 한마디를 던지고는 놀란 토끼처럼 급히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천제현이 또 능글맞게 나오거나 자신을 놀릴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천제현은 놀랍게도 조용히 있었다.
그 순간의 따뜻함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우린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천제현, 난 네가 큰일을 할 사람이란 걸 알아.”
공서련은 이불 속에 숨어서 동그란 눈만 빼꼼 내밀고 말했다.
“우리가 앞으로 어딜 가든, 또 얼마나 성공하든, 나랑 언니는 언제나 널 응원할 거야.”
천제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하, 저만 믿으세요! 제가 새 세상을 만들어줄 테니까!”
“진짜?”
“못 할 것 같으세요?”
“그럼 지켜 보지 뭐. 지금 한 말이 허풍인지 아닌지!”
말을 그렇게 했어도 공서련은 천제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니까.
그 덕분에 미래가 기대되었다.
다음 날.
혼성단 재료가 도착했다.
천제현은 그들 셋 모두 혼성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천진상회도 물건을 보냈다고 하니 유명화를 위한 유화초도 며칠 안에 도착하리라.
방어에 성광불멸체, 공격에 유명염화검법.
거기에 혼성 경지까지 이른다면 실력이 열 배 이상 늘어나리라.
천제현이 자신만만하게 향후 계획을 짜고 있을 때, 공화련이 뛰어들어왔다.
“남궁 가에서 사람이 왔어. 성주가 찾는대!”
남궁 가문은 남하국의 3대 가문 중 하나로, 그들의 선조는 흡혈 풍습이 있던 원시 부족민이었다.
남하국이 건립 될 때 건립 세력을 도운 공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수백 년간 기반을 잡고 발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현재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왕국의 최고 가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런 남궁 가문의 사자가 이렇게 작은 도시까지 찾아오다니,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궁 가문이 찾아온 이유는 뻔했다.
천제현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천제현은 급히 성주부로 향했다.
성주부 접객실에는 붉은색 갑옷을 입은 남궁 가문의 호위병들이 철통 같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호위병들 사이로 자홍색 장포를 입고 흑금색 지팡이를 든 60세 가량의 노인이 음울하고 광기 어린 모습으로 서 있었다.
노인의 두 눈은 크지 않았지만, 눈빛만큼은 횃불처럼 형형해서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오랫동안 수행을 쌓은 초고수가 분명했다.
어쩌면 남궁의보다도 강할지 모른다.
사실, 같은 혼성술사라고 해도 세 단계로 실력을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위로 올라갈수록 그 힘은 배로 강력해졌다.
1성부터 3성까지는 혼성 초기로 허혼(虚魂)이라 부르고, 4성부터 6성까지는 혼성 중기로 현혼(显魂)이라 부르며, 7성부터 9성까지는 혼성 후기로 진혼(真魂)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혼성 3성 정점의 실력을 가진 남궁의는 허혼기(虚魂期)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천제현의 눈앞에 있는 노인은 적어도 현혼의 경지에 오른 듯했다.
허혼기와 현혼기는 한 단계 차이지만 실질적인 마력의 힘은 천양지차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노인이 성주부에 도착했을 때 남궁의가 직접 그를 상석에 앉히고 본인은 한쪽에 앉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으로 지위 고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천제현이 도착했습니다!”
문지기가 천제현의 도착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