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제125장 거울 정령
공격적인 홍보는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남운상회의 두 상점은 개업 당일부터 구경하러 온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부근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천남성의 모두가 이 독특한 상회를 직접 가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두 상점은 당일 놀라운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약재와 부적은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상품이다.
자체 개발한 제품일 경우 수익은 더욱 올라갔다.
남운약재상의 주력 상품인 연기단은 개점 첫날 50개 한정 판매를 했는데, 단가는 금화 5,000냥이었다.
남운부적상의 주력 상품은 암석부로, 총 5,000장 발매되었으며 한 장당 금화 20냥이었다.
이 두 개의 상품이 바로 남운상회의 주력 상품이었다.
사실 연기단은 5,000냥 아니라 만 냥을 불러도 사겠다는 명문가가 줄을 잇는 물건이지만, 천남성의 재정 수준과 초기 홍보를 고려한 공화련은 가격을 조금 낮게 설정했다.
단, 중복 구매는 제한했다.
암석부는 새로운 형태의 방어부적으로, 연체술사가 사용하면 피부 표피가 암석처럼 단단해지는 물건이었다.
칼날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단단해지기 때문에 심각한 부상을 피할 수 있어 용병과 모험가들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두 상품은 가게에 나오자마자 날개 돋친 듯 전부 팔려 버렸고, 한발 늦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룻밤 새에 천남성의 약재, 부적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다른 경쟁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새에 남운상회가 두 시장의 점유율을 한 덩이 떼어간 것이다.
기적상회가 다시 한 번 각 언론매체의 1면을 장식했고, 그러한 성과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천제현은 시끄럽고 복잡한 것을 질색하는 성격이다.
공화련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겠다, 앞에 나서는 일은 다 그녀에게 맡겨 버리고 그는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 이틀 동안 방에 처박힌 채 장음석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실 장음석은 과거 천제현이 살던 시대에서는 이미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대륙의 역사를 바꿔놓은 광석으로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만큼은 분명했다.
시대에 획을 그은 발명품치고 장음석이 재료로 들어가지 않은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천제현이 있는 이 세계는 생산기술이 너무 낙후되어 있었다.
당장 시대를 뛰어넘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천천히 연구를 거듭하며 단순하고 기초적인 기술부터 개발해야 했다.
남운상회의 초대형 확성기도 그 일환이었다.
사실 초대형 확성기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확성마력진만 새기고 마력전지로 에너지를 공급하면 일반인도 마수와 같이 큰 소리를 내게 되는 원리다.
물론 확성기는 장음석의 가장 기초적인 사용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형 확성기의 발명이 세상에 가져다 준 편리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초대형 확성기는 구조가 단순해 대량생산에 적합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공연장, 군 부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앞다투어 주문할 것이다.
물론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내구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천제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장음석을 애지중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확성기의 재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장음석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광석이다.
천제현은 그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천제현! 천제현! 수익 현황이 나왔어!”
공화련이 뭔가 잔뜩 적힌 종이를 들고 왔다.
언제나 침착하고 말이 없는 그녀도 이 순간만큼은 흥분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신이 나서 말했다.
“연기단하고 암석부 모두 품절됐어. 이 두 상품만으로 금화 35만 냥의 이익을 거뒀고. 다른 약재와 부적들까지 합한 영업수입은 어제 하루 동안에만 45만 냥에 달해!”
금화 45만 냥의 영업수입이라니.
그것도 하루 만에!
남운상회가 환골탈태를 통해 하루 만에 과거 1분기에 해당하는 영업수입을 거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순이익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연기단의 경우, 원가는 금화 몇백 냥에 불과했지만 가게에서는 5000냥에 판매되었고 그마저도 순식간에 품절되었다.
그런데도 중주성의 일부 상회와 가문들이 암암리에 남운상회의 연기단을 1, 2만 냥에 구매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얼마나 엄청난 수익률인가.
부적 판매도 만만치 않았다.
1급 부적의 경우 원가가 높아 봐야 은화 몇십 냥 정도였는데, 남운상회에서는 금화 20냥에 판매되었으니 수십 배의 이윤을 남긴 셈이다.
그런데도 그 뛰어난 효과 때문에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잘했어요. 자금줄이 하나 더 늘어났으니 우리 기반도 더 튼실해지겠죠.”
천제현도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염천웅과 장립청에게도 수익을 배분해주는 거 잊지 말아요. 그 둘이 제약사 조합과 부적사 조합을 움직여 우리를 도와줬으니 후하게 보답해야지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공화련은 기적상회에 도움이 되어 준 모두에게 인색하게 굴지 않기로 마음먹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약재상과 부적상의 인기가 엄청나. 늦게 온 사람들은 한두 시간 줄을 서야 할 정도야. 이 인기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두 상점을 합병하는 게 좋겠어. 더 다양한 상품들을 들여와서 종합 상가로 만드는 거지.”
“뭐든 좋은 생각이 있으면 다 해보세요! 전 아가씨를 믿어요!”
천제현은 질문 하나 하지 않고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그의 믿음에 공화련은 살짝 감동을 받았다.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또 하나 있어!”
공화련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야기했다.
“네가 찾던 재료들, 다 구했어.”
“정말이요?”
천제현은 남운상회의 실적을 들었을 때보다 더 기뻐 보였다.
그에게 수련은 돈보다 훨씬 중요했으니까.
그에게는 물자니 자원이니 하는 것도 수련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재료가 모두 준비됐으니 이제 혼성단을 만들 때다!’
천제현은 잠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정원에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깨어나려는 것 같았다.
천제현과 공화련은 그것을 느끼고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들의 눈에 놀람과 기쁨의 빛이 어려 있었다.
‘확실해! 이건 새로운 정령의 기운이야!’
‘희소식이 또 하나 늘었군!’
연달아 세 번이나 기쁜 일이 생기다니.
이렇게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일주일간 폐관 수련에 들어갔던 공서련이 마침내 정령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공서련도 연체9성 정점의 수련자가 된 것이다.
“가요!”
“빨리 공서련에게 가보자!”
공화련은 다른 일들을 전부 팽개치고 천제현과 함께 공서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공서련의 얼굴은 수척해져 있었지만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는 전보다 더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기운이 맴돌았다.
깨끗하고 순수하며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
언니인 공화련이 달에 사는 선녀 같은 우아함과 고고함을 가졌다면 동생인 공서련은 아무 걱정 없는 숲 속 엘프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다.
자매 모두가 공통적으로 속세를 초월한 듯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야! 뭘 봐?”
천제현의 시선을 느낀 공서련은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날 쳐다봤다간 눈을 파 버릴 거야!”
“아이고, 무서워라. 세상에 가장 독한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
상처 받은 표정을 지은 천제현의 모습은 꼭 잔인하게 배신당한 남정네 같았다.
“그만 좀 해!”
공화련은 천제현의 과장된 연기에 할 말을 잃었다.
줄곧 동생을 걱정하던 그녀는 급히 물었다.
“서련아, 네 정령은 뭐야?”
정령을 보면 수련자의 잠재력과 재능을 알 수 있다.
또한, 정령에 따라 향후 성장 가능성을 짐작할 수도 있다.
만약 이번에 태어난 정령이 별 볼일 없는 것이라면 평생 수련을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공화련의 정령은 천서 정령으로 매우 드문 것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수련법을 찾는 것이 몹시 힘들었고, 전투형 고수가 되기도 거의 불가능했다.
체질과 재능은 바꿀 수 있어도 영혼만큼은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이렇듯 정령이 무엇인지에 따라 평생의 수련 성과가 결정되니, 공화련이 긴장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둘이 한번 봐봐.”
공서련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두 팔을 십자 형태로 만들어 마력을 모았다.
점점 흩어진 마력이 반짝거리며 모이는가 싶더니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가 흐릿한 거울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테두리가 없는 거울이었는데 은하수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매우 맑고 투명했다.
‘언니는 고서 정령이고 동생은 거울 정령이라……. 이 자매의 정령은 왜 이렇게 특이하고 희한한 걸까?’
공화련이 급히 물었다.
“뭔가 다른 건 못 느꼈어? 거울 정령은 어떤 공격 능력이 있는 거야?”
“모르겠어. 딱히 어떤 힘도 못 느끼겠는걸!”
공서련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하등 쓸모없는 정령이 나왔나 봐!”
공화련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동생의 정령이 정말 아무 쓸모없는 것일까?
그녀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천제현을 바라봤다.
천제현이 뭔가 해답을 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천제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정령이란 건 없어요. 모든 정령이 그 존재 이유를 갖고 있지요. 중요한 건 그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요.”
그 말에 공서련은 눈을 반짝였으나 곧 다시 풀이 죽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나 위로하려고 거짓말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돼. 난 지금까지 얻은 성과로 만족하니까.”
‘얘는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을까?’
공서련의 정령을 몇 분 동안 관찰하던 천제현은 뭔가 생각난 게 있는 듯 눈을 빛냈다.
“서련 아가씨, 일단 정령을 불러들이지 마세요. 제가 권법을 하나 가르쳐 줄 테니까 잘 기억하시고요.”
공화련 자매는 뜬금없는 그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권법은 왜 가르친단 말인가?
천제현은 정원 중앙으로 걸어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은 천제현의 모습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천제현은 기를 모은 후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며 허리를 굽히고 유성처럼 오른 주먹을 내뻗었다.
그가 펼친 권법은 충소권이었다.
천제현의 주먹에서 세찬 바람이 일자 앞쪽에 있던 작은 나무가 활처럼 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