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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121화 (120/729)

# 121

제121장 강매에는 강매로

천진상회에서 데려온 대규모 정예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 죽거나 불구가 되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천진상회에서 거금을 들여 육성한 정예들이었다.

‘호위병이 전멸한다면 무슨 낯으로 돌아가 총회장을 본단 말인가?’

“멈추시오!”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한 경현이 몸을 일으켰다.

“협상을 다시 합시다!”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요?”

천제현이 차가운 칼날을 경현의 목에 대고 누르면서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뭐. 이야기는 한번 들어보죠. 자자, 앉아서 이야기해요.”

경현이 어쩔 수 없이 앉자 그의 목에서 유명검을 떼어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이상한 수작을 부렸다간 목이 달아나게 될 거예요!”

경현이 돌처럼 굳어져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우…… 우리가 졌소! 뭘 어쩔 작정이오?”

천제현이 공화련에게 눈빛을 보냈다.

묵직한 자루가 탁자 위에 떨어졌다.

천제현이 자루를 열었다.

“하급 마석 500개예요. 유성초 분지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장음진 근처에 가지고 있는 재산 전부를 넘기세요. 하나도 남김없이요!”

자루에는 반짝거리는 하급 마석이 가득했다.

경현이 살짝 멈칫했다.

“하급 마석?”

마석은 대륙의 여러 곳에서 통용되는 화폐였다.

남하국 같이 수준 낮은 국가에는 마석 광산이 거의 없어서 마석으로 결제를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급 마석 한 개의 가격은 최소 금화 만 냥과 맞먹었다.

기적상회는 작은 도시에서 설립된 상회다.

그런 상회가 어떻게 마석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경현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이 상회는 뭔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하급 마석 500개로 천신상회가 장음진에 소유하고 있는 재산 전부를 인수하겠다고?’

상황이 협상 초기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경현이 분노하며 외쳤다.

“마석 500개의 시장가치는 금화 500~600만 냥에 불과합니다. 그 액수로 천진상회의 수천 만 냥에 달하는 자산을 인수하겠다는 겁니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급 마석 500개는 천제현이 암시장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지금 기적상회의 금고에는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무슨 재주로 금화 수천 만 냥을 마련하겠는가?

천제현은 애당초 마석 500개를 선금으로 지불한 후 거래가 완전히 끝날 때 잔액을 지불할 계획이었다.

천제현이 생각한 정당한 거래 절차였다.

그런데 이 늙은이가 기적상회를 집어삼키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에게 기적상회를 헐값에 강탈하려고 했지? 그럼 나도 똑같이 해주지!’

천제현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젠장, 이 지경이 돼서도 그따위로 구는 겁니까?”

그러고는 천제현은 상대가 노인이라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소매를 걷어 뺨을 후려쳤다.

경현이 곧장 바닥에 쓰러졌다.

턱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아니, 아닙니다!”

경현이 꼴사나운 모습으로 바닥에서 버둥거렸다.

천제현이 그를 일으켜 세운 후 두 눈을 부릅뜨고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팔 거예요 말 거예요?”

경현이 퉁퉁 부은 얼굴로 피를 토하며 외쳤다.

“이건 강도짓이잖소!”

“뭐가 강도짓이라는 겁니까? 무식하기는. 이건 강매라는 거요!”

천제현이 다시 그의 얼굴에 뺨을 갈겼다.

이까지 몇 개 나가서 계속 피를 토하는 경현의 모습은 아주 볼썽사나웠다.

천제현이 다시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계속 소리쳤다.

“당신 체면을 봐서 강매하는 거라고요! 알겠어요? 실력도 없으면서 파렴치하게 굴지 마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경현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는 상황이었다.

경현은 완전히 무너져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었다.

“팔…… 팔겠습니다만 값을 좀 올려주면 안 되겠습니까? 이건 너무 적어요! 돌아가서 할 말이 없소이다. 총회장이 날 죽일 거요!”

“빌어먹을, 이게 적다고요?”

천제현이 경현을 세차게 땅에 내동댕이쳤다.

“내가 계산을 해주지요! 금화 500~600만 냥이 적긴 하죠. 그러나 당신과 당신 조카, 호위병 100여 명의 목숨을 생각하시오.”

천제현이 칼끝으로 두 사람의 목을 가볍게 댔다.

섬뜩한 한기가 피부에 전해졌다.

“그걸 생각하면 남는 장사일 텐데요!”

천제현의 말 속에는 거절하면 100여 개가 넘는 목숨이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이 담겨 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경호가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이게 사람인가! 이건 악마다! 처음에 보였던 순한 모습은 모두 가짜였어!’

“젠장, 벙어리에요? 내 시간은 귀하다고요. 여기서 당신들 따위와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요. 목숨인지 재산인지 빨리 결정해요!”

‘저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로 보아 놈은 몹시 독한 놈이다. 분명 우릴 죽일 거야.’

경현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유성초 분지만 해도 최소 2천만 냥입니다. 근처 장음석 광산은 모두 천진상회 소유로 다해서 약 천만 냥은 될 겁니다! 5백만 냥으로 판매하면 내가 어떻게 총 회장님을 뵙겠습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죠. 우리는 원래 제대로 협상을 벌일 계획이었지요. 그런데 당신들이 흑심을 품고 몰염치한 짓을 해 이 사달을 낸 게 아닙니까!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했지요? 그러니 나도 힘으로 밀어붙이죠!”

“당신…….”

천제현이 양손으로 유명검을 높이 들었다.

“셋을 세죠. 계약서에 서명을 하든지 목숨을 내놓든지 알아서 해요. 셋! 둘…….”

자승자박.

딱 천진상회가 벌인 짓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서명하겠습니다! 서명하지요!”

경현이 온통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일단 목숨은 지키고 보자!’

천제현이 코웃음을 쳤다.

“몇몇 사람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죠. 천지 분간 못 하고! 그게 당신이었네요. 자, 어서 서명해요!”

양측이 계약서를 꺼냈다.

경현은 마지못해 서명했다.

이로써 유성초 분지 한 곳과 장음석 광산 두 곳을 전부 기적상회에 넘어갔다.

경현은 마음이 쓰라렸지만 꿍꿍이가 있었다.

일단 목숨을 보전하는 게 먼저였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상회로 돌아갈 수 있다.

상회로 돌아가기만 하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복수 할 생각이었다.

경현이 복수를 꿈꾸거나 말거나 천제현은 흡족해하며 계약서를 정리했다.

경현이 아직 얼어있는 경호를 일으킨 후 굽실대며 말했다.

“계약서에 서명도 했으니 가도 되겠지요?”

천제현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렇게 급히 가려는 걸 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죠?”

경현이 급히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그래요? 내가 보기에는 돌아가서 바로 무슨 수작을 부릴 것 같은데요! 천진상회는 세력이 막강하니 왕국의 법에도 관여할 수 있겠지요. 그럼 나만 물 먹는 셈이죠.”

천제현이 음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바보로 보입니까? 날 가지고 놀 생각인가 보군요!”

경현이 둘러대려고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천제현이 재빠르게 검은 단약을 꺼내 경현의 입에 억지로 넣고 삼키게 했다.

경현이 당황하며 외쳤다.

“뭐…… 뭘 먹인 겁니까?”

천제현이 음흉하게 웃었다.

“흑화약사 묵연이라고 들어봤나요?”

흑화약사는 중주성에서 가장 유명한 제약사 중 하나였다.

그는 해독할 수 없는 난해한 독약 조제에 능했다.

그런 그를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이건 흑화약사의 백일부심단(百日腐心丹)입니다!”

경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백일부심단은 악명으로 이름 높았다.

경현도 당연히 그 약에 대해 들어본 적 있었다.

이 단약에는 식심독이 들어 있어서 먹는 순간 중독된다.

식심독은 해독하기 거의 불가능한 맹독이었다.

장립청마저도 이 독에 속수무책이지 않았는가.

식심독은 사람을 단숨에 죽이지 않는다.

서서히 심맥을 갉아먹으며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장시간에 걸쳐 사람을 혹독하게 괴롭힌 후 마지막에 심장이 썩어 죽게 만든다.

천제현은 미동도 하지 못하는 경호에게도 다가가 입을 벌리고 독약을 먹였다.

이 단약은 모두 고묘에 갔을 때 묵연의 시체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이렇게 쓸모가 있었다.

경현과 경호의 안색이 잿빛이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죽었구나!’

“절망하지 마세요. 식심독은 해독할 방법이 있습니다.”

이 말을 뱉은 후 천제현의 말투가 갑자기 확 달라졌다.

“오늘부터 얌전히 내 말대로 하면 정기적으로 해독약을 드리지요.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백 일도 못 살고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겁니다!”

‘악독한 놈!’

‘독으로 우리를 조종하려 하다니!’

경현이 비통해하며 외쳤다.

“날 꼭두각시처럼 부릴 생각은 마시오! 죽어도 상회에 손해나는 짓을 할 순 없습니다. 재주 있으면 그냥 날 죽이시오!”

“패기 넘치는군요!”

천제현이 실실 웃었다.

“죽는 게 두렵지 않았다면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겠지요! 내 앞에서 폼 잡지 말아요! 불구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경현이 몸을 떨며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됐습니다. 얼굴 좀 펴요. 나는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도리를 다하고 덕을 베풀어야지요. 오늘 이 지경까지 돼서 나도 유감입니다만 이건 당신들이 자초한 거예요!”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변했다.

“그렇지만 화가 복이 될 겁니다!”

화가 복이 된다고?

자원을 강제로 팔아넘기고 만성독까지 복용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앙이거늘 뭐가 복이란 말이야?’

천제현이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눈앞의 이해득실만 따져서는 안 되지요. 좀 멀리 보라고요. 나한테 조종을 당하게 되었으니 내 충견이 된 셈이지요. 그러나 이점을 알아야 해요. 주인을 잘 만난 개는 신수가 훤하다고요. 많은 사람이 내 충견이 되려고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어요! 내 말에 알아 듣겠어요?”

경현과 경호는 부끄러워서 목숨을 끊고 싶었다.

모욕을 당해도 이렇게 모욕 당하는 건 처음이었다.

경현이 울상을 하며 말했다.

“예, 예…….”

“그래야지요. 우선 주인에게 먹을 게 있어야 개도 뭘 얻어먹죠.”

천제현이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당신들과 다른 거래를 더 해야겠어요!”

경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상회의 자원을 싼 값에 팔아넘긴 일만 해도 걱정이 태산이오. 더는 그 어떤 물건도 얻어낼 생각 마시오!”

“저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천제현이 그의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말했다.

“당신들이 먼저 잘못했기에 나 또한 그리한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협력과 상생의 마음가짐으로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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