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제119장 강매(2)
사실 이번 협상은 허울에 불과했다.
천진상회는 자산이 금화 수억 냥에 달하는 대형 상회였지만 정체기에 부딪쳤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시급했다.
기적상회의 신기술은 그들이 꿈에 그리던 것이었다.
물론 천진상회는 며칠 전 천남성에서 발생한 중대한 사건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경호가 이렇게 겁 없이 구는 것이다.
“제대로 판단하십시오!”
그는 천제현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거래 형식을 띠고 있는 건, 당신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약육강식의 시대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삼키는데 아무 이유도 없어요! 설립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회를 이렇게 높은 가격으로 넘길 수 있는데 만족할 줄 알아야지요!”
‘강매가 체면을 세워주는 거라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야!’
공화련은 어이가 없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천진상회가 얼마나 강한지 아십니까? 이렇게 대단한 후원자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경호가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기적상회에 엄청난 영광이에요! 이건 아주 대단한 기회라고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천제현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뭘 어쩔 건데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지 마!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기반도 실력도 없으면서 운이 좋아 신기술을 개발한 거잖아!”
경호가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났다.
“우리가 강제로 집어삼킨다 해도 너희들이 뭐 어쩔 수 있을 것 같아? 실력도 없는 주제에 버티지 마!”
“말 한 번 잘 했어!”
천제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냉기를 뿜어냈다.
“네 말에 완전히 동의해!”
경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자식이 실성했나?’
“헛소리 말거라!”
경호의 말이 얼추 끝나자 마침내 경현이 입을 열었다.
한 놈은 악인 역할이고 한 놈은 호인 역할로 분업이 명확했다.
경현은 이번 협상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협상을 통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그러나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없으면 천진상회는 거리낌 없이 다른 특수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경현이 점잖게 말했다.
“천진상회는 협력을 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성의를 표하기 위해 금화 천만 냥으로 기적상회를 인수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기적상회에 아주 공평한 가격입니다.”
‘협박과 회유라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군!’
금화 천만 냥은 소규모 가문의 상회라면 눈이 돌아갈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러나 고작 금화 천만 냥으로 전도유망한 기적상회를 인수할 생각이라니?
공화련은 몹시 화가 났다.
‘이게 강탈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지?’
천진상회는 협상이라는 미명 하에 몰염치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상인은 믿음과 도의를 가장 중시해야 한다.
그런데 천진상회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저버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질타가 두렵지 않은 듯했다.
천제현이 침착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쩌실 겁니까?”
“동의하지 않는다고?”
경호가 주위를 쳐다봤다.
“먼저 사방을 살펴보시지. 네 마음대로는 안 될 거야!”
천진상회의 정예병 100여 명이 살기를 뿜으며 무기를 움켜쥐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모여들었다.
강력한 위압감이 엄습했다.
이를 본 천제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공화련은 다가오는 호위병을 바라보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천진상회에서 이렇게 만은 호위병을 데리고 왔구나. 이번 담판은 처음부터 딴 속셈이 있었던 거야!’
“살기 한 번 대단하네!”
천제현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천진상회가 기적상회보다 정말 강하다고 생각합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천제현의 말에 경현과 경호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천제현이라는 자도 분명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군! 하긴 천남성 같은 곳에 인물이 나와봐야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나오겠어?’
경호는 천제현을 한껏 깔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제현은 잠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더니 천진상회에게 제안을 했다.
“그러면 어느 상회가 더 강한지 알아보기 위해 무예 시합을 하는 게 어떨까요?”
천제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제가 데려온 자들 중에 마음껏 고르십시오. 한 명이라도 이긴다면 당신들의 조건을 받아들이지요! 그게 싫다면…… 난 내 나름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사는 게 지겨운가 보군! 천진상회의 호위병은 모두 거금을 주고 고용한 백전용사와 용병들이다. 정예 중의 정예라고. 네까짓 게 무슨 수로 우리와 시합을 해?”
“강약은 입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진짜 실력으로 붙어봐야 알 수 있죠!”
‘혼쭐이 나봐야 후회를 하겠군? 그럼 뜻대로 해주지!’
경호가 외쳤다.
“경범!”
호위대장 경범이 뛰어나왔다.
“회장님, 분부를 내려주십시오!”
“작은 성에서 온 촌놈들이 세상물정도 모르고 천진상회에 도전하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는가?”
“소인이 혼쭐을 내주겠습니다!”
“그래. 사정 봐줄 것 없다!”
“예!”
경범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서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천제현을 쳐다본 후 그가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검은 도포를 걸친 열여덟 명이 음침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치 호흡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가슴도 전혀 들썩거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열여덟 개의 돌덩이 같았다.
경범은 그들을 살피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경범이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경범은 누구를 골라야 좋을지 알 수 없었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부회장의 근위병으로 혼성 1성의 강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경범은 작은 성의 소규모 상회 호위병이 자신과 겨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 명씩 할까 아님 한꺼번에 덤비겠어?
경범이 자신만만하게 허리춤에서 패도를 뽑으며 외쳤다.
“가장 강한 놈이 먼저 나서라. 시간은 귀중한 것이니 내 한 칼에 끝내주마!”
천제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널 상대하는데 왜 가장 강한 호위병이 나서야 해? 가장 약한 병사로도 충분해!”
아무 예고도 없이 방울이 가볍게 울렸다.
검은 도포를 걸친 자 하나가 등 뒤에서 쏜살같이 날아왔다.
너무 갑작스럽고 괴상했다.
마력의 파동도 없는데 발밑에 용수철을 장착한 것 같았다.
검은 도포를 걸친 자는 빠른 속도로 돌진하면서도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믿을 수 없이 빠르게 속도로 이동했다.
몸에서 검은 안개가 빠르게 퍼져 나오며 가공할 만한 강력한 기운이 삽시간에 주위를 감쌌다.
경범이 몹시 놀랐다.
‘이…… 이럴 수가 있다니?’
그가 당황하며 날카로운 패도를 날렸다.
휙!
검은 도포를 걸친 자가 손으로 패도를 내리쳤다.
경범은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패도를 놓쳤다.
패도는 벽에 날아가 박힌 후에도 계속 바르르 떨렸다.
패도의 날을 쳤음에도 손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강시의 몸은 칼과 창으로 뚫을 수 없는 강철처럼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경범은 상대방이 양손으로 검은 안개를 모으는 것을 멍하니 지켜봤다.
온 손바닥이 까맣게 변하면서 강렬한 죽음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난폭하고 괴이한 기운이 엄습했다.
‘이런 망할!’
정신을 차린 경범이 가까스로 손을 휘둘러 강시가 내뿜은 기운을 막았다.
무시무시한 힘이 퍼지면서 주변의 탁자와 의자가 모두 박살 났다.
“쿨럭!”
경범이 피를 뿜으며 벽에 처박혔다.
애써 방어헀음에도 경범의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그러더니 경범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일격이라니!’
검은 도포를 걸친 자는 한 번밖에 공격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호는 천진상회 부회장의 근위병이다.
그런데 검은 도포를 걸친 자의 일격도 막지 못하다니?
검은 도포를 걸친 자는 경범을 처리한 후 바로 천제현의 뒤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각상처럼 주어진 임무만 수행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전혀 힘을 쓰지 않은 듯했다.
“정말 실망스럽군!”
천제현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며 매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그런 한심한 실력으로 내 앞에서 으스대다니! 그따위 실력으로 잘도 날 위협했군! 대체 누가 살기 지겨운지 모르겠네!”
천제현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엄청난 기운이 성난 파도처럼 퍼지자 사람들은 공포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천제현이 데려온 자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일격에 경범을 격파했다.
검은 도포를 걸친 자는 최소 혼성 2성의 실력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 수는 열여덟이나 되었다.
기운으로 보나 차림으로 보나 열여덟 모두 똑같았다.
‘설마…… 열여덟 명 모두 혼성술사인가?’
경현이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상대를 잘못 고른 건 아니겠지!’
경범의 호위대가 이 괴물들을 건드릴 실력이 되는가?
아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혼성술사 열여덟 명을 근위병으로 두는 것은 중주성의 성주라도 불가능했다.
‘천제현은 작은 성의 소규모 상회 설립자일 뿐인데 어떻게 이 고수들을 모았지?’
경호가 분노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주 잔인하고 사악한 장법이군! 무인이라면 떳떳하게 겨뤄야 하거늘 더러운 방법으로 경범을 해하다니! 정말 비열하구나!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천제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천하에 무공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독장이 더러운 무공이라고 누가 그래? 져놓고 발뺌하는 게 천진상회의 자세인가!”
“이번 판은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 있으면 한판 더 붙어보자!”
공화련이 분개하며 외쳤다.
“졌으면 진거지 이렇게 대놓고 말을 뒤집는 거냐!”
천제현이 공화련을 진정시켰다.
“우리가 두려울 게 뭐 있습니까? 한판 더 붙고 싶다니 기회를 주면 되지요.”
천제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번 판은 어떻게 붙고 싶어?”
“내가 직접 나서겠다!”
경호가 뜻대로 되었다는 눈빛을 하며 비열하게 웃었다..
“공화련 아가씨, 저와 한판 붙으시죠!”
공화련은 여인인 데다 나이도 어리고 오랫동안 상회를 경영했다.
그렇다면 분명 실력이 강하지 않을 것이다.
공화련의 안색이 변했다.
“당신…….”
“왜 그러십니까? 누군가 친히 그러지 않았습니까. 데리고 온 사람 중 아무나 골라도 된다고요.”
경호가 기선을 제압하려고 공화련의 말을 끊었다.
“호위병들은 놈이 데려온 사람이고 공화련 아가씨는 아니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