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118화 (117/729)

# 118

제118장 강매

공화련의 마음속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는 물론 천제현의 말에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공화련이 묻기도 전에 청동만우차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장음진에 도착했나봐요. 내리시지요!"

천제현이 먼저 차에서 뛰어내렸다.

장음진은 흑석진과 규모가 비슷했지만 몇 배나 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어쨌든 중주 지역 한복판에 위치한 마을이며 주위는 온통 자원의 산지였다.

흑석진처럼 변두리에 위치하지 않았고, 강시협곡과 암시장 같이 위험한 곳이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천제현과 공화련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은색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100명이 넘는 정예병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모든 병사가 주문이 새겨진 보검을 들고 있었다.

주변 집들의 지붕과 창문마다 활을 든 호위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정말 신중하군!’

천제현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우락부락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기적상회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저는 천진상회의 호위대장 경범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경범은 혼성술사였다!

일개 집사가 이런 고수라니.

주위를 둘러싼 호위들도 대부분 연체 8~9성의 고수였다.

역시 대규모 상회다웠다.

펑범한 세력이라면 이런 광경을 연출할 수 없다.

푸른 옷의 천제현과 흰 옷의 공화련이 앞장서고 검은 옷의 강시군단 열여덟이 그 뒤를 따랐다.

둘은 노천에 마련된 탁자 앞에 도착했다.

탁자에는 노인 하나와 청년 하나가 앉아 있었다.

청년은 고급스러운 남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비단옷 가장자리에는 품위 있는 댓잎이 수놓아져 있었다.

머리에는 정교한 흰 옥으로 된 장식이 꽂혀 있고 손에는 흑단과 비단실로 만든 부채가 들려 있었다.

탁자에는 옥이 가득 박힌 보검이 놓여 있었다.

화려한 외관이 전형적인 귀공자의 모습이었다.

‘이 청년이 상회 회장이 아닐 거야.’

천제현은 옆에 앉은 정정한 백발노인에 눈길을 주었다.

노인은 인자한 얼굴에 매우 편안한 차림으로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으나 눈빛에는 교활함이 반들거렸다.

천제현을 보는 눈빛이 마치 금광을 발견한 것처럼 이글거렸다.

휘리릭!

청년이 부채를 가볍게 접었다.

남색 옷의 청년이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굽히고 손을 모아 인사했다.

“정말 뜻밖입니다. 기적상회의 회장이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라니요.”

“저는 경호라고 합니다. 천진상회의 회장이지요.”

남색 비단옷을 입은 청년이 공화련을 훑어보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이분은 제 숙부님인 경현입니다. 천진상회의 부회장이시죠!”

‘못났다. 미녀를 보자마자 눈이 튀어나오겠네. 이런 자식이 무슨 큰일을 해? 딱 봐도 물려받은 거군!’

천제현이 헛기침을 했다.

경호가 그제야 천제현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천제현이 비싸지 않은 옷을 입고 천으로 휘감은 검을 매고 있는 것을 보고 호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공 회장처럼 선녀같이 아름다우신 분이 이렇게 평범한 호위를 데리고 다니시다니요? 공 회장의 풍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호야, 무례를 범하면 안 된다.”

노인이 옥으로 된 찻잔을 내려놓았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꾸짖는 어투가 아니었다.

천진상회 같은 대형 상회에서 이렇게 작은 상회와 협상을 하러 나온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냐는 듯한 태도였다.

“이분은 하인이 아니라 기적상회의 천제현 총회장이십니다.”

경호는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사실 경호와 경현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

“천 회장에 대하여 들은바가 있습니다.”

경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천 회장은 중주성에 있지도 않은데 이름이 났지요. 정말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푸른가 봅니다.

‘그래?’

그의 정보는 완전하지 않았다.

천제현의 최근 행동에 대해 알았다면 이런 말투로 그를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공화련 아가씨께서는…….”

공화련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기적상회의 부회장입니다. 이번에 회장님을 모시고 협상에 참석하러 왔습니다.”

‘이놈은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잖아? 그런데 기적상회의 총회장이라니! 게다가 이런 미녀가 옆을 보좌하고?’

이것만으로도 사내들의 질투를 받기 충분했다.

경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천제현이 눈에 거슬렸다.

천제현은 경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후후. 나라도 더 잘생기고 더 젊으며 더 능력 있고 더 강한데다 절세미녀가 따른는 사람을 본다면 질투가 날 거야.’

천제현이 스스럼없이 자리에 앉았다.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검은 도포를 걸친 두 명의 강시가 조각상마냥 몸을 꼿꼿이 세우고 등 뒤에 섰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돌덩이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경현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

“기적상회에서 여러 차례 물건을 대량으로 들여갔지요. 게다가 갈수록 더 많은 양을 요청했습니다. 이제 아예 생산지를 구매하겠다고 하는 걸로 보아 유성초가 간절히 필요하신 것 같군요!”

협상이 시작되자 늙은 여우가 선수를 치고 나왔다.

물론 협상에서 천진상회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군소리를 싫어하는 천제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됐고, 기적상회는 유성초를 생산하는 분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격을 부르시지요!”

경현이 다소 멈칫했다.

그러자 경호가 옆에서 바로 가격을 불렀다.

“에누리 없이 금화 1억 냥입니다!”

1억?

무슨 말도 안 되는 가격이란 말인가?

분지에는 유성초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아무리 잘 쳐줘도 분지 전체의 가치는 금화 2~3천 냥 정도인데 1억이라니 단단히 미쳤군!’

기적상회 같이 작은 상회가 아니라 천진상회 같은 곳에도 현금 1억 냥은 내놓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 탓에 언짢아진 공화련이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이미 알아봤는데 천진상회에서 유성초로 매년 벌어들이는 수입은 고작 금화 2백만 냥에 불과합니다. 품질 좋은 유성초가 점점 줄고 있어서 수입은 해마다 내려가고 있고요. 이런 가격을 부르다니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닙니까!”

천제현 역시 냉소를 지었다.

‘1억? 미쳤군! 나한테 금광이라도 있는 줄 아나?’

천진상회를 통째로 쳐도 그 정도 가격은 안 나올 것이다.

경현이 일부러 모른 척했다.

기적상회에서 유성초 분지를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데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금화 1억 냥은 당연히 말도 안 된다.

그저 가격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경호가 차갑게 웃었다.

“우리가 1억이라고 하면 1억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에 지불해야 합니다!”

공화련이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협상할 마음이 전혀 없으면서 어째서 우릴 부른 건가요?”

여우가 천제현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탁자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사납게 침을 뱉으며 경호에게 불만을 표했다.

이 여우는 금화 1억 냥으로 맛있는 걸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지 잘 알았다.

경현이 순간 재미있다는 눈빛을 했다.

“당신의 영수는 사람과의 감응 능력이 뛰어나군요. 혼돈의 시대에 있었던 동물의 혈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우를 우리에게 파십시오. 가격은 협상 가능합니다.”

경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여우는 딱 봐도 고급 품종은 아니군요. 아무리 고대 마수의 혈통이라 해도 이미 거의 사라졌을 겁니다. 잘 쳐줘도 금화 수십만 냥 정도 되겠군요.”

경호가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

“천진상회는 통이 크니 금화 천만 냥으로 합시다. 9천만 냥을 더 내면 분지를 인수할 수 있어요!”

성이난 여우가 이빨을 드러내며 눈처럼 하얀 털을 세웠다.

“당신들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공화련은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

희망이 있는 협상이라고 여겼는데 이 두 작자가 먼 길을 오게 해놓고 판매 의향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천진상회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지만 기적상회는 분지 구매를 포기해야겠습니다. 천제현, 가자.”

경호가 갑자기 외쳤다.

“잠깐!”

공화련이 잠시 멈칫했다.

경호가 음흉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방안이 있습니다. 금화 한 푼도 지불할 필요 없이 전 재배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협상 시작부터 지금까지 천제현은 자리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 표정조차 바꾸지 않은 채 차가운 눈으로 두 사람의 표정을 관망할 뿐이었다.

공화련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간교한 장사치들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어떤 과분한 요구를 할지 듣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경호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금화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분지를 전부 인수할 수 있습니다. 전제조건은 우리에게 기적상회 지분의 6할을 넘기는 거지요. 그리고 이 쓸모없는 놈을 쫓아내고 내가 총회장이 되는 겁니다.”

“생산량이 점차 줄고 있는 분지를 전도유망한 기적상회와 맞바꾸자고?”

세상에 이렇게 염치없는 요구가 또 있을까?

이건 협상이 아니었다.

협상의 탈을 쓴 강탈이었다.

공화련은 더 이상 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천제현, 가자!”

천진상회의 호위병들이 가로막으며 둘을 보내지 않을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공화련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이게 무슨 뜻이죠?”

“기적상회에서 서신을 보내 재배지를 인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가겠다고 하다니 우리 천진상회를 놀리는 겁니까? 지금 낭비하고 있는 1분마다 우린 금화 수만 냥의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런 파렴치한 말이 어디 있어요!”

경호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가겠다고요? 가도 됩니다! 다만 우리의 손실을 배상하고 가십시오! 별로 많지 않습니다. 금화 천만 냥만 내세요!”

이때 천제현이 갑자기 껄껄 웃으며 공화련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큰아가씨, 고정하세요.”

공화련은 어이가 없었다.

“웃음이 나와?”

“원래 전통적인 방식으로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거래는 상대방에 따라 달라져야겠지요. 천진상회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원치 않으니 저들의 규칙에 따르죠!”

여기까지 말을 마친 천제현이 일어나서 크게 웃으며 물었다.

“두 분, 우리에게 강매하여 이익을 날로 먹으려 작정하셨습니까?”

천진상회의 정보력은 훌륭했다.

기적상회가 급격하게 발전하는 것을 알아채고 기적상회라는 탐나는 목표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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