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제114장 보험 드는 천제현
남궁의가 흥분을 감추며 바둑돌을 침착하게 놓았다.
“시국을 정확히 아는군. 그럼 내가 자네를 남궁 가문의 공봉으로 추천함세! 이 직위는 지위도 높고 매월 대량의 물질적 보상을 받게 된다네. 그리고 가문의 자원을 움직일 권한도 있어. 자네에겐 과분한 셈이지!”
남궁 가문의 공봉!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자리인가.
“제 가치를 후려치시는 게 아닌가요?”
천제현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으며 바둑돌을 놓았다.
“공봉이 그럴싸하긴 하지만 너무 대놓고 남궁 가문 사람이라고 알리는 거잖아요. 앞으로 발 빼기 힘들 것 같군요.”
“이 물정 모르는 놈 보게, 뭘 어쩔 생각인가?”
남궁의가 눈가의 근육을 떨며 힘주어 다음 바둑돌을 놓았다.
“남궁 가문은 왕국의 3대 가문 중 하나일세. 봉황 혈통의 계승 가문이고. 설마 자네를 거두지 못하겠나?”
‘별 시답지 않은 새 가문이 날 묶어두려 하다니.’
사실 천제현은 암시장에서 이미 방비를 해두었다.
그가 왜 운요의 무공을 개량시켜주었을까?
정말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 일은 운씨 가문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한 후 천제현이 선제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목적은 운씨 가문이 자신에게 큰 신세를 지게 만들어 중요한 순간에 써먹으려는 것이었다.
채향을 치료한 것도 역시 여러 가지를 고려한 행동이었다.
채향이라는 이름은 분명 완전한 이름이 아닐 것이다.
성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가문은 아마 4대 세도가가 아닐지라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한 곳과는 관계를 다지고 한 곳에는 투기하듯 투자를 해놓았다.
그걸로 이미 충분했다.
“아시잖아요. 전 성격이 거칠어서 누구에게 지시받는 것을 싫어하죠. 말 한 마디만 거슬려도 바로 상대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어버립니다. 남궁 가문에 폐를 끼치지 않게 공봉 자리는 거절하겠습니다.”
천제현이 바둑돌을 놓았다.
“저와 큰아가씨, 작은 아가씨에게 객경 자리를 주세요!”
“정말 객경 자리를 원하나?”
남궁의가 약간 못마땅해 하며 말했다.
“객경은 어떤 실권도 없고 자원도 사용할 수 없네. 명예직이라고 봐야지. 객경도 가문의 보호를 받기는 하지만 되기가 쉽지 않네. 반드시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해.”
“어떤 조건인가요? 말씀해 보세요!”
“첫째, 최소한 혼성 이상의 실력이어야 하네!”
“그건 어렵지 않아요!”
“둘째, 남궁 가문에 공헌을 해야 해.”
“그것도 쉽네요!”
“셋째, 장로급 인물의 추천이 있어야 하네!”
“그건 성주님께 신세를 져야겠네요.”
남궁의는 여기까지 듣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에게 강요는 먹히지 않는다.
‘그래 고문으로 하자. 어쨌든 남궁 가문 세력 안이 아닌가!’
천제현의 자유분방한 성정을 묶어두는 건 불가능하다.
“혼성 경지에 이르는 것은 저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천제현이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품속에서 두꺼운 족자를 꺼냈다.
“이걸 받아주십시오.”
남궁의가 족자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건…….”
“제가 자세히 연구하여 정신 수련을 보조하는 비술을 정리했습니다. 전부 족자에 담겨 있어요.”
천제현이 말을 끊고 물었다.
“제 생각엔 이 정도면 남궁 가문에 공을 세운 게 아닐까요?”
“그럼, 물론이네!”
남궁의가 뜻밖의 선물에 몹시 기뻐하며 족자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자했다.
내용이 많지는 않았다.
그저 몇천 자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글자 하나하나가 천금 같고 간결하지만 진리가 숨겨져 있었다.
남궁의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천천히 폈다.
기쁨이 가득한 두 눈으로 족자를 거칠게 접으며 호쾌하게 웃었다.
“좋아! 정말 듣도 보도 못 한 비법이군! 이 족자만 있으면 고문은 문제없네!”
검증할 필요도 없다.
남궁의는 단번에 비법에 숨은 심오한 뜻을 파악했다.
몇천 자 안 되지만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었다.
남궁의는 이 비법을 익히면 최소 입미의 경지에 이르는 게 꿈이 아님을 확신했다.
남궁의는 족자를 보물처럼 깊숙이 숨겼다.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질 것 같군! 가문의 장로 몇 분이 곧 올 테니 내 최선을 다해 주선을 해보겠네. 남궁 가문의 객경 자리를 남겨놓을 테니, 자네들이 혼성술사가 된다면 바로 정식 객경이 될 수 있어!”
남궁 가문에서는 장로 이상만이 객경을 받을 수 있다.
남궁의는 가문에서 고급 관료에 불과했다.
남궁 가문의 장로는 최소 혼성 4성의 실력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었다.
남궁의는 혼성 3성 정점이라 장로가 될 수 없고 객경 역시 받을 자격이 없었다.
따라서 가문의 장로가 천남성을 방문할 때에 천제현을 추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천제현은 마음을 놓았다.
세 가문 모두 중주성의 세도가로 전횡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그런 가문들이 눈엣가시를 가만 두고 보겠는가?
천제현은 그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가문의 체면과 분풀이를 위하여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통제 불가능한 맹수로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천제현은 그들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공서련이 다치고 나서 천제현은 반드시 비빌 언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소한 공서련과 공화련 자매를 안전하게 지켜야 그도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궁 가문이 뒤에서 버티고 있으면 양씨 가문이나 천씨 가문, 낙씨 가문에서 대놓고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다.
남궁 가문의 고문이 되는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탁!
“성주님, 또 지셨는데요!”
천제현이 다시 바둑둘을 두었다.
“이제 지겹네요. 가봐야겠어요.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성주가 바보처럼 바둑판을 쳐다봤다.
‘뻔뻔한 놈. 바둑을 두러 날 찾아왔다고?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할 것이지!’
천제현은 고문 자리를 청하려고 온 것이었다.
“잠깐.”
남궁의가 외쳤다.
천제현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남궁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자네를 도왔으니 자네도 날 좀 도와줄 수 있나?”
천제현은 남궁의의 표정을 보고 이미 짐작했다.
“남궁혜 아가씨 일인가요?”
“맞네!”
남궁의가 몹시 골치 아파하며 말했다.
“한참 전에 중주학당에서 그 아이를 소집했는데 꾸물거리며 아직도 안 가고 있어. 내 말은 안 들어. 천남성에서는 자네만이 그 아이를 설득할 수 있네. 자네가…….”
천제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남궁의가 말을 이었다.
“사실 중주학당의 고위 관리자와 남궁 가문은 관계가 깊다네. 중주학당에 가면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될 거야. 성장에 무척 중요한 요소지. 그러니 어찌됐건 그 아이에게 연수를 받게 해야 돼.”
남궁의는 몹시 답답한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구라도 그런 딸이 있으면 수명이 십 년은 줄어들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게 맡기세요!”
원래 계획이 있던 천제현은 이 일을 돕기로 했다.
남궁의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아이는 아주 반항적이니 절대 강요하지 말게. 성질을 건드리면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게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천제현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이틀 내에 남궁혜 아가씨는 자진해서 중주성으로 갈 겁니다. 게다가 아주 기뻐하며 갈 거예요. 못 가게 말려도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남궁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허풍을 떠는군! 남궁혜의 성격은 자네보다 한술 더 뜬다고!’
천제현은 성주부에서 돌아와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공화련은 상회 정리에 바빴고 공서련은 안정을 취하느라 오지 못했다.
그러나 장립청과 염천웅, 남궁혜는 참석했다.
남궁혜는 천제현을 보자마자 성큼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외쳤다.
“대장은 정말 운수대통이야. 외출했다가 돌아오자마자 출세했네. 축하해. 또 한 번 우리 상회의 체면을 세웠어!”
“천만에요!”
“그렇지만 네가 잘 나갈 때 우리 직원들은 상회를 지키느라 매일을 힘들게 보냈다고.”
“여러분들의 공을 잊을 리 없죠!”
후원에 화재가 났지만 기적상회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모두 이들이 힘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쩨쩨하게 굴지 말고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장 대사님께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천제현이 호기롭게 인삼을 꺼냈다.
“흑옥자문삼(黑玉紫纹参)입니다. 몸 안의 이물질을 제거해주고 생명을 연장시켜주죠. 대사님은 연세도 많고 몸 안에 아직 독기가 남아 있어요. 이거면 10년은 더 사실 수 있습니다.”
장립청의 수염이 떨렸다.
‘이……이건 너무 귀한데!’
장립청은 이 약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중주성 경매시장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가격이 최소 금화 수십 만 냥이었다.
게다가 이건 연이 닿아야지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파는 곳이 없었다.
천제현이 다시 금홍색 연꽃을 염천웅에게 건넸다.
“천년용강련(千年熔浆莲)입니다. 막 혼성 경지에 오르셨으니 실력을 다지고 더 성장하게 해줄 겁니다. 또 불에 대한 감응과 저항력이 올라가 단약 조제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염천웅 역시 크게 놀랐다.
‘천 년 묵은 영약이다! 통이 커도 이렇게 큰 건 처음이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건넨 두 물건에는 혼성술사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얼마나 호탕한가?
얼마나 통이 큰가?
그야말로 집안 말아먹을 행동이다.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정말 이렇게 큰 선물이 있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
남궁혜가 황급히 말했다.
“난? 내 껀? 내 선물로는 어떤 대단한 걸 준비했어?”
“아가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어요?”
남궁혜의 재능은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최고였다.
다른 사람들은 기를 쓰고 경지를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남궁혜는 반대로 계속 경지를 억눌러왔다.
“그 말도 맞네.”
남궁혜가 뾰족한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손해를 볼 사람이 아니었다.
갑자기 눈길을 천제현 어깨 위의 새끼 여우에게 돌리며 말했다.
“어라, 이 여우 참 귀엽다. 내가 며칠 데리고 놀아도 돼?”
휙!
새끼 여우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성난 사자처럼 거칠게 털을 흔들었다.
여우는 반짝거리는 두 눈에 불만을 가득 품고 남궁혜를 향해 발톱을 휘두르며 강하게 반발했다.
“어머! 얘가 사람 말을 알아듣네? 성격도 만만치 않고!”
남궁혜의 두 눈이 더욱 반짝거렸다.
“마음에 들어. 정말 너무 좋아. 며칠 빌려줘.”
장립청과 염천웅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립청이 놀라서 말했다.
“하늘 아래 이렇게 영험한 마수가 있단 말인가?”
장립청은 몰랐다.
이 여우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영험한 마수일 뿐이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 말을 알아듣고 태어나면서부터 지혜를 지닌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또 이 여우는 강시왕의 배속에서 최소 만 년 이상을 자랐다.
“이 여우를 드리고 싶긴 한데 이놈을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아가씨네 가산으로 키우려면 집안 말아먹어요!”
천제현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이 여우는 너무 많이 먹어!’
여우는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상관없어!”
남궁혜가 그 자리에서 생떼를 부렸다.
“다른 사람 선물은 다 챙겼잖아! 내 선물도 줘!”
천제현은 이 마녀를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선물을 준비를 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가 품에서 작은 책자를 꺼냈다.
“이 무공은 제가 뜻밖에 얻었는데 아가씨께 도움이 될 거예요.”